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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에 있는 근대의 한옥 주택. 문학동 376-4 주택은 문학동 우체국에서 학익동 방향으로 약 100여m 진행하다 남쪽 문학산 방향으로 좌회전하면 골목 안쪽, ‘가마솥 손두부’라는 음식점이 있는 건물이다. 문학동 376-4 주택은 규모가 상당히 큰 근대 한옥으로 ‘ㅁ’자 형태를 하고 있다. 191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연면적 132.2㎡ 규모로서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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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에 위치한 해방 전후의 건축물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166번지 일대에는 1960년대에 증·개축을 거듭하여 상업 건축들이 모여 있는 지역이다. 구조 형식으로 보아 해방 이전의 건물로 추정되나, 당시 이 일대가 모두 논과 밭이었다는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해방 이후의 건축물로도 추정할 수 있다. 인근 주민들의 말이 일치하지 않고 정부 기록에도 나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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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168-22번지 일대에 있는 근대 주택군.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168-22번지 주변 일대에 조금씩 남아 있는 집합 주택들이다. 이 건물들은 조선 알미늄의 사택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168-22번지[미추로 19번길 10-11] 일대이다. 대체로 일본식 주택인데, 바닥의 다다미를 나무 마루로 개조한 것 이외에는 개조 및 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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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42번지 일대 밀집해 있는 일제 강점기 관사. 숭의동 42번지 일대 집합 주택군에는 주로 나가야[長屋] 주택이 많다. 나가야 주택이란 한 건물 안에 여러 가구가 밀집해 거주하는 일본식 다세대 주택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주변 공장 지대의 종업원들이 거주했던 것으로 보인다. 주위의 건물들이 이와 비슷한 덧문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미루어 주변에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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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있던, 개항기 미국인 호러스 알렌의 별장 터. 알렌(Horace Newton Allen)[1858~1932]은 대한제국 시기에 활동한 미국의 외교관이자 선교사이다. 조선인의 하와이 이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던 알렌은 인천에 자주 들렀어야 했을 것으로 보이며, 그러기에 인천에 별장을 건립했던 것으로 보인다. 알렌 별장은 1893년 건립되었으며, 지상 2층의 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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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동에 위치한 일제 강점기의 창고 건물. 용현동 415-23번지 건축물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동 용현 사거리 물텀벙이 거리로 들어서 서쪽 방향으로 하나 교회를 지나 20m 진행하면 나오는 용현 2동 주민 자치 센터 옆에 있는 건물이다. 일본에서는 진흙을 다져 벽과 구조물을 만든 창고들이 화재에 잘 타지 않는 점에 착안하여, 쿠라츠쿠리(藏造り)[일본 고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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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와 경기도 수원을 연결하는 협궤 철도인 수인선의 용현역이 있던 자리. 수인선은 1937년 전라남도 여수에서 경기도 수원을 연결하는 협궤 철도였던 수여선을 인천까지 확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협궤 철도이다. 수인선은 수원에서 인천까지 총 52㎞의 구간에 17개의 정류장을 설치하였다. 당시 열차를 타고 수원에서 인천까지 걸리는 시간은 1시간 40분이었으며 17개의 정류장 중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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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동에 있는 병자호란 당시 의병장 이윤생과 이윤생의 부인 금천 강 씨의 정려. 이윤생(李允生)[1604년~1637년]의 본관은 인천 지역에 오랫동안 세거해 온 부평 이씨로 시조 이희목(李希穆)의 19세손이다. 후손 이주연(李周淵)이 찬한 『부사과공묘비명(副司果公墓碑銘)』에 따르면 이윤생은 어려서부터 의를 숭상하고 지략이 있었으며, 궁술과 마술에 뛰어나 충무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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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부터 1910년까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의 역사. 1392년 조선이 개국하였지만 아직은 전 시대인 고려 시대의 행정 제도를 정비하지 못하였다. 인천이라고 하는 지명은 조선이 개국하여 1413년(태종 13) 지방 행정 제도의 개편이 이루어질 때까지 등장하지 않으며, 인주(仁州)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군현제의 정비는 고려 시대 때부터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온 속현의 주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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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부 주안면 십정리, 현재의 인천광역시 부평구 십정동에 있었던 천일 시험 염전 터. 기후 및 지리적으로 천일염 생산이 어려웠던 일본은 조선이 천일제염(天日製鹽)을 시행하기 좋은 지형과 지질, 기후 등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여 1906년 대장성(大藏省)[재정, 통화, 금융에 관한 일을 관장하는 일본의 행정 기관]의 오우기시[奧技師]를 초빙하여 천일제염의 시험 장소를 물색하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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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있던, 개항 이후 인천에 들어와 거주했던 중국인들의 묘지 터. 의장지(義莊地)라고 불렸던 청국인 묘지는 1884년 3월 7일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체결한 인천구 화상지계 장정 조약(仁川口華商地界章程條約)에 의해 만들어졌다. 조약의 내용에는 청국인의 거주에 관한 규정이 있었다. 이 조항에는 “제물포와 10여 리 떨어진 지역 이내에 청국 상인들이 마음대로 좋은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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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에 있었던 고려 시대 사찰 터. 지금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에 있었던 학림사라는 절의 터이다. 1945년 5월 조사로 발견된 기와 조각의 명문을 통해 1317년(충숙왕 4)에 중수되었던 사찰로 보고 있다. 학림사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이나 『여지도서(輿地圖書)』, 『인천부 읍지(仁川府邑誌)』 등에 기록이 나와 있지 않아 그 변천 과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