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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정을 시조로 하고 가흥을 관향으로 하는 진도 세거성씨의 하나. 가흥(嘉興)은 고려 때 진도군 서북쪽에 있던 고을 이름으로 백제 때에는 도산(徒山) 혹은 원산(猿山)으로 불렸다. 신라 때 와서 뇌산현(牢山縣)으로 고쳤으며, 고려 때 가흥(嘉興)이 되어 진도에 속하게 되었다. 가흥을 본관으로 하는 김씨가 『증보문헌비고』에 소개되어 있다. 가흥김씨(嘉興金氏)의 선계(先系)는 신라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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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 진도에 입향한 진주강씨 입도조. 본관은 진주. 시조 강이식(姜以式)의 후손으로 증조부는 강희맹[1424~1483]이고, 조부는 강학손(姜鶴孫)[1455~1523]이며, 아버지는 강기수(姜期壽)[1481~?]이다. 진주강씨 진도 입도조로, 부인 창녕조씨와의 사이에 강극성·강극주·강극세 세 아들을 두었다. 할아버지 강학손이 무오사화 때 영광에 정착한 뒤에 그 후손들이 전라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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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알지를 시조로 하고 김충유와 김선을 입향시조로 하는 진도 세거성씨의 하나. 경주김씨는 김알지를 먼 시조로 한 성씨로 경순왕 이후 여러 본관성씨로 분파했다. 경주 본관을 계속 유지한 집안은 경순왕 셋째 아들 김영분(金永芬) 집안이다. 이 집안도 후손 중에서 여러 파로 갈려 서로 그 촌계를 가릴 수 없을 만큼 수가 많아서 각파별로 족보를 만드는 실정이다. 진도에 들어온 파는 김충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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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朴像)을 시조로 하고 박근무(朴根茂)를 입향시조로 하는 진도 세거성씨의 하나. 경주박씨(慶州朴氏)는 신라 제5대 파사왕의 38세손인 박상(朴像)을 1대조로 하고 있다. 『경주박씨세보』에 의하면, 그는 조선 초기 계유정난으로 수양대군이 어린 단종을 쫓아내고 왕위를 찬탈하자 이를 개탄하여 벼슬의 뜻을 버리고 매월당 김시습과 더불어 수양산으로 들어가 충정공 박심문 등과 함께 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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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알평(李謁平)을 시조로 하고 이순(李淳)을 입향조로 하는 진도 세거성씨의 하나. 경주이씨 시조는 경주의 양촌 촌장 이알평(李謁平)으로 한국 이씨 중 가장 오래된 성씨이다. 그러나 이 씨족은 시조로부터 36세인 소판공 이거명(李居明)을 기1세조(起一世祖)로 삼고 있다. 하지만 이 집안은 기1세조로부터 17세인 이제현(李齊賢)[1287~1367]을 가장 현달한 중조(中祖)로 모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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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백호(智伯虎)를 시조로 하고 정효분(鄭涍分)을 입향조로 하는 진도 세거성씨의 하나. 정(鄭)씨는 국내 5위 성씨로 그 본관이 122본에 달한다. 중국 귀화 성을 자처하는 서산(瑞山)정씨를 제외하고는 모두 신라 6촌장을 지낸 지백호를 시조로 단일화하고 있어서 경주 본관 정씨를 큰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동(河東), 연일(延日), 동래(東萊) 등 분파 명문 본관 정씨와는 구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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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을 시조로 하고 최덕징을 입향조로 하는 진도 세거성씨의 하나. 우리나라 최씨(崔氏) 중에서도 가장 뿌리가 굵은 경주최씨는 사로의 6촌 중 돌산고허촌장(突山高墟村長, 사량부) 소벌도리(蘇伐都利)를 원조로 받들고 있다. 그의 24세손으로 전하는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을 시조로 하여 경주를 관향으로 삼는 성씨이다. 경주최씨는 여러 갈래가 진도에 들어왔다. 26세 최덕징(崔德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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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말기 송산서당 훈장. 1841년(헌종 7) 진도군 군내면 송산리에서 태어났다. 자는 보명(甫明)이고 호는 삼양(三瀁)이다. 1827년(순조 27) 진도군 군내면 송산리에서 문을 연 송산서당은 일제강점기인 1934년에 폐쇄될 때까지 100여 년 동안 송산리와 인근 동네의 자제들을 교육하여 진도 북부에서 제일의 교육기관이라는 명성이 있었다. 곽승은 송산서당의 훈장을 하면서 많은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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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진도의 관인. 1803년 진도군 군내면 용장리에서 태어났다. 자는 내현(乃現), 호는 소매(小梅)이다. 진도군 군내면 집강(현재 면장)을 두 차례 지냈고, 집강을 지낸 후에는 향청에서 가장 높은 직임인 좌수를 두 차례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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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을 본관으로 하고 김여용(金汝龍)을 입향조로 하는 진도의 세거 성씨. 전라남도 광주 출신 김흥광을 시조로 하는 광산김씨(光山金氏)는 한국의 대표적인 가문의 하나로서 ‘광김’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광산(光山)은 현 광주(光洲)이다. 광산김씨가 조선조에 접어들어 명문이 된 것은 김주정과 같은 항렬의 김연(金璉) 집안이 충청남도 연산을 중심으로 사계 김장생(金長生)[1548~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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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이후 진도에 세거해 온 성씨. 신라 종성(宗姓)인 김씨(金氏)의 후예로, 송악(松嶽)에서 태봉국(泰封國)을 세웠던 궁예(弓裔)의 6세손 이종금(李宗金)을 시조(始祖)로 하고 있다. 이종금은 1010년(고려 현종 원년) 거란의 40만 대군이 침략하였을 때 강감찬(姜邯贊)의 휘하로 들어가 여러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으며, 1018년(현종 9) 3차로 재침해 온 거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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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 진도에 정착한 입도조(入島祖). 도강김씨(道康金氏) 조사공파 파조 김일(金鎰)의 8세손이다. 아버지는 김척강(金陟岡)이다. 부인은 조복명(曺腹明)의 딸이며 아들은 김분(金盆)[1497~1569]이다. 그 후손들의 집성촌이 진도군 임회면 연동리에 있다.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에서 진도군 고군면 향동으로 들어와 정착했다. 후손 김몽규가『옥주지(沃州誌)』를 지었다. 진도군 고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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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전기 개국공신. 본관은 진도. 진도김씨 시조 김국빈(金國儐)의 23세손이다. 아버지는 김강수(金康水), 어머니는 화산백(白)씨이다. 부인은 중원지(池)씨이고 아들은 김구석(金九碩)이다. 김경호는 왕건이 나주를 공략하기에 앞서 진도를 칠 때 왕건에 협력한 공으로 939년 옥주후(沃州侯)에 봉해졌다. 그는 가족들과 함께 개경(開京)으로 이거하여 살게 되었다. 큰아들 김구석(金九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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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관리. 본관은 김해. 호는 염와(念窩). 사마랑 김연(金鍊)의 15세손이고 가선대부 김선득(金善得)의 현손이다. 할아버지는 장사랑(將仕郞) 김인수(金璘琇)이고 아버지는 감찰 김긍묵(金肯默)이다. 1865년(현종 6) 8월 21일에 태어나 전라남도 진도군 부내면 동현리에 살았다. 무과에 합격한 후 무직을 두루 거쳤다. 지방위원, 영암군수, 진도군 공립보통학교 사무원,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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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김해. 시조는 김국빈이다. 증조부는 54세손인 김중여(金重呂)이고 아버지는 김가우(金嘉佑)이다. 김중여는 아들 김가우와 함께 전라남도 장흥군 장택에서 살다가 진도로 건너왔다. 형은 김백균(金百均)[1412~1474]이다. 부인은 창녕조씨이다. 1413년에 태어났다. 창녕조씨 조성하(曺成夏)의 사위가 되어 고군면에 정착하였다. 진사 시험에 합격한 뒤 관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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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 진도 입향조. 본관은 경주. 경주김씨 두계공파 5세손이다. 아버지는 김종(琮)이다. 아들은 김의춘(金義春)이다. 김익문은 1583년 장흥군 장동면에서 진도군 임회면 상만리에 들어와 정착했다. 경주김씨 백촌공파 9세손 김상혁(金尙赫)[1630~?]은 진도군 군내면 분토리에 정착했다. 김익문의 후손 중에서 김병삼(金炳三)이 체신부장관을 지냈다. 김상혁의 후손 중에서 김옥진(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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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진도김씨 시조. 본관은 진도. 고려조에서 호부상서를 지낸 김혁흥(金奕興)의 후손으로 진도김씨의 시조이다. 아들은 김간(金澗)이다. 『조선씨족통보』와 『동국여지승람』 등의 문헌에는 사용(司勇)에 오른 그의 후손 김천손(金天孫)을 1세조로 기록되어 있으며, 고려 때 삼정의 하나인 군정에서 일하던 김국빈을 1세조로 하는 문헌도 전한다.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강도 호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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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아동 교육가. 본관은 김해이고, 진도군 진도읍 남동리에서 김중열의 딸로 태어났다. 서울에서 여학교를 나와 진도 최초의 유치원을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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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 진도에 정착한 입도조. 본관은 광산. 문숙공파 26세이다. 아버지는 김광선(金光善)[1560~?]이다. 형은 김제흥이다. 아들 김여만(金汝萬)이 있다. 형 김제흥과 더불어 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에서 살다가 진도군 의신면으로 들어와 정착하였다. 그의 아들 김여만(金汝萬)이 광산김씨 의신파의 파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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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진도 입향조. 본관은 광산. 광산김씨 시조 김흥광으로부터 26세손이다. 아버지는 김광선(金光善)이다. 부인은 장흥마(馬)씨이다. 동생은 김제성이다. 아들은 김여용(金汝龍)이다. 1624년에 태어났으며 해남군에서 진도군 군내면으로 들어와 정착하였고, 그의 증손 김덕기(金德起)[1701~?] 때 지산면 관마리에 옮겨 정착했다. 그의 동생 김제성은 진도군 의신면에 정착했다.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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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진도에 정착한 입도조. 본관은 김해. 증조부는 김해김씨 경파조 김목경(金牧卿)이며 할아버지는 김임수(金林秀)이다. 아버지는 김사검(金思儉)이고 아들은 김가우(金嘉佑)[또는 金嘉義]이다. 고려말 신돈을 피해 경상남도 하동에 살다가 전라남도 장흥 장택으로 옮겼다. 장흥에 살 때 진도가 비어있고 살만하다 하여 아들 김가우를 데리고 여말선초에 진도에 들어와 정착하였다. 진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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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 진도군 설치에 공을 세운 인물. 본관은 김해. 호는 지암(智菴)이고 초명은 일청(日淸)이다. 아버지는 진도 김해김씨 경파 입향조 김가우(金嘉佑)이고 어머니는 청주한씨이다. 1437년(세종 1) 진도 설군(設郡)시 조복명, 박연 등과 더불어 공을 세웠다. 1475년(성종 6) 진도향교 건설에도 공을 세웠다. 아버지 김가우와 함께 진도군 의신면 옥대리 성사사(誠思祠)에 배향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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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의 세거성씨 중 하나. 김해김씨(金海金氏)의 시조는 수로왕(首露王)이며, 수로왕의 제12대손 김유신(金庾信)을 중시조(中始祖)로 하여 대소 98파로 나뉜다. 그 가운데 김유신의 직계종파(直系宗派)는 고려의 김목경(金牧卿)을 중시조로 하는 경파(京派)와 김익경(金益卿)을 중시조로 하는 사군파(四君派), 김관(金管)을 중시조로 하는 삼현파(三賢派)이다. 1530년에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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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 진도에 정착한 입도조. 1543년(중종 38)에 태어나 1605년(선조 38)에 죽었다. 본관은 광산. 광산김씨 문숙공파의 22세손이다. 아버지는 김귀문(金貴文)이며 부인은 장흥 (任)씨이다. 아들은 김모길(金謀吉)이며 며느리는 현풍곽씨이다. 후손들이 주로 진도읍과 의신면 명금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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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비를 시조로 하고 임정필을 입향조로 하는 진도 성씨세거의 하나. 나주임씨 장수공파 18세 임나원(林羅垣)[1552~1608]의 둘째아들 임정필(林廷弼)이 전라남도 무안군 일노면에서 태어나 진도에 들어와 1657년에 죽었다. 그의 무덤이 진도읍 해창 두류산에 있다. 임정필의 첫 부인 금성박씨(아버지 朴順龍)와의 사이에서 아들 임해(林海)[1628~1692]를 낳았고, 1630년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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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의 세거성씨 중 하나. 시조는 문다성(文多省)이다. 문다성은 신라 자비왕 대의 사람으로 5세에 문사에 스스로 통달하고 무략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총명하여 사물의 이치를 스스로 깨닫는지라 성을 문으로 하고 이름을 다성이라 칭했다고 한다. 그 후 삼중대광 벽상공신으로 남평백에 봉해지고 98세까지 살았다고 하여 후손들이 남평을 본관으로 하게 되었다. 전라남도 장흥, 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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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의 세거성씨 중 하나. 도강은 오늘날 전라남도 강진군의 북부에 있던 고려 때 고을 이름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남쪽 고을 탐진과 합해 강진군이 되었기 때문에 도강김씨를 강진김씨라고도 한다. 도강김씨 집안은 경순왕의 7대손 김희조(金希祖)를 시조로 하고 그로부터 5세인 김일(金鎰)을 기일세조(起一世祖)로 한다. 김경의(金敬義)는 오늘날의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당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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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의 세거성씨 중 하나. 동복오씨(同福吳氏)는 고려 고종 때 거란을 토평(討平)한 공(功)으로 동복군(同福君)에 봉해진 오령(吳寧)[1151~1215]을 시조로 하고 동복(전라남도 화순군)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오령의 19세손 오만국(吳萬國)[1597~1650]이 진도군 지산면 세방리에 자리잡았다. 오만국의 아버지 오계적(吳啓績)[1572~1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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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의 세거성씨 중 하나. 무안박씨(務安朴氏)의 시조 박진승(朴進昇)은 신라 경명왕(박혁거세의 29세손)의 여섯째 아들인 박언화(완산대군)의 8대손이다. 그는 벼슬이 국자제주(國子祭酒)에 이르고 고려 초에 공을 세워 무안을 식읍으로 하사받아 정착하여 살면서 본관을 무안으로 하였다. 진도 무안박씨 입도조는 시조 박진승(朴進昇)의 15세손인 박희정(朴希貞)[1460~1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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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 진도에 정착한 입도조. 본관은 남평. 남평문씨 20세손이다. 문익점의 9세손이다. 문익점의 다섯 아둘 중 둘째 아들 문중성(文中誠)의 후손들을 순질공파(純質公派)라 하는데 순질공파의 후손이다. 전라남도 나주에 살던 문한장(文漢章)의 둘째 아들이다. 부인은 창녕조(曺)씨이며 아들은 문억매(文億每)이다. 아들 문억매(文億每)가 진도군 지산면 오류리에 자리를 잡았다. 그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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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 진도에 정착한 입도조. 본관은 남평. 남평문씨 20세손이다. 문익점의 9세손이다. 아버지는 문귀중(文貴重)이다. 전라남도 나주군에서 살다가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로 들어왔다. 진도에 있는 남평문씨 집안은 문만 집안, 해남군에서 군내면 대사리로 들어온 22세손 문종(文宗) 집안, 지산면 오류리에 들어온 20세손 문덕련(文德連) 집안 등 세 집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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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의 세거성씨 중 하나. 밀양박씨의 시조는 신라 경명왕의 제1왕자인 박언침이다. 박언침이 밀성대군에 봉군된 이후로 그 후손들이 밀양(密陽)[옛 지명 밀성]을 본관(本貫)으로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밀양박씨족보(密陽朴氏族譜)』에 보면 진도 입도조는 박용(朴容)과 그의 숙부 박평(朴萍)으로 밀양박씨 시조 박언침의 24·23세손이다. 박용의 증조부가 청재공(淸齋公) 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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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의 세거 성씨 중 하나. 모든 손씨의 도시조는 신라 6촌(六村) 중 대수촌(大樹村)의 촌장인 구례마(俱禮馬)이며, 밀양손씨는 구례마의 후손인 손순(孫順)을 중시조로 한다. 진도군 입향시조는 손영[1582~?]으로, 임진왜란 이후 전라남도 보성군에서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마산리의 염수촌으로 들어왔다. 손영의 증손자 손천규(孫千圭)[1654~?]가 진도군 임회면 내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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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박씨의 진도 입도조. 본관은 밀양. 밀양박씨 시조 박언침(朴彦忱)의 24세손이고 밀양박씨 청재공 박심문(朴審問)의 증손자이다. 아버지는 박세부(朴世莩)이다. 아버지 박세부는 나주에서 살았었는데, 박용 대에 이르러 진도로 옮겨왔다. 부인은 창녕조씨이다. 박연(朴衍)·박정(朴挺)·박동(朴棟)·박종(朴樅) 등 아들 4형제를 두었다. 진도에 들어온 후 박용은 현재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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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출신의 교육공무원. 본관은 무안. 1932년 진도군 고군면 하율리에서 태어났고 1995년 향년 63세로 타계하였다. 1956년 경북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였고, 1978년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전남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1956년부터 광주북중학교, 광주중앙여고 교사로 재직하다가 1966년 광주교육대학 교수로 부임하여 교육계에 종사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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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 진도군 설치의 유공자. 본관은 밀양. 호는 당곡(棠谷)이다. 시조 박언침(朴彦忱)의 25세손이다. 할아버지는 박세부(朴世浮), 아버지는 진도 밀양박씨 입도조 박용(朴容)이다. 어머니는 창녕조씨 조필(曺弼)의 딸이며, 부인은 창녕조씨 조계남(曺繼男)의 딸이다. 형으로 박연(朴衍)이 있다. 박충손(朴忠孫) 등 4명의 아들이 있다. 이 후손들이 임진왜란 때 많은 공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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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 진도에 정착한 입도조. 본관은 함양(咸陽). 박혁거세 시조로부터 50세손이다. 박선(朴善)의 15세손이다. 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공신인 박기수(朴麒壽)이다. 어머니는 당시 진도 토호로 명문을 이루고 있던 진도 설군 유공자 조복명(曺復明)의 손자 조극인(曺克仁)의 딸이다. 동생은 박흥종(朴興宗)과 박흥세(朴興世)이다. 할아버지 때부터 강진에 살았으나 아버지가 진도 창령조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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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 진도에 정착한 입도조. 무안박씨 15세이다. 아버지는 박숭지(朴崇智)[1432~1532]이다. 형이 박종정(朴從貞)이다. 1505년 영암군수가 된 둘째 형 박종정(朴從貞)을 따라 영암에 왔다가 진도가 살기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진도군 고군면 하율로 들어와 정착했다. 진도군 진도읍 동외리에 있는 청신사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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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백씨의 진도 입도조. 본관은 수원. 수원백씨 시조 백휘(白揮)로부터 23세손이다. 전라남도 장흥군에서 살다가 조카 백한병(白漢秉)[1718~?]과 함께 진도로 들어와 현재의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대천리 일대에 정착하였다. 백상문의 후손들은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사천리와 오류리를 중심으로 살고 있으며, 조카 백한병의 후손들은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오류리와 오산리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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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진도에 정착한 입도조. 본관은 이천. 이천서씨 시조 서목의 21세손이다. 고려 고종 때 영평(永平)[지금의 남평] 감무를 지낸 서린(徐轔)의 후손이다. 1560년(명종 15) 전라남도 나주군 봉황면에서 태어났다. 16세기 말에 진도군 의신면 거룡으로 들어와 정착하였다. 1608년(선조 41)에 향년 49세로 타계하였다. 그 뒤에 이천서씨 23세손인 서매동(徐邁東)[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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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1년부터 1663년까지 제133대 진도군수를 지낸 조선 후기의 관리. 진도군수로 재임하던 당시 1662년(현종 3)에 객사 앞에 세워져 있던 전패(殿牌)가 없어지는 사건이 있었다. 이것이 문제가 되어 진도군은 진도현(珍島縣)으로 강등되고 설관형은 파직되었다. 전패란 임금을 상징하는 ‘전(殿)’자를 새긴 나무패로 객사(客舍) 앞에 세워 놓고 수령이나 관원들은 이 앞에서 배례(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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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를 본관으로 하거나 진도에 세거해 온 성씨. 조선 초기에 편찬된『세종실록 지리지(世宗實錄 地理志)』 ‘진도군조’는 진도 토박이 성씨를 살필 수 있는 자료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세종실록 지리지』 ‘진도군조’에는 조선 개국 후 없어진 고을 이름과 토성(土姓)이 나오는데, 이 토성들이 고려 때 진도 토박이 성씨로 추정된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나타난 진도 성씨는 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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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지역에서 성씨가 대대로 세거한 지역. 고려조는 940년(태조 23)에 지방 구역과 명칭을 새로 정하고 그 지역 공무를 맡을 토성(土姓)을 정했다. 당시 정부는 지방 토호 중에서 가장 세력이 있는 토호를 호장(戶長) 또는 상대등(上大等)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지방 업무를 관할하게 했다. 이들은 그 지역의 토박이 성인 토성을 썼다. 조선조 초엽까지도 고을마다 토박이 성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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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효자. 본관은 진주. 호는 겸와(謙窩)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당대 문장가였던 소세량(蘇世良)[1476~1528]의 후손이다. 소휘철은 말이나 글이 사람을 놀랠 만큼 뛰어났고 효행이 극진하였다. 조선말기 고종 때에 독실하고 품행이 방정하다 하여 통례원(通禮院) 인의(引儀)에 제배되었다. 그러나 정중하게 사양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평소 효성이 남달랐던 그는 부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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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무신. 본관은 밀양. 자는 문옥(文玉), 호는 옥전(玉田). 밀양손씨 40세손이고 아버지는 손경완(孫敬完)이다. 아들은 손영환(孫寧煥)[1879~1903]이고, 손자가 서예가 손재형(孫在馨)이다. 1862년 진도군 진도읍 성내리에서 태어났다. 벽파나루 수진장(守津將)을 거쳐 선전관, 승훈장 등 벼슬을 했다. 1942년 향년 81세로 타계하였다. 벽파나루 수진장 시절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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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의 세거성씨 중 하나. 순창설씨는 신라 개국 이전 경주 지역 6부 촌장이었다는 설거백을 시조로 한다. 정토 불교의 선구자이며 민중 불교의 상징인 원효(元曉, 617~686)대사가 이 집안의 18세손이고, 원효의 아들인 설총(薛聰)[655~743]은 19세손으로 신라 3대 문장가로 불렸다. 54세손인 설우소는 순창에서 현재의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관마리로 건너와 정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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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의 세거성씨 중 하나. 신안을 본관으로 하는 주씨는 중국 송나라 때 중국사람 주희(朱熹)[1130~1200]를 중조로 하는 성씨이다. 주자의 증손자 주잠(朱潛)이 전라남도 신안군 압해도를 거쳐 화순 능주에 정착하였다. 1573년 나주 금천에 살았던 주홍명(朱鴻鳴)의 큰아들 신안주씨 22세손 주수(朱壽)가 진도 군내면 덕병에 들어오면서 이 지역에 정착하게 되었다. 둘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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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진도 입도조. 본관은 순흥. 시조의 16세손이다. 강원도 원주에 살다가 1609년(광해 1)에 진도읍내 성동 옥거리에 옮겨와 정착했다. 그 후손 중에서 안국민(安國民)이 진도 공방(工房)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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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의 세거성씨 중 하나. 양천허씨의 연원은 가락국(駕洛國) 김수로왕(金首露王)[김해김씨의 시조]의 비(妃) 허황옥(許黃玉)에게 둔다. 허황후(許皇后)는 본래 인도의 아유타국(阿踰陀國)의 공주로서 김수로왕의 비가 되어 아들 10명을 낳았다. 이 중 맏아들 등(登)은 김씨(金氏)로 정통을 잇게 하였고, 두 아들은 황후의 뜻을 살려 허씨를 사성(賜姓)하였다. 허씨의 각 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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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효전을 시조로 하고 차명호를 입향조로 하는 진도 세거성씨의 하나. 연안(延安)은 황해도에 위치한 지명으로 고구려 때 동음홀 또는 고염성이라 부르다가 신라 때에는 해고군으로 불렸다. 고려에서는 염주·영응현·복주·석주·온주 등으로 불렸고, 충선왕 때 연안부로 고쳤다. 1914년에 백천군과 합하여 연백군이 되었다. 연안을 단본으로 하는 차씨(車氏)는 고대 중국의 황제(姓은 姬, 諱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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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정유재란 때 순절한 무인. 본관은 동복. 아버지는 오극신(吳克信)[1554~1597]이다. 부인은 연일정씨이다. 아들은 오명신(吳名伸)과 오만국(吳萬國)[1597~1650]이다. 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 용지리에서 살았다. 아버지 오극신(吳克信)과 함께 정유재란에 참전하였다가 전사했다. 그 뒤 부인이 진도군 군내면 세등리에서 유복자인 오만국을 낳은 후 지산면에 옮겨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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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진도 입도조. 본관은 동복. 자는 명국(名國).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출신이다. 할아버지는 오극신(吳克信)[1554~1597]이다. 아버지는 오계적(吳啓績)[1572~1597]이고, 어머니는 연일정(鄭)씨이다. 아버지 오계적이 정유재란에서 전사하자 어머니 연일정(鄭)씨가 형 오명신(吳名伸)을 데리고 군내면 세등에 들어왔다. 그 때에 유복자로 태어났다. 뒤에 지산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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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우(李申佑)를 시조로 하고 이욱을 입향조로 하는 진도 세거성씨의 하나. 원주이씨(原州李氏)의 시조 이신우(李申佑)는 신라의 전신인 진한 양산촌장 표암공 이알평(李謁平)의 원손이며 소판공 이거명(李居明)[경주이씨의 일세조]의 12세손으로 문종조에서 병부상서를 지내고 공을 세워 경흥군에 봉해졌다. 그로 인하여 후손들은 신우(申佑)를 시조로 받들고 경주이씨에서 분적하여 본관을 원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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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 진도 입향조. 본관은 전주. 정종의 아홉째 아들 석보군(石保君) 이복생(李福生)의 증손이다. 아버지는 이계옹(李繼翁)으로 거령부령(居寧剖令)을 역임하였다. 부인은 김해김씨 김세옹(金世翁)의 딸이다. 아들이 넷 있다. 연산군 때의 무오사화로 아버지가 해남에 유배되었고 이거(李琚)는 진도로 들어와 정착하였다. 진도군 군내면 분토리에 있다. 진도군 임회면 송정리 정혜사(靖惠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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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출신의 사업가. 경주이씨 38세손이다. 1921년에 진도군 진도읍 쌍정리에서 태어났다. 사업을 일으켜 삼강제강을 설립하였고, 그 뒤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동생 이신우(李信雨)[1932~]도 사업가로 활동하여 태강철강을 창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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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와 현대에 진도 출신의 공무원. 본관은 광산. 1905년 진도읍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이차문(李次文), 어머니는 광산김씨이다. 부인은 의령남(南)씨이다. 아들로 이준배(李俊培), 이경배(李慶培)가 있다. 일본 메이지[明治] 대학을 나왔다. 일제강점기에는 전라남도청 농정계장, 목포시장 등을 역임하였다. 1953년 이후에는 진도군수, 영암군수, 영광군수, 구례군수 등을 지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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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 전주이씨 입도조의 조상. 본관은 전주. 정종(定宗)의 열다섯 왕자 중 아홉 번째 아들이다. 어머니는 숙빈 윤씨이다. 부인은 판중추부사 대민공(戴敏公) 김연지(金連枝)의 딸 원주김씨이다. 아들 셋과 딸 다섯을 두었다. 그의 5세손 이거(李琚)가 진도군 군내면 분토리에 정착한 진도의 전주이씨 입촌조이다. 진도 전주이씨 후손들이 1872년 진도군 임회면 송월리의 정혜사(靖惠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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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 진도 입도조. 본관은 경주. 호는 묵재(黙齋). 경주이씨 26세손이다.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1287~1367]의 10세손이다. 아버지는 이계선(李繼先)이다. 아들은 이석강(李錫康), 이석복, 이석정이다. 전라남도 영광군에서 살다가 진도군 임회면 선학리로 옮겨 정착했다. 그 후손들이 고군면 도론리, 임회면 고산리·매정리, 지산면 가치리·길은리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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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출신의 공무원. 서울대학교 문리대 2년을 수료하였다. 이후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국방대학원을 마쳤다. 진도군 군내면 둔전리에서 태어났다. 국방부 관재계에 취업하여 관재과장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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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진도 입도조. 본관은 원주. 원주이씨 21세손이다. 경기도 광주에 있다가 전라남도 해남군 마산면에 정착한 이영화(李英華)의 7세손이다. 아버지는 이춘발(李春發)이다. 부인은 밀양박씨이다. 진도군 진도읍 서외리에 살기 시작하였다. 현재 그의 후손들이 의신면 돈지와 군내면 둔전에 세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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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진도 입도조. 본관은 광산. 광산이씨 11세손이다. 기축옥사로 삼족이 멸문을 당한 이발(李潑)[1544~1589]의 조카이다. 아버지 이길도 이때 죽었다. 아들은 이준기(李俊基)이다. 기축옥사로 온 집안에 참화가 미치자 동생 이원준과 같이 제주도로 도망가던 중 진도군 고군면 원포에 내렸다. 무안박씨들의 도움으로 의신면 거룡에 정착했다. 후손으로 독립운동가 이병영(李炳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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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무신. 본관은 전주. 무과에 합격하여 1874년(고종 11)에 해남 이진만호(梨津萬戶)를 역임했고, 1882년(고종 19)에는 제주도 대정군수(大靜郡守)로 부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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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진도 입도조. 본관은 광산. 기축옥사를 피하여 전라남도 진도에 자리잡은 광산이씨 입도조이다. 할아버지는 기축옥사로 멸문을 당한 이발(李潑)[1544~1589]의 조카인 이길(李洁)이다. 아버지는 당시 진도군 고군면 원포로 피신해 정착한 이원섭(李元燮)이다. 주로 조도와 성남도(城南島)에 후손들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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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신일을 시조로 하고 서성망을 입향조로 하는 진도 세거성씨의 하나. 서씨(徐氏)의 대종인 이천서씨(利川徐氏)의 시조 서신일(徐神逸)은 신라 효공왕 때 아간대부를 지내다가 국운이 다함을 예견하고 벼슬에서 물러나 이천의 효양산 기슭에 희성당을 짓고 은거하면서 스스로 처사라 칭하고 후진 교육에 여생을 바쳤다. 그의 후손들이 달성·장성·연산·남평·부여·평당·대구 등으로 분적된 것으로 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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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의 세거성씨 중 하나. 인동장씨의 시조는 고려 초에 삼중대광 신호위상장군의 벼슬을 지내고 인동현의 옥산땅에 처음 복거한 장금용이다. 장금용의 6세손으로 장세림(張世林)과 장백림(張百林) 형제가 있었는데, 동생 장백림은 진도에 귀양 왔다가 3년 만에 풀려나 함평에 정착해 함평파의 파조가 되었다. 진도에 들어온 것은 장백림의 7세손인 장을중(張乙仲)으로, 우수영절도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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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장흥임씨 중흥조인 임의[1041~1117]로부터 8세손이다. 아버지는 임석(任碩)이다. 아버지와 함께 1352년 공민왕이 원나라 연경에 갔을 때 수행하여 수종 2등공신이 되었다. 그의 아들 임정(任貞)이 진도에 정착하였고, 손자 임은(任誾)은 1437년 진도 창군에 공을 세웠다. 묘와 비석이 진도읍내 정거름재 너머 금선당(琴仙堂) 임씨 선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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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 진도군 설치 때 활약한 인물. 본관은 장흥. 증조부는 임석(任碩)이고 조부는 임용(任用)이다. 임석과 임용은 1352년(공민왕 1) 연경수종공신 35명 중에 속해 있다. 아버지 임정(任貞)은 장흥임씨의 진도 입향조이다. 1437년(세종 19) 해진군에서 진도군을 분리 승격시킬 때, 아버지 임정은 감역으로 활동하였고 임은은 감관으로 활동하였다. 아버지 임정의 묘소가 진도읍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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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임회면을 관향으로 했던 진도 세거성씨의 하나. 성씨 시조와 입향 시조는 알 수 없으나,『증보문헌비고』에 진도의 속현이었던 임회면을 본관으로 한 임회박씨가 소개되어 있다. 『진도김씨세보』를 보면 진도김씨 38세 김형숙(金亨淑)[고려 창왕 때 서도병마원수]의 부인이 임회박씨로 나온다. 묘는 개성 남쪽 길구리에 있다 했다. 이를 보면 고려 때 임회면에는 박씨와 배씨가 살았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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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무신. 본관은 인동. 인동장씨 중시조 장금용(張金用)의 24세손이다. 장금용의 6세손으로 장세림(張世林)과 장백림(張百林)의 형제가 있었다. 장백림의 13세손 장태산(張泰山)[1562~1622]이 진도군 가사도에 정착하였고, 그 후손인 장시재(張時才)[1624~1682]가 진도군 지산면 마사(馬沙)에 옮겨왔다. 장국철은 장시재의 후손으로 1887년(고종 24) 우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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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진도 입도조. 본관은 인동. 인동장씨 중시조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다. 장금용의 6세손으로 장세림(張世林)과 장백림(張百林)의 형제가 있었다. 장세림의 후손은 무안파로, 그 후손 장승언(張承彦)이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東巨次) 막금으로 들어가 진목도 등에 자손이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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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진도 입도조. 본관은 인동. 인동장씨 중시조 장금용(張金用)의 22세손이다. 장금용의 6세손으로 장세림(張世林)과 장백림(張百林)의 형제가 있었다. 장백림의 13세손 장태산(張泰山)[1562~1622]이 진도군 가사도에 정착하였고, 그 후손인 장시재(張時才)가 진도군 지산면 마사(馬沙)에 옮겨왔다. 1624년(인조 2)에 태어났으며 1682년(숙종 8)까지 향년 5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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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출신의 기업인. 본관은 인동. 진도군 조도면 창리에서 태어났다. 목포상업학교를 제1회로 졸업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호남은행 지배인을 지냈다. 후에 영화 사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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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진도 입도조. 본관은 인동. 인동장씨 중시조 장금용의 26세손이다. 진도의 인동장씨는 세 갈래인데, 장세림의 후손 장부개(張傅凱)의 후손들은 무안파라 한다. 아버지는 장부개의 8세손으로 장여인(張麗仁)이다. 장춘백(張春栢)[1644~1712]은 전라남도 나주군에서 진도군 지산면 보전리와 길은리로 옮겨와 자리 잡았다. 동생 장춘손[1655~1722]은 임회면 쪽 목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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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호를 시조로 하고 임정을 입향조로 하는 진도 세거성씨의 하나. 임(任)씨는 이미 『세종실록 지리지』에 의신향의 토성으로 나오는 성씨이다. 진도가 해진군에서 분리해 독립하던 1437년 설군 때 감관으로 임은(任誾)이 나오고 같은 무렵의 향교 자료에 정병(正兵)으로 임천공(任川恭)이 나온다. 1980년에 간행된 『장흥임씨대동보』를 보면 현존 진도의 임씨 가계에는 임은은 있어도 임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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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의 세거성씨 중 하나. 전주이씨는 조선왕조의 왕족이다. 진도에 거주하는 전주이씨는 681가구로 창녕조씨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은 성씨이다. 그 중 성종 때 진도에 유배 왔다는 이거 집안이 대표적 파계이다. 전주이씨는 이한(李翰)을 시조로 한다. 이한은 신라 때 사공을 지냈고, 태종무열왕의 10세손 김은의의 딸을 아내로 맞이해 우리나라 최대의 벌족인 대성의 연원을 이루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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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진도 입향조. 본관은 경주. 경주정씨 시조 지백호(智伯虎)의 60세손이다. 정진은 석성공파(石城公派)로, 아버지는 정화중(鄭和重)[1649~1709]이고 경기도 연천에 살았다. 부인은 청주한씨이다. 아들이 정도형(鄭道亨)·정운형(鄭運亨)이다. 그 후손 중에서 정상호 전남대학교 농과대학장, 정용재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장, 정공흔 제주대학교 해양대학장 등 많은 학자가 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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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진도 입도조. 본관은 압해. 압해정(丁)씨 35세손이다. 1713년(숙종 39)에 태어났다.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살다가 진도군 고군면 금호도로 옮겨와 정착했다. 손자가 관해정과 서당으로 유명한 정민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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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진도 입향조. 본관은 경주. 경주정씨 시조 지백호(智伯虎)의 58세손이다. 정효분은 경주정씨 문헌공파의 진도 입도조이다. 정효분은 본래 진도군 군내면이였던 북치(北峙)로 들어왔는데, 후일 정자리(亭子里)와 진도읍내로 자손이 번졌다. 정효분의 후손 중에서 미군정기 진도군수를 역임한 정승한(鄭承漢), 자생병원장 정중원 등이 배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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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의 세거성씨 중 하나. 삼성신화(三聖神話)에 양을나(良乙那)가 나오는 제주양씨의 시조(始祖)이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원래는 사람이 살지 않던 제주도에 고을나(高乙那)·부을나(夫乙那)와 함께 땅에서 솟아나왔다고 한다. 본래는 양성(良姓)을 썼으나 신라 태종무열왕 때 탐라의 왕족이던 양탕(良宕)이 신라에 들어가 벼슬하면서 사성(賜姓)에 의해 양씨(梁氏)로 개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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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 진도군 설치에 공을 세운 인물. 본관은 창녕. 진도 입도조 조희직(曺希直)의 10세손으로 진도군 진도읍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조계남(曺繼男)이다. 아들은 조백령(曺百齡), 조억령(曺億齡)이다. 조맹문은 동생 조중문(曺仲文), 그리고 집안 할아버지 되는 조복명(曺復明)과 함께 1437년 (세종 19) 진도 설군과 향교 창건에 공을 세웠다. 향현사(鄕賢祠)에는 조복명·박연·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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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향리. 본관은 창녕. 창녕조씨 입도조인 조희직(曺希直)의 17세손으로 향동파이다. 아버지는 조원성(曺元成)이고 어머니는 진주하씨이다. 아들은 조용운(曺龍雲)이다. 1851년 진도향교 명륜당 중수기에 색향리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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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무신. 본관은 창녕. 호는 호정(湖亭)이다. 진도 입도조(入島祖) 조희직(曺希直)의 23세손이다. 아버지는 조준승(曺準承)이고 어머니는 박혜숙이다. 부인은 밀양박씨이다. 아들 조인환(曺寅煥)이 있다. 1863년 진도군 고군면 오산리에서 태어났다. 어모장군(禦侮將軍) 전라도 우수영우후를 지냈다. 1916년 4월 26일에 향년 54세로 타계하였다. 진도군 고군면 지수리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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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 창녕조씨 인물. 본관은 창녕. 창녕조씨 입도조인 조희직의 8세손이다. 아버지는 조한진(曺漢晋)이다. 동생은 조복리(曺復理)이고, 아들은 조섭주(曺燮周)이다. 후손들 중에서 많은 향리가 배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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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진도 지역의 좌수. 본관은 창녕. 창녕조씨 진도 입도조 조희직의 21세손이다. 초명은 방서(邦瑞)이다. 아버지는 조남철(曺南哲)이고 어머니는 진주하씨이다. 아들이 조영승(曺英承)이며 침계 창녕조씨의 종가이다. 손자 조병운(曺秉雲)은 문장이 뛰어나 학계비가 있다. 1796년 진도군 의신면 침계리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55세가 되던 1850년(철종 1) 좌수(座首, 향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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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무신. 본관은 창녕. 창녕조씨 진도 입도조 조희직의 20세손으로, 오산파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조몽천(曺夢天)이고 어머니는 밀양박씨이다. 1808년(순조 8)에 태어나 조의천(曺義天)의 양자가 되었다. 밀양박씨와의 사이에 조석닐(曺錫暱) 등 두 아들을 두었고, 경주이씨와의 사이에 세 아들을 두었다. 호남 토포대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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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유생. 본관은 창녕. 창녕조씨 입도조인 조희직의 10세손이다. 아버지가 조계남(曺繼男)의 둘째 아들이다. 아들은 조이걸(曺以傑)이다. 후손들이 동산파(東山派)이다. 진도향교 연원기에 유생으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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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출신의 교육자. 본관은 창녕. 아버지는 조병정(曺秉埩)이다. 부인은 박영심이다. 자식으로 조석규(曺碩圭), 산부인과 의사 조석필(曺碩弼) 등 4남 3녀가 있다. 1916년 진도군 군내면에서 태어났고 1972년 향년 57세로 세상을 떠났다. 전남대학교 문리과대학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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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 진도의 입향조. 신안을 본관으로 하는 주씨는 중국 송나라 때 주희(朱熹)[1130~1200]를 중조로 하는 성씨이다. 그의 증손자 주잠(朱潛)이 전라남도 신안군 압해도를 거쳐 화순 능주에 정착하였다. 주수는 주잠(潛)의 22세손이며 아버지는 주옹명(朱滃鳴)이다. 전라남도 나주군 금천에서 1573년 진도에 들어와 당시 국영 목장이 있던 군내면 덕병리에 정착했다. 그 후손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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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에 본관을 둔 성씨. 진도김씨의 시조 김국빈은 중국 후한(後漢) 사람으로 위·촉·오의 세 나라로 갈려 싸우던 건안(建安)의 난리를 피해 고국을 떠나 배를 타고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죽포(竹浦)에 도착했다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신라 미추왕(味鄒王)[262~284]의 부름을 받아 경주에서 군국정사(軍國政事)라는 벼슬을 살았다. 실제로 진도를 본관으로 득성(得姓)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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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식을 시조로 하고 강위망을 입향조로 하는 진도 세거성씨의 하나. 진주강씨는 고구려 때 강이식(姜以式)을 시조로 하지만 기일세조(起一世祖)는 고려 중엽 사람 강계용(姜啓庸)이다. 그의 10세손이 사평공(司評公) 강학손(姜鶴孫)[1455~1523]으로 무오사화 때 전라남도 영광에 정착해 전라도 일대의 중조(中祖)가 되었다. 강학손의 아버지는 세조 때 형조판서를 지냈고 익대공신에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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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의 세거성씨 중 하나. 진주하씨는 하진(河珍)을 시조로 하는 사직공파(司直公派)와 하공진(河拱辰)을 시조로 하는 시랑공파(侍郞公派)가 있다. 하진은 고려 정종(1034~1046)대와 문종(1046~1083)대에 사직 벼슬을 하였다. 하공진은 진주 출생으로, 고려 현종 때 상서공부시랑을 지냈는데 거란의 침입이 있었을 때 거란군에게 잡혀갔으나 끝까지 굴복하지 않고 요(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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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동성·동족끼리 모여 사는 촌락. 동네를 형태를 중심으로 구분할 경우 모여 있는 집촌(集村)과 흩어져 있는 산촌(散村)으로 나뉜다. 또한 동네의 구성 성격에 따라 구분하면, 반촌(班村), 민촌(民村) 또는 같은 동성·동족끼리 모여 사는 집성촌(集姓村) 또는 여러 성씨들이 몰려 사는 산성촌(散姓村)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진도는 관촌이라 할 수 있는 관아 중심 촌락과 시장 중심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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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의 세거성씨 중 하나. 창녕조씨 시조는 경상남도 창녕의 옥암동에서 태어나 진평왕(眞平王, 579~632 재위)의 사위가 된 조계룡이다. 조계룡(曺繼龍)은 벼슬이 보국대장군(輔國大將軍) 상주국(上柱國) 대도독(大都督) 태자태사(太子太師)에 올라 창성부원군(昌成府院君)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그의 후손들이 창녕(昌寧)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시조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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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의 세거성씨 중 하나. 한씨는 본래 기자(箕子)의 후손이란 설을 갖고 있으나 청주(淸州) 본관을 갖게 된 것은 고려 개국 당시 청주 토호로 왕건에 협력한 한란(韓蘭)[?~?]이란 인물 때문이다. 한란은 고려 태조(太祖)가 후백제의 견훤(甄萱)을 정벌하기 위해 청주를 지날 때 군량미를 도와 삼한 통합에 공이 있으므로 개국벽상공신으로 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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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변호사. 진도군 고군면 나리 출신의 법조인이다. 일본 메이지[明治]대학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조선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여 서울에서 변호사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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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숭겸을 시조로 하고 신철하를 입향시조로 하는 진도 세거성씨의 하나. 평산신씨의 시조 신숭겸(申崇謙)은 고려 개국공신으로, 후백제와의 대구 공산성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신숭겸은 전라도 곡성현 출신으로 태조 왕건이 평산에서 사성(賜姓)하였다고 되어 있다. 신숭겸의 25세손 신철하(申喆夏)가 밀양박씨 사위가 되어 진도군 의신면 거룡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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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 진도 입촌조. 본관은 진주하씨. 15세손 하숭리(河崇理)[?~1543]의 3남 중 큰아들이다. 그의 아들 하린(河燐)이 해남군에서 옮겨와 진도군 임회면 삼막리에 정착하였다. 그의 부인은 창녕조씨 조중문(曺仲文)의 딸이다. 그의 동생 집안이 진도군 고군면 향동리를 중심으로 세거하였다. 하숭리의 묘는 해남 계곡에 있었고, 하극창의 묘는 진도읍 동외리 정거름재에 있다. 진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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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 정유재란 때 공을 세운 무신. 본관은 진주. 진도 향동 입촌조 하익창(河益昌)의 6세손이다. 아버지는 하응숙(河應淑)이고 어머니는 창녕조씨이다. 부인은 조민성의 딸이며 아들이 하해(河海)이다. 1563년 진도군 고군면 향동에서 태어났다. 무과에 급제하여 수문장(守門將)을 지냈다. 이후 훈련원(訓練院) 봉사(奉事)로 있다가 김성진 등 많은 향인과 더불어 1597년(선조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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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진도 입촌조. 본관은 청주. 청주한씨 참의공파 15세손이다. 고려 후기의 무신인 한방신(韓方信)의 6세손으로, 아버지는 한충상(韓忠常)이다. 사위가 현풍곽씨 곽안방(郭安邦)인 것으로 보아 진도군 고군면 석현에 정착했던 것 같다. 청주한씨는 중종조에 정착했다고 정리되어 있지만 그 이전에도 진도에 한씨들이 많이 살았던 흔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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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진도 입촌조. 본관은 청주. 아버지는 한종유[1645~1707]이다. 1664년 전라남도 고창군 해리에서 태어나 진도군 지산면으로 들어와 정착했다. 부인은 동래정씨이고 아들은 한희민(韓希敏)이다. 그 후손들이 지산면 보전리와 진도읍내 동외리에서 살면서 일제강점기에 한명이, 한승이 등 자산가를 배출했다. 진도군 임회면 백동리 백야산 기슭 용골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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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말기 청주한씨 인물. 청주한씨 27세손이다. 아버지는 한의유(韓義裕)이다. 아버지 대에 진도군 지산면 보전리에서 진도읍내로 들어왔다. 부인은 인동장씨이다. 아들로 한찬이, 한승이, 한명이 3형제가 있다. 한승이, 한명이는 일제강점기에 재력가로 알려졌으며 기성사 설립과 향현사 복원에 힘을 보탰다. 한승이는 전라남도 도평의원, 한명이는 전라남도 도참사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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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 진도 입향조. 본관은 청주. 전라남도 해남에서 1564년 한덕일(韓德鎰)의 아들로 태어났다. 진도군 조도면 육동 박희언(朴希彦)의 딸과 결혼해 조도한씨의 시조가 되었다. 아들이 한석열(韓錫烈)이다. 1625년 향년 62세로 타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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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언신을 시조로 하고 박흥조를 입향시조로 하는 진도 세거성씨의 하나. 함양박씨는 박혁거세를 먼 시조로 하고 25세손 때 경명왕의 왕자 8대군을 중심으로 갈린 속함대군(速咸大君) 박언성(彦成)을 득관조로 하는 씨족이다. 이 집안은 36세조 박선(朴善)을 기일세조(起一世祖)로 계대하고 있는데 진도에 묻힌 이는 기일세조의 15세손인 박흥조(朴興祖)이다. 그의 어머니는 당시 진도 토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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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인. 조선 중기 광해군대에 옥사를 피해 진도로 들어와 진도의 양천허씨 일가를 이룬 입향조이다. 2000년 현재 진도에 그의 후손은 285가구 718명이며, 진도군내 성씨 순위 11위이다. 본관은 양천. 아버지는 허소(許昭)[1545~?]이다. 1586년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아들은 허새(許璽)이다. 1613년(광해군 5) 대북파가 영창대군을 옹립하는 세력을 축출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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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서리를 지낸 인물. 양천허씨 30세손으로, 허겸(許謙)[1766~?]의 아들이다. 1806년 진도군 진도읍 쌍정리에서 태어났다. 1884년경 형방을 지낸 것으로 나타난다. 1844년 쌍계사 완문(完文, 군청에서 처분해준 임야증명서)에는 당시 서리(胥吏)들의 명단이 적혀 있는데, 여기에 허선의 이름도 있다. 허협(許鋏)[1829~?] 등 일곱 아들을 낳아 조선 말기 진도읍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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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출신의 경영인. 본관은 양천. 1926년 진도군 지산면 거제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을 나왔으며,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한중석공사 이사, 동해광업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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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양천. 양천허씨 진도 입촌조 허대(許岱)[1586~1662]의 8세손이다. 아버지는 허선(許璇)으로 형방을 지냈고, 어머니는 나주정(丁)씨이다. 1827년 진도군 진도읍 쌍정리에서 태어났다. 형제가 6명으로 진도읍내 양천허씨의 큰 가문을 이뤘다. 무과에 급제한 후, 첨사(僉使)를 거쳐 전주중군(全州中軍)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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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경을 시조로 하고 곽자정을 입향시조로 하는 진도 세거성씨의 하나. 현풍(玄風)이란 경상북도 달성군(達城郡)에 있던 옛 고을 이름이다. 고려 때는 포산(苞山)이라 했고 중국에서 처음 한국에 들어온 곽경(郭鏡)[1117~1179]이 1133년 정착하였기 때문에 포산곽씨라 하기도 한다. 현풍곽씨는 국내 순위가 36위로 국내에 4만여 명(1985년 현재) 사는 귀한 성이지만, 진도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