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곽걸(郭杰)[1868~1927]은 본관이 현풍(玄風)으로, 지금의 고령군 쌍림면 월막리에서 태어났다. 세칭 파리장서사건이라고 하는 제1차 유림단 의거는 서울에서 김창숙(金昌淑)·김정호(金丁鎬)·이중업(李中業)·유준근(柳濬根)·유진태(兪鎭泰)·윤중수(尹中洙) 등의 논의 끝에 시작되었고, 김창숙이 그의 스승 곽종석(郭鍾錫)을 만나면서 급진전되었다....
-
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곽수빈(郭守斌)[1882~1951]은 본관이 현풍(玄風)으로, 지금의 고령군 쌍림면 월막리에서 태어났다. 세칭 파리장서사건이라고 하는 제1차 유림단 의거는 서울에서 김창숙(金昌淑)·김정호(金丁鎬)·이중업(李中業)·유준근(柳濬根)·유진태(兪鎭泰)·윤중수(尹中洙) 등의 논의 끝에 시작되었고, 김창숙이 그의 스승 곽종석(郭鍾錫)을 만나면서 급진전되었다...
-
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삼도(金三道)[1900~1967]는 지금의 고령군 덕곡면 후암리에서 태어났다. 김삼도는 1919년 3월 8일 토요일 수업을 마친 학생들과 함께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서문장터에 집결한 뒤 신명학교·대구고등보통학교 등의 학생들 및 남산교회·남성정교회 등 교회 측 인사들과 시위대를 형성하여 독립 만세 운동을 벌였다. 이날 시위는 교사 백남채·최상원·권...
-
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남형우(南亨祐)[1875~1943]는 본관이 의령(宜寧)으로, 호는 유석(瘐石)이다. 지금의 고령군 대가야읍 내상리에서 태어났다. 남형우는 1908년 문인인 홍와(弘窩) 이두훈(李斗勳)의 권유로 보성전문학교 법과에 입학한 뒤 교남교육회(嶠南敎育會) 평의원과 1909년 대동청년단(大東靑年團)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1911년부터 1917년까지 보성전...
-
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광(朴洸)[1882~?]은 지금의 고령군 대가야읍에서 박지환(朴志煥)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박광은 1909년 안희제(安熙濟), 윤세복(尹世復), 김동삼(金東三), 신팔균(申八均) 등 80여 명의 동지와 함께 비밀 결사 조직인 대동청년당(大同靑年黨)을 꾸려 항일 활동을 펼쳤다. 그 후 중국으로 건너가 문상직(文相直)·이남기(李南基) 등과 함께 만...
-
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기로(朴基魯)[1871~1938]는 본관이 고령(高靈)으로, 지금의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의 양반 가문에서 태어났다. 박기로는 1919년 4월 8일 밤 고령군 우곡면 대곡리에서 한이군(韓二君)·한용발(韓用發)·도말용(都末龍)·박용학(朴龍鶴)·한광룡(韓光龍) 등 마을 청년들에게 도진리의 상황을 알리고 만세 시위를 권고하였다. 박기로는 이들에게 “지...
-
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영진(朴永晉)[1921~1950]은 지금의 고령군 덕곡면 백리에서 태어났다. 박영진은 1939년 광복군 제5지대장인 나월환(羅月煥)이 광복군으로 모여드는 애국 청년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개설한 한국청년간부훈련반에 입교하여 군사 교육을 받은 뒤 졸업하였다. 1942년 5월 광복군 제1·2·5지대를 합하여 개편한 제2지대의 제2구대 제3분대장으로 임...
-
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용학(朴龍鶴)[1893~1954]은 지금의 고령군 우곡면 대곡리에서 태어났다. 박용학은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던 1919년 4월 8일 밤, 고령군 우곡면 대곡리 김성원(金成源)의 집 앞 거리에서 한이군(韓二君), 한용발(韓用發), 도말용(都末用), 한광룡(韓光龍) 등과 함께 박기로(朴基魯)를 만나 전국적으로 독립 만세 시위운동이 일어나고...
-
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재필(朴在弼)[1884~1957]은 본관이 고령(高靈)으로, 호는 소여(少旅)이다. 지금의 고령군 우곡면 야정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박기열(朴璣烈)이며, 고령 지역에서 추앙받던 유림이었는데, 1910년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펼쳤다. 박재필은 선조의 묘역을 단장하기 위해 모인 문중 사람들 및 우곡면 도진리에 사는 박영화(朴英華)·박차천(...
-
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채환(朴採煥)[1882~1962]은 본관이 고령(高靈)으로, 지금의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6일 도진리에서 박재필(朴在弼)이 주도한 독립 만세 운동이 있은 이틀 후인 4월 8일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4월 8일 우곡면 도진리에 사는 박기태(朴基太) 집에서 혼례가 있었는데, 네 명의 일본 경찰이 혼례...
-
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배기석(裵基奭)[1887~1956]은 본관이 성산(星山)으로, 지금의 고령군 덕곡면 원송리에서 태어났다. 배기석은 전국 각지에서 만세 시위운동이 전개되고 있는데도 고령 지역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자, 애국적 의분을 참지 못하였다. 1919년 3월 29일 덕곡면사무소에 뽕나무를 심기 위한 부역에 동원되었을 때 부역 나온 면민 20여 명 앞에서 ‘대한...
-
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신길우(申吉雨)[1924~2003]는 지금의 고령군 운수면 운산리에서 태어났다. 1943년 일제에 강제 징집되었으나 탈출하여 광복군에 입대하였다. 신길우는 1943년 10월 일제에게 강제로 징집되어 중국 남경지구 주둔 일본군 부대에 배속되어 있으면서 중국 충칭[重慶]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광복군이 있다는 정보를 듣고 1944년 4월 탈출에 성공한...
-
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신철휴(申哲休)[1898~1980]는 지금의 고령군 대가야읍 연조리에서 태어났다. 호는 해영(海影)이며, 우동(愚童)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아버지는 신진구(申鎭求)이다. 신철휴는 어려서부터 성품이 강직하고 도량이 넓었으며 한학과 글씨에 능하였고, 효도와 애국심이 강하였다. 20세인 1918년 5월, 민족의 비통한 참상을 개탄하여 만주로 건너갔...
-
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량식(尹亮植)[1866~1944]은 본관이 파평(坡平)으로, 지금의 고령군 성산면 용소리에서 태어났다. 세칭 파리장서사건이라고 하는 제1차 유림단 의거는 서울에서 김창숙(金昌淑)·김정호(金丁鎬)·이중업(李中業)·유준근(柳濬根)·유진태(兪鎭泰)·윤중수(尹中洙) 등의 논의 끝에 시작되었고, 김창숙이 그의 스승 곽종석(郭鍾錫)을 만나면서 급진전되었다...
-
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상의(李相義)는 본관이 성산(星山)으로, 지금의 고령군 대가야읍 내상리에서 태어났다. 이상희(李相羲)라고도 불렸다. 세칭 파리장서사건이라고 하는 제1차 유림단 의거는 서울에서 김창숙(金昌淑)·김정호(金丁鎬)·이중업(李中業)·유준근(柳濬根)·유진태(兪鎭泰)·윤중수(尹中洙) 등의 논의 끝에 시작되었고, 김창숙이 그의 스승 곽종석(郭鍾錫)을 만나면서...
-
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영수(李英守)[1924~?]는 지금의 고령군 운수면 대평리에서 태어났다. 이영수는 중국 충칭[重慶]에서 조직된 항일 군대인 광복군 전방지구 특파원으로 임명되어 선전 공작에 몰두하였다. 1943년 7월 일본 경찰의 지명 수배를 피하여 안후이성[安徽省] 부양(阜陽)으로 가서 제3지대에 입대하였는데, 특히 탈출한 학병들을 포섭하는 데 힘써 광복군 제...
-
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인광(李寅光)[1878~1934]은 본관이 성산(星山)으로, 지금의 고령군 대가야읍 내상리에서 태어났다. 세칭 파리장서사건이라고 하는 제1차 유림단 의거는 서울에서 김창숙(金昌淑)·김정호(金丁鎬)·이중업(李中業)·유준근(柳濬根)·유진태(兪鎭泰)·윤중수(尹中洙) 등의 논의 끝에 시작되었고, 김창숙이 그의 스승 곽종석(郭鍾錫)을 만나면서 급진전되었...
-
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태희(鄭泰熙)[1923~1969]는 지금의 고령군 덕곡면 반성리에서 태어났다. 정태희는 1941년 4월 중국 산시성[山西省] 태곡(太谷)에서 광복군(光復軍) 화북지구(華北地區) 지하공작책인 김천성(金天成)과 만난 뒤 광복군에 입대하였다. 일본군 경비대의 통역 출신인 점을 활용하여 적이 활동하는 중국 베이징[北京] 근처의 노안(路安)으로 들어가...
-
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경현(崔卿鉉)[1864~1927]은 지금의 고령군 쌍림면 매촌리에서 태어났다. 최경현은 고향에서 거주하면서 대구, 합천 등지에서는 독립 만세 시위운동이 치열하게 일어나는데도 유독 고령군 쌍림면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나지 않고 있음을 개탄하였다. 그리하여 1919년 3월 24일 오성렬(吳聖烈)의 집에서 서병직(徐丙稷)을 만나, 날짜를 정하여...
-
일제강점기 고령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최기순(崔基淳)[1893~1927]은 본관이 강릉(江陵)으로, 경상남도 합천군 덕곡면에서 최능한(崔能翰)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으나, 15세쯤에 부모를 따라 고령군 개진면 양전리로 옮겨 살았다. 최기순은 평양의 숭실학교(崇實學校)를 졸업하고, 1925년 33세에 만주로 갔다. 1920년 청산리전투 후 일본군의 간도 지방에서의 학살과 192...
-
1919년 고령 유림계가 참여하여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보내 한국의 독립을 요구한 운동. 1919년 3월 1일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곽종석(郭鍾錫)의 문인 윤충하(尹忠夏)는 서울의 만세 시위운동 상황과 파리강화회의 등 국내외 정세를 설명하고, 파리강화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장문의 글을 작성, 곽종석이 대표로 나서 줄 것을 주장하였다. 이에 곽종석은 김창숙(金昌淑)...
-
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한광룡(韓光龍)[1901~1957]은 본관이 청주(淸州)이며, 지금의 고령군 우곡면 대곡리에서 태어났다. 한광룡은 1919년 4월 8일 밤 고령군 우곡면 대곡리에서 같은 마을의 한이군(韓二君)·한용발(韓用發)·도말용(都末龍)·박용학(朴龍鶴) 등과 함께 도진리에 사는 박기로(朴基魯)에게서 도진리의 만세 운동 상황을 들어 알게 되었다. 그리고 박기로...
-
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한이군(韓二君)[1897~1938]은 본관이 청주(淸州)이며, 지금의 고령군 우곡면 대곡리에서 태어났다. 한의균으로도 불렸다. 한이군은 1919년 4월 8일 밤 고령군 우곡면 대곡리에서 같은 마을의 한용발(韓用發)·도말용(都末龍)·박용학(朴龍鶴)·한광룡(韓光龍) 등과 함께 도진리에 사는 박기로(朴基魯)에게서 도진리의 만세 운동 상황을 들어 알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