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광역시 남구 양과동에 있는 박재룡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박재룡(朴載龍)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공적비이다. 박재룡은 본관이 함양(咸陽)이다. 지산마을 서쪽 산골짝에 논 수만 정보가 말라 있는 땅이었는데, 최홍진(崔鴻鎭)의 주선으로 양과제(良苽堤)를 쌓는 일에 함께 힘을 보탰다. 1967년 겨울 관청 지원금을 교섭하여 범위를 넓히고 두어 길의 땅을 파서 둑을 쌓았다...
-
광주광역시 남구 화장동 농막마을에 있는 김정수의 유허비. 김정수(金鼎洙)[1887~1936]의 유허에 세운 비이다. 최윤환(崔允煥)이 글을 지어 1973년에 세웠다. 김정수의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영현(永賢), 호는 계남(桂南)이다 고광선(高光善)의 문인으로 이름난 효자였고, 땅을 주어 농민들의 기근을 줄여주고 병자들을 구제하였다. 1932년 관호정(觀湖亭)을 지어 문인들과...
-
1980년 5월 24일 계엄군이 오인 사격하면서 계엄군 간에 전투가 벌어졌으며, 계엄군이 민간 주민에게 무차별적 보복을 해 무고한 시민들이 다수 희생된 곳. 1980년 5월 24일 새벽 1시 30분 주남마을에 주둔해 있던 제7공수여단과 제11공수여단은 주둔지를 제20사단 61연대에 인계하고 광주비행장으로 이동하여 기동타격대 임무를 수행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제20사단 61연대는 효...
-
광주광역시 남구 양과동 만산마을에 있는 김정복, 김정열 형제의 효행을 기려 세운 정려비. 1922년 광산김씨(光山金氏) 김정복(金廷福)·김정열(金廷烈) 형제의 효행를 기리기 위해 문중에서 세웠다. 김정복과 김정열은 김계문(金啓文)의 아들로 전라남도 광산군 유등곡면 향등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에 살았다. 어머니 김해김씨(金海金氏)의 병세가 위독하자 큰아들 김정복과 둘째아들...
-
1960년대 현대적 건축으로 건립한 전통 활터. 관덕(觀德)이란 '활과 화살을 잡음에 그 견고함을 살핀 뒤에야 적중시켰다 말할 수 있고 이로써 덕행을 볼 수 있다'고 기록한 『예기(禮記)』 제46편 '사의(射義)' 에서 연유한다. 광주 관덕정(光州觀德亭)은 사정(射亭)으로 이전의 역사를 살펴보면 국가 기관으로서 1451년(문종 1)부터 1896년(고종 33)초까지 기록을 통해 광주...
-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 있는 일제 강점기 수피아여학교의 본관 건물. 광주 구 수피아여학교 수피아 홀은 1911년 수피아여학교의 본관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공사비는 미국 스턴스(M.L.Sterns) 부인이 먼저 세상을 떠난 여동생 제니 수피아(Jannie Speer)를 추모하기 위해 기부한 5,000달러로 충당하였다. 1927년 윈스브로우 홀이 건립되면서 특별교실로 사용하다가 지금...
-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수피아여학교의 본관 건물. 광주 구 수피아여학교 윈스브로우 홀은 1927년 수피아여학교의 본관으로 지은 건물로서 미국 남장로교 소속 선교사인 스와인하트(Martin. Luther Swinehart)[서로득(徐路得)]가 설계하였다. 수피아여학교의 지정학교 설립에 크게 기여한 윈스브로우(Winsborough) 여사를 기념하기 위해 윈스브로우 홀...
-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예배당. 광주 구 수피아여학교 커티스 메모리얼 홀은 전라남도 및 광주 지역에서 기독교 선교를 개척한 유진 벨(Eugene Bell)[배유지(裵裕祉)] 선교사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건축물이다. 2005년 4월 15일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1980년 5월 21일 계엄군의 집단 발포 이후 무장한 시민들의 집합소 및 훈련소.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집단 발포 이후 광주 시민들은 무장을 시작하였다. 1980년 5월 21일 오후 3시 30분 경 나주군과 담양군에서 유입된 무기는 시위대가 유동삼거리, 충금지하상가, 한일은행, 광주공원 부근에서 시민들에게 나눠줬다. 이후 시위대의 무기 지급은 광주공원에서 주로 이루어졌...
-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 있는 광주수피아여자고등학교의 소강당. 1928년 수피아여학교가 지정 학교로 인가받기 위해 지은 체육관이다. 지금은 광주수피아여자고등학교에서 소강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2011년 7월 22일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7호로 지정되었다....
-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있던 일제강점기 신사. 광주신사(光州神社)는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이 1912년 광주군 광주면의 구강공원(龜岡公園)[지금의 광주공원]에 황대신궁(皇大神宮)의 요배소(遙拜所)를 건립한 것이 그 시작이다. 이후 1916년 정식 신사 창립을 출원하여 1917년 11월 3일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御神]를 제신으로 하는 광주신사로 건립되었다. 192...
-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 건립했던 광주 지역 최초의 근대식 의료기관. 광주기독병원의 전신으로 광주, 전남 지역의 의료기관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
1907년 광주 지역민의 금융지원을 목적으로 전국 최초로 설립된 금융조합. 광주지방금융조합 외에도 광주 지역에 설립된 또다른 금융조합은 1919년 3월 설립된 송정금융조합, 1923년 9월 설립된 도시조합인 금봉금융조합, 1930년 12월 설립된 동광주금융조합 등이 있다....
-
광주광역시 남구 구동에 있는 조선시대 교육기관. 향교(鄕校)는 조선 전기 지역 교육의 강화와 성리학적 질서의 보급을 위해 설치한 관학 기구이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각 도의 안찰사(按察使) 들에게 향교의 흥폐를 통해 지방관의 고과를 삼을 것이며, 교학(敎學) 의 쇄신을 주문하였다. 이에 따라 부, 목, 군, 현의 각 고을에 하나씩의 향교를 세웠고, 그에 따라 광주에도 광...
-
광주광역시 남구 도금동 도촌마을에 있는 윤의순의 효행비. 윤의순(尹義順)은 조선 전기 형조판서, 좌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 윤효손(尹孝孫) 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윤병철(尹秉哲)이다. 타고난 자품이 순박 온후하고 자상하였다. 전라남도 광산군 대촌면 도촌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도금동]에 있는 삭녕최씨(朔寧崔氏) 최성한(崔成漢)에게 출가하였다. 윤의순은 시댁에서 남다른 부덕(婦德)을...
-
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에 있는 개항기에 건립된 정자. 만오정(晩悟亭)은 1902년 함안윤씨(咸安尹氏)인 윤희진(尹喜鎭), 윤희성(尹喜聖) 형제가 아버지 윤하검(尹夏儉)의 만년 휴식을 위해 지었다....
-
광주광역시 남구 방림동 서강사에 있는 묘정비. 서강사(瑞岡祠)는 고려시대 삼한공신(三韓功臣) 윤신달(尹莘達)을 주벽(主壁)으로 하고, 여진을 정벌하고 동북 9성(東北九城)을 개척한 영평현개국백(鈴平縣開國伯) 윤관(尹瓘), 호부상서(戶部尙書) 윤언이(尹彦頤), 남원백(南原伯) 윤위(尹威), 함안백(咸安伯) 윤돈(尹暾), 영평부원군(鈴平府院君) 윤보(尹珤) 등 6위를 배향하는 사우(祠...
-
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 신기마을에 있는 김상기의 성묘를 보위한 공을 기려 세운 비. 김상기(金相基)는 본관이 김해(金海)이고, 호는 석서(石西)이다. 김용후(金容厚)의 아들로 전라남도 광주군 효우동면 노대[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에서 세거한 집안이다. 기우만(奇宇萬), 고광선(高光善) 문하에서 수업하였다. 김상기(金相基)가 향교 장의(掌議)로 있으면서 대성전(大成殿) 성묘의...
-
전라도 광주 지역에서 최초로 진행된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배유지의 예배를 기념하여 세워진 비석. 광주광역시립사직도서관 인근의 도로변이나 비가 세워진 장소에 개신교의 예배 장소로 쓰인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비에는 '선교기념비(宣敎記念碑)' 다섯 글자만 새겨져 있으나, 받침돌에 박힌 별도의 돌에 "이곳은 하나님의 보내심 받아 1904년 12월 25일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배유지 목사...
-
광주광역시 남구 양과동에 있는 최홍진의 공을 기려 세운 공적비. 최홍진(崔鴻鎭)이 1941년 연간에 건천(乾川) 상류에 양과제(良苽堤) 저수지를 축조한 공적을 기려 세운 공적비이다. 1941년에 가뭄이 심했는데 최홍진이 앞장서서 민생을 좀먹는 사람들을 배격하고, 마을 부로의 명을 이어 당국과 교섭하여 몇 달 안에 저수지를 축조하였다....
-
광주광역시 남구 효덕동 노대마을에 있는 김경두와 밀양박씨의 효열비. 김경두(金炅斗)[1812~?]와 김경두의 아내 밀양박씨(密陽朴氏)[1811~1840]의 효열 행적비이다. 김경두의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자는 중집(中集)이다. 호적상 아버지는 김창섭(金昌燮), 생부는 통정대부 김창익(金昌益)이다. 효심으로 양부모를 봉양하였고, 병환이 들자 손가락 피를 흘려 환을 지어 먹게 할...
-
1932년 전라남도 광주군에 있는 수피아여학교 학생들이 조직한 비밀결사 백청단의 활동이 일제에 발각되어 관련자가 체포된 사건. 전라남도 광주군 효천면 양림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 있었던 수피아여학교 학생들은 1929년 백청단이라는 이름의 독립운동 비밀결사 조직을 만들었다. 일제는 독서회(讀書會) 관련 수사 중 단원의 일기장이 발각되어 다수의 학생이 검거되었다....
-
광주광역시 남구 사동과 양림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4곳의 방공호 지하 시설. 일제는 방공호를 파면서 원래 가운데 광장을 만들어 네 곳에 입구를 둘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반이 단단한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어 공사의 속도가 느리게 진행되어 완공하지 못한 채 전쟁이 종료되었다. 광장은 건설되지 못했지만 네 개의 입구는 각각 동굴로 남아 있다....
-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에 있는 묘화광 서씨의 의연 행적을 기린 비. 묘화광(妙華光) 서씨(徐氏)의 의연(義捐) 행적을 기려 세웠다. 서씨는 법명이 묘화광이고, 침당의 액호가 우죽당(友竹堂)이다. 본관은 이천(利川)이고 서치조(徐致祚)의 딸이다. 소학교의 규모를 키우기 위해 삼천 원(圓)을 기부하였다....
-
대한제국 시기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유진 벨이 주도하여 설립된 숭일학교가 있던 자리. 숭일학교는 1907년 3월 5일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인 유진 벨(Eugene Bell)[배유지(裵裕祉)]이 주도하여 설립된 근대적 교육기관이다. 설립 초기에는 비인가 학교였으나, 1908년 대한제국 정부로부터 4년제 소학교로 정식 인가를 받았고, 초대 교장으로 프레스턴(John F. Preston...
-
광주광역시 남구 구동 광주공원에 있는 의병장 심남일의 순절비. 대한제국기 의병장 심남일(沈南一)[1871~1910]의 본명은 수택(守澤), 호는 덕홍(德弘), 본관은 청송(靑松), 전라남도 함평 출신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의병을 일으켜 장흥, 영암. 해남, 보성, 남평, 능주, 나주 등지에서 수많은 전과를 올렸다. 1909년 능주 풍치(風峙)[지금의 전라남도 화순군...
-
광주광역시 남구 임암동 임정마을에 있는 전부일 장군의 효행을 기려 세운 비. 전부일(全富一)[1924~2004]의 본관은 천안(天安), 자는 정길(丁吉), 호는 서봉(瑞峰)이다. 전방은(全邦殷)의 셋째아들로 임암마을 출신이다. 일제강점기에 징병으로 입대하여 중국 만주(滿洲)에서 복무 중 부친상 비보를 들었지만 올 수가 없어서 땅을 치고 하늘을 보며 곡을 하였다고 한다. 광복 뒤에는...
-
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에 있는 박태용의 시혜불망비와 유적비. 박태용(朴台鏞)[1869~1941]의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성빈(聖彬)이다. 아버지는 박정보, 어머니는 이천서씨(利川徐氏)이다. 1893년(고종 30)에 덕행으로 온릉참봉(溫陵陵參)에 천거되었고, 1897년(고종 34)에 중추원(中樞院) 의관(議官)을 지냈다....
-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에 있는 고성운의 은혜를 기린 비와 정순환의 선행을 기린 비. 전라남도 광주군 효천면[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소작인들이 통정대부(通政大夫) 고성운(高聖運)[1857~1936]의 시은(施恩)에 보답하고자 세운 불망비와 효천면 주민 일동이 세운 효천면장 정순환(鄭淳煥)의 선행 행적비이다....
-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에 있는 이조원의 행적을 기록한 비. 광산이씨(光山李氏) 청심당(淸心堂) 이조원(李調元)[1433~1510]의 행적을 기록한 유허비이다. 이조원은 필문(蓽門) 이선제(李先齊)[1390~1453]의 둘째 아들이다. 아버지 이선제의 학통을 이어 문장과 도학이 당대의 종사(宗師)라고 추앙을 받았다. 전라남도 강진군에 있는 수암서원과 전라남도 화순군에 있는 오현당에...
-
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 신기마을에 있는 김순곤의 공적을 기려 세운 비. 김순곤(金順坤)[1918~1979]의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경순이다. 김용관(金容權)의 3남으로 전라남도 광주군 효천면 노대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에서 태어났다. 낙후된 고장의 발전을 위해 향토인이 함께 뭉쳐 일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특히 남제지방(南堤池防)을 축조할 때 답 825평[약 272...
-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 만산마을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이선제의 신도비. 이선제(李先齊)[1390~1453]의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가보(家父), 호는 필문(蓽門)이다. 1419년(세종 1)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였고, 『태종실록(太宗實錄)』편찬과 『고려사(高麗史)』의 개찬에 참여하였던 집현전 학사로서 호조참판(戶曹參判), 예문관(藝文館) 제학(提學) 등을 지냈다. 145...
-
광주광역시 남구 행암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정자. 행은정(杏隱亭)은 함안윤씨(咸安尹氏)로 참봉(參奉)을 역임한 윤희상(尹喜祥)에 의해 건립된 윤희상의 만년 휴식처이다. 1930년 건립 당시에는 이임정(履臨亭)으로 불리었다. '이임'이라는 말은 "얇은 얼음을 밟고 깊은 연못에 다다른 것처럼 언제나 그의 마음을 조심하고 주의한다."는 뜻으로 붙인 하나의 잠언(箴言)이다. 정자...
-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에 있는 정석남의 실적비. 정석남(石南實)의 효행 행적을 기리려 세웠다. 정석남은 동래정씨(東萊鄭氏) 정운선(鄭云先)의 딸이며, 어머니는 추계추씨(楸溪秋氏)이다. 일찍 부모를 여의었고 정석남의 아들인 정재장(鄭載長)도 일찍 죽었다. 한결같은 효심으로 시부모를 섬기는 데 마치 남편을 섬긴 것같이 하였다. 시부모가 세상을 떠나자 10리[약 4㎞] 밖 옥녀봉 동쪽...
-
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에 있는 고성이씨의 기행비. 고성이씨(固城李氏)의 효행을 기려 세운 기행비(紀行碑)이다. 김해김씨(金海金氏) 김호송(金鎬松)에게 시집을 와서 시어머니 해주최씨(海州崔氏)와 시할머니 밀양박씨(密陽朴氏)를 20여년 간 봉양하고, 시어머니 간병을 4년 동안 하는 등 효행을 실천한 사실을 국한문 혼용체로 기록하였다. 위계도가 비문을 짓고 비문 글씨는 강인환이 썼다....
-
광주광역시 남구 이장동 복수마을에 있는 문화유씨 행적비. 문화유씨(文化柳氏)는 고재열(高在烈)에게 16살에 시집을 왔는데 반 년도 못 되어 사별하였다. 이후 문화유씨는 시부모를 극진히 봉양하였으며, 시부모가 세상을 뜨자 생존하였을 때와 똑같이 섬기며 예를 갖추고 조카를 승중손(承重孫)으로 세웠다. 문화유씨의 효열 실천을 기리기 위해 김준식(金駿植)이 비문을 짓고 글씨는 김정회(金正...
-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에 있는 풍산홍씨의 효행과 열행을 기려 세운 행적비. 풍산홍씨(豐山洪氏)는 1922년 22세 때 남편이 괴질에 걸리자 대변을 맛보아 차도를 징험했다. 단을 만들어 새벽마다 정화수를 올리고 축원을 하였으나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예절에 맞게 장례를 치렀다. 시조부모 초상 때에는 몸이 수척하도록 서러워하며 옛 제도를 따랐다. 시어머니 초상을 치르고 나자 전답이 없어...
-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에 있는 김선진의 효행을 기려 세운 비. 김선진(金善鎭)[1916~1949]은 노조모와 편모에 대한 효심이 지극하여 향리의 효자로 널리 알려졌다. 김선진은 고광선(高光善)에게 배웠으며 김문발(金文發)이 세운 부용정(芙蓉亭)이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된 것을 단독으로 환원시켰다. 해마다 7월 백중이 되면 쌀 두어 섬으로 마을 안의 궁핍한 사람들을 구휼하였다....
-
광주광역시 남구 행암동에 있는 윤광훈과 윤광훈의 아내 나주임씨의 효행을 기려 세운 비. 윤광훈(尹光訓)과 윤광훈의 아내 나주임씨(羅州林氏)의 효행과 열행을 기리는 실적비(實蹟碑)이다. 윤광훈은 어려서부터 효도하고 근면하였기에 가정이 비록 가난하였지만 부모에게 맛있는 음식을 봉양하고 잠자리를 편안하게 하는 등 효를 다하였다고 한다. 이때 윤광훈의 아내 나주임씨의 내조가 지극하여 이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