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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경상북도 경산 지역에서 일제 식민통치에 대항하여 일어난 독립운동. 3·1운동은 1919년 3월 1일부터 5월경까지 한국의 자주독립과 한국민의 자유 평화를 쟁취하려는 목적으로 국내외의 전 민족이 일치단결하여 일어난 항일독립운동이었다. 경상북도에서는 1919년 3월 8일 대구부(大邱府) 큰장 만세운동을 시작으로 도내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경산(慶山)에서는 대구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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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산 지역에서 6·25 전쟁 기간 동안에 벌어진 일들과 주요 사건. 경산은 6·25전쟁 초기에 ‘낙동강(洛東江) 방어선’ 이남에 위치해 있었고, 인근 영천지구 전투에서 국군 제2군단이 승리한 덕분에 6·25전쟁 동안 북한군의 진주나 점령을 한 번도 겪지 않았다. 육군 제2군단 본부가 경산군 하양면(河陽面)[지금의 경산시 하양읍]에 있었지만 전쟁의 직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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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경상북도 경산 지역에서 계획하였던 독립만세운동. 1919년 3월 1일부터 전개된 3·1운동은 경상북도 경산(慶山) 지역으로도 파급되었다. 이 무렵 경산에서는 대구 사립계성학교(私立啓聖學校) 출신 전덕수(全德洙), 경산 삼북동 교회 목사 서성오(徐聖五) 등이 1919년 3월 11일 경산읍 만세시위운동을 계획하던 중 기밀 누설로 실패하고 말았다. 1910년 국권피탈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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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4월 경상북도 경산 지역에서 전개된 국권 회복 운동.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은 일제가 차관 1,300만원을 빌미로 대한제국을 경제적으로 예속시키려 하자, 모금을 통해 이를 저지하려는 운동이다. 경산 지역에서는 1907년 4월부터 국채보상운동이 전개되었다. 국채보상운동은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 이후 국권 회복 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된 범국민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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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경산 지역에서 일어난 일제의 강제징용 반대 투쟁. 대왕산 죽창의거는 경산 지역의 농민 출신 청년들이 1944년 일제의 강제징용을 거부하며 일으킨 항일운동이다. 이른바 ‘경산 결심대(決心隊)의 강제동원 거부투쟁’으로 일컫기도 한다. 태평양전쟁 개전 이후 전쟁이 세계대전으로 확대되면서, 연합국과 일본의 대결 구도가 형성되었다. 일제는 식민지 조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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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기지 건설을 위해 경상북도 경산 지역에서 전개한 대한광복회의 군자금 모집 활동. 대한광복회는 1913년 경상북도 풍기(豊基)에서 조직된 광복단과 1915년 대구에서 조직된 조선국권회복단이 중심이 되어 1915년 음력 7월 15일 대구 달성공원에서 창립되었다. 대한광복회는 국내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여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함과 동시에 만주의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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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산 지역에서 전개된 동학 교도의 농민 운동. 경산 지역에서는 1890년대 동학(東學)의 교세가 확장되고 농민 운동의 조짐이 보이자, 사족들이 앞장서서 오가작통제(五家作統制)를 실시하여 농민들을 통제하였다. 이에 1894년(고종 31) 전국적으로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을 때 동학농민군의 침범을 막을 수 있었다. 1860년(철종 11) 경상도 경주에서 시작한 동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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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경상북도 경산 출신 인사가 참여한 비밀결사 조직의 독립운동. 무우원(無憂園) 사건은 1943년 항일 비밀결사 조직이었던 무우원이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관련 인사들이 체포된 사건이다. 무우원은 1940년 경산군 하양면[지금의 경산시 하양읍] 출신의 대구사범학교 학생 현영만(玄泳晩) 외 여러 학생이 결성한 항일 비밀결사 조직이었다. ‘무우원’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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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경산 지역에서 전개된 사회운동. 신간회(新幹會)는 ‘민족 유일당 민족협동전선’이라는 표어 아래 비타협적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제휴하여 창립한 민족운동 단체이다. 1927년 2월 15일 경성 기독교 청년회관에서 창립 대회가 열렸는데, 이때 결의된 강령은 ‘1. 우리는 정치적·경제적 각성을 촉구한다’, ‘2. 우리는 단결을 공고히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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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산 지역의 교회 지도자들이 전개한 신사참배반대운동. 1931년 만주사변과 1937년 중일전쟁, 그리고 1942년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진 전시체제기에 일제는 한국 교회에 신사 참배를 강요하였다. 이에 조선예수교장로회(朝鮮耶蘇敎長老會)는 1938년 제27회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수용하였고, 그 결과 대부분의 교회들은 신사 참배의 예식을 거행해야만 했다. 1941년 경산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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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경상북도 경산 출신 박만선이 주도한 항일의거 사건. 영천신사 및 대구주둔 일본군 탄약고 폭파계획 사건은 1943년 경산군 남산면(南山面) 출신의 서울 중동학교 학생 박만선(朴晩善)이 대구의 일본군 탄약고 폭파계획을 세웠다가 체포된 사건이다. 이에 앞서 박만선 등은 영천의 일본 신사(神社)를 불질러 없애려다 실패한 적이 있었다. 1941년 태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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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11월 적색 빨치산이 저지른 경상북도 경산시 와촌면 박사리 주민 학살사건. 1949년 10월 중순부터 군경은 경산군 와촌면 동강리[지금의 경산시 와촌면 동강리] 주민의 신고를 바탕으로 대구 인근 팔공산(八公山) 일대에서 토벌작전을 벌였다. 토벌작전으로 큰 피해를 본 ‘야산대(野山隊)’, 즉 적색 빨치산 대원들은 신고 주민의 거주지로 오인한 와촌면 박사리(博沙里)를 보복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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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경상북도 경산 지역을 비롯해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일본과의 전쟁.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경산·하양·자인에서는 많은 인사들이 창의(倡義)하여 왜군을 방어하고, 다른 고을의 의병들과 합세하여 영천·성주·경주 수복 전투에도 참여하였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관군에 배속되거나 의병으로서 울산 도산성 전투 등에 참전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