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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부터 4월까지 충청북도 음성군 일원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 일제의 한국 강점과 무단통치에 대항하여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과 만세운동이 시작되어 전국적으로 파급되었다. 충청북도 음성군 일원에서도 이에 호응하여 1919년 3월 하순부터 4월 상순에 걸쳐 군내 각지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에서는 초전리 서당에 다니던 김영익·정민영·최만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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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 있는 토기나 도자기를 굽던 가마가 있던 터. 가마는 크게 한데가마[露天窯]와 굴가마[登窯]로 나눈다. 한데가마에서는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가 구워졌을 것으로 보이나 아직 발굴된 예가 없고, 확인되는 가마는 모두 굴가마이다. 전통시대의 가마는 대부분 파손되어 터만 남은 상태에서 확인되므로 가마 터 유적이라고 부른다. 가마는 연료를 연소시키는 방인 연소실(燃燒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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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읍성읍 용산리 가섭산에 있는 고려 후기의 사찰. 가섭사는 석가모니의 10대 제자 중 하나인 가섭존자(迦葉尊者)의 이름을 딴 사찰이다. 가섭존자는 두타행(頭陀行)을 가장 충실히 실천하였고, 영취산에서 석가모니 부처가 연꽃을 들어 그 의미를 물었을 때 유일하게 미소로 답하여 염화미소(拈花微笑)의 가르침을 전한 인물이다. 가섭사는 창건 사실을 기록한 문헌 기록과 관련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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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용산리 가섭사에 있는 고려 전기의 불상. 가섭사 석가여래좌상은 전체적인 조각 기법이 정제되었으며, 얼굴 모습은 원만하고 인자하다. 이마에는 백호(白毫)가 있고, 귀는 길며, 목에는 삼도가 표현되어 있다. 오른손은 어깨에 들어 외장을 하였고, 왼손은 무릎 위에 들어 상장한 설법인(說法印)을 취하고 있다. 목불로서 금박을 입혔는데 높이가 90㎝이며 유리함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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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남천동에 있는 조선시대 연원역 소속의 감원역(坎原驛)이 있었던 자리. 조선시대에는 주요 도로에 대개 12㎞ 떨어진 거리마다 역을 두었는데, 역에는 마필(馬匹)과 역정(役丁)을 갖추어 공문을 전달하였으며, 공무 여행자에게 마필을 제공하거나 관물(官物)의 수송까지 담당하였다. 음성 지역에는 충주 연원찰방도에 속한 14개 역 중 용안역(用安驛)과 감원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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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갑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고인돌은 거석(巨石) 문화의 산물로 청동기시대에 주로 만들어진 무덤 유적으로 무덤방의 위치에 따라 탁자식·바둑판식·구덩식 고인돌로 구분된다. 음성 지역에서는 고인돌의 발견 예가 많지 않으나 바둑판식 고인돌이 주를 이루고 탁자식이나 개석식 고인돌도 확인된다. 유적은 음성군 소이면 소재지에서 국사봉 방향으로 가다 이르는 갑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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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갑산리에 있는 고려 전기의 석탑. 갑산리의 옛 절터에 있는 석탑으로, 원래는 7층 석탑이었다고 한다. 현재는 4층만 남아 있다. 갑산리 절터는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갑산리 정산 앞의 속칭 탑골이라고 불리는 골짜기에 있었다고 추정된다. 현재 절터 주변지역은 모두 밭으로 변하여 정확한 절터 위치는 확인할 수 없다. 갑산리 석탑은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갑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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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양지란 편안히 쉬면서 몸과 마음을 보양하기에 알맞은 곳을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수려한 산세의 봉학산과 봉학골 골짜기의 봉학골천에 입지하고 있는 봉학골 산림공원은 휴양지로서 더할 나위 없는 곳이다. 1996년 6월에 개장한 봉학골 산림욕장은 음성읍과 가까워 교통이 편리할 뿐만 아니라 근처에 용산저수지와 가섭산이 있는 천혜의 쉼 터이기도 하다. 음성군에서는 매년 봉학골 산림욕장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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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이루어진 선사시대부터 고려왕조의 통일 이전까지의 역사. 역사상의 고대라는 개념은 서양의 역사시대 구분을 원용한 것으로, 고대 노예제사회 혹은 엄격한 신분제사회의 성립과 해체를 기준으로 설정되었다. 여기에서 문자기록 이전의 시기는 선사시대로, 문자기록 이후는 역사시대로 구분하는데, 고대라는 개념 속에는 선사시대를 포함하여 신분계층사회의 성립 과정과 고대적 사회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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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역사. 고대 말기 지방 호족의 성장으로 통일신라가 분열되면서 시작된 후삼국시대에서 음성 지역은 서기 900년경 궁예가 세운 후고구려에 예속되었다. 그후 폭정을 일삼던 궁예가 쫓겨나고, 서기 918년 왕건이 여러 지역 호족들을 규합하고 인심을 수렴하는 데 성공하여 새 왕조를 개창하면서 음성군이 속한 충청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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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신양리에 있는 법화종(法華宗) 사찰. 1996년에 충주산업대학교 박물관이 간행한 『음성군의 역사와 문화유적』에 실려 있는 ‘음성군 사찰 현황표’에 따르면, 관음사는 당시 음성군에 소재한 52개 사찰 가운데 법화종에 속하는 8개 사찰 중 하나였다. 또한 당시의 주지는 정연택이었으며, 창건 연대는 알 수 없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편 음성문화원이 1998년에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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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권제(權踶)의 신도비. 권제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 자는 중의(仲義), 중안(仲安), 호는 지재(止齋)이다. 음보로 관직에 나아갔다. 1440년(세종 22)에 『고려사』 편찬에 참여하였고, 정인지 등과 『용비어천가』를 지어 바쳤다. 영의정에 추존되었고, 시호는 문경(文景)이다. 이런 업적을 기리고자 18대손 권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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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금고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석비. 재질은 광배형 화강암 자연석으로, 앞면을 평평하게 다듬어 글자를 모각하였다. 비신의 양 측면에 약간 땜질을 하였으며, 삼각형의 머리 부분은 뾰족한 모습이라 남성 선돌을 연상시킨다. 비신(碑身)의 전체 높이는 81㎝이며, 앞면의 폭은 43㎝, 측면의 폭은 22㎝이다. 비석 앞면에는 ‘국사산하황룡산황룡두하룡전평(國師山下黃龍山黃龍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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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금고리에 있는 법화종(法華宗) 사찰. 1996년에 충주산업대학교 박물관이 간행한 『음성군의 역사와 문화유적』에 있는 ‘음성군 사찰 현황표’에 따르면, 금봉사는 당시 음성군에 소재한 52개 사찰 가운데 법화종에 속하는 8개 사찰 중 하나였다. 이에 따르면 설립자는 조교선으로, 창건 연대는 미상이라고 하였다. 한편 음성문화원이 1998년에 간행한 『음성지명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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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에 있는 조선 말기 문신 김재은(金在殷)의 선정비. 김재은은 고종 때의 관리이다. 1904년(광무 8)에 중추원의관(정3품)을 거쳐 1905년 정2품 가선대부(正二品嘉善大夫)로 충주군수 서주임관1등(敍奏任官一等)에 임명되었다. 내부대신육군부장훈1등(內部大臣陸軍副將勳一等) 이지용(李祉鎔)이 발급한 충주군수로 임명받았을 때의 교지(敎旨)가 국립중앙도서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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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의령(宜寧). 태종의 부마(駙馬) 남휘(南暉)와 정선공주의 손자이고, 아버지는 남빈(南份), 어머니는 현감 홍여공(洪汝恭)의 딸이다. 부인은 태종의 외손인 좌의정 권람(權擥)의 4녀이다. 1457년(세조 3) 17세의 나이로 무과에 장원급제하여 세조의 지극한 총애를 받았다. 1467년에 이시애(李施愛)가 난을 일으키자 우상대장(右廂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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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 있었던 조선시대 도로 이름. 충청북도 음성현에서 남송대로(南松大路)를 지나 괴산현과의 경계에 도차고개[道車峴]가 있었는데, 이 이름을 따서 도차현 대로라고 불렀다. 조선시대에 역원제도가 발달함에 따라 충청북도 음성현 역말에서 남송대로를 지나 도차고개를 넘어 괴산현으로 왕래할 목적으로 도차현 대로을 만들었다. 그러나 주변 도로 교통의 발달로 도차현 대로는 쇠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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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시에서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에 국권회복운동과 항일독립운동에 헌신한 애국지사. 음성 지방은 1905년의 중기 의병 때부터 의병 활동과 관련한 구체적인 기사들이 보이는데, 특히 1907년 구한국군대의 강제 해산 이후 봉기한 후기 의병에서 더욱 활발한 양상을 보인다. 또한 3·1운동 때에는 군내 각지에서 만세시위가 벌어지는 등 독립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조선 후기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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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이란 공공 녹지로서 자연지(自然地)나 인공적으로 조성한 후생적 조경지를 말한다. 흔히 전자, 곧 자연지를 자연공원이라 하고 인공적으로 조성한 후생적 조경지를 도시공원이라고 부른다. 음성 지역의 대표적인 문화 휴식 공간으로 자리잡은 설성공원과 큰바위얼굴조각공원은 인공적으로 조성한 도시공원으로 음성군민이 즐겨 찾는 쉼 터이자 자랑거리로 자리잡고 있다. 음성읍 읍내리는 동쪽으로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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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 가섭산에 있는 고려 전기에 창건된 대한불교조계종단의 법주사 말사(末寺). 미타사는 630년(진덕여왕 8) 원효에 의해 창건된 이후 876년(헌강왕 2)에 도선국사가 중창하였고 1370년에 무학대사가 중창하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창건과 관련된 유적과 유물은 보이지 않는다. 현존하는 유물로 보아 미타사는 늦어도 고려 전기에는 창건되었다고 이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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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 미타사에 있는 고려 후기의 아미타불좌상. 미타사 석조여래좌상은 화강암으로 아미타상을 조각한 불상으로 미타사 삼성각에 봉안되어 있는 석불이다. 불상의 머리와 양손은 파손된 것을 시멘트로 보수한 것으로, 매우 조잡하다. 졸속하게 보수를 하였지만 양팔의 형태로 보아 불상이 결한 수인(手印)은 아미타 수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법의는 통견(通肩)으로 등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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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분충(奮忠). 증좌찬성(贈左贊成) 민수산(閔壽山)의 아들이고, 증문하시중(贈門下侍中) 여원군(驪源君) 민백훤(閔佰萱)의 손자이다. 친형은 민서(閔叙)이다. 민발은 어려서부터 기골이 크고 힘이 세어 13세 때 무술 연마를 위해 마을 앞 큰 바위를 움직여 등에 지고 사장(射場) 터로 옮겨놓았다고 한다. 음보(蔭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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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고려시대 서운부정(書雲副正)을 지낸 민함계(閔咸啓)의 손자이고, 고려 후기 문신이었던 민백훤(閔伯萱)의 아들이다.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운 민발(閔發)이 아들이다. 민수산은 어려서부터 글을 잘하여 1382년에 어전 시회(詩會)에서 장원하였다. 1411년(태종 11)에 어머니가 죽자 형제인 민방보(閔邦寶)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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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무신이자 음성박씨의 선조. 본관은 음성(陰城). 고려 평장사(平章事) 박서(朴犀)의 후손이며 시랑(侍郞) 박문길(朴文吉)의 아들이다. 효자문이 남아 있는 박호원(朴浩遠)이 박순의 아들이며 대사헌까지 지낸 박숙채(朴菽蔡)가 손자이다. 조선 중기의 선비인 박유겸(朴惟謙)은 박순의 후손이다. 박순의 처 장흥임씨(長興任氏)는 고려시대 대사헌(大司憲) 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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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용성리의 백운사 옛 절터에 있는 고려 전기의 부도. 백운사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절터에 있는 ‘백운사사적비’가 1692년(숙종 18)에 건립된 것으로 보아 임진왜란 때 화재로 폐사된 이후 17세기에 중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흙 속에 매몰된 부도는 어느 때, 누가 만든 것인지 전혀 확인할 수 없다. 다만 부도의 양식으로 보아 임진왜란 전인 조선 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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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보룡리 보룡사지에 있는 고려 후기의 석조 불상. 보룡리 석조여래좌상은 머리에는 원형관을 쓰고 있는데, 머리는 나발(螺髮)이며 이마에는 백호(白毫)가 나타나 있고, 귀는 길게 어깨에 닿았으며 얼굴은 풍만하다. 목에는 삼도가 있고 눈과 코, 입은 파손이 심하여 알아볼 수가 없다. 양손은 무릎 위에 놓았고 양발은 결가부좌하여 당당한 자세로 안정감을 준다. 법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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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석가모니가 설한 교법을 종지로 하는 종교. 음성 지역은 예부터 군사적 거점으로서뿐만 아니라 교역과 문화의 교류를 위한 요충지로서 이해되었다. 더욱이 북으로는 한강에, 남으로는 금강에 연결되는 수로의 발달로 삼국시대에는 군사적 요충지로 이해되어 이 지역을 빼앗기 위한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또한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에는 각 시대의 왕도인 경주와 개성, 한양 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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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고분군.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에서 미타사 방향으로 약 500m 올라간 지점에 저수지가 있다. 이 저수지 옆에 밭과 과수원으로 개간되어 경작되고 있는 지역과 구릉 지역, 인삼포로 경작되고 있는 지역은 고려장터로 불리는 돌널 무덤이 조성된 곳이다. 비산리 고분군도 이와 같이 돌널 무덤이 떼를 이루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고분군이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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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비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기와가마 터. 비산리에서 미타사 쪽으로 약 500m쯤 가면 저수지가 있고, 그 옆에 단층 슬라브집이 있는데, 이곳이 기와를 굽던 기와가마 터라고 한다. 또 저수지 아래쪽에는 사과나무 밭이 있는데 이곳 또한 기와를 굽던 곳이라 전한다. 비산리 기와가마 터는 지표 조사만 이루어졌지만 비교적 규모가 큰 기와가마 터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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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사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철화백자가마 터. 사곡리 철화백자가마 터는 지표 조사만 이루어진 곳으로, 가마의 규모나 성격을 파악할 수는 없으나 수습된 백자편에서 철화흔이 확인되고 있으며, 순백자도 만들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밭을 일부 잘라 길을 닦는 과정에서 자기 조각과 검붉게 탄 흙 등이 많이 나왔으며, 현재 도로 양편의 과수원 쪽과 논둑에도 자기편과 불탄 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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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 있는 옛 절 터. 음성 지역에서 확인되는 사지(寺址)는 상당수가 있으나 기록에서 확인되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서가섭사 상봉악사 구재가섭산(西迦葉寺 上鳳岳寺 俱在迦葉山)”이라 하여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용산리에서 확인되는 서가섭사지 곧 응진암지(應眞庵址)와 상봉악사지(上鳳岳寺址) 등이 확인된다. 1632년에 만들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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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불상을 모셔 놓고 공적으로 불교 신행을 행하는 장소. 음성 지역에서 확인되는 사찰로 그 연원이 가장 오랜 것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의 지리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를 보면 음성읍에는 서가섭사(西迦葉寺)와 용산리의 상봉악사(上鳳岳寺), 감우리의 성주사(聖住寺) 등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가섭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그 자취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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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삼생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가마 터. 삼생리 안슴이 초입에서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산을 끼고 돌면 사기장골이라 부르는 골짜기가 나타나는데, 이곳이 백자가마 터이다. 가마 터 주변은 삼밭으로 이용되고 있고, 백자가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지역은 삼밭의 산 쪽 윗부분과 아래쪽이다. 지표 조사만 실시된 유적지라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기 어려우나 굴식 가마가 있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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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삼생리에 있는 고려시대 또는 조선시대의 유물산포지. 음성읍 삼생리는 원남면과 경계를 이루며, 원래는 삼산(三山)이라 했는데 이곳에 거주하면 3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다는 전설로 인해 삼생(三生)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 마을에는 충신 장충범의 정려와 청주이씨의 열녀문 등이 있다. 삼생리 유물산포지는 장충범의 정려각 주변 야산의 동남 사면 기슭 나대지로 정려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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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생리에 있는 선사시대의 선돌. 선돌은 큰돌〔巨石] 기념물의 한 종류로 자연석을 일부 다듬어 세워놓고 신앙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선돌은 그 연대를 추정하기 어려우나 서유럽의 경우 신석기시대 후기부터 시장하여 청동기시대에 유행한 것으로 나타난다. 생리 선돌에는 전설이 있다. 옛날에 박장수라고 불리던 사람과 그의 아내가 모두 쌀을 몇 가마씩 들 수 있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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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의 전통가옥은 대부분이 조선시대의 건축물들이고, 유교적 특징이 강조되어 있다. 옛사람들의 생활 가옥이었던 고택들, 유교 이념을 교육하였던 향교, 유교 이념을 연구·전승하였던 서원들, 선현 제향과 풍속 교화의 장소인 사우들, 자연을 즐기는 여유가 담긴 누정들은 모두 조선의 시대정신이었던 선비 정신과 그에 입각한 건축미가 담겨진 전통가옥들이다. 이처럼 음성 지역에 유독 조선의 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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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역사 기록이 존재하지 않은 시대의 유적과 유물. 선사시대는 주로 고고학의 대상으로서 구석기·신석기·청동기시대가 포함되고 있다. 그러나 선사시대의 출현이나 각 단계별 존재 형태는 지역의 자연환경과 인문 환경 등의 차이와 사회·경제·문화 등의 발달 단계에 따라 시기나 양상의 편차가 크다. 따라서 당시의 문화를 반영하는 유적과 유물도 그에 비례하여 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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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음성현감 성규주를 기리는 비. 성규주는 영조 때에 음성현감으로 애민선정(愛民善政)을 하여, 후세 사람들이 그의 치적을 기리기 위하여 불망비를 세웠다. 성규주 불망비는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서 충주로 가는 구 도로를 따라 1㎞쯤 올라가면 음성향교가 나오는데 그 앞에 있다. 비석은 이수(螭首)를 얹은 것처럼 표현하기 위해 화강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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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음성현감 성규주를 기리는 비. 성규주는 영조 때에 음성현감으로 애민선정(愛民善政)을 하여 후세 사람들이 그의 치적을 기리기 위하여 선정비를 세웠다. 성규주 선정비는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 하당저수지로 올라가는 길옆 하당1리 마을회관 근처 비닐하우스 앞에 있다. 비석은 이수(螭首)를 얹은 것처럼 표현하기 위해 화강암 1매석을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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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감우리 보현산 기슭 ‘성주골’에 있는 고려시대의 절터. 음성에서 금왕 쪽으로 국도 37호선를 따라가다 보면 왼쪽으로 동음리로 향하는 길이 나온다. 이 길로 고개를 하나 넘으면 처음 나타나는 곳이 승주인데, 이곳에 성주사지가 있다. 현재 성주사지는 폐허가 되어 있고, 잡초와 수목이 무성하여 건물지 등의 흔적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1910년경에 빈 절로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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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감우리 성주사지에 있는 조선 중기의 부도. 성주사는 빈 절로 남아 있다가 1910년경에 자연 붕괴되었다고 전해진다. 현재 성주사지는 폐허가 되었고, 옛 터의 남쪽 언덕에 2기의 부도가 남아 있다. 성주사는 언제 건립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에 보현산에 성주사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으로 보아 17세기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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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차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선경의 처 성주이씨의 정절을 기리는 열녀문.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으로 가는 국도 33호선 변인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차평2리에서 오른쪽 양재 쪽으로 난 농로를 따라 300m쯤 가면 왼편으로 열녀각이 보인다. 성주이씨는 인문관 이휘의 딸로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임곡리에서 출생하였다. 1592년(선조 25)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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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두성리에 있는 고려 말 조선 초 송광도의 효행을 기리는 효자각. 조선은 유교를 국교시하였기에 충(忠)과 효(孝)와 열(烈)을 만인의 덕목으로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이를 행하는 데 귀감이 되는 이를 뽑아 기리기 위해 동리마다 충신이나 효자·효부, 열녀를 기리는 비나 비각을 많이 건립하였다. 특히 충청북도 음성군 지역은 다른 문화재보다 유교기념물이 많은 것이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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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말기 음성현감 송규복을 기리는 비. 송규복 애민선정비는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에서 충주 쪽으로 가는 옛 국도 변에 위치한 음성향교 앞에 있다. 향교는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던 장소이므로 선정비나 불망비 등이 많이 세워져 있다. 비석은 지붕돌이나 이수(螭首) 없이 윗부분을 둥글게 처리한 일반형 석비로 화강암 1매석이며 높이 115㎝의 비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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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오생리에 있는 조선시대 송영학의 처 밀양박씨의 효행을 기리는 비. 효열비는 유교를 덕목으로 하는 조선시대에 많이 세워졌는데 충신·열사와 더불어 효자·효부를 기리는 의미에서 일반적으로 당사자와 관련된 장소에 세웠다. 박씨 부인은 원래 계모 슬하에서 자라다가 14세에 송영학에게 출가하였으나 26세 때에 남편을 잃고 빈한한 집의 과부로 많은 시집 식구들을 봉양하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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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용산리 생골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송저의 묘. 송저는 조선 전기의 명신으로 본관은 진천이다. 상산백 송인(宋仁)의 8세손이며, 낭장 송광도의 아들로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용산리 사인동(지금의 생골)에 살았다. 문과에 급제한 뒤 1422년(세종 4)에 사헌부 지평이 되었다. 1433년(세종 15)에 지보성군사(知寶城郡事)로 있을 때 백학자[새매]를 바친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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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평곡리 약현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이경립의 처 순흥안씨의 정절을 기리는 열녀각. 충청북도 음성읍에서 충청북도 괴산군 불정면 쪽으로 약 1㎞쯤 떨어진 충청북도 음성읍 평곡리 약물재마을 북쪽에 수정산이 있는데, 이 수정산 입구에 열녀각이 있다. 순흥안씨는 성균진사 이경립의 처이다. 이경립이 천연두에 걸려 병석에 눕게 되자 정성껏 수발을 다하였으나, 안타깝게도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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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대장리에 있는 조선 후기 신유의 효행을 기리는 효자각. 조선은 유교를 국교시하였기에 효(孝)와 충(忠)과 열(烈)을 중히 여겨 정려를 특히 많이 세웠다. 신유의 효자각도 근방의 사람들을 교화하는 차원에서 신유가 살던 마을에 세운 것이다. 신유의 효자각은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대장리의 남쪽 끝부분에 위치하는데, 이곳은 충북선 소이역의 앞쪽이며 한라중공업의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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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쌍봉리에 있는 삼국시대로 추정되는 고분. 음성군 금왕읍에서 삼성면 방면으로 8㎞ 정도 가면 오른쪽으로 쌍봉리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온다. 이곳에서 약 1㎞ 들어가면 쌍봉1리가 위치한다. 이 마을은 낮은 구릉성 산지에 논과 밭이 대부분이고 쌍봉초등학교가 있다. 쌍봉리 고분은 쌍봉1리 옆에 위치한 쌍봉2리의 구릉 지대에 위치한다. 쌍봉리 고분은 말무덤[馬塚]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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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의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 충청북도 북부 지역은 구석기를 비롯하여 국내외에 널리 알려진 선사시대의 유적지가 많다. 따라서 이들 지역과 인접한 음성에서 일찍부터 사람들이 살았을 개연성이 높다. 실제로 삼성면 용성리에서 석영질 암석으로 만든 찍개와 긁개, 밀개 등의 연모가 출토됨으로써 음성 지역의 구석기시대와 문화의 존재를 입증하였다. 청동기문화를 대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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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 지역에서 전통시대에 목숨으로 정조를 지켰거나 남편을 위해 지극한 정성을 다한 부녀자. 열녀란 위난을 당하여 목숨으로 정조를 지켰거나 또는 오랜 세월에 걸쳐 고난과 싸우며 수절한 부녀자로 일반적으로 열녀와 열부(烈婦)를 통칭한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충효열 관념이 삼강오륜(三綱五倫)이라는 형태로 정치적·사회적 규범으로 체계화되면서 열녀는 사회적인 중요성을 강화해갔다.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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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오궁리에 있는 조선시대 원(院)의 터. 원은 출장을 다니는 관리들이 숙박하던 곳으로, 국가의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의 숙식을 제공하기 위하여 중요한 도로나 인가가 드문 곳에 두었다. 원에는 원주(院主)가 배치되었고, 원위전(院位田)을 제공하여 필요한 경비를 충당하도록 하였다. 오갑초등학교에서 북서쪽으로 300m 지점에 있으며, 국도 38호선이 지나가는 원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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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용계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의 사찰. 1996년에 충주산업대학교 박물관이 조사하여 간행한 『음성군의 역사와 문화유적』에 있는 ‘음성군 사찰 현황표’에 따르면, 당시 음성군에 소재한 52개 사찰 가운데 법화종에 속하는 8개 사찰 중 하나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1960년에 최종숙에 의해서 설립되었다고 되어 있다. 신자 수는 450명이라고 한다. 현재 사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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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자형(自馨), 호는 연균(緣筠) 또는 어수(漁叟). 유사근(柳士根)의 손자이고, 교리 유승순(柳承順)의 아들이며, 사육신(死六臣) 유성원의 큰 조카이다. 아들로는 서경(瑞卿) 유인종(柳鱗鍾)이 있다. 유계분은 1441년(세종 23) 20세에 진사(進士)가 된 후 1453년(단종 1)에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정자(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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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행해지는 공자의 사상과 관련한 학문과 의례 및 활동 일반. 우리나라에 유교가 언제 어떻게 수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삼국시대에 유교 경전의 교육과 사서(史書) 편찬 등이 이루어졌음을 볼 때 이때 이미 유교가 문화적 요소로서 중요하게 인식되었음은 분명하다. 불교가 성행하였던 고려시대에도 국가 이념과 체제를 정립하는 과정에서 유교의 이념은 상당히 중요한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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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영산리에 있는 조선 태종의 제1서자 경녕군의 부인 청풍김씨의 묘. 경녕군(敬寧君)은 조선 태종과 효빈 김씨 사이에서 태어난 태종의 장남이다. 경녕군 부인 청풍김씨는 1416년(태종 16)에 경녕군과 성혼하였으며, 1417년(태종 17)에 경신택주 안산군부인(敬愼宅主 安山君夫人)에 봉해졌다. 1450년(세종 32) 4월에 서거하여 현 위치에 안장되었다. 경녕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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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권근과 그의 아들 권제, 손자 권람의 3대 묘소 및 신도비(神道碑). 조선시대의 묘소는 풍수지리에 의해 길한 땅을 택하여 만들어졌는데 왕릉처럼 병풍석(屛風石)을 두를 수는 없었다. 묘 앞에는 석상(石床)을 놓고 양쪽에 망주석을 세웠다. 석상 앞쪽으로는 장명등(長明燈)을 놓고 좌우에 석인(石人)들을 세웠다. 종2품 이상 고관의 묘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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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년 동안 중국과 한국, 일본 등 동양사상을 지배하여 온 유교는 인(仁)으로 모든 도덕을 일관하는 최고 이념으로 삼고,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일종의 윤리학이며 정치학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삼국시대 이후 고려를 거치면서 조선왕조로 들어와 국가 지배 이념으로 기능하기도 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유교는 종교가 아니라고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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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 지역에 언제 처음 성곽이 축조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나라 전체로 보면 청동기시대 구릉 위에 만든 마을의 둘레에 환호(環壕)를 두른 유적이 나타나고, 이어서 그 안팎으로 나무말뚝 따위를 죽 이어서 박아 만든 울타리, 곧 울짱의 형태와 같은 목책(木柵)을 두른 시설이 나타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목책 이외에 흙으로 다져서 성벽을 만드는 단계로 발전된 것이 확인되었다. 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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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쌍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이지걸의 묘비. 이지걸의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수천(秀天), 호는 금호(琴湖)이다. 부친은 선교랑(宣敎郞) 이연(李堜)이다. 1654년(효종 5) 식년시에 생원 3등 49위로 입격하였다. 1684년(숙종 10)에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가 되고 그 후 경상도 영덕현감(盈德縣監)으로 부임했다가 남형(濫刑)의 죄로 곤양(昆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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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맹동면 인곡리에 있는 조선 중기 백자가마 터. 인곡리 백자가마 터는 지표 조사가 실시되었을 뿐 시굴이나 발굴 조사는 시행되지 않았다. 백자편이 주로 수습되었는데, 백자는 유백색을 띠며 모래흔도 아주 고운 모래를 사용하여 고급스럽게 만든 것으로 추측된다. 주로 접시, 대접류가 많으며, 불탄 흙과 도지미, 노벽편 등이 흩어져 있다. 현재 인곡리 백자가마 터는 토사에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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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1910년 국권 강탈 이후 1945년 광복까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통치 시기. 음성군은 1895년(고종 32)에 지방 관제를 23부로 개정할 때 충주부 20개 관할군의 하나인 음성군이 되었다가 이듬해 8도 체재로 정비될 때 충청북도 음성군이 되었다. 그후 1906년 지방제도가 정비될 때 충주군에 소속되었던 13개 면을 이임받아 동도면·남면·원서면·근서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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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 지역에 고구려가 설치한 행정 구역. 음성은 잉홀(仍忽)·설성(雪城)·잉근내(仍劤內)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는데 잉홀의 지명은 서기 757년 신라 경덕왕 16년 12월에 음성으로 변경되었다. 음성군 음성읍 평곡리 약물제 동쪽에 터골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거북 모양의 바위가 있어 구문동(龜文洞)이라고도 하는 이 마을은 고구려 때 잉홀현의 관청이 있어 ‘터골’이라고 하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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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왕장리에 있었던 조선시대 도로 이름. 장호원은 청미천을 경계로 현재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 장호원리와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왕장리 등으로 행정구역이 분리되어 있다. 국도 3호선과 국도 38호선이 교차하고 있어 충청북도 음성군, 충주시, 경기도 안성시 등과의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서울~동래로 통하였던 영남대로의 장후원 부근 큰 길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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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차곡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의 사찰. 1996년에 충주산업대학교 박물관이 조사하여 간행한 『음성군의 역사와 문화유적』에 있는 ‘음성군 사찰 현황표’에 따르면, 당시 음성군에 소재한 52개 사찰 가운데 태고종(太古宗)에 속하는 17개 사찰 중 하나였다. 창건 연대는 미상으로, 주지는 문호수이고, 신자 수는 50명이었다. 1940년에 설립되었고, 당시 주지는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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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주천리에 있는 대한불교정불조계종의 종찰. 1996년에 충주산업대학교 박물관이 조사하여 간행한 『음성군의 역사와 문화유적』에 있는 ‘음성군 사찰 현황표’에 따르면, 당시 음성군에 소재한 52개 사찰 가운데 태고종(太古宗)에 속하는 17개 사찰 중 하나였다. 주지는 정지흥, 소속 종단은 태고종이었고, 신자 수는 910명이었다. 정도사는 정도사는 소속 종단이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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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 살았던 충신·효자·열녀를 표창하기 위해 나라에서 내린 상징물. 정문은 일명 홍문(紅門) 또는 작계(綽契)라고도 한다. 액(額)에다 충(忠)·효(孝)·열(烈) 등의 글자를 새겨 표창의 종류를 표시하고 그 이름과 직함을 새겼다. 정려의 사례는 『삼국사기(三國史記)』의 효녀 지은(知恩)에 대한 포상 기록이 처음이다. 고려시대에 와서 역대 왕들이 효자와 열녀 등이 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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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언술(彦述). 할아버지는 교리를 지낸 정수곤(丁壽崑)이고, 아버지는 현감을 지냈던 정담(丁聃)이다. 1504년(연산군 10)에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조촌리에서 태어나 생활하였으며, 26세인 1530년(중종 25)에 생원시에 급제하고 이어 벼슬이 별좌에 이르렀다.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조촌리 산봉오리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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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유호(攸好), 시호는 정간(貞簡). 정혁선(鄭赫先)의 아들이며 진주목사를 지낸 정동협(鄭東協)은 정석오의 손자이다. 정석오는 1715년(숙종 41)에 식년문과 병과로 급제한 후 검열·문학을 거치고 경종이 즉위하면서 부수찬·교리를 지냈다. 1721년 30세 때 지평으로 김일경(金一鏡)과 함께 노론 사대신(四大臣)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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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성공(聖功)이라 하다가 후에 회숙(晦淑)으로 고쳤다, 할아버지는 정혁선(鄭赫先)이며, 아버지는 좌의정을 지냈던 정석오(鄭錫五)이다. 1745년(영조 21)에 음보(蔭補)로 돈령부참봉(敦寧府參奉),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를 지내고 5년 뒤인 1750년(영조 26)에는 광흥창수(廣興倉守)가 되었다. 이듬해 개령현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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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행정가. 자는 문옥(文玉), 호는 정암(靜岩)이며 아버지는 조광하(趙光夏)이다. 충청북도 음성읍 평곡리(平谷里)에서 살았으며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웠다. 조동환은 1910년 25세에 도지부주사(度支部主事)에 기용되었고 이어서 강원도 춘천재무소(財務所) 주사(主事)가 되었다. 1928년 43세에 음성면장을 지내고 2년 후 사직하였다가 1931년 음성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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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충청북도 음성군의 역사. 조선 초기 음성 지방은 고려의 지방제도와 같이 충주목에 속한 4속현(영춘·제천·음성·연풍)의 하나였다. 음성현은 1413년(태종 13)의 지방제도 개편 때 현감을 두었으나 규모가 매우 작아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의하면 “사방 경계는 동쪽으로 충주 제천에 이르기까지 7리, 서쪽으로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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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군헌(君獻), 호는 취병(翠屛). 승지(承旨) 조희보(趙希輔)의 아들이고,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를 지낸 조상우(趙相愚)는 그의 아들이다. 조형은 어려서 장난이 심하였으나 일찍부터 공부를 시작하여 9세에 경서(經書)를 해득하여 세상 사람들이 경탄하였다. 1630년(인조 8)에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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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주봉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의 사찰. 1996년에 충주산업대학교 박물관이 조사하여 간행한 『음성군의 역사와 문화유적』에 있는 ‘음성군 사찰 현황표’에 따르면, 당시 음성군에 소재한 52개 사찰 가운데 법화종에 속하는 8개 사찰 중 하나였다. 그에 따르면 창건 연대는 1933년으로, 주지는 서부남이었다고 한다. 한편 음성문화원이 1998년에 제작한 『음성지명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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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왕장리에 있었던 조선시대 도로 이름. 청미천은 남쪽의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에서 북류하여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에 이르는 지역에 하곡 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러한 저지대를 교통로로 이용하였다. 청미천은 일명 천민천이라고도 한다. 청미천 대로는 청미천 연변에 있었던 큰길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충청북도 음성현의 남쪽에 있었던 양혜원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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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충도리 도남에 있는 삼국시대로 추정되는 고분. 이 유적은 말무덤[馬塚]으로 불리고 있다. 고려 때 거란병이 침입했을 때 원남면 구안리에 주둔하며 수정산성에 진을 친 박서 장군과 대치하던 거란장군이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곳 형세가 장군이 탄생할 만한 곳이라 고갯길을 파헤쳐 혈을 끊으니 백마가 나왔고, 백마가 울며 죽은 곳에 말무덤을 만들어 장수의 탄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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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 지역에서 전통시대에 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충을 실천한 신하. 충신은 나라에 도움이 되는 성신(聖臣), 양신(良臣), 충신(忠臣), 지신(智臣), 정신(貞臣), 직신(直臣)의 육정(六正) 가운데 하나이다. 음성 지역에도 충과 관련된 인물과 유적이 상당수 남아 있어 정치적·사회적 규범으로 자리잡았던 충 사상의 영향을 알 수 있다. 음성 지역의 충신에 관한 기록으로는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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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용산리에 있었던 조선시대 도로 이름. 탄현(炭峴)을 순우리말로 숯고개라고 한다. 따라서 탄현 소로를 숯고개 소로라고도 하였다. 탄현은 부용산과 가섭산의 중간에 있는 고개로, 옛날부터 충청북도 음성현에서 충주현으로 통하는 교통로로서 매우 중요하였다. 현재는 충청북도 음성읍에서 충주시 신니면으로 연결되는 지방도로 변모하였다. 고문헌에 따르면 탄현 소로는 충청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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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발견하거나 보관하고 있는 선사시대와 고대에 제작된 용기. 토기는 신석기시대 이래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과거의 수럽·채집 생활에서 농경을 바탕으로 하는 정착 생활로 전환하면서 식량을 저장하고 식수를 담아두는 용기가 필요하게 되면서 출현하였다. 토기는 보통 500~1000℃ 이하에서 구워지지만 그 이상에서 구워진 것은 도기(陶器)라 부르고, 유약을 바른 것을 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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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이루어진 1945년 8·15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 음성군은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98호로 충청북도 음성군이 된 이후 1906년 충주군의 금왕면·생극면·대소면·맹동면·삼성면·감곡면 등 6개 면이 편입되었다. 그후 일제강점기인 1914년에 충주군 소이면의 일부가 편입되었고, 1956년 7월 8일 법률 제393호로 음성면이 음성읍으로 승격되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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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덕정리에 있는 전통 사찰. 화암사는 1938년에 김승원(金承元)이 옛 절터에 절을 세우고 청진암(淸眞庵)이라 부른 데서 연유하고 있다. 조선총독부에서 1942년에 간행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에는 “덕정리 북방 이백문의 계곡에 있다. 초석과 와편이 존재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1996년에 충주산업대학교 박물관이 조사하여 간행한 『음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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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 지역에서 전통시대에 부모를 효성으로 극진하게 섬긴 자녀. 효 사상은 삼국시대에 이미 전개되었다. 고구려에서는 태학(太學)에서 오경(五經)과 중국의 사서들을 교육하였고, 신라도 국학(國學)에서 『논어(論語)』와 『효경(孝經)』 등을 교육하였다. 고려시대에는 국자감(國子監)을 설치하여 유교 경전을 학습하고, 『논어』와 『효경』을 필수 과목으로 하여 유교적 충효 사상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