참고문헌 > 아 > 인천시 남구 지역 땅 이름의 조사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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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의 인천 향교 주변에 있었던 우물. 우물의 모양이 항아리처럼 깊으면서 물이 잘 나온 것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1974년 이강로의 「인천시 남구 지역 땅 이름의 조사 연구」에 의하면, 당시에도 독우물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주택 단지 개발로 인해 우물이 없어졌다. 독우물은 인천 향교의 남쪽 논 가운데 있었다는 것은 알 수 있으나, 현재 그 정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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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 문학산의 남쪽에 있었던 마을. 산삿골은 마을에 있는 골짜기 이름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미추왕이 도읍을 정하고 산성을 쌓았는데, ‘산성’이란 말이 바뀌어서 ‘산사’가 되었다고 추측된다. 1974년 이강로의 「인천시 남구 지역 땅 이름의 조사 연구」에 의하면, 당시 문학 출장소[현 문학동 행정 복지 센터] 서남쪽 버스가 다니는 길 건너편에 있는 문학산 기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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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에 있던 자연 마을. 문학동 주민 센터에 따르면 2012년 1월 현재 예전의 산성 마을 지역에는 모두 1,209세대에 2,203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산성 마을은 문학산성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문학동은 옛날에는 성촌(城村), 남산(南山)으로 불렸다. 1903년 8월에 서촌산성리(西村山城里), 남산리(南山里)로 구분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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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에 있는 학산 마을 뒤 배 바위 아래에 있었던 우물. 이강로의 「인천시 남구 지역 땅 이름의 조사 연구: 남촌·선학·연수·청학·동춘·문학·관교동」에 의하면, 산신 우물은 학산 마을 뒤 배 바위 아래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유희강의 『향토 인천의 안내-고적, 명승, 천연기념물』에는 산신 우물이 향교 뒷산 수챗골에 있었으며 물이 잘 나고 물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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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산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삼신 우물골이라는 이름은 삼신 우물이 있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삼신 우물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져 온다. 옛날 어느 마을에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부부가 살았는데, 다만 근심거리는 아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부는 삼신 우물에서 치성을 드리면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부부는 목욕재계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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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를 가로질러 흐르는 하천. 승기내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발원하여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 승기리 앞을 지나 서해로 들어가는 하천이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 승기리 앞을 흐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승기내는 주안 지역의 시가지가 확산되고 교통량이 늘어나면서 복개되어 만수로가 되었다. 승기내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수봉산에서 시작하여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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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에 있던 자연마을. 승학산 북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여러 뜸의 마을을 일컫는다. 승기리는 지금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의 북동쪽에 있는 마을로 ‘신비 마을’로 불린다. 이 마을의 이름은 한때 없어져 폐허가 되었다가 다시 생겼다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다시 이어서[承] 생긴 마을[基]’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제대로 고증되지 않은 내용이며 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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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 신비 마을 앞에 있던 들. 신비 마을은 과거 승기리였다. 승기리는 승학산 북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여러 뜸[한동네 안에서 몇 집씩 따로 모여 있는 구역]의 마을을 일컫는다. 승기리 지명 유래는 한때 없어져 폐허가 되었다가 다시 생겼다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하여 ‘다시 이어서(承) 생긴 마을(基)’이라고 한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이러한 지명 유래는 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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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주안 7동에 있던 자연 마을. 인천광역시청 앞에서 경원로를 따라 인천광역시 중구 쪽으로 가다 보면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주안동에서 신기 사거리와 만난다. 이 동네 일대를 예전에 신기촌이라고 불렀다. 신기촌은 한자어이며, 우리말 이름은 새터말이다. 신기촌은 시의 중심이었던 관청말 뒤쪽에 새로 터를 잡아 생긴 마을이라는 뜻이다. 새터말을 한자로 바꾼 것이 신기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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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 산기슭에 있었던 바위. 억 바위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 제운리 맞은편 산기슭 길옆에 있었던 바위이다. 억 바위 아래 불알 바위가 있었다. 한편 억 바위에 대해서는 이 바위를 깨면 학익동의 제우니 마을 과부가 바람난다는 전설이 있다. 일상에서 아무런 문제없이 생활하던 여성들이 돌의 영험한 힘에 감응하여 바람이 난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이야기를 ‘풍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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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에 있었던 다리에서 유래된 지명. 옥다리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 동회 앞 100m 지점에 있었던 다리이다. 관청은 관청 마을에 있고 옥(獄)은 개울 건너에 있었으므로 옥사(獄舍)로 왕래하는 다리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문학동 주민인 김무웅에 의하면, 문학 초등학교와 문학 출장소를 가기 위해서 건너 다녔던 돌다리로 ‘출장소 가는 다리’ 또는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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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에 있었던 자연 마을. 문학산의 이전 이름이 ‘학산(鶴山)’이었다. 학산 마을은 문학산의 기슭에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옛 이름은 남산리(南山里)였다. 학산 마을에는 학산 서원 터가 남아 있다. 학산 서원은 정관재·이단상을 모신 서원으로, 1768년 ‘학산(鶴山)’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1788년(정조 10) 이단상의 아들 간암 이희조를 추가 배향하여 선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