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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 왕조가 지속되던 시기의 경기도 구리 지역의 역사와 문화. 장기간에 걸친 평화가 지속된 통일 신라는 하대(下代)로 갈수록 골품제의 한계에 따른 왕위 쟁탈전이 계속되었고, 지방 통제력의 상실로 조세 징수의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혼란 속에서 한반도는 쇠잔해진 신라와 왕건의 고려, 그리고 견훤의 후백제로 나뉘었는데, 양주(楊州)라는 명칭은 『삼국사기(三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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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지역에 전해지는 옛 문서. 전통 시대의 구리시 지역은 경기도 양주 지역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현재 구리시 지역에 한정된 고문서(古文書) 중 교지(敎旨)나 분재기(分財記)와 같은 자료는 많지 않다. 다만, 동구릉과 관련된 의궤(儀軌)와 능지(陵誌) 등의 고문서 총 48점이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과 한국학 중앙 연구원 장서각 등에서 보관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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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현재 구리 지역이 속했던 양주에서 양주 목사를 역임한 무신. 고언백(高彦伯)[?~1608]은 강화도 교동에서 세거한 집안의 후손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 때 양주 목사(楊州牧使)가 되어 여러 능침(陵寢)을 지킨 무신으로 알려져 있다.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국필(國弼), 호는 해장(海藏)이다. 고언백의 가계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고언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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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인 1864년부터 1945년 광복 이전까지의 경기도 구리 지역의 역사와 문화. 19세기 조선은 내적으로 세도 정치와 신분제 동요 등의 변화를 겪고 있었고, 외적으로는 변화하는 국제 정세와 서양 문물의 수용이라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었다. 1876년 강화도 조약 체결로 개항을 한 조선은 갑신정변과 갑오개혁·을미개혁 등을 실시하였지만, 결국 1910년 일제에 의해 강제 병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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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사노동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정(安定), 자는 몽뢰(夢賚), 호는 구포(鷗浦)이다. 아버지는 나윤급(羅尹級), 어머니는 한성 참군(漢城參軍) 김호선(金好善)의 딸이며, 할아버지는 나윤침(羅尹忱), 장인은 정엽(鄭曄)이다. 나만갑(羅萬甲)[1592~1642]은 1613년(광해군 5) 진사시에 장원으로 합격하여 성균관에 입학하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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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사노동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정(安定), 자는 우천(于天), 호는 기주(碁洲)이다. 아버지는 참의 나만갑(羅萬甲)이고, 어머니는 좌찬성 정엽(鄭曄)의 딸이다. 동생으로 나성한(羅星漢)·나성문(羅星文)·나성하(羅星河)가 있고, 아들로 나명좌(羅明佐)와 나양좌(羅良佐)가 있다. 할아버지는 나급(羅級)이다. 나성두(羅星斗)[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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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사노동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정(安定), 자는 현도(顯道), 호는 명촌(明村)이다. 아버지는 목사(牧使) 나성두(羅星斗)이며, 어머니는 판서 김남중(金南重)의 딸이다. 할아버지는 나만갑(羅萬甲)이고, 동생은 나석좌(羅碩佐)이다. 나양좌(羅良佐)[1638∼1710]는 어려서 윤선거(尹宣擧)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는데, 과거에 뜻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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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조선 왕릉인 동구릉이나 종묘 등에 임금의 신위를 모실 때 올리는 호칭. 왕이나 황제가 죽은 뒤 종묘에 신위(神位)를 모실 때 올리는 호(號)가 묘호이다. 앞의 글자는 시법(諡法)에 따라 정해지고 뒤의 글자는 종가의 계통[宗系]과 조공 종덕(祖功宗德)[공이 있는 자는 조로 하고 덕이 있는 자는 종으로 한다]에 근거하여 붙였다. 고려의 경우 국가를 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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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유·무형의 문화재. 경기도 구리시의 문화재는 구리 동구릉 건원릉 정자각(九里東九陵健元陵丁字閣) 등 보물 4점과 구리 동구릉(九里東九陵) 등 사적 2곳, 경기도 지정 문화재 4점, 등록 문화재 1점이 있다. 경기도 구리시에는 보물 4점과 사적 2곳의 국가 지정 문화재가 있다. 고려의 왕릉인 현릉(顯陵)[공민왕]의 제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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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묘가 있었던 조선 후기의 시인. 범경문(范慶文)[1738~ 1801]의 본관은 나주(羅州)이며, 자는 유문(孺文), 호는 검암(儉巖)이다. 범경문의 아버지는 범지구(范志九)이고 어머니는 성주 이씨(星州李氏)이며, 할아버지는 범태조(范泰造)이다. 부인은 김해 김씨(金海金氏)와 초계 정씨(草溪鄭氏)이며, 형은 범종현(范宗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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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사적을 기념하기 위하여 돌이나 쇠붙이, 나무 따위에 글을 새겨 세워 놓은 것. 비(碑)는 일반적으로 비석(碑石)이라고 하는데, 재질에 따라 목비(木碑)·석비(石碑)·철비(鐵碑)로 나뉘며, 내용에 따라서는 기적비(紀績碑)·송덕비(頌德碑)·묘정비(廟庭碑)·신도비(神道碑) 등으로 구분된다. 경기도 구리시에는 보물로 지정된 건원릉 신도비(健元陵神道碑)를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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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를 포함한 조선 전체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저항하여 1919년 3월에 행한 항일 독립 만세 운동. 경기도 구리 지역의 3·1운동으로는 1919년 3월 13일 구리면 평내리 구장 이승익 주도의 만세 시위, 3월 14일 구리면 평내리 주민 150여 명의 행진, 3월 28일 구리면 아천리 이강덕과 심정봉 주도의 만세 시위가 있었다. 1919년 3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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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 지역에서 돌을 이용하여 칼과 도끼 따위의 도구를 만들어 쓰던 시대의 역사와 문화. 석기시대는 석기의 제작 방법에 따라 뗀석기[타제 석기]의 구석기와 간석기[마제 석기]의 신석기로 나누어진다. 구석기시대는 최초의 고인류가 나타난 시기부터 약 1만 년 전까지의 시기이며, 신석기시대는 대략 기원전 8000년에서 기원전 6000년 경에 시작되었다고 본다. 한반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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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대(代)에 걸쳐 경기도 구리시에서 살아오고 있는 성씨(姓氏). 17세기경 구리 지역에 집성촌(集姓村)이 형성되었을 때 지금의 구리시는 경기도 양주에 소속되어 있었다. 구리시의 세거 성씨에 관한 기록은 1934년 조선 총독부가 편찬한 『조선의 성씨(朝鮮の姓氏)』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해방 이후에도 『경기도지(京畿道誌)』 양주군 구리면에서 소개되고 있다.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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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교문동에 묘가 있었던 조선 후기의 문신. 송순(宋諄)[1550~1616]의 본관은 진천(鎭川)이며, 자는 혼원(渾元), 호는 망촌(忘村)이다. 광해군 때 대사간을 지낸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송순의 친아버지는는 송계임(宋繼任)이며, 송미복(宋眉福)에게 입양되었다. 할아버지는 송신(宋伸)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송환상(宋環商), 외할아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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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아차산에서 운둔하며 지낸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화가. 신잠(申潛)[1491∼1554]의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원량(元亮), 호는 영천자(靈川子) 또는 아차산인(峨嵯山人)이다. 신잠의 아버지는 신종호(申從濩)이고, 어머니는 세종 대왕의 제11자인 의창군(義昌君) 이강(李玒)의 딸이다. 할아버지는 신주(申澍)이고, 증조할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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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아천동에 묘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신종호(申從濩)[1456~1497]는 본관이 고령(高靈), 자는 차소(次韶), 호는 삼괴당(三魁堂)이다. 서장관(書狀官)으로 중국에 갔다가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치료하여 귀환하게 하였으며, 뛰어난 문장으로 과거에서 세 번 장원하였다. 구리시 아천동에 묘가 있다. 신종호의 아버지는 봉례랑(奉禮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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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경기도 구리시의 역사. 경기도 중부에 위치해 있는 구리시는 삼국 시대에는 백제·고구려·신라에 속했고, 고려 시대에는 양주·남경·한양부에 속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양주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구지라는 명칭이 등장하고, 일제 강점기인 1914년 구리면이 되었다. 이후 1963년 서울특별시가 확장되면서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은 인창리 등 7개 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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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아천동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오시만(吳始萬)[1647~1700]의 본관은 동복(同福)이다. 아버지는 오정일(吳挺一)이고, 어머니는 사인(舍人) 정호선(丁好善)의 딸이며, 예조 판서 오정위(吳挺緯)에게 입양되었다. 오시만은 1666년(현종 7)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676년(숙종 2) 정시 문과(廷試文科)에 장원으로 합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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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아천동에 단(壇)이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오억령의 본관은 동복(同福)이다. 아버지는 사옹원 직장(司饔院直長) 오세현(吳世賢)이고, 어머니는 창녕 성씨(昌寧成氏)로 참봉 성근(成近)의 딸이다. 할아버지는 상서원 직장(常瑞院直長) 오극권(吳克權)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오원몽(吳元蒙)이다. 부인 남양 홍씨(南陽洪氏)는 좌참찬(左參贊) 정효공(貞孝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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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아천동에 묘단이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오익(吳翊)[1574~1618]의 본관은 동복(同福)이며, 자는 필보(弼甫), 호는 월강(月岡) 또는 묵재(默齋)이다.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승정원 승지 등을 역임했다. 오익의 아버지는 우참찬 오억령(吳億齡)이며, 어머니는 홍일운(洪日雲)의 딸 남양 홍씨(南陽洪氏)이다. 할아버지는 사옹원 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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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아천동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오전(吳竱)[1588∼1634]은 본관이 동복(同福)이다. 아버지는 우참찬 오억령(吳億齡)이며, 어머니는 홍담(洪曇)의 딸 남양 홍씨(南陽洪氏)이다. 할아버지는 사옹원 직장 오세현(吳世賢)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이조 참판 오극권(吳克權)이며, 장인은 유근(柳根)이다. 형은 오익(吳翊), 사위는 지평(持平) 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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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아천동에 묘단이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오정(吳靖)[1576~1923]의 본관은 동복(同福)이며, 자는 여안(汝安)이다.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오정의 아버지는 오억령(吳億齡), 할아버지는 오세현(吳世賢), 증조할아버지는 오극권(吳克權)이다. 외할아버지는 홍담(洪曇), 장인은 김의립(金毅立)이다. 형은 오익(吳翊), 동생은 오전(吳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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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아천동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오정위(吳挺緯)[1616~1692]의 본관은 동복(同福)이고 자는 군서(君瑞) 또는 서장(瑞章), 호는 동사(東沙)이다. 아버지는 관찰사 오단(吳端)이며, 어머니는 이조 판서 심액(沈詻)의 딸 청송 심씨(靑松沈氏)다. 할아버지는 이조 참판 오백령(吳百齡)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직장(直長) 오세현(吳世賢)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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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동구릉을 포함한 역대 왕들의 능[묘]. 한반도에는 일찍이 선사 시대부터 사람의 삶의 발자취인 생활 유적과 함께 죽음을 애도하는 의미에서 무덤이 생겼다. 이러한 관습은 부족 사회에서 계급 사회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경건하고 엄숙한 축조 규칙을 갖게 되었고, 계급에 따른 다양한 규모의 무덤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더구나 시대에 따라 특정한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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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에 북한 인민군이 불법으로 남침하여 경기도 구리 지역을 포함한 한반도 전역에서 치러진 전쟁. 1950년 6월 25일 북한 인민군의 불법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은 유엔군의 참전과 1951년 중공군의 참전으로 국제전으로 확대되었다. 1953년 7월 정전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휴전하였지만, 남북한 모두에게 막대한 인적·물적 손실을 끼쳤으며, 아직도 전쟁 재발의 위험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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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아천동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무신. 이억기(李億祺)[1561~1597]는 조선 시대 왕실의 종친(宗親)이다. 온성 부사·순천 부사·전라 우도 수군절도사를 역임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왜군에 맞서 싸우다 정유재란 칠천량 해전 때 한산도 앞바다에서 전사하였다. 구리시 아천동에 의관을 거두어 조성한 묘가 있다. 이억기의 본관은 전주(全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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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아천동에 묘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이정빈(李廷賓)[1539∼1592]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경관(景觀)이다.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이조 좌랑을 지냈다. 이정빈은 효령 대군(孝寧大君) 이보(李𥙷))의 6대손으로, 아버지는 명종 때의 권신(權臣) 이량(李樑)이며, 어머니는 윤지청(尹之淸)의 딸 함안 윤씨(咸安尹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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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아천동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이척(李滌)[1572~1639]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초명은 설(渫), 자는 급지(汲之), 호는 영호정(映湖亭)이다. 효령 대군(孝寧大君)의 7대손이다. 아버지는 현감 이규빈(李奎賓)이고, 할아버지 이로(李櫓)이다. 이척은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丙子胡亂) 때에 죽산 부사(竹山府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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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아천동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이충(李沖)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거용(巨容), 호는 칠택(七澤)이다. 조선 시대 선조(宣祖)와 광해군(光海君) 대에 여러 관직을 역임한 문신이다. 이충은 효령 대군(孝寧大君) 이보(李𥙷)의 7대손으로, 아버지는 이정빈(李廷賓)이며, 할아버지는 이량(李樑)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이대(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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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아천동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이태(李邰)는 본관이 전주(全州),자는 여봉(汝封)이다. 아버지는 통정대부(通政大夫) 이민수(李敏洙)이며, 할아버지는 우찬성 이충(李沖)이다. 형제로 이경과 이후(李郈)가 있다. 이태(李邰)[1648~?]는 1666년(현종 7) 식년시(式年試)에 합격하였고, 선혜청 낭청(宣惠廳郎廳)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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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가 일제에 강제 점령되었던 1910년부터 1945년까지 경기도 구리 지역의 역사와 문화. 1910년부터 1945년까지 한반도를 강제 점령한 일제는 한민족 말살 정책과 식민지 수탈 정책을 바탕으로 조선을 통치하였으며, 이에 대해 한민족은 3·1독립만세운동, 민립대학설립운동, 만주무장항쟁 등으로 대항하였다. 이 시기 구리 지역은 1914년 면리제 시행에 따라 구리면(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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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교문동에 묘단이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정기원(鄭期遠)[1559∼1597]의 본관은 동래(東萊)이며, 자는 사중(士重), 호는 현산(見山)이다. 정기원의 아버지는 별좌(別坐) 정상신(鄭象信)이며, 어머니는 부정 이경(李璟)의 딸 전주 이씨(全州李氏)이다. 할아버지는 정순복(鄭純福), 증조할아버지는 정한룡(鄭漢龍)이다. 장인은 심전(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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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교문동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정상신의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입부(立夫)이다. 아버지는 정순복(鄭純福), 할아버지는 정한룡(鄭漢龍)이다. 동래 부원군(東萊府院君) 정난종(鄭蘭宗)의 현손(玄孫)이다. 어머니는 하빈 이씨로 부장 이윤우의 딸이다. 부인은 전주 이씨로 영천 부정 이경의 딸이다. 부인과의 사이에 5남 2녀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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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교문동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정윤주(鄭潤周)[1652~1719]의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동리(東里)이다. 아버지는 통훈 대부(通訓大夫) 정행일(鄭行一)이고, 할아버지는 정지호(鄭之虎)이다. 장인은 허순(許珣)과 서내익(徐來益)이다. 형제로 정연주(鄭演周)와 정택주(鄭澤周)가 있다. 정윤주는 1676년(숙종 2) 스스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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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교문동에 묘가 있었던 조선 후기의 인물. 정지교(鄭之僑)[1596~1659]의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자서(子西), 호는 동리(東里)이다. 아버지는 정회원(鄭恢遠)이고, 할아버지는 정상신(鄭象信)이다. 정지교는 1636년(인조 14) 이후 과거에 응하지 않았다고 하나 자세하지 않다.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 동래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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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부터 1910년까지 조선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경기도 구리 지역의 역사와 문화. 고려 말 현 구리 지역이 속한 양주(楊州)는 풍수지리상 길지(吉地)로 인식되었고 조선의 건국과 함께 한양이 도읍지가 되면서 경기도의 중앙으로서 역할이 커졌다. 조선의 지방 제도는 전국을 8도로 나누고 8도 아래에 부·대도호부·목·군·현의 행정 구역을 두었으며, 이 중 경기도는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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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 지역에 묘소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 풍양(豊壤). 호는 석간(石磵)과 서하옹(棲霞翁)이다. 평장사 조맹(趙孟)의 31대손이며, 이인복(李仁復)의 문인이다. 조운흘(趙云仡)[1332~1404]은 1357년(공민왕 6)에 문과에 급제하여 안동 서기(安東書記)를 거쳐 합문 사인(閤門舍人)이 되었다. 1361년 형부 원외랑(刑部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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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사노동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평강(平康)이고, 자는 백창(伯昌), 호는 호주(湖洲)이다. 아버지는 채충연(蔡忠衍), 할아버지는 채경선(蔡慶先), 증조할아버지는 채난종(蔡蘭宗), 외할아버지는 안사열(安士說)이다. 장인은 이서(李曙)와 윤민헌(尹民獻)이고, 작은아버지는 채충원(蔡忠元)이다. 채유후(蔡𥙿後)[1599~1660]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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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해방 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경기도 구리시의 역사와 문화. 1945년 광복 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는 미국과 소련의 분할 점령, 6·25 전쟁, 남북 분단, 새마을 운동과 경제 개발을 수반한 산업화, 민주화 운동 등을 경험하면서 성장과 발전을 거듭하였다. 구리 지역도 1963년 서울특별시 확장 때 지역 편제를 거쳐 1973년 남양주군 구리읍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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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아천동에 묘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홍덕수의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아버지는 홍윤우(洪允佑)이고, 할아버지는 홍백경(洪伯慶)이며, 증조할아버지는 홍상(洪常)이다. 아들로 홍사고(洪思古)와 홍사의(洪思毅)가 있다. 홍덕수(洪德壽)[?~?]는 영평 현령(永平縣令)을 역임하였다고는 하나 자세한 내용이 전하지 않는다. 구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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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아천동에 묘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아버지는 의빈(儀賓) 홍상(洪常)이며, 어머니는 성종의 누이 명숙 공주(明肅公主)이다. 연산군과는 고종 사촌지간이다. 홍백경(洪伯慶)[?~?]은 20세가 되던 1490년(성종 21)에 동반직(東班職)을 제수받았고, 이어 돈녕부 주부(敦寧府主簿)를 거쳐 예빈시 판사(禮賓寺判事)가 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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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아천동에 묘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택정(擇精)이다. 아버지는 봉정 대부(奉正大夫) 홍덕수(洪德壽)이고, 할아버지는 홍윤우(洪允祐)이며, 형은 홍사의(洪思毅)이다. 홍사고(洪思古)[1560~?]는 20세인 1579년(선조 12)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604년(선조 37)에 함창 현감(咸昌縣監)을 역임하였다. 함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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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아천동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아버지는 홍덕수(洪德壽)이고, 할아버지는 홍윤우(洪允祐)이다. 홍사효(洪思斅)[1555~1632]는 1602년(선조 35) 황해도 평산 부사(平山府使)에 임명되었고, 1604년 파주 목사(坡州牧使)로 재임하던 중 체포한 절도 및 살인 혐의자에 대한 조사를 소홀히 하여 풀어주었다는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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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아천동에 묘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洋)이다. 아버지는 홍백경(洪伯慶)이고, 할아버지는 덕종(德宗)[1438 ~ 1457]의 사위 홍상(洪常)이며, 홍인수(洪仁壽)와 홍덕수(洪德壽) 두 아들이 있다. 홍윤우(洪允祐)[?~?]는 예빈시 별좌(禮賓寺別坐) 진위 장군(振威將軍)을 역임하였으나 그 외의 관직이나 활동은 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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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아천동에 묘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당홍계(唐洪系)이며, 익산군파(益山君派) 17세손이다. 아버지는 한성 부윤 홍심(洪深)이며, 어머니는 이조 참의 윤규(尹珪)의 딸이다. 할아버지는 홍덕보(洪德輔), 증조할아버지는 홍유룡(洪有龍)이다. 장인은 이발생(李發生)이다. 누이가 문종의 후궁인 숙빈 홍씨(淑嬪洪氏)이다. 아들이 홍상(洪常)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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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아천동에 묘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아버지는 홍윤우(洪允佑)이고, 할아버지는 홍백경(洪伯慶)이며, 증조할아버지는 홍상이다. 아들로 홍사제(洪思濟)·홍사려(洪思礪)·홍사회(洪思誨)·홍사훈(洪思訓)·홍사학(洪思學)이 있다. 홍인수(洪仁壽)[?~?]는 형조 좌랑(行刑曹佐郞)과 전함사 제검(典艦司提檢) 등을 역임하였지만, 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