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진말 사람들은 산신을 모시고 믿으며, 산제당 근처에 있는 나무도 함부로 베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권순복 할머니(47년생, 61세)는 마을 사람 중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 목매달아 죽은 나무를 베어 변소를 만들었다가 역시 목을 매달아 죽은 사람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그 일이 일어나기 전 그 집에서 구렁이가 나타났다고 한다. 할머니들은 구렁이를 안 좋은 일, 즉 흉함...
-
병암1리에서는 예전부터 정월 대보름이면 마을에서 제일 높은 이진봉에 올라가 달집을 태우고 소원을 빌었으며, 줄다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사람이 많이 줄어들어서 줄다리기는 하지 못하고 대신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척사대회를 하고 있다. 3월 4일. 음력으로 정월 보름에 해당하는 날이었다. 이날 아침부터 잔뜩 찌푸린 하늘에서는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 질 것처럼 보였다...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차평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열녀 이야기. 「김선경의 처 성주이씨 이야기」는 임진왜란 때 죽음으로 치욕을 씻었던 김선경의 처 성주이씨에 관한 이야기이다. 음성군 생극면 차평리에는 훗날 성주이씨에게 나라에서 내린 열녀문이 세워져 있다. 음성군 생극면 차평리에 전해 오는 이야기로, 2005년에 발행된 『음성의 구비문학』에 수록되어 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팔성리에 전해 내려오는 김성간의 과거 시험에 관한 이야기. 김성간(金成簡)은 자는 계화(季化), 호는 만재(晩齋)이며,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팔성리 말마리 사람이다. 유학자이자 시인이었으나 과거에 운이 없어 후진 교육에만 힘썼다. 음사시(音似詩) 1수가 전하는데, “개구리를 논하지 말고 족제비의 덕을 말한다네 고구마는 풀이 아니니 잎사귀엔 물이 없다네(勿論...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팔성리에서 김세필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김세필의 일화」는 음성 지역의 대표적인 유학자 김세필(金世弼)[1473~1533]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김세필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1504년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가 중종반정으로 풀려나왔다. 그후 기묘사화 때 조광조가 사사되자 중종의 과오를 규탄하다 유춘역에 장배되었다가 1522...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팔성리에서 말마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말마리 전설」은 음성군 생극면 팔성1리의 자연 마을인 말마리의 지명유래담이다. 1525년(중종 20)을 기점으로 십청헌(十淸軒) 김세필(金世弼)과 눌재(訥齋) 박상(朴祥)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가 근간이 되어 ‘말마리’라는 지명을 얻게 되었으며, 지금도 마을 주민들의 기억 속에 연연히 이어져 오고 있다. 김...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생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지명 유래 전설. 1996년 『음성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생리에 조 참판의 묘가 있다. 이 묘는 조선 인조 때 참판을 지낸 양반의 묘로 풍수지리상 피리혈이라고 한다. 그런데 묘를 몇 장만 썼어야 하는데 그 후손이 밑에다 자꾸 묘를 써서 피리 소리가 나는 곳을 막아 버렸다. 그 후부터 후손이 번성하지 못했다고 한...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차곡리에 전해오는 권근의 묘 이장(移葬)에 관한 일화. 조선 초기 권근(權近), 권제(權踶), 권람(權擥)에 이르는 유명한 인물들을 배출한 명문 집안에 얽힌 이야기이다. 묘가 음성군에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들을 수 있다. 1409년(태종 9)에 양촌 권근이 죽자 광주에 묘를 썼다가 1440년(세종 22)에 방축리 능안에 좋은 땅을...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관성리에서 주로 불리는 비기능요에 속하는 민요. 생극면 관성리에서 불리는 「아리랑」은 노동요나 의식요·유희요와는 달리 일정한 기능 없이 지역·성별·계층에 상관없이 전국적으로 두루 불리는 비기능요에 속하는 민요이다. 비기능요는 노동이나 특정한 상황에 관계없이 가창자의 심리적인 상태만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에 사랑과 그리움을 노래하거나 자신의 처...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전해오는 권근과 조선 태조에 관한 설화. 권근(權近)[1352~1409]은 고려 말기에서 조선 초기에 걸쳐서 크게 활약한 대학자이며 문학가이다. 1352년(공민왕 원년)에 검교정승 권희(權僖)의 넷째아들로 태어났다. 처음 이름은 권진(權晋)이었으며 자는 가원(可遠) 또는 사숙(思叔)이요, 호는 양촌(楊村)이다. 고려 말 충주로 유배되어 와 양촌에 살...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차평리에 전해오는 여기소(麗妓沼)에 관한 설화. 이 설화는 안타까운 생을 산 한 여인의 이야기이다. 생극면 소재지인 신양리에서 동북으로 약 5㎞ 지점에 ‘여기소’라고 불리는 못[沼]이 있다. 조선 초기 이 곳 못이 내려다보이는 평탄한 암반은 글을 좋아하는 선비 유생들이 앉아 천하사를 공론하고 시를 읊으며 즐기던 곳이었다. 어느 해 여름, 지나가던 보부상 하나...
-
충청북도 음성군에 전해 내려오는 가정의 평안함을 축원하는 내용의 의식요. 음성군 생극면 차평1리에서 이정순(여, 73세)에게서 채록하였다. 소년들에게 학문을 권장하고 수신제가하여 부모를 봉양할 것을 권하며 집안 식구들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노래이다. 회갑연 같은 연회석에서 축원과 덕담을 담아 부른다. 앞부분은 판소리 단가 「장부가」의 일부와 유사하고, 뒷부분은 고사덕담 소리와 유사...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병암리에 있는 장자봉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음성군 생극면 병암리에서 오래전부터 전해 오는 이야기로, 1982년에 출간한 『내고장 전통가꾸기-음성군-』에 수록된 이후 『음성지명지』와 『음성군지』 등에 실려 전한다. 고려 중기 병암리 북쪽의 산기슭 마을에는 아무런 부족 없이 유복하게 사는 부자가 있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아무 불평 없이 살다 보니,...
-
병암1리에 인민군이 들어오던 낮부터 술렁거렸는데, 당시 이장을 보고 있던 오덕욱 할아버지의 아버지와 함께 마을 뒷산 떡갈참나무로 피신을 갔다. 그렇게 들어온 인민군들은 병암1리를 사이에 두고 한국군과 포격전을 벌였다. 그리고 오덕욱 할아버지가 18세에 되던 때에 1·4후퇴를 하였다. 그때 청주시 남일면까지 피난을 갔었다. “그러다가 한국군이 저 압록강까지 올라갔다가 또...
-
이진말마을은 서울에서 내려오다 충주와 음성, 청주로 갈라지는 길목에 있었으며, 6·25전쟁에서 국군의 최초 승전인 감우재 전투가 벌어진 전장에서 가까운 마을로 인민군이 머물기도 하면서 6·25전쟁의 피해가 심했던 마을이다. 특히 생극면 소재지인 신양리와 병암리는 교통의 요지로 충부와 음성으로 통하는 길목이었으므로 전쟁지구였다. 이진말마을도 여기에 포함이 되어 있었고 인민...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도신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마을에 아름다운 정자가 있어 가정개라 불린다. 본래 경기도 음죽군 무극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에 음성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촌, 도관리와 곤지리, 생탕리 각 일부와 충청북도 충주군 금목면의 각회리 일부를 병합하여 도관리의 ‘도’자와 신촌의 ‘신’자를 따서 도신리라 명명하고 생극면에 편입되었...
-
부모님은 ‘오동석(五東碩), 김해김씨’로, 워낙 손이 귀한 집안이라 독자였던 아버지께서 13세의 나이로 일찍 혼인을 하셨다. 당시 음성군 삼성면 선정리에 살고 계셨던 어머니 역시 13세였다. 오덕욱 할아버지는 1935년 10월 18일생으로 5남 2녀 중 셋째로 태어났고, ‘보성오씨’로 원래 고향은 현도지만, 9대조 할아버지가 음성에 터를 잡으셨다. 오덕욱 할아...
-
오덕욱 할아버지 댁은 1·4후퇴 때 집이 다 타버렸기 때문에 광 한 칸에 가족이 모두 살고 있어서 혼인을 치르고도 신부를 데리고 갈 수 없었다. 그래서 다른 분들은 그날 다 내려왔지만 오덕욱 할아버지만 신부집에 5일 정도 더 묵다가 병암1리로 내려오고, 그 뒤로 8개월을 떨어져 지냈다. 오덕욱 할아버지는 8개월 동안 김금자 할머니를 보러 추석 때 한 번 가고 서울 가던...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팔성리에 속하는 경주김씨의 동족마을. 조선 중기 십청헌 김세필이 팔성리 말마리에 입향하면서 경주김씨의 세거지가 되었다. 팔성리는 마을 뒤에 있는 팔성산의 이름을 따서 팔성리라 하였으며, 입향 초기에는 말마리에 세거하였다. 마을 유래는 팔성리(말마리)에 입향한 김세필이 말년에 말마리에 은거하면서 강학을 할 때 친구인 충주목사 박상이 자주 찾아와 교분을 나누었는...
-
김금자 할머니께 계모임에 대해 여쭤보니 여러 가지 계를 알려 주었다. 김금자 할머니가 시집을 왔을 때 시어머니가 쌀계를 하고 있었다. 당시 젊었던 김금자 할머니가 모임에 많이 따라가서 계산도 해주었다고 한다. 많아야 두 말, 서 말씩 모아서 큰일 있을 때마다 두 가마씩 타게 했었다. 마을 부녀자들이 다 한건 아니었고 마을에서 친한 열 명 정도가 모여서 했었다....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관성1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마을 동남쪽에 있는 팔성리에서 관말로 넘어오는 아홉사리고개가 있는데, 이 고개를 넘다 죽는 사람이 많아서 이 마을에서 관을 짜게 되어 관말이라 하였다고 하며, 조선시대 무극역의 역관(驛館)이 있어서 관말이라 하였다고도 한다. 본래 경기도 음죽군 무극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에 음성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에 속하는 행정리. 본래 충주군 무극면 지역이었으나 1906년에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진동·무수동·관촌·병산리 일부를 병합하고 관성리라 해서 생극면에 편입되었다. 마날미는 1975년 7월 1일 관성3리로 분구되었다. 관말의 뒷쪽에는 우등산[227m]이 있고 마날미 북쪽에는 마날봉(227m, 일명 마루봉)이 있다. 고개는 아홉사리고...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신양리에 있는 법화종(法華宗) 사찰. 1996년에 충주산업대학교 박물관이 간행한 『음성군의 역사와 문화유적』에 실려 있는 ‘음성군 사찰 현황표’에 따르면, 관음사는 당시 음성군에 소재한 52개 사찰 가운데 법화종에 속하는 8개 사찰 중 하나였다. 또한 당시의 주지는 정연택이었으며, 창건 연대는 알 수 없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편 음성문화원이 1998년에 발행...
-
구주막거리 는 이진말마을 앞에 있는데 4차선으로 확포장된 37번국도와 생극면 관성리 방향의 일죽 방향의 지방도가 만나는 지점의 다리가 있는 지역이다. 현재 이진말의 오덕욱 할아버지의 논이 있는 자리이다. 바로 그 옆은 응천이라는 하천의 제방이 있다. 이진말의 김지만 할아버지와 오덕욱 할아버지는 구주막길에 대해서 “그전엔 하천에 다리를 놓고서 이게 큰길...
-
군대 생활을 서울에서 해서 훈련소 때 외에는 늘 김금자 할머니와 함께 있었다. 오덕욱 할아버지 동생 분들이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어서 김금자 할머니가 밥을 해주기 위해 서울에 올라와 있었다. 훈련소 때는 어쩔 수 없이 군사우편으로 소식을 주고받았지만, 자대배치를 받고 나서는 주말이면 항상 함께 있었다. “군대 생활은 잘했지, 좋은 데 가서 편안하게. 서울 위로는 올라가보질 않았...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권걸의 묘비. 권걸(權傑)의 본관은 안동으로, 양촌 권근(權近)의 증손,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 권제(權踶)의 손자이며, 길창부원군 권람(權擥)의 아들이다. 1472년(성종 3)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올랐다. 화강암 대석 위에 백대리석으로 비신과 상부를 조각하였다. 전체 높이는 126㎝로 비신은 높이 81㎝, 너비 38㎝...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권근의 묘비. 권근(權近)은 자는 가원(可遠), 호는 양촌(陽村)이며, 본관은 안동이다. 1398년(태조 7) 1차 왕자의 난 이후 사병(私兵) 폐지를 주장하여 왕권 확립에 큰 공을 세웠다. 1401년(태종 1) 좌명공신(佐命功臣) 1등으로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에 봉해지고 의정부좌찬성(議政府左贊成)에 올랐다. 사후 좌의정에 추...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권근의 묘지석. 권근은 1409년(태종 9) 2월에 서거했으며, 같은 해 4월에 경기도 양주군 오포면(현재의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으로 예장(禮葬)하였는데 이때 묘지석이 만들어졌다. 이후 1444년(세종 26) 3월 충주로 이장을 하였는데 이 묘지석은 가져가지 못하고 광 속에 보관하다가 1965년에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 권근 사...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권근의 부인 경주이씨의 묘비. 권근(權近)의 부인 경주이씨(慶州李氏)는 증판삼사사(贈判三司事) 이존오의 딸이다.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는데, 장남은 의정부우찬성 권제(權踶), 차남은 길창군 권규(權跬), 삼남은 한성부소윤 권준(權蹲)이다. 딸은 판종부시사 최주(崔宙)와 결혼을 하였다. 묘비는 1444년(세종 26)에 건립되었다. 8...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인 권념의 묘비. 권념(權念)의 본관은 안동으로, 자는 중경(仲經), 초휘(初諱)는 권응(權應)이다. 양촌(陽村) 권근(權近)의 손자이며, 정난공신 안천군 권준의 차남이다. 모친은 영춘현부인 해주정씨(永春縣夫人 海州鄭氏)로, 정도공(貞度公) 정역(鄭易)의 딸이다. 음보로 군기시판관(軍器寺判官)을 거쳐 옥천(沃川), 마전(麻田) 등...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권념 부인 강화최씨의 묘비. 강화최씨(江華崔氏)는 마전군수 권념(權念)의 부인으로, 사재감정(司宰監正) 최저(崔渚)의 딸이다. 어머니는 강씨(姜氏)이다. 슬하에 3남 2녀를 두었다. 1495년에 별세하였으며, 묘비는 1497년에 세워졌다. 대석을 제외한 비신과 상부는 화강암 1석으로 만들었다. 전체 높이는 167㎝로, 비신 높이 11...
-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정경(正卿), 호는 소한당(所閑堂). 할아버지는 문충공(文忠公) 권근(權近)이며, 아버지는 우찬성 권제(權踶)이다. 권람(權擥)[1416~1465]은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하여 학문이 넓었으며, 뜻이 크고 기이한 계책이 많았다. 불교를 좋아하지 않았으며, 활을 잘 쏘고 문장에 뛰어났다. 35세까지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고 있다가, 1450년(문...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권람의 묘비. 권람의 본관은 안동, 자는 정경(正卿)이다. 양촌 권근의 손자이며 문경공(文景公) 권제(權踶)의 아들이다. 수양대군(首陽大君)의 참모로서 1453년(단종 1)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1등 공신이 된 후 좌의정에 올랐고 이듬해 길창부원군(吉昌府院君)이 되었다. 화강암 1매로 만들어졌다. 전체 높이는 194㎝로, 비...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권람(權擥)의 신도비. 권람의 본관은 안동이고, 자는 정경(正卿), 호는 소한당(所閑堂)이다. 양촌 권근(權近)의 손자이며 문경공(文景公) 권제(權踶)의 아들이다. 1450년(세종 32)에 문과에 장원 급제하였고, 감찰(監察)을 거쳐 교리(校理)를 지냈다. 계유정란(癸酉靖難)에 앞장서 정난공신(靖難功臣) 1등으로 책록되었고, 세...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권람의 부인 고성이씨의 묘비. 고성이씨는 문정공(文貞公) 이암(李嵓)의 손녀이며, 철성부원군(鐵城府院君) 이원(李原)의 딸이다. 1495년 81세로 졸하였으며, 영원군부인(寧原郡夫人)으로 봉해졌고, 2남 8녀를 두었다. 남편 권람(權擥)의 묘비와 동일하다. 묘소 앞쪽, 오른쪽에 위치한다. 화강암 1석을 이용하여 비면과 상단 장식...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문신 권료(權憭)의 묘비. 권료의 본관은 안동으로 자는 언명(彦明)이다. 양촌(陽村) 권근의 증손, 안천군(安川君) 권준(權蹲)의 손자이며 마전군수(麻田郡守) 권념(權念)의 장남이다. 모친은 강화최씨(江華崔氏)로 사재감정(司宰監正) 최저(崔渚)의 딸이다. 음보로 결성현감을 역임하였다. 묘비는 대석을 포함하여 화강암 1석으로 만들었다...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권제의 묘비. 권제는 세종 때 집현전부제학, 사헌부대사헌, 한성부윤, 경기도관찰사, 이조판서, 우찬성을 지냈다. 정인지(鄭麟趾) 등과 함께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편찬에 참여하였다. 전체 높이 170㎝, 비신 너비 59.5㎝의 크기이다. 대석을 제외한 비신과 상단 장식을 한 돌로 만들었다. 묘비 상단에는 7엽의 연화문과 연...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권제(權踶)의 신도비. 권제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 자는 중의(仲義), 중안(仲安), 호는 지재(止齋)이다. 음보로 관직에 나아갔다. 1440년(세종 22)에 『고려사』 편찬에 참여하였고, 정인지 등과 『용비어천가』를 지어 바쳤다. 영의정에 추존되었고, 시호는 문경(文景)이다. 이런 업적을 기리고자 18대손 권오호...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권준의 묘비. 권준의 본관은 안동이고, 자는 오미(五美)로 양촌 권근의 4남이다. 1422년(세종 4)에 음보로 종묘서부승(宗廟署副丞)에 오른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1453년(단종 1)에는 가선대부(嘉善大夫) 대사헌(大司憲)이 되었고, 수충협찬정난공신에 오르고 안천군에 봉해졌다. 1457년(세조 3) 정헌대부(正憲大夫)...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권준(權蹲)의 신도비. 권준의 본관은 안동이며, 권근의 아들이자 권제(權踶)의 동생이다. 시호는 안숙(安肅)이다. 1427년(세종 9) 감찰에 기용되었고, 1430년에는 호조좌랑이 되었다. 권준은 호조좌랑 당시 공법(貢法)이 제정되었을 때, 척박한 산과 밭은 매년 경작할 수 없는데도 평야 지대의 전답과 같이 취급할 경우 폐단이...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권헌의 묘비. 권헌(權憲)의 본관은 안동이다. 양촌 권근(權近)의 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문경공(文景公) 권제(勸踶), 할아버지는 익평공(翼平公) 권람(權擥)이며, 아버지는 길창군(吉昌君) 권걸(勸傑)이다. 1467년(세조 13)에 태어나 음보로 전생서봉사(典牲署奉事)에 올랐고, 이를 시작으로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149...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병암리 이진말과 감곡면 왕장3리에서 음력 7월에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는 행사. 여름에 비가 오지 않아 농작물에 피해가 우려되면 마을의 큰 보에서 기우 풍속을 행한다. 마을의 성인남녀가 모두 참석하는데 여자들이 솥뚜껑(소두방)을 쓰고 기우(祈雨)를 한다. 머리에 솥뚜껑을 쓰는 이유는 비가 내리고 있다고 가정하여 비를 맞지 않으려고 머리에 쓰는 것으로 비가 내리...
-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행정가. 김경호는 1910년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차평리에서 출생하였으며,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생극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34년 생극수리조합 근무를 시작으로 1946년 생극면에서 근무하였다. 1960년 지방자치단체 읍·면장 선거에서 생극면장으로 당선되어 1961년까지 재직하였다. 1966년 생극면장으로 재임명되어 행정업무를 추진하다가 1968년...
-
조선시대 충청북도 음성군에 살았던 효부(孝婦). 본관은 평강(平康). 전규면(全奎冕)의 딸이며, 김동인(金東仁)의 처이다. 김동인의 처 평강전씨는 어려서부터 몸가짐이 정숙하고 심성이 인자하여 부모님 섬기는 도리를 다하였다. 또 언행이 바르고, 비록 부잣집에서 성장하였으나 사치함을 모르고 검소하였다. 17세에 김동인에게 출가(出嫁)하였는데, 늘 살림이 가난하여 양식 걱정을 면치 못하...
-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행정가. 김동철은 1930년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차평리에서 출생하였으며 본관은 경주이다. 생극초등학교와 서울농업중학교를 졸업하였다. 1959년 생극면 근무를 시작으로 1960년 생극수리조합, 풍원농지조합 사업계장을 역임하였다. 1970년 생극면장으로 임명되었고 1974년 금왕읍장, 감곡면장을 역임하였다. 1976년 생극면장으로 재임명되어 소도읍가꾸기사업...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열녀. 본관은 성주(星州). 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 이휘(李揮)의 딸이고, 김선경(金善慶)의 처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군자감판관(軍資監判官)으로 있던 남편 김선경은 싸움터로 나가고 자녀들만 데리고 집에 있었다. 충주 전투에서 이긴 왜적이 음성 지방까지 들어오자, 부인은 생극면 차곡리에 있는 수리산(愁離山)으로 피난했다....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송곡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김원조(金遠祚)의 묘. 김원조는 경기도 이천 사람으로 1919년 3·1운동 때 만세 시위에 참가하였다. 이후 임시정부의 연락 기관을 서울에 설치하기 위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던 중 1919년 12월 28일 체포되었다. 10년형을 언도받아 복역 중이던 1922년 4월 15일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1963년 3월 1일 대한민국 건...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팔성리에 있는 조선 중기 음성현감 김의의 선정비. 김의(金嶷)는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직후 직언을 하였거나 학행(學行)이 뛰어난 유생을 뽑아 6품직을 제수할 때 뽑힌 인물이다. 이때 음성현감에 부임한 것으로 보인다. 대좌를 갖춘 묘갈형이다. 윗부분은 이수형으로 조각하였는데, 턱을 이루며 비신으로 이어진다. 전체 높이는 155㎝이다. 선정비 앞면에 ‘...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이며 지천서원 배향 인물.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중길(重吉), 호는 추곡(秋谷), 자호는 송림(松林). 십청헌(十淸軒) 김세필(金世弼)의 고손이다. 할아버지는 원종공신 김선경(金善慶)이며 아버지는 생원 김순(金峋)이다. 어머니는 청주한씨로 한광윤(韓匡胤)의 딸이며, 부인은 나주정씨로 정언규(丁彦珪)의 딸이다. 아들은 김방(金滂), 김만(金...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경주, 자는 성원(聖遠). 십청헌 김세필(金世弼)의 13세손이다. 1882년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팔성리에서 김석용(金奭容)의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김필제는 한일합병이 되자 서울로 상경하여 의거 활동을 하다가 왜경에게 쫓기게 되었다. 이때 왜경이 난사한 총탄에 오른팔을 맞았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서재필 박사의 도움으로 팔...
-
이진말마을의 지명에는 깃대배기, 서낭댕이, 구주막거리, 도둑골, 이진봉 등이 있다. 이러한 지명에는 이진말 사람들의 생활과 삶의 모습, 자연과 지리,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명은 시대가 흐르고 마을 환경과 삶의 방식이 변화함에 따라 오래도록 불리던 지명이 잊혀지기도 하고, 다른 이름으로 바뀌기도 하는데 이진말의 지명은 오늘날에도 사라지지 않고 마을 사람들에...
-
병암1리 산신제가 끝나고 그 다음 날인 2월 20일에 마을 잔치가 끝나자 마을회관 여자 방으로 마을 할머니들이 모두 모였다. 할머니들에게 옛날이야기와 노래를 들려 달라고 하자 모두 고원남 할머니를 추천하였다. 고원남 할머니는 일명 ‘태수할머니’로 앞서 2월 8일 병암1리를 찾아 갔을 때도 마을 분들이 입을 모아 노래를 잘한다고 이야기해준 할머니이다. 고원남 할...
-
병암1리 노인회 회장은 이순복 할아버지(31년생, 77세)가 맡고 있고, 총무는 오덕욱 할아버지가 맡아서 하고 있다. 노인회 회원은 남녀 합쳐서 27명이며, 그 중 남자가 10명, 여자가 17명이다. 노인회 회원들은 마을에서 젊은 사람들에게 농사방법 등 많은 생활의 조언들 주고 특히 오랜 기간 산신제를 지내며 쌓은 경험으로 꾸준히 산신제를 이끌어 나가고 있다. “노인회는...
-
오덕욱 할아버지는 따로 직장을 다녀본 적이 없고 계속 농사만 지었다. 어릴 때부터 집안이 부유하였는데 오덕욱 할아버지가 군대를 가서 잠시 집안이 기울었다가 제대 후 다시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집안이 일어났다. “옛날에 우리 조부님이 때는 생극면 부자 노릇 했었어요. 몇 년도인지 몰라? 8·15 해방 전이지. 4학년 때인가? 장마 져서 70마지기를 떠내려 보낸 겨 홍수에...
-
이진말에는 풍물패가 없었는지 여쭈니 오덕욱 할아버지는 예전에는 농악놀이를 많이 했다고 했다. 달집 태우러 올라갈 때도 치고, 내려와 집집마다 지신밟기를 하러 다니면서 치기도 했다. 들에 일을 하러 나갈 때도 농악을 치면서 나가고, 농요를 신명나게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농악을 잘 치던 분들이나, 농요를 잘 부르던 이들도 다 돌아가셔서 예전처럼 놀 수가 없다고 하였...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마을에 양촌 권근 삼대(권근·권제·권람) 묘소가 있는데, 묘소 크기가 꼭 능만 하다고 하여 능안이라 하였다. 본래 충청북도 충주군 생동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고, 방축동에 야동리 일부를 병합하여 생극면에 편입되었다. 양촌 권근 삼대묘소를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에서 이곳으로 이장한 후로 능안이라 하였다....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신양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다농개는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신양리 서쪽에 위치하는 마을로, 서쪽으로 팔성리, 동쪽으로 차평리 본말, 남쪽으로 서낭당이 새들과 각각 접하고 있다. 마을의 토지가 비옥하여 농사가 잘 되었으며, 예전에 한강의 나룻배가 들어왔다 하여 다농개라는 이름이 붙었다. 본래 충청북도 충주군 생동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
이진말(병암1리)은 예전 방식 그대로 산신제를 지내는 마을로, 예전부터 전해오는 민속과 믿음을 거의 그대로 지켜오고 있다. 음력 정월 초이튿날에는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빌며 산신제를 지내고, 정월 대보름에는 이진봉에 올라가 달집을 태우고 망월을 하며 소원을 빈 뒤 마을로 내려와 마을 사람 전체가 줄다리기를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산신제만 지켜지고 있고, 정월 대보름의 달...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차평리에 있는 콘크리트 블록과 옹벽 자재를 생산하는 제조공장. 대도물산은 친환경적인 시공 기술과 신공법 개발을 통하여 재해를 줄이고 후손에게 아름다운 환경을 물려줄 수 있도록 관련 기술 개발에 노력함으로써 기업의 이윤 창출 및 지역 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대도물산은 1986년 9월 유망 중소 기업체에 선정되었다. 1986년 10월 산업기...
-
대동회는 병암1리 이장인 원동철(59년생, 49세) 씨가 맡아서 하고 있는데, 예전에는 대동계장이 따로 있었지만 오덕욱 할아버지가 60년도 중반에 이장을 하면서부터 대동계장 역할까지 이장이 맡기로 했었다. 대동회 기금은 정해진 것이 없고 자유에 맡기고 있다. “대동회는 이장이 주관하는 거니까. 옛날에는 대동계장이 별도로 있었는데 지금은 누가 그걸 책임질라고 그래? 그러니까 이장이...
-
함옥희 할머니는 또 도깨비불을 만나 혼이 난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옛날에 누에고치를 먹였는데 많이 안 먹여가지고 이만한 둘갱이(광주리)에다 해 이고 비가 추줄추줄 오는데 밭으로 갔었어요. 밭으로 갔는데 이놈의 사람이 많아 가지고 앞에 많아 가지고 차례차례로 들어가니까 저물었어. 어두웠어. 어두웠는데 오는 길이 한 20리 되요. 집에 오는 길이 한 20리 되는데 오면 큰...
-
함옥희 할머니는 「색시로 변한 도깨비」에 이어 실제 자신의 할아버지가 도깨비에 홀려 돌아가셨다면 이야기를 해주었다. “산골에서 아주 산골에서 살았는데 몇 집이 안 살았어. 거기 사랑꾼들이 매일 우리 아버지 사랑방에 모여서 노셨대. 그리고 우리 할아버지는 예전에 마차라고 있었어. 구레마차라고 이렇게 있는데 소가 끌고 다녀. 그런데 그것을 매일 끌고 다녔었는데, 뭐 하러 끌...
-
도둑골은 이진말에서 남쪽으로 도신리 방향으로 가다보면 이진말과 도신리 경계지점에 이르고, 이 지점에서 병암2리로 가는 길로 갈라지는 곳이 있는데 이 지점에서 동쪽 방향으로 보이는 왼쪽골짜기(구렁)이다. 도둑골에 대하여 오덕욱 할아버지는 “병암2리 들어가는 그 커브머리. 그 구렁이 제일 질지 왜”라고 위치를 이야기하며, 도둑골이라 부른 유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오생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도랑말은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약 5㎞ 지점인 오생리 남부 지역에 위치하며, 동쪽으로 못고개, 북쪽으로 오룡과 각각 접하고 있다. 마을이 도랑가에 있다고 하여 도랑말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며, 예전에 물레방아가 있었다 하여 물방아거리라고도 한다. 본래 충청북도 충주군 생동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에 속하는 행정리. 도관의 ‘도’자와 신촌에서의 ‘신’자를 따서 현재의 이름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무극면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촌·도관리·곤지리·생탕리의 각 일부와 충주군 금목면의 각회리의 일부를 병합하고 도신리라 하여 생극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부터 생극면의 경짐말·생탕동·애금바위·수은관·신대·연화...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도신리 가정개에서 음력 정월 초 산신에게 올리는 제의. 가정개는 생극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약 2㎞ 지점에 위치하며 도관리 남쪽에 있다. 마을 뒤에 정자가 있어 가정(佳亭)이라고 하였는데 가정이 변해서 가정개가 된 것이다. 매년 정월 초를 기준으로 날을 잡아 도신리 가징개 산신제를 올리는데 부정한 일이 있으면 3일 정도 연기한다. 제관은 40세 이상의 사람...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 산7번지에 있는 3성(공자, 주자와 안향) 및 9현을 봉안한 사우. 공자, 주자, 안향을 비롯하여 국재(菊齋) 권부(權溥), 역동(易東) 우탁(禹倬), 동암(東庵) 이진(李瑱), 이재(彛齋) 백이정(白頤正), 매운당(梅雲堂) 이조년(李兆年), 덕재(德齋) 신천(辛蕆), 노당(露堂) 추적(秋適), 근재(謹齋) 안축(安軸), 경재(敬齋) 안보(安輔) 등...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도통사에서 제향하는 의례. 공자(孔子)·주자(朱子)·안향(安珦)·권부·우탁·이진·백이정·이조년·신천·추적·안축·안보 등을 모셔놓고 매년 봄(음력 2월 말정일)과 가을(음력 8월 말정일)에 음성의 유림들이 제향하고 있다. 도통사는 본래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화안리에 건립되었던 사당이었는데 1980년대 군사시설 관계로 철거되었다가 1995년 현재...
-
병암1리 할머니들이 풍감묻기를 보여준 후 다음에 ‘돌려라 돌려라’를 보여주었다. ‘돌려라 돌려라’는 앞서 보여준 ‘풍감 묻기’와 비슷한 방식으로, 다 같이 동그랗게 앉아서 한다. 조사 당시에는 촬영 때문에 반원의 형태로 앉아서 보여주었다. ‘돌려라 돌려라’의 놀이 방식은 술래를 한 명 정하고 나머지 사람들이 원을 만들어 다리를 굽혀 세워서 조밀하게 붙어 앉는다. 그리고...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송곡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동편은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약 6㎞ 지점에 위치하며, 동쪽으로 방축리, 서쪽으로 임곡리, 남쪽으로는 팔성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송림의 동쪽에 있어 동편이라 부른다. 송림은 동편과 서편을 통틀어 부르는 이름으로, 예전에 송림을 개간해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본래 충청북도 충주군 생동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차평리에서 발원하여 차곡리천을 합류하고 응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생극면 차평리 본말 남쪽의 넓은 들 옆에 흐르는 소하천으로 응천에 유입되는 한강 수계이다. 폭은 4m이고, 길이는 0.8㎞이며, 유역 면적은 0.52㎢이다. 생극면 차평리 본말에서 남쪽 서낭당으로 가는 길 옆에 있는 넓은 들을 두들기번던이라고 하는 데 두들기번던 옆에 흐르는 하천이라서 붙여진 이...
-
예전에는 들에 일하러 다닐 때 두레도 있었고 품앗이도 있었다. 두레패를 조직해 함께 일할 때에는 주로 웃계를 한다고 하였다. 웃계는 정해진 목표량을 채우는 것으로 한 마지기 얼마로 정하고, 다 같이 가서 목표량만큼 일을 하였다. 웃계는 목표량 계여서 얼마나 걸리든 채우기만 하면 되었다....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관성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마날미는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약 4.5㎞ 지점에 위치하며, 동쪽으로 병암리, 서쪽으로 금왕읍 호산리와 각회리, 북쪽으로 팔성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관말 남쪽 마날봉 밑에 있는 마을로 산의 이름을 따서 마날미(마날뫼)가 되었다. 본래 경기도 음죽군 무극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
-
2월 28일 병암1리 이진말의 산 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 오덕욱 할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마을회관 맞은편의 파란색 지붕 집으로 찾아 갔다. 오덕욱 할아버지는 병암1리 이진말 토박이로 마을 이장과 노인회 총무 등을 역임하고, 마을 사업에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다. 특히 병암1리 산신제에 있어 누구보다 많은 경험과 일화를 가지고 있어서 산신제 촬영 때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아버지 적부...
-
병암1리는 현재 노인회, 청년회(상조회), 대동회, 부녀회 총 4개의 모임이 조직되어 있다. 병암1리는 각성들로 이루어진 마을이기 때문에 따로 문중 모임은 없다. 마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노인회와 상조회 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청년회, 산신제와 대동놀이, 척사대회 등 마을의 주요 행사를 맡아 하고 있는 대동회와 명절 때 제물을 팔아 기금을 모으고 있는 부녀회...
-
오덕욱 할아버지는 현재 5개의 모임을 하고 있다. 생극에 사는 사람들끼리 하는 ‘생락회’, 같은 고향 출신 중에 뜻이 맞는 사람들의 모임인 ‘향지회(鄕志)’, 갑술생 동갑내기 모임인 ‘동갑네’, 생극초등학교 졸업회 모임인 ‘동창회’, 그리고 병암1리 노인회이다. ‘생락회’를 10년 전부터 모임을 시작하였고 매월 한 번씩 모이는 먹자계이다. 현재 13명이 회원이고 2만원씩...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관성리에서 발원하여 병암리에서 응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생극면 관성리에서 발원하여 관말, 마날미, 무술, 진골 등의 자연 마을을 지나 병암리에 이르러 응천에 합류하는 한강 수계이다. 하천 폭은 20m이고, 길이는 3.5㎞이며, 유역 면적은 7.08㎢이다. 무술은 황새 서식지로 유명하였다. 무수천은 생극면 관성리의 무술을 일명 무수동(無愁洞) 또는 무수리(無愁...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관성2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생극면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4.5㎞ 지점에 위치하며, 동쪽으로는 병암리, 서쪽으로는 금왕읍 호산리, 남쪽으로는 금왕읍 각회리, 북으로는 팔성리와 각각 접해 있다. 원래 경기도 음죽군 무극면에 속하였으나 1906년(고종 43)에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진동, 무수동, 관촌, 병산리 일부를 병합하여...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권근을 봉안한 사묘. 문충공(文忠公) 권근(權近)[1352~1409]은 본관은 안동, 초명은 진(晉), 자는 가원(可遠)·사숙(思叔), 호는 양촌(陽村)이다. 고려 말엽의 정승 권박의 증손이며 검교정승 권희의 아들이다. 1409년(태종 9)에 58세로 별세하자 문충(文忠)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지은 책으로 『입학도설(入學圖說)...
-
조선시대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효자. 본관은 여흥(驪興).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 된섬이에 큰 바위가 있는데, 민해준의 효행은 이 바위와 관련되어 전하고 있다. 민해준이 어머니와 같이 밭에서 김을 매다가 소낙비를 만났는데, 비를 피하기 위하여 바위 밑으로 들어갔다. 얼마 후 바위가 조금 움직이는 것 같더니 곧 굴러 내릴 위험에 있었다. 이 때 민해준은 어머니를 밖으로 밀어...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시대 민해준의 효자각. 민해준이 어머니와 함께 밭에서 김을 매다가 소낙비를 만났다. 이때 비를 피하기 위하여 바위 밑으로 들어갔다 무너지려 하자 어머니를 밖으로 밀어내곤 자신은 바위에 깔려 죽음을 당하였다. 이 같은 민해준의 효행을 기려 훗날 유림과 동리에서 효자각을 세웠다.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기와집으로 ‘효자민해준지려(孝子...
-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행정가. 박선구는 1906년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신양리에서 출생하였으며, 본관은 고령이다. 서울 배재학당을 수료하였다. 1948년 생극면장에 임명되어 1949년까지 재임하였다. 1959년에 생극면장에 재임용되어 1960년까지 재임하는 동안 지역 사회 발전과 면민 복지 행정에 공헌하였다. 1984년 11월 78세로 세상을 떠났으며,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
할머니들은 ‘돌려라 돌려라’를 보여준 다음에 ‘방망이 점 놀이’를 보여주었다. 방망이점 놀이는 ‘춘향아씨 놀이’라고도 하는데 방망이를 들고 있는 사람에게 신이 내려서 점을 치기도 하고 숨긴 물건을 찾아내기도 하는 놀이이다. 놀이 방식은 여러 사람이 빙 둘러앉고 그 가운데 한 명이 방망이를 거꾸로 들고 앉아 땅에 대고 다음과 같은 주문 형태의 노래를 부른다. 천해 천해 천하장군 만해...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에 속하는 행정리. 방죽이 있어 방죽말·방축말 또는 방축동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 충주군 생동면 지역이었으나 1906년에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야곡리 일부를 병합하고 방축리라 하여 생극면에 편입되었다. 수리산[605m] 밑에는 능안이 있고 서쪽으로 약 2㎞ 떨어진 곳에는 방축말이 있다. 방축말 동쪽에 함박골과 쇠죽골, 함...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원래 충주군 생동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에 음성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방축동에 야동리 일부를 병합하여 방축리라는 명칭으로 생극면에 편입되었다. 방축말을 안말이라고도 한다. 마을 뒤 북쪽으로 낮은 산이 있으며, 마을 남쪽과 서쪽으로는 응천이 흐르고 있어 농경지가 잘 발달되어 있다. 방축말 앞...
-
예전 이진말에는 물레방앗간이 있었는데, 마을 앞 지역의 4차선으로 확포장한 37번 국도와 37번 국도 구도로 사이에 위치하였다. 오늘날 이진말에는 응천이라는 하천이 있고 문화마을 옆으로 개울이 흐르지만 옛날에는 물이 흔하였다고 한다. 물레방앗간과 물이 흔했던 것에 대하여 이진말마을의 오덕욱 할아버지(35년생, 73세)는 “옆 마을 중말에다가 옛날에 보를 막아가지고선 지금 저기 저...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에 속하는 행정리. 병산(屛山)의 ‘병(屛)’자와 곤암(昆岩)의 ‘암(岩)’자를 따서 현재의 이름이 되었다. 본래 경기도 음죽군 무극면 지역이었으나 1906년에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생탕리·도관리와 충주군 생동면 곤지리·병산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병암리라 하여 생극면에 편입되었다. 안곤재는 안곤재와 바깥곤재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병암리 이진말에서 매년 음력 1월에 지내는 산신제. 이진말은 생극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2㎞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이진봉 아래 자리하고 있다. ‘이진말’이란 명칭은 임진왜란 때 이곳에 진을 친 곳이라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산제당은 이진말 남쪽 2㎞ 지점인 이진봉 9부 능선 산제당골에 있다. 마을회관에서 약 1.5㎞ 거리에 있다. 당집은 시멘트 벽돌집으로...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차평2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생극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약 4㎞ 지점에 위치하며, 동쪽으로는 차곡리, 서쪽으로는 송곡리, 남쪽으로는 신양리, 북쪽으로는 방축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수레들에서 가장 먼저 이루어진 마을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벌말이라고도 한다. 원래 충주군 생동면에 속한 지역으로 수레의산 밑에 있는 들이라 수레들, 또는 차평이라 했는데,...
-
오덕욱 할아버지의 부인인 김금자 할머니(36년생, 72세)가 부녀회장을 맡은 적이 있었는데, 1998~99년쯤에 다른 분에게 부녀회장직을 넘겨주었다. 그러다 부녀회비로 80~90만원 정도를 모았었는데 부녀회 회원들에게 나눠주고 잠시 부재로 있다가 4년 전쯤에 현재 부녀회장인 한복실 부녀회장이 맡아서 다시 부녀회를 이끌어 가고 있다. 당시에 매월 3천원씩 회비를 걷고 있었...
-
산신제를 지낸 다음날 아침인 2월 20일, 산신제 때 사용한 금줄이 태워지고 8시 30분 쯤 되자 마을회관에 어른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마을회관 마당에서 김현동 어른과 김영섭 제관이 돼지 분육을 시작하였다. 돼지머리를 자르고, 몸통은 4등분한 뒤 1㎏씩, 총 60명분으로 골고루 나누어 비닐봉투에 담았다. 단 산신제를 지내느라고 애쓴 제관 3명과, 도와준 동네 청년 및 어른들은 2명...
-
병암1리는 140년 전부터 매년 음력 정월 2일에 산신제를 지내왔다. 그래서인지 산신과 산제당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산신제 촬영을 위해 2월 19일에 마을을 찾아 갔는데, 제물로 올릴 돼지를 잡고 간단히 점심을 먹던 중 병암1리 마을 주민인 김현동 어른(54년생, 54세)과 안순일 어른(48년생, 60세)이 산신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병암1리에서 산신...
-
① 제물 준비 밤 8시 12분에 산신제를 지낼 준비를 시작하였다. 깨끗하게 손을 씻고 떡을 찧을 준비를 하고 메 지을 쌀을 씻었다. 김영섭 제관은 제물로 올린 다시마를 튀기고 떡을 찧고 메를 짓기 시작했다. 오덕욱 할아버지는 산제당 안에서 제물 준비를 하였다. 준비 과정을 적어놓은 차례대로 그릇에 제물을 담았다. 모든 음식은 공양주인 김영섭 제관이 준비하고, 오덕욱 할아...
-
① 금줄치기 마을 사람들이 일어나기 전에 금줄을 쳐야 한다는 말을 듣고 새벽 일찍 마을에 찾아가니 금줄은 아직 쳐지지 않고 마을회관 앞에 준비되어 있었다. 6시쯤 되자 오덕욱 할아버지가 정갈한 모습으로 금줄을 치러 나왔다. 금줄은 총 3줄로, 끝과 끝을 묶어서 이었으며, 중간 중간에 하얀색 천이 끼워져 있었다. 금줄은 ‘부영건설중기’ 간판 오른쪽에 있는 골목에서 첫 번째 집에 고정...
-
병암1리 이진말에는 특별한 유형문화재는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이 오랜 세월 동안 소중하게 지켜온 문화유산을 들자면 산제를 올려 온 장소인 산제당과 산제를 지낼 때 쓸 메를 짓는 새옹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 마을을 굽어보고 있는 이진봉에 형성된 이진봉산성과 임진왜란 때 음성에서 의병을 모아 싸우다 전사한 임란공신 장충범장군기념비가 있다. 이...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오생리에 있는 한과 제조업체. 삼보한과는 1994년 설립되었다. 전통 방식을 그대로 활용하여 순수 국내산 농산물로 만드는 전통 한과 제조를 주요사업으로 하고 있다. 옛 방식으로 만드는 삼보한과의 제품은 방부제와 인공 색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전통의 맛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친환경 농업을 실천하는 농민들의 무농약 찹쌀과 현미, 밀가루 등을 사용하여 전통...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신양리에 있는 (주)삼현의 타일 제조공장. (주)삼현은 1979년 붉은 벽돌 생산을 시작한 이래, 1987년 자기질 바닥 타일 및 도기질 타일 생산에 이르기까지 건축 자재를 중심으로 한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있는 건축 관련 제품 생산업체이다. 기업 활동을 통한 이윤 창출과 지역 경제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건립되었다. 1985년 전자동 바닥 타일...
-
요즘은 아프면 즉시 병원에 데려가지만 예전에는 그저 신에게 빌고 하면서 기도를 했다고 한다. 예전에 오덕욱 할아버지가 초상집에 갔다 와서 몸이 많이 아픈 적이 있었다. 감기 걸린 것 마냥 으실으실 거렸다. 이웃의 나이 든 할머니에게 물어보니 상문살이 껴서 그런 거니까 풀어내야 한다고 했다. 그 이웃집 할머니는 팥죽을 써서 바가지에다 넣고 칼로 방문을 박박 긁고, 콩하고 팥하고 문에...
-
오덕욱 할아버지에 이어 이번에는 다섯째 딸이 또 상문살이 들었었다고 한다. 다섯째 딸이 태어나고 얼마 안 되서 당숙모가 돌아가셔서 장례 지낸 건하고 행장하고 뜯어서 보자기로 쓰려고 집에다 뒀는데 그때부터 애기가 젖을 먹지 않았다. 젖을 자꾸 외면하고 병원에 가보니 애기가 똥을 못 눠서 그런 거라고 했다. 병원에서 주사를 맞고 똥을 눴는데도 애기가 계속 젖을 안 먹어서 시...
-
또 한 번은 오덕욱 어른의 아버님이 친척 아주머니 돌아가셨을 때 만장기를 가지고 왔는데, 하우스에 쓴다고 화장실에 갔다 놨는데 그때부터 아버님 손이 가시에 찔린 것처럼 부었다고 한다. 그래서 병원에 가보자 하니깐 찢을까봐 겁나서 싫고 약만 사다 드셨다고 한다. 약을 먹으면 잠시 가라앉고 또 며칠 뒤에 다시 부어오르곤 했다. 그래서 무당한테 물어보니 상문살 때문이라고 해서 팥죽을 끓...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신양2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신양리 중서부 지역에 위치하며 마을 서쪽으로 팔성리, 북쪽으로 서황당 및 다농개와 각각 접하고 있다. 6·25전쟁 때 마을이 파괴되어 지금의 자리에 마을이 새로 형성되어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 충주군 생동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평리·신창리·양곤리 일부를 병합하...
-
이진말에는 예전부터 대대로 살아오던 마을 사람들과 새로이 조성된 문화마을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마을 살림을 이끌어가고 있다. 문화마을 조성은 1999년 9월 30일 2000년 문화마을 사업지구로 선정되어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시행계획이 승인되었으며, 2000년 12월 26일 착공하여 2002년10월 31일에 준공하였다. 이진말 문화마을은 면적이 62,381㎡이며, 조성사업...
-
새옹이란 이진말 산신제에서 메(밥)를 짓는 제기인 솥을 부르는 이름이다. 새옹은 본래 따뜻할 때 솥 채로 올리는 밥그릇으로 주로 사찰에서 많이 이용하고 당제(堂祭)나 무의(巫儀) 등의 행사 때 밥을 올리는 그릇으로 쓰는 제기(祭器)이다. 이진말 산신제에서 쓰는 새옹은 일반적인 새옹과 마찬가지로 솥 밑이 평평하며 다리가 달려 있지 않고, 배가 부르지 않으며, 솥 윗부분의...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신양3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새천이 또는 신창리(新昌里)라 불린다. 본래 충주군 생동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에 음성군에 편입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평리, 신창리, 양곤리 일부를 병합하여 신평리의 ‘신’자와 양곤리의 ‘양’자 각 한 글자씩을 따서 신양리라 하여 생극면에 편입되었다. 1990년 1월...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차평1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생극면 면사무소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약 4㎞ 지점인 차평1리 중앙 지역에 있는 마을이다. 남쪽으로 중말, 서쪽으로 양재, 북쪽으로 방축동과 각각 접하고 있다. 새로이 생긴 마을이라 하여 새터, 신대(新垈)라 불린다. 본래 충주군 생동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말...
-
함옥희 할머니의 도깨비 이야기가 끝나자 권순복 할머니가 이어 도깨비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도깨비가 색시로 변해 사람들을 홀린다는 이야기였다. 권순복 할머니는 제천군 봉양면 실리 출신으로, 다른 분들이 이야기할 때 조용하게 잘 들어주고 할머니가 이야기할 때도 조용조용하게 잘 이야기 해주었다. 「색시로 변한 도깨비」 외에도 「구렁이 이야기」를 해주었다. “장에를 가 옛날에는...
-
충청북도 음성군에 속하는 행정면. 음성군의 북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충주시 신니면, 북으로는 감곡면, 서로는 경기도 이천시 율면과 음성군 삼성면, 남으로는 금왕읍과 각각 접하고 있다. 신양리·병암리·도신리·관성리·팔성리·임곡리·송곡리·방축리·차평리·차곡리·오생리·생리 등 12개의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생동(笙洞)의 ‘생(笙)’자와 무극(無極)의 ‘극(極)’자를 따서 생...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신양리에 있는 체육 단체. 지역 체육회의 발족으로 지역 주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여 면민 화합을 도모함과 더불어 우수 선수 발굴 및 지도·육성을 통해 생극면의 체육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창립되었다. 1981년 생극면 체육회가 창립되면서 초대 회장에 김기옥이 취임하였다. 그후 회장에는 제2·3대 정근희(1984~1987), 제4·5·6대 이준구(1988~1...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신양리에 있는 음성군의 하부 행정 기관. 충청북도 음성군을 구성하고 있는 2개 읍(음성읍·금왕읍), 7개 면(소이면·원남면·맹동면·대소면·생극면·삼성면·감곡면) 중 생극면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생극면은 본래 충주군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생골의 이...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신양리에 있는 시외버스 정류소. 음성군 생극면 지역 주민들의 대중 교통 수단의 편리성을 위해 6·25전쟁 이후 시외버스 공동 정류소 면허를 받아 영업을 하고 있다. 대지 면적은 717㎡이고, 건축 면적은 약 200㎡이다. 2007년 7월 통계로 1일 시외버스 운행 대수는 150대이며, 목적지별 운행 노선의 빈도는 경기도 이천시가 29회로 가장 많고, 그 다음...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신양리에 있는 천주교 청주교구 소속 성당.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고 소외된 이웃과 함께하여 교회 공동체 안에서 미래에 대한 꿈과 영적 만족을 주는 성당을 세우기 위해 설립되었다.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신양리 439-3번지에 40년간 공소로 있다가 2001년 6월 13일에 본당이 되었다. 지역 소외 계층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사랑...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신양리에 있는 우편·전신·금융을 담당하는 기관. 우체국은 국장의 지위에 따라서 4급(서기관국), 5급(사무관국), 6급(주사국), 7급(주사보국)으로 분류되거나 기능에 따라서 체신청, 우편집중국, 집배국, 무집배국으로도 분류된다. 또한 설립 주체에 따라 일반우체국, 별정우체국, 우편취급소 등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4급과 5급우체국은 총괄국으로서 기초자치단체...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신양리에 있는 사립 중학교. 실천 위주의 예절 교육을 강화하여 예절과 질서를 존중하고 근검·절약과 자율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 사고력과 창의성을 계발하고 미래 사회를 개척하는 과학 기술 교육의 강화로 탐구력과 창의력을 가진 사람, 소질과 적성을 계발하여 자신의 진로를 개척하며 주도적 학습 능력을 신장시켜 스스로 배우고 익히는 자주적인 사람, 환경을 아름답게...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신양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민주주의 원리를 익히고 기본적인 예절과 질서를 지키며 바르게 행동하는 어린이, 기초 학력을 증진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진취적인 어린이, 체력을 튼튼히 하고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 소질과 개성을 키우며 아름다움을 느낄 줄 아는 어린이, 지식 정보화 사회를 주도할 능력 있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에 속하는 법정리. 본래 충주군 생동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에 음성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생동면은 폐지되고 중생리와 하생리를 통합하여 생리라 하고 생극면에 편입되었다. 생1리 중생에서 무극장으로 가는 곳에는 장고개(일명 오리나무골), 생2리 넘말 남쪽에는 어떤 사람이 술에 취해 굴렀다고 하여 이름이 붙여진 굴렁개, 생2...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생리 도장골에 있는 산제당. 생리 도장골 산제당은 도장골 뒷산에 있다. 산제당은 커다란 자연석으로, 바로 앞에 평평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몇 해 전 이곳에 컨테이너 박스를 가져다 놓고 제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제일이 정해지면 며칠 전에 생기복덕에 맞추어 제관을 뽑는다. 제관으로 뽑히면 목욕재계를 하고 제의 당일까지 근신을 한다. 산신제를 지내기 하루 전에...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생2리 만태동에서 음력 10월 산신에게 올리는 제의. 만태동은 마을 지형이 망태기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수레의산 밑에 자리하고 있다. 생극면 소재지로부터 4㎞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약 20여 가구가 살고 있다. 본래 수레의산에서 제의를 지내다가, 1998년 수레의산 자락인 마을 뒷산에 시멘트 블록으로 제당을 건립한 후 그곳에서 지내고 있다....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생리 만태동에 있는 산제당. 생리 만태동 산제당은 만태동 뒷산에 있다. 현재의 산제당은 1998년에 축조한 것으로, 시멘트 벽돌로 몸체를 쌓고 슬레이트로 지붕을 얹은 모습이다. 제의 날짜가 정해지면 며칠 전에 생기복덕에 맞추어 제관을 두 명 뽑는다. 제관으로 뽑히면 먼저 집 안팎에 황토를 뿌려 부정한 자의 출입을 금한다. 특히 제의 당일에는 온 마을 사람들이...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생리 벌말에서 음력 10월 26일 산신에게 올리는 제의. 벌말은 주막거리라고도 하며, 수레의산 남쪽 밑에 자리 잡고 있다. 생극면 소재지에서 동쪽으로 4㎞ 지점에 위치하고, 동남쪽으로는 오생리, 서쪽으로는 신양리, 북쪽으로는 차곡리와 접해 있다. 셍리 벌말 산신제는수레의산의 산신에게 마을의 안녕과 결속,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고자 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예전에...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생리 벌말에 있는 산제당. 생리 벌말 산제당은 벌말에 있는 수레의산 기슭에 있다. 산제당은 수레의산 기슭에 있는 ‘소바우’ 밑에 마련한 제단이다. 이 소바우는 예전에 소를 잡던 바위라고 알려진 곳이다. 소바우에서 약간 떨어진 아래쪽에는 작은 샘이 있는데, 제사 때 이 물을 정한수로 사용한다. 산신제를 지내기 전에 생기복덕에 맞추어 제관들을 뽑는다. 제관으로...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생리에 있는 선사시대의 선돌. 선돌은 큰돌〔巨石] 기념물의 한 종류로 자연석을 일부 다듬어 세워놓고 신앙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선돌은 그 연대를 추정하기 어려우나 서유럽의 경우 신석기시대 후기부터 시장하여 청동기시대에 유행한 것으로 나타난다. 생리 선돌에는 전설이 있다. 옛날에 박장수라고 불리던 사람과 그의 아내가 모두 쌀을 몇 가마씩 들 수 있을 정도로...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생리에 있는 고려시대 청자가마 터. 생극면 면소재지가 있는 삼거리에서 충주 방향으로 3㎞ 정도 가다 보면 삼거리가 나타나고, 좌회전하여 북동쪽으로 들어서면 정면으로 수레의산이 보인다. 수레의산 정상에서 남서쪽 사면 일대에 동부컨트리클럽이 들어서 있다. 생리 청자가마 터는 동부컨트리클럽의 중심부인 해발 235~260m의 서쪽 계곡부에 자리 잡고 있다. 생리 청...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생2리 넘말 하생에서 매년 음력 11월에 지내는 산신제. 하생은 생극면 소재지에서 동쪽으로 3㎞ 지점에 위치하며 마을의 동북쪽에는 수레의산과 도장골이라는 골짜기가 있다. 현재 산신제는 도장골의 산제단에서 지내지만 예전에는 수레의산에서 지냈다고 한다. 생리 하생 산신제는 음력 11월 동짓달에 택일하여 지내는데 대개 동지를 지나기 전에 지낸다. 제관은 산제를 지...
-
시어머니가 건강 악화로 집으로 다시 돌아오고 얼마 후에 소를 도둑맞았다. 당시에는 소가 큰 재산이었기 때문에 소를 잃어버린 충격이 커서 시어머니가 화병에 걸리셨다. “옛날에는 소가 재산이었어. 면에서 사준 소여. 네 마리가 됐거든 그 소가. 그래가지고 소를 도둑을 맞아 잃어버렸어. 그래가지고 우리 어머니가 병이 나가지고 돌아가신겨. 밥을 안 드셔가지고.” 정부에서 소를 사줘서 당시...
-
서낭댕이는 이진말마을 북동쪽으로 마을이 끝나는 지점 새로 놓은 다리에서 200m 동쪽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이진말마을의 서낭당은 이 마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북쪽 맞은편 마을인 신양리 새천이마을에 한 곳, 개울 건너 중말에 한 곳 등 서낭당이 삼각형을 이루고 서 있었다. 서낭댕이에 대하여 오덕욱 할아버지(35년생, 73세)는 “서낭길이 어디 있었는가...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병암리에 있는 광학 부품 제조업체. 전문화·다양화·고급화한 광학 제품을 연구·개발하고 판매하여 기업의 이윤을 추구하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자 설립되었다. 1974년 9월 6일 회사를 설립하였고, 1980년 12월 일본 노리타광학과 합작하였으며, 1984년 부설로 서울광학연구소를 건립하였다. 서울광학산업(주)은 각종 비구면 렌즈 가공에 주력하고 있다. 브라운...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병암3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석병무는 생극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약 4㎞ 지점에 있는 병암3리 서쪽에 위치한 자연 마을이다. 남동쪽으로 병암2리의 자연 마을인 만담이 있고, 서쪽으로는 관성리, 북동쪽으로는 병암4리의 자연 마을인 안곤재와 각각 접하고 있다. 마을 뒷산에 있는 바위가 병풍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병산리라고도 불린다. 본래 경기도...
-
한복실 할머니는 병암1리 부녀회장이다. 처음 병암1리를 찾아 갔을 때 조사자들이 시집살이에 대해 여쭈자, 시집살이를 아주 심하게 겪었다고 할머니들이 입을 모아 한복실 할머니를 지목하였다. 한복실 할머니는 현재 병암1리 부녀회장을 맡고 있고, 병암1리 부녀회 이야기와 각종 계모임에 대해서 많은 도움 말씀을 해 주었다. 한복실 할머니는 할머니라고 부르기가 무색할...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차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선경의 처 성주이씨의 정절을 기리는 열녀문.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으로 가는 국도 33호선 변인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차평2리에서 오른쪽 양재 쪽으로 난 농로를 따라 300m쯤 가면 왼편으로 열녀각이 보인다. 성주이씨는 인문관 이휘의 딸로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임곡리에서 출생하였다. 1592년(선조 25)에...
-
도깨비는 옛날부터 우리 민족정서와 함께 어우러져 갖가지 민담의 형태로 현재까지 활발하게 전해지고 있다. 도깨비는 여타의 다른 귀신들과는 달리 악하거나 사람을 해하는 것 보다 씨름을 제안한다든지, 내기를 한다든지, 솥뚜껑을 솥 안으로 밀어 넣어 밥을 못 하게 만드는 등의 장난기 어린 행동들을 많이 한다. 도깨비가 사람들이 사용하던 빗자루, 가마니, 짚신 등에서 태어나 사람들 곁에서...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에 속하는 법정리. 본래 충주군 생동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송곡리와 차곡리 일부를 병합하여 송곡리라 하고 생극면에 편입되었다. 송곡리의 기와집말 동쪽에는 모래봉이 있고 동남쪽에는 외밑산이 있으며 송곡1리 송림 동쪽에는 망월산[109m]이 있다. 송곡에서 발원하는 야곡천이 응천으로 유입되고 임...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송곡1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송림은 생극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약 6㎞ 정도 떨어진 송곡1리의 남쪽 지역에 위치해 있는 자연 마을이다. 서쪽으로는 임곡리와 마주하고 있으며, 동편송림과 서편송림으로 나누어져 있다. 예전에 소나무가 많은 곳, 즉 송림을 개간한 곳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 충주군 생동면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다. 그...
-
조선시대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살았던 효부. 본관은 밀양(密陽). 박씨는 계모 슬하에서 자라다가 14세에 출가하였으나 26세에 남편을 잃었다. 가난한 집의 과부가 되어 많은 시집 식구를 봉양하느라 크게 고생하였다. 친정에서는 개가하기를 권유하였으나 이를 물리치고, 유복 아이를 길러서 은진송씨(恩津宋氏) 가문에서 일생을 마친다는 뜻에 따라 어려움을 참고 시부모를 극진히 모셨다. 송영학...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오생리에 있는 조선시대 송영학의 처 밀양박씨의 효행을 기리는 비. 효열비는 유교를 덕목으로 하는 조선시대에 많이 세워졌는데 충신·열사와 더불어 효자·효부를 기리는 의미에서 일반적으로 당사자와 관련된 장소에 세웠다. 박씨 부인은 원래 계모 슬하에서 자라다가 14세에 송영학에게 출가하였으나 26세 때에 남편을 잃고 빈한한 집의 과부로 많은 시집 식구들을 봉양하느...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차곡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음성군 생극면 면사무소 소재지에서 북동쪽으로 약 8㎞ 지점인 차곡리 중앙 지역에 있는 마을이며, 남쪽으로는 건너말, 서북쪽으로는 오얏골과 각각 접하고 있다. 수레의산과 수리산(愁離山) 아래에 마을이 있다고 하여 수레울 또는 수리울이라 불린다. 본래 충주군(忠州郡) 생동면(笙洞面)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생리·차곡리의 경계에 있는 산. 북쪽에는 수리산이 있고 서남쪽의 생리 안터의 남쪽에는 안골고개가 있다. 안골고개는 모남리 장자울과 오생리의 통동, 북각동 등과 연결되고 있다. 수레의산의 표고 600m 이상과 서쪽 계곡 400m 이상의 사면에는 신갈나무 군락이 넓게 형성되어 있다. 또한 북부 주능선 서쪽의 500m 이상의 각 사면에는 소나무 군락이 발달되어 있...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차곡리에 있는 자연휴양림. 수레의산은 해발 679.4m로 음성군 생극면의 생리·차곡리와 충주시 신니면 모남리 등의 경계에 있는 높은 산으로 북쪽에 있는 해발 605m의 수리산과 마주보고 있다. 수레의산은 산이 아름답고 경치가 좋아 많은 등산객이 찾고 있다. 조선시대 정승 양촌 권근의 묘지 전설이 전해오는 전설의 샘이 있고, 병풍바위 등의 특이한 지형지물이 있...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차곡리와 감곡면 월정리의 경계에 있는 산. 수리산은 일명 수레내산·차산(車山)·차의산(車依山) 등으로도 불리고 있다. 남쪽에는 수레의산이 있고 북동쪽에는 행덕산이 있다. 수리산과 행덕산 사이에는 술고개가 있고 노은면 법리와 감곡면 월정리 간에는 도로가 통하고 있다. 차곡리천이 수리산에서 발원하여 서류하면서 차평리에서 차평천이 되며 응천과 합류하는 한강 수계를...
-
시집을 온 그 날부터 고된 시집살이가 시작되었다. 시어머니는 시집 온 첫날부터 남편하고 한 방에서 못 자게 하고 다음날 아침에는 밥을 못한다고 구박을 하였다. “그냥 꼬박 밤새가지고 다섯 시 됐는데 부엌에 나가서 밥을 하라는데. 비가 왔는데 초가집인데. 빗물이 뚝뚝뚝 떨어지고. 밥을 하는데 기냥 눈물인지 콧물인지. 밥을 할 줄 알아야지. 보리밥인데. 그래가지고 어떻게 해가지고 죽이...
-
시집살이가 너무 힘들어서 집을 나가기 위해 보따리를 여러 번 쌌지만, 남편 때문에 나가지 못하고 매번 보따리를 풀어야만 했다. “뭐 달아날라고 보따리 수없이 쌌는데. 갈라면은 우리 아저씨가 불쌍해서 들어오고 그랬다구. 나 아니면 자기가 혼자 사니까, 아저씨는 잘하잖어. 그러니깐 미련이 있어서 못 가고 돌아오고 돌아오고. 서울도 갔다가 살라고 가봤다가 돌아오고 돌아오고 했지. 그러다...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평(新坪)의 ‘신(新)’자와 양곤(陽昆)의 ‘양(陽)’자를 따서 신양리라 불린다. 본래 충주군 생동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평리, 신창리, 양곤리 일부를 병합하여 신양리라 하고 생극면에 편입되었다. 신양2리 새들 동남쪽에는 두루봉[132m]이 있고 신양2리 서낭당이 동쪽...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 능안에 있는 안숙공 권준(權蹲)[1405~1459]의 사우. 부조묘는 사당·사우와 같이 문중의 선대 조상 가운데 중요하게 기억하거나 기릴 만한 분을 대수에 상관없이 영원히 제향하라는 의미에서 건립하는 것이다. 권근 삼대묘가 있는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 능안 초입에 위치하며, 안양공 권반의 부조묘 오른쪽에 있다. 권준 사당은 본래 현재의 위치 맞...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안양공 권반(權攀)[1405~1459]의 사우. 부조묘는 사당·사우와 같이 문중의 선대 조상 가운데 중요하게 기억하거나 기릴 만한 분을 대수에 상관없이 영원히 제향하라는 의미에서 건립한다. 부조묘라기보다는 사당이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권근 삼대묘가 있는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 능안 초입에 위치하며, 안숙공 권준의 부조묘 왼쪽에 있...
-
예전에는 안택이라고 해서, 집안 편하라고 고사를 많이 지냈다고 한다. 또 집안에 우환이 있거나 이유 없이 든 병을 잡기 위해 굿을 하기도 했다. 무당은 동네 무당도 있고 타동네 무당도 데려다 하기도 했다. 오덕욱 할아버지 댁에서는 굿은 하지 않고 안택만 했다고 한다. 안택은 3년에 한 번 정도씩 시월상달에 생기복덕 가려서 날을 잡고 한다. 무당을 부르지는 않고 계속 기도를 한다고...
-
아이를 낳았을 때 삼신할머니께 빌었느냐고 여쭤보았다. 그러자 막내아들이 태어나고 한 동안 잠을 자지 않아서 삼신할머니한테 빌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기가 태어나고 보름 정도가 지났는데 밤에 잠을 자지 않아서 동네 사람들한테 물어보니, 부정을 타서 그렇다며 삼신할머니한테 빌라고 했다. 그래서 방에 짚을 깔고 밥과 미역국을 차려놓고 3일 동안 빌었더니 신기하게도 그 다음날부터 아기...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차평2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음성군 생극면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약 4㎞ 지점인 차평리 서부 지역에 위치한 마을이다. 동으로는 본말, 남쪽으로는 신양리 다농개, 북쪽으로는 담사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본래 충주군 생동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말마리 일부를 병합하여 차평리라 하여 생극면에 편...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임곡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생극면 소재지에 북쪽으로 약 7㎞ 지점의 임곡리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며, 동쪽으로 하촌말, 남쪽으로 음촌(음달말), 북쪽으로 임오산과 각각 접하고 있다. 임오산 줄기 남쪽과 팔성산 북쪽으로 양지 바른 곳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산 밑 계곡 속에 있어 품실이라고도 한다. 본래 충주군 생동면 지역이었으나 190...
-
송유익을 시조로 하고 송시철과 송서석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음성군 세거 성씨. 시조 송유익(宋惟翊)은 고려 때 진사로 나라에 공을 세워 여산군(礪山君)에 봉해졌다. 고려 충렬왕 때 중찬(中贊)을 지낸 송송례(宋松禮)의 아들 대에서 5파로 갈라졌다. 조선시대에 정승 2명과 왕비 1명, 그리고 많은 판서급 인물을 배출했는데, 특히 지신공파와 정가공파에서 많은 인물이 나왔다. 200...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에 속하는 법정리. 오룡(五龍)의 ‘오(五)’자와 상생(上笙)의 ‘생(笙)’자를 따서 오생리라 불렸다. 이후 오생리(五笙里)는 오생리(梧笙里)로 변경되었다. 본래 충주군 생동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생리, 요룡리와 금목의 신대리를 병합하여 오생리라 하고 생극면에 편입되었다. 오생1리 도화동...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오생리 도화동에서 매년 음력 11~12월에 지내는 산신제. 도화동은 복숭아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으로 장승이·윗다락개·상루라고도 한다. 생극면 소재지에서 6㎞ 지점에 위치한다. 오생리 도화동 산신제를 언제부터 지냈는지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마을 앞산인 수레의산의 산신을 모시는 제사를 오래 전부터 지내왔다고 한다. 제당은 따로 없으며 수레의산 중턱에서...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오생리에 있는 산제당. 오생리 산제당은 오생리 도화동 뒷산 중턱에 있다. 산제당은 자연산 바위로, 바위 앞 평평한 곳에서 제사를 모신다. 산신제 날짜가 정해지면 먼저 생기복덕에 맞추어 제관을 뽑는다. 제관으로 뽑히면 목욕재계를 하고 산신제까지 근신을 한다. 산신제 당일에는 밤새도록 온 동네에 불을 환히 밝힌다. 제물은 마을기금으로 충당하며, 돼지 한 마리와...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오생리 부용산에서 발원하여 신양리에 이르는 하천. 생극면 오생리의 남쪽에 있는 부용산에서 발원·북서류하여 생극면 신양리 앞에서 응천과 합류하는 한강 수계이다. 오생리천은 오생리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하천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오생리천을 일명 오신천이라고도 한다. 남쪽에는 부용산[644m]이 있고 북쪽에는 263고지가 있으며 263고지의 동북쪽에는 수레의산[6...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차평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 효자 오창묵의 비. 오창묵(吳昶黙)은 병화가 있었으나 어머니를 잘 모셔 관에서 포상을 하였다. 이 사실을 돌에 새겨 많은 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여 영구히 기념하기 위해 1935년 국도 3호선 변에 효자비를 세웠다. 효자비는 유래를 새긴 오석 위에 거북 대좌를 앉히고 비석을 세웠다. 효자비 앞면에 ‘오공창묵효자비(吳公昶黙孝子碑)’라...
-
병암1리에서는 민요를 많이 조사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들은 예전 어렸을 때 아버지 대 분들이 농요를 부르는 것을 들었고 논농사를 지으며 부르기도 했지만, 지금은 할 줄 아는 이들이 모두 돌아가셔서 제대로 부를 수가 없다고 했다. 할머니들도 「자장가」나 「불아불아」와 같은 아기를 재우거나 어를 때 부르는 소리 한, 두 소절 외에는 민요를 잘 기억하지 못했다. 2월 8일,...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오생리에 있는 건물 바닥 자재 생산 업체. 기술 집약적이고 친환경적인 제품 개발을 통해 기업의 이윤 추구와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설립되었다. 1998년 9월 15일에 설립되었으며 2003년 12월 신용보증기금으로부터 유망 중소 기업으로 선정되었다. 2004년 4월 기업 부설 연구소를 설립하였다. 표면 가공 목재 및 특수 제재목 제조업을 주요 사업으로...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병암리에 있는 산. 월규산을 월계산(月桂山) 또는 얼기산이라고도 한다. 얼기산은 전설에 의하면 옛날 부잣집 열녀나 과부들이 얼기산 계곡에서 얼개빗으로 항상 머리를 감고 빗었다고 하여 유래된 이름이다. 병암리의 만담리의 북쪽에 있는 장자산의 한 지맥이 북동쪽으로 뻗어 형성된 비교적 낮은 산이다. 청미천의 지류가 남쪽에서 흘러 월규산 부근에서 서북류하기 때문에...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차평리 일대에 조성된 농업 용수 공급 저수지. 유신저수지는 차평저수지라고도 하며, 주변에 수레의산, 수레의산 자연휴양림, 청소년수련원 등이 있다. 유신저수지에서 흘러내린 물이 응천으로 합류한다. 농업 용수 공급을 목적으로 1945년 1월 1일에 준공되었다. 유신저수지 시설은 한국농어촌공사 충북지역본부 음성지사가 관리하고, 총 저수량 50만 톤 이하의 2종으로...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임곡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생극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약 7㎞ 지점에 위치하며, 동쪽은 송곡리, 서쪽은 이천시 율면 오성리, 남쪽은 팔성리, 북쪽으로는 이천시 율면 월포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팔성산 북쪽 음지가 됨으로 음달말 또는 음촌이라 부른다. 본래 충주군 생동면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임오리와 품곡...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권근과 그의 부인 경주이씨의 묘표. 매장 시에는 봉분을 만들고 봉분 앞에 묘표석과 혼유석, 상석, 향로석을 배치하고 장명등, 촛대석, 문인석 등의 석물을 세우는 것이 일반적이다. 부부 합장묘의 경우 묘표석을 하나 세워 그 안에 글자를 새기는 것이 일반적이나 좌우에 따로 묘표석을 세우는 경우도 있다. 양촌 권근의 묘소는 경기도 성...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전기 권근과 그의 아들 권제, 손자 권람의 3대 묘소 및 신도비(神道碑). 조선시대의 묘소는 풍수지리에 의해 길한 땅을 택하여 만들어졌는데 왕릉처럼 병풍석(屛風石)을 두를 수는 없었다. 묘 앞에는 석상(石床)을 놓고 양쪽에 망주석을 세웠다. 석상 앞쪽으로는 장명등(長明燈)을 놓고 좌우에 석인(石人)들을 세웠다. 종2품 이상 고관의 묘에는...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팔성리에 있는 1930년대 전통가옥. 생극면 팔성리는 윗마을과 아랫마을로 나누어져 있는데, 음성 팔성리 고가는 아랫마을인 말마리에 있는 전통가옥이다. 말마리로 들어서서 골목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 들어가면 산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음성 팔성리 고가를 볼 수 있다. 음성 팔성리 고가가 지어질 당시인 1930년경에는 넓은 대지(약 2,706㎡) 위에 안채와 사랑채...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생리에 있는 동요학교. 음성동요학교가 있는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은 동요 「고추 먹고 맴맴」의 발상지이다. 음성동요학교를 포함한 주변 마을을 동요마을로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음성동요학교는 어린이들이 동요를 통하여 전통 문화의 우수성과 조상의 멋과 슬기를 배우고 익히며, 나라와 고장을 사랑하도록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하였다. 2005년 9월 2일에 옛...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관성리에 있는 신경정신과 전문 병원. 초대 이사장인 정근희 이사장은 정신병원 환자들의 약물 치료와 병행해서 정서 안정을 위한 환경을 마련해 주기 위하여 의료법인 본원 주변의 정원에 말, 황새, 사자 등의 동물상과 인체, 큰 손 등 소형의 석재 조각품과 나무 조각품 등을 전시하고 석비, 팔각정 등을 건립하는 등 조경 사업을 실시하였다. 그것이 오늘날 큰바위얼굴...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성주. 문경공(文景公) 이직(李稷)의 6세손이고, 이군좌(李君佐)의 아들이다. 이구령은 일찍이 중봉(重峯) 조헌(趙憲)의 문하에서 수업하여 박학독행(博學篤行)하였다. 임진왜란 때 홍천현감(洪川縣監)으로 부임하여 조헌과 더불어 창의(唱義)를 모의하여 충청남도 금산군 수남(樹柟)에 진을 치고 전투하였다. 공격하던 중 말에서 떨어져 1592년(선조 25) 8월...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차평리에 있는 조선 중기 이구령의 충신문. 본관이 성주(星州)인 이구령(李龜齡)은 임진왜란 때 홍천현감으로 조헌(趙憲) 휘하에 들어가 활약하다 금산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금산 전투에서 순절한 사실이 나중에 조정에 알려져 1905년에 명정되었는데, 충신각은 1980년에 세워졌다. 정면 1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목조기와집이다. 정려 안쪽의 편액에는 ‘충신효충...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병암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생극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약 2㎞ 지점에 위치하며, 동쪽은 오생리, 서쪽은 관성리, 남쪽은 도신리, 북쪽은 신양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곤재 동쪽 이진봉 밑에 있는 마을로 임진왜란 때 이곳에 진을 쳤다고 하여 이진말 또는 고진대라고 한다. 본래 경기도 음죽군 무극면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
이진봉 은 이진마을 동쪽에 있는 산으로 이진봉 밑에 마을이 있어서 마을 이름도 이진말이다. 이진봉이라는 산 이름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진을 치고 있었던 산이라 오랑캐 이(夷)자와 진을 치다의 진(陣)자를 써서 이진봉이라 하였다 한다. 이진봉에는 성의 흔적이 있는데 오덕욱 할아버지는 성에 대해서 “지금은 까내려와서 없어요. 아주 도자를 들여서 삼 심을...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신양리에 있는 산. 이진봉은 왜적이 진을 치고 있던 토성이 있던 봉우리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진봉은 남쪽으로는 용바위산·칠성산과 연결되어 있고 서쪽으로는 북류하는 병암천이 흐르고 있다. 이진봉 토성에 대하여 일제강점기의 문헌에서는 토성 주위 200간, 높이 3척, 두께 4척, 반 훼손 등으로 기록하고 있다. 산성은 현재 농로와 밭으로 이용되고 있으...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신양리 이진봉 정상부에 있는 고려시대 토성. 이진봉 산성은 고문헌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고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생극면 신양리·병암리 고진봉, 생극면사무소의 동남 약 5정에 있음. 토축으로서 둘레 200간, 높이 3척, 두께 4척 반폐함”이라 하여 처음으로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전국유적목록』에는 “토축, 둘레 약 200간, 높이 3척, 두께 4척, 반...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병암리 이진말은 지리적으로 충청북도 북서부 지역에 있는 음성군의 중북부에 자리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생극면 생리, 북서쪽으로는 응천, 남쪽으로는 생극면 도신리, 북쪽으로는 생극면 신양리와 접하고 있다. 서울에서는 중부고속도로를 따라오다 일죽 나들목으로 나오면 동쪽으로 10㎞ 지점의 생극면 소재지에 이르게 되며, 면소재지에서 금왕 방면으로 1㎞에...
-
이진봉산성 은 병암리 이진말마을 앞 동남쪽의 해발 231.2m의 이진봉에 있는 산성이다. 청주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 연구하여 발행한 「음성군문화유적분포지도」는 ‘이진봉의 정상부에 축성된 테뫼식 토축산성’이라 하고 있는데, 이 마을의 김지만 할아버지(27년생, 81세)와 오덕욱 할아버지(35년생, 73세)는 이진봉산성이 산 정상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을 뒷편의...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임오리와 품곡리를 병합하여 임곡리라 불린다. 본래 충주군 생동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에 음성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임오리와 품곡리를 병합하여 임곡리라 하고 생극면에 편입되었다. 임오리 북쪽에는 임오산[328m]이 있고 양달말에서 경기도 이천시 율면 오성리로 넘어가는 곳에는 노단테고개, 품실...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임곡리의 임오산 남쪽면에서 발원하여 송곡리 앞에서 응천과 합류하는 하천. 임곡리천은 임오산에서 발원하여 임곡리로 흐르는 하천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임곡리 북쪽의 경기도 안성시 율면 경계에는 임오산[328m]이 있고 서남쪽의 경기도 경계에는 팔성산[377m]이 있으며, 남부에는 매재봉이 있다. 임곡리에서 경기도 안성시 율면 오성리로 넘어가는 곳에는 노단테고개...
-
임란공신 장충범장군기념비는 생극면 병암리 이진말 문화마을 소공원에 세워져 있다. 이 기념비는 본래 생극면 소재지인 신양리 삼거리에 1971년에 세워져 있었는데 도로의 확포장공사로 인하여 이곳으로 옮겨 세웠다. 장충범 장군은 조선 중기의 충신으로 자(字)는 효칙, 본관은 단양이다. 1592년(선조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충주에서 적과 싸우다 부상을 당하여 고향인 음성읍...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병암리에 있는 산. 산의 형태가 자라 모양이라고 한다. 한자로는 장자봉(長者峰) 또는 장자청봉(長子靑峰)이라고 한다. 고려 중기에 이 산 기슭에 아무런 부족함이 없는 장자(長者)가 살고 있었는데, 장자는 부족을 모르고 산다는 것은 사람다운 생활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물이 부족한 산 중턱으로 새집을 지어 이사하였다. 장자가 물이 부족하여 물 한 동이에 쌀 한말씩...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병암리 장자봉에 있는 토축 산성. 장자봉 산성은 문헌 기록이나 조사 자료는 전혀 없고 2002년의 지표 조사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어 학계에 보고된 산성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병암리와 만담리 뒤 해발 192m의 장자봉 봉우리를 감싸고 있다. 장자봉 산성의 동쪽으로는 북류하는 응천(鷹川)을 끼고 음성-장호원 간의 국도 37호선이 지나고 있고 북쪽으로는 삼성...
-
음성군 생극면 병암1리(이진말)는 매년 음력 정월 2일에 마을 뒤에 있는 산제당골에서 산신제를 지낸다. 2월 8일 병암1리 마을회관에서 오덕욱 할아버지(35년생, 73세)와 이순복 할아버지(31년생, 77세), 김지만 할아버지(27년생, 81세)를 만나 산신제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산신제는 마을 사람들이 아는 것만 해도 거의 140여년 전부터 지내왔으며, 전해 내려오...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차곡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의 사찰. 1996년에 충주산업대학교 박물관이 조사하여 간행한 『음성군의 역사와 문화유적』에 있는 ‘음성군 사찰 현황표’에 따르면, 당시 음성군에 소재한 52개 사찰 가운데 태고종(太古宗)에 속하는 17개 사찰 중 하나였다. 창건 연대는 미상으로, 주지는 문호수이고, 신자 수는 50명이었다. 1940년에 설립되었고, 당시 주지는 임...
-
2월 8일 병암1리를 찾아가서 마을회관 남자방에 있던 오덕욱 할아버지(35년생, 73세)와 이순복 할아버지(31년생, 77세), 김지만 할아버지(27년생, 81세)에게 지명이야기를 듣다가, 오덕욱 할아버지가 도끼골 지명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었다. 원래는 정지골이라고 불렀는데 70년도쯤에 도끼로 사람을 죽인 사건이 나서 그때부터 ‘도끼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일명 ‘도끼골...
-
산신제를 준비하는 중에 산신제에 대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세 제관과 인터뷰를 하였다. 세 분 중 제관 경험이 제일 많은 오덕욱 할아버지께 먼저 여쭈었다. 예전에는 산제당이 목재로 지은 초가여서 1년에 한 번씩, 가을에 대동계를 하고 나면 마을 사람들이 다 같이 올라와 새로 수리를 했었다. 마을에서 가장 먼저 하는 행사가 산제당 수리였다. 산신제 지내는 방식은 예전에 비해...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관식은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중국으로 건너가서, 1921년부터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1924년 사상범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5년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1945년 해방이 되자 귀국하여 경기도 경찰간부로 복무하다가, 대한국군준비위원회 부회장으로 창군에 참여하였다. 그 후 이승만 박사의 경호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자직(子直), 호는 동강(東岡). 예조판서 조형(趙珩)의 아들이며, 할아버지는 승지 조희보(趙希輔)이다. 조상우는 1657년(효종 8) 17세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천거되어 세자익위사세마(世子翊衛司洗馬)·연천현감(連川縣監)을 지냈다. 1675년(숙종 1)에는 스승인 송준길(宋浚吉)이 삭직을 당하자 홍득우(洪...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4년 9월 9일에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임곡리에서 조태영(趙泰永)의 아들로 출생하였으며, 서울시 종로에서 살았다. 1950년 7월 15일 6·25전쟁 시에 폭탄에 맞아 57세로 전사하였다.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임곡리에 있다. 조윤식은 서울에서 보통학교를 마치고 독학하면서 주권 회복의 뜻을 품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대성...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군헌(君獻), 호는 취병(翠屛). 승지(承旨) 조희보(趙希輔)의 아들이고,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를 지낸 조상우(趙相愚)는 그의 아들이다. 조형은 어려서 장난이 심하였으나 일찍부터 공부를 시작하여 9세에 경서(經書)를 해득하여 세상 사람들이 경탄하였다. 1630년(인조 8)에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여...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생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조형(趙珩)의 묘소. 조형은 본관이 풍양(豊壤)이며, 자는 군헌(君獻), 호는 취병(翠屛)이다. 1651년 사은사(謝恩使)의 서장관으로 북경에 다녀와 보덕을 거쳐 승지가 되었다. 이듬해 충청감사를 거쳐 1657년 도승지, 대사간이 되었다. 1669년에는 평안도 외방별시의 시관이 되었고, 이듬해 좌참찬을 지냈으며, 1673년 예조판...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생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조형의 묘비. 조형(趙珩)은 승지 조희보(趙希輔)의 아들로, 자가 군헌(君獻)이고 호는 취병(翠屛)이며 본관은 풍양이다. 1603년(선조 36)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이 되었고, 부교리, 응교, 부수찬을 역임하였다. 1650년(효종 1) 춘추관수찬관(春秋館修撰官)으로 『인조실록(仁祖實錄)』의 편찬에 참여했고, 사은사(謝恩...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생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조형의 신도비. 조형은 자가 군헌(君獻)이고 호는 취병(翠屛)이다. 1603년(선조 36)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검열이 되었고, 1643년(인조 21)에 부교리를 역임했다. 1650년(효종 1) 춘추관수찬관(春秋館修撰官)으로 『인조실록(仁祖實錄)』의 편찬에 참여했고, 사은사(謝恩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고, 통신사로...
-
이진말에서는 정월 대보름날 밤에 마을 사람 전체가 두 패로 나누어 줄다리기를 하였다. 이진봉에 올라 망월을 하며 달집태우기가 끝난 뒤 내려와서 농악을 치면서 줄을 다렸다. 매년 하지는 않고 3년에 한 번 정도 하였으며, 6·25 이후까지도 했다고 한다. 암줄과 수줄로 나누어 줄을 엮었으며, 암줄과 수줄을 끼운 뒤 비녀목을 채워 고정시켰다. 줄을 다리는 패는 골목을 기준으...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신양3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중말(신양리)은 신양3리 남쪽 지역에 위치한 자연 마을이다. 동쪽으로는 새천이와 접하고, 남쪽으로는 병암리의 이진말, 서쪽으로는 생극면 소재지와 각각 접하고 있다. 본래 충주군 생동면에 속해 있던 양곤리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다. 그후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신평리와 신창리, 양곤리 일부와 함께 신양리로...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생1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중생은 생1리의 중앙부에 자리 잡고 있는 자연 마을이다. 동북쪽으로 안터가 자리잡고 있으며, 동남쪽으로는 다락개, 서북쪽으로는 주막거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예전에는 벌말이라고도 불렸다. 본래 충주군 생동면 생동이었으나 1906년에 음성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생동면을 폐지하고 중생리와 하생리를 병합하여 생리...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생3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중턱은 생3리의 중북부 지역에 위치한 자연 마을이다. 서쪽으로는 생3리의 안터가 자리 잡고 있으며, 서남쪽으로는 중생, 동남쪽으로는 오생리의 북각동과 각각 접하고 있다. 본래 충주군 생동면 중생리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생극면 생리에 포함되었다. 북쪽으로 수레의산[679.4m]이...
-
이진말 사람들은 정월 초순경 그해 처음으로 맞는 쥐날에 쥐불놀이를 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다른 동네 사람들하고 쥐불놀이를 했는데, 아주 크게 싸움을 벌였다. 이진말은 주로 곤재 사람들하고 싸웠다. 마을 앞 개울에 가서 뚝방에다 불을 놓고 양쪽에서 마주보면서 ‘니가 잘했네 내가 더 잘하네’ 하면서 싸웠다. 그러다가 개울 건너까지 서로 돌을 던지면서 싸우는 ‘석전’까지 하기...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팔성리에 있는 조선 중기 하진민의 충효를 기리는 비.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많은 일본 군사가 충주에 침입하여 음성군 생극 지역까지 왔을 때 김선경(金善慶) 부인 성주이씨(星州李氏)가 딸을 데리고 생극 지역 수리산으로 피난을 왔다. 이때 하진민은 곤경에 빠진 이씨 부인을 구출하였다. 조정에서는 하진민의 충의를 가상히 여겨 음직으로 훈련...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팔성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원. 지천서원(知川書院)의 시초는 조선 중종 때 이조참판을 지낸 김세필(金世弼)[1473~1533]이 벼슬에서 물러난 뒤 팔성산 아래에 지은 초옥으로, 김세필은 이곳에서 산수를 벗삼아 여생을 보내며 후학을 교육하였다고 한다. 초옥은 당시 충주목사 박상(朴祥)의 재정적 도움으로 건립되었는데, 박상은 자주 김세필을 찾아와 격의 없이...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팔성리 지천서원에서 제향하는 의례. 김자수(金自粹), 김세필(金世弼), 김저(金儲), 김의(金嶷), 김정현(金鼎鉉), 김홍욱(金弘郁), 김종현(金宗鉉), 박상(朴詳) 등을 매년 봄(음력 3월 초정일)과 가을(음력 9월 초정일)에 음성 지역 유림과 경주김씨 문중에서 제향하고 있다. 조선 중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십청헌 김세필이 벼슬에서 물러나 음성군 생극면 팔...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팔성리 지천서원 입구에 세워진 하마비(下馬碑). 하마비는 그 앞에서는 신분의 고하(高下)를 막론하고 누구나 타고 가던 말에서 내리라는 뜻을 새긴 석비(石碑)이다. 주로 관아(官衙), 향교(鄕校), 서원(書院), 사우(祠宇) 등의 입구나 능묘(陵墓) 앞에 세워 경의(敬意)를 표하게 하였다. 음성군에는 지천서원(知川書院), 음성향교(陰城鄕校), 운곡서원(雲谷書院...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관성4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진골은 관성4리 남쪽에 위치해 있는 자연 마을이다. 북서쪽으로 관성3리의 자연 마을인 마날미와 관성2리의 자연 마을인 무술(무수동)이 있다. 임진왜란 때 진을 친 곳이라 하여 진골 또는 진동(陣洞)이라 불린다. 본래 경기도 음죽군 무극면 진동 지역이었으나 1906년에 음성군에 편입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관성리라...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수리산 밑에 있다하여 수레울 또는 차곡이라 불린다. 수레가 지나는 골짜기라 하여 수레울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본래 충주군 생동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차평리 일부를 병합하여 차곡리라 하고 생극면에 편입되었다. 수레울의 남쪽에는 수리산[605m]이 있고 수리산의 상...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차곡리 당골에 있는 산제당. 차곡리 산제당은 차곡리 당골 뒷산 중턱에 있다. 산제당은 대리석으로 만든 제단 형태이다. 제의를 지내기 전에 생기복덕에 맞추어 세 명의 제관을 뽑는다. 제관으로 뽑히면 먼저 집 앞에 금줄을 쳐서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막고, 제의 당일에는 밤새도록 온 동네에 불을 밝힌다. 제물 마련은 대동계비로 하며, 돼지머리와 술·족발·삼색 실과...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차곡리 수레울에서 매년 1월 3일에 지내는 산신제. 수레울은 수리산 서남쪽에 자리한 마을로 생극면 소재지에서 8㎞ 지점에 위치한다. 산신제를 언제부터 올렸는지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수리산이 매우 험하고 높아 오래 전부터 산신을 모셔왔다고 한다. 예전에는 1주일 전에 금줄을 치고 제를 지냈다고 하는데 요즘에는 하루 전에 금줄을 친다. 산제당은 별도로 없...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차곡리에 흐르는 하천. 차곡리 앞으로 흐르는 하천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차곡리 동쪽에는 수리산이 있고 수리산 남쪽에는 수레의산[679.4m]이 있다. 차곡리천은 수리산과 수레의산 사이의 수리산 밑의 계곡에서 서류하여 차평리에서 차평천이 되어 차평저수지로 유입된다. 차곡리천은 차평천으로 유입되는데, 차평천은 차곡리에서 차평리로 흐르는 소하천으로 하폭은 30m...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에 속하는 법정리. 수레의산 밑에 있는 들이라서 수레들 또는 차평이라 불린다. 본래 충주군 생동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말마리 일부를 병합하여 차평리라 하고 생극면에 편입되었다. 차평1리 새터 동쪽에는 왁바실산(막발산)이 있고 차평1리의 골말 동남쪽에는 음달말산이 있으며 세고개, 서낭당이고개...
-
병암1리는 오늘날 뚜렷한 주산업이 없이 일반적으로 벼농사와 밭농사로 고추, 콩, 참깨, 인삼 등의 농사로 경제적 생활을 하고 있지만,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참외농사가 주산업이었다. 음성 생극 참외 하면 알아줄 정도로 경작을 많이 하고 참외 맛도 뛰어났었다. 이진말을 비롯한 이 지역 사람들은 참외농사를 지어 생활을 하고 자식들 공부도 시켰을 정도로 참외농사...
-
이진말은 교통이 발달한 지역에 자리하고 있는 마을로 지형 특성상 경작지가 많은 편은 아니다. 마을 앞으로 논이 펼쳐져 있으며 마을 뒤편으로 밭이 분포되어 있는데 물이 풍부하고 관개 수리가 잘되어 있다. 옛날에 이 마을도 다른 마을과 마찬가지로 먹고 살아가는 방편으로 벼농사와 보리, 참깨, 감자, 콩 등의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으며, 그렇게 큰 부자는 없었다. 그러던 가운데...
-
현재 청년회 회장은 박건수 씨로 감곡에 나가 있고 부모님만 병암1리에 살고 있다. 청년회 모임은 일 년에 2번, 추석 전날과 음력 정월 전날 모이는데, 주로 상조회 역할이 크다. 이야기를 해주신 오덕욱 할아버지가 청년일 때는 청년회 모임이 따로 없었고 마을 청년회가 생긴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하였다. 마을에 점점 나이 드신 분들이 많아지고 상을 당하면 일손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
-
김대유를 시조로 하고 김구성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음성군 세거 성씨. 시조 김대유(金大猷)는 경순왕의 손자 김정구(金正矩)의 16세손으로, 고려 말에 벼슬이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이르렀고 청성부원군(淸城府院君)에 추봉(追封)되었다. 이름난 후손으로는 조광조(趙光祖)와 함께 왕도 정치를 펴려다 해를 입은 성리학자 김식(金湜), 효종 때 영의정(領議政) 김육(金堉)과 유명한 청백리...
-
결혼하고 8개월 만에 시댁으로 김금자 할머니가 오고, 그 다음해 9월에 큰 딸이 태어났다. 친정이 서울로 이사를 가서 김금자 할머니가 봄에 올라갔는데 가을에 아이를 낳고 내려 왔다. “애기 낳으러 간 게 아니고, 처갓집이 장모님이 서울로 이사를 갔는데, 우리 처외숙이라는 분이 우리 장모님 남동생이 이양반이 사장이야. 1·4 후퇴, 6·25 때 내려가서 대구에 공장을 차린 겨. 장모...
-
보통 며느리가 출산할 때는 시어머니가 아이를 받아주는데, 시어머니는 전혀 도와주지 않았다. 한복실 할머니는 출산할 때 아이를 받아 줄 사람이 없어서 2남 2녀 모두를 혼자서 아이를 낳고 혼자 태를 잘랐다. “혼자 낳아가지고 태 자르고. 그래가지고 우리 엄마가 어떻게 자르는 걸 봤거든. 보고 했지. 가위로. 가에다가 그 가위로 대가지고 자르더라고. 우리 엄마 보니까 동생들만 어릴 때...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관성리에 있는 조각 공원.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에 위치하고 있는 조각 공원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제 분야에서 위대한 업적을 달성한 위인이나 선각자의 삶을 거대한 바위 얼굴 조각으로 조명함으로써 시대를 초월하여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끊임없는 희망과 교육적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큰바위얼굴조각공원은 음성 현대정신병원 이사장 정근희가 1974년 정신병원...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팔성3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토끼실은 팔성리의 남부 지역에 위치한 자연 마을이다. 남쪽으로는 병암리의 자연 마을인 안곤재가 자리 잡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팔성리의 자연 마을인 지부내(지비천)·말마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마을 뒷산이 토끼처럼 생겨 토끼봉이라 하고 마을 이름도 토끼실이라 불렀다. 토실(兎室) 또는 토곡(兎谷)이라 부르기도 한다. 본래 충주군...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에 속하는 법정리. 팔성산에서 이름을 따서 팔성리라 불린다. 본래 충주군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지비천, 곤지리, 말마리 일부를 병합하여 팔성리라 하고 생극면에 편입되었다. 팔성1리에 있는 팔성산(八聖山)[377m]은 경기도 이천시 율면 산성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고 서북쪽의 일산바위골에는 일산바...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팔성리에 있는 수령 약 490년의 보호수. 회화나무는 가지가 퍼지고 작은가지는 녹색이며 자르면 냄새가 난다. 잎은 어긋나고 1회 깃꼴겹잎이다. 작은 꽃잎은 7~17개씩이고 달걀 모양 또는 달걀 모양의 타원형이며, 뒷면에는 작은 잎자루와 더불어 누운털이 있다. 꽃은 8월에 연한 황색으로 피고 원추꽃차례로 달린다. 개비자의 잎은 줄 모양으로 길이는 보통 30~4...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팔성리에 있는 산. 팔성산은 임진왜란 때 향토 방위를 위해 인근 주민들이 쌓은 성이 있는 곳으로 8회를 싸워서 8회 모두 승리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팔승산(八勝山)이 팔성산(八星山)으로 변한 것이다. 팔성산의 서쪽에는 밭지부대(밧지분내)와 절골 등의 골짜기가 있고 북쪽에는 일산바위골 골짜기가 있는데 여기에 일산바위가 있다. 팔성산과 북쪽의 임오산[32...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팔성리 팔성산에 있는 고대 산성. 팔성산성은 충청북도와 경기도의 도계에 걸쳐 있는 중요한 산성이나 고문헌에는 기록이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생극면 팔성리, 금왕면 관성리의 북방 약 400간 팔성산정에 있음. 토축으로서 현존하는 부분 약 500간, 반폐함”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같은 책 경기도편에 “율면 산성리 팔성, 본성은...
-
김양덕 할머니가 「불아불아」를 불러준 다음에 ‘팥주머니(오재미) 돌리기’를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촬영하기 위해 우리가 가지고 간 네모난 건전지로 돌리다가 손에 맞지 않아서, 다음번에 팥주머니를 제대로 만들어서 보여주겠다고 약속하였다. 2월 19일에 마을 산신제 촬영으로 병암1리를 찾아갔는데, 산신제를 지낸 다음날 점심 때 마을회관으로 김양덕 할머니가 손수 만든 팥주머니를...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차평리에 있는 평산신씨 영당. 평산신씨(平山申氏)의 영정을 봉안하고 제사하기 위하여 세운 영당이다. 생극면 차평리의 수리뜰에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목조기와집이다. 공포는 다포식이고, 지붕에 돌기와를 올렸다. 정면에 ‘신씨영당(申氏影堂)’이라는 편액을 걸었고, 건물 안에는 신씨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벽돌담장으로 영당 주위를 둘렀고,...
-
2월 8일 병암1리에 찾아 갔을 때 마을회관에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아직 날씨가 많이 추워서 농사를 시작하지 않고 삼삼오오 모여서 소일거리를 하고 지내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찾아갔을 때도 남자방에서 할아버지들은 간단한 약주를 즐기며 화투놀이를 하고 있었고 여자방에서는 할머니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할아버지들에게 마을의 마을 산신제와 지명 이...
-
‘풍감 묻기(풍계묻이)’는 풍감을 숨기고 술래가 찾아내는 놀이이다. 풍감으로는 간장 종지같이 작은 물건을 사용한다. 할머니들은 마침 옆에 있던 밥그릇 뚜껑으로 풍감 묻기를 보여주었다. 놀이 방식은 한 사람을 숨기는 사람으로 정하고 술래도 한 명 정한다. 나머지 사람들은 동그랗게 원을 만들고 다리를 굽혀 세워서 앉는다. 숨기는 사람은 나머지 사람들에게 돌아가며 풍감을 주는 척을 하는...
-
시집오기 전에는 교회에 잠깐 다녔었는데 시집을 오고 나서는 시어머니가 절에 다니고 있어서 절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들을 절에 올린 뒤로 일 년에 다섯 번씩 꾸준히 절에 나가고 있다. “일 년에 정월달에 한 번 가고, 초파일에 가고, 칠월칠석날 가고, 인저 백중날은 우리 아들이 있어가지고 가고. 나 살 때까지 해 주게.” 한복실 할머니는 충주호에서 막내아들을 떠나보...
-
다른 할머니들이 도깨비 이야기를 하자 박옥금 할머니도 항아리 도깨비 이야기를 해 주었다. 이 도깨비에 들려서 그 집이 망했다고 한다. “그전에 동네에 시집을 왔는데 시집을 올 때 바리바리 싣고 왔어. 그랬는데 친정에서 뭐가 따라왔댜. 따라왔다는데 저녁이 되면 그 마루에다 그 큰 항아리를 데구루루 굴리고, 데구루루 굴리고 막 그런다네. 그래서 식구들이 죄 겁이 나서 죄 저기하고 그랬...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관성리에 있는 신경정신과 전문 병원.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관성리의 큰바위얼굴조각공원 주변에는 노인치매센터를 운영하는 의료법인 음성정신병원과 알코올 중독요양소를 운영하는 의료법인 현대정신병원이 거의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1998년 4월 6일에 의료법인 음성정신병원 정근희(鄭根喜) 이사장이 의료법인 현대정신병원을 설립하였고, 1998년 6월에 300개...
-
병암1리에서는 참외농사가 끝나면 그루갈이로 호박농사 즉 애호박농사를 지었다. 애호박농사에 대해 오덕욱 할아버지는 “참외농사 하구 후반기로 호박을 심어요. 애호박. 수확이 곱이 나오는 거야. 참외 나오는 거만큼 거의 다 나와. 참외농사를 져서 다 끝나고 참외를 뽑아내고 다시 호박을 심는 거야. 그때 호박 시세가 참 좋았어요. 그게 언제 나쁜가 하면은 장마철에 값이 비싼데...
-
혼인이야기를 듣기 위해 먼발치에서 이야기를 듣고 계시던 김금자 할머니를 오덕욱 할아버지 옆으로 모셔왔다. 뭘 그런 걸 물어보냐면서 두 분 모두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오덕욱 할아버지가 21세, 김금자 할머니가 20세였던 1955년에 혼인하였는데 당시에는 스무살만 되면 혼인을 하였다고 설명해 주었다. 오덕욱 할아버지의 부인인 김금자 할머니는 1936년 경기도 율면에서 4녀...
-
남편은 청송심씨, ‘심대웅’씨로 전라도 광주에서 살다가 아주 어릴 때 병암1리로 이사를 왔다. 시아버지는 광주에 살고 있을 때 일찍 돌아가셨다고 한다. 남편의 형제로 남동생만 있었고, 남동생의 장모가 한복실 할머니 친정 근처에 살고 있어서 그 분의 중매로 혼인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잘 사는 줄 알고 시집을 왔는데 와보니 속아서 왔다며 거듭 말하였다. “여기는 어떻게 소개해 가지...
-
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과 생극면에서 서식하던 황새과에 속한 새. 황새는 황새목 황새과의 조류로 학명은 Ciconia boyciana이며, 1968년 5월 30일 천연기념물 제199호로 지정되었다. 한국에 서식하는 황새는 러시아와 중국 북동부 및 일본 등에서 번식하는 황새와 같은 아종으로 유럽의 황새보다 훨씬 크다. 유럽 황새는 부리와 다리가 모두 검붉은 색인 데 비해 한국의 황새는...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병암리에 있는 자동차용 플라스틱 사출성형 제품 제조업체. 고객 만족 및 친환경 경영을 추구하며 플라스틱 사출성형 전문 업체로 성장하여 끊임없는 발전과 기업 이윤 추구뿐만 아니라 지역 경제 활성화에 보탬이 되고자 설립되었다. 1986년 5월 30일 인천광역시 북구 작전동에서 대성I.P(주)로 설립되었다. 1987년 12월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으로 확장·이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