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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2년 9월 12일 정조가 도봉서원에서 제사를 올리게 하며 지은 제문. 「도봉서원 치제문(道峯書院致祭文)」은 1792년(정조 16) 9월 10일, 정조(正祖)[1752~1800]가 광릉(光陵)에 참배하러 간 일이 있는데, 이틀 뒤 도성으로 돌아오는 길에 도봉서원을 지날 때 승지를 보내 제사를 지내게 하며 직접 지은 제문(祭文)이다. 「도봉서원 치제문」은 정조의 시문집인 『홍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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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울특별시 도봉구 출신의 문신이자 시인.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지숙(志叔). 고조할아버지는 좌찬성 능안 부원군(綾安府院君) 구사맹(具思孟)으로, 딸이 인조의 어머니인 인헌 왕후(仁獻王后)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구굉(具宏)이고, 할아버지는 구인기(具仁墍)이다. 아버지는 숙종 대 한성부 판윤 겸 총융사·지돈령부사 등을 지낸 구일(具鎰)로, 구지정(具志禎)[1647~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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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도봉구 지역을 포함한 양주 일대를 관할하는 양주 목사를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시회(時會), 호는 석담(石潭). 증조할아버지 권상(權常)은 효행으로 『삼강록(三綱錄)』에 이름을 올렸으며, 노인직으로 지중추부사를 제수 받았다. 할아버지 권협(權悏)은 정유재란 당시 명에 고급사(告急使)로 파견되어 원병을 청하기도 하였으며, 벼슬은 예조판서에 이르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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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양주 목사를 지내고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묘가 있는 문신. 본관은 사천(泗川). 자는 내지(來之), 호는 수옹(睡翁)·수헌(睡軒). 증조할아버지는 기묘명현(己卯名賢)의 한 명인 현헌공(玄軒公) 목세칭(睦世秤)이고, 아버지는 지중추부사를 지내고 충정(忠貞) 시호를 받은 목서흠(睦敍欽)이다. 어머니는 권탁(權晫)의 딸인 안동 권씨(安東權氏)이다. 5남 2녀 중 다섯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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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사천(泗川). 자는 순경(舜卿), 호는 매계(梅溪). 할아버지는 기묘명현(己卯名賢)의 한 명인 현헌공(玄軒公) 목세칭(睦世秤)이고, 아버지는 이조참판을 지낸 목첨(睦詹)이다. 어머니는 증 병조참판 정건(鄭謇)의 딸이다. 부인은 권근(權近)의 증손이자 권탁(權晫)의 딸인 안동 권씨(安東權氏)로, 슬하에 5남 2녀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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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의 사천 목씨 묘역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목서흠의 신도비. 목서흠(睦叙欽)[1571~1652]의 본관은 사천(泗川)이고, 자는 순경(舜卿)이며 호는 매계(梅溪)이다. 기묘명현(己卯名賢) 중 하나인 현헌공(玄軒公) 목세칭(睦世秤)의 손자이다. 양구 현감(楊口縣監)·홍문관(弘文館) 수찬(修撰) 등을 거쳤으며,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이후 북관 선유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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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무신. 본관은 사천(泗川). 증조할아버지 목첨(睦詹)은 선조 연간에 대사간, 도승지, 이조참판 등을 역임하였으며, 할아버지 목서흠(睦敍欽)은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 인조를 호종한 바 있으며 관직이 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아버지 목처선(睦處善)은 목서흠의 큰아들로 인천 감목관, 연천 현감 등을 지냈다. 어머니는 지중추부사를 역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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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사천(泗川). 자는 사백(士伯), 호는 청헌(靑軒). 기묘명현(己卯名賢)의 한 명인 현헌공(玄軒公) 목세칭(睦世秤)의 현손(玄孫)이며, 할아버지는 영의정에 추증되고 충정(忠貞)의 시호를 받은 목서흠(睦叙欽)이다. 아버지는 남인의 영수로서 숙종 대 환국의 중심에 있었던 좌의정 목내선(睦來善)이다. 어머니는 목내선의 계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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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도봉 서원에서 공부하였던 학자.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언휘(彦暉), 호는 성재(誠齋). 아버지는 진사 민만(閔晩)이고, 어머니는 압해 정씨(押海丁氏)이다. 부인은 충의위(忠義衛) 이제(李濟)의 딸인 한산 이씨(韓山李氏)로, 슬하에 민윤창(閔允昌)·민경창(閔景昌)·민회창(閔會昌) 등 3남 1녀를 두었다. 민이승(閔以升)[1653~1697]은 집안이 몹시 가난하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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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도봉구 지역을 포함한 양주 일대를 관할하는 양주 목사에 제수된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치구(稚久). 할아버지는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민광훈(閔光勳)이고, 아버지는 좌의정 민정중(閔鼎重)이며, 어머니는 예조판서 남이성(南二星)의 딸인 의령 남씨(宜寧南氏)이다. 할아버지부터 민진장까지 3대가 연이어서 과거에 장원하여 삼세 문장(三世文壯)이라 불렸다. 민진장(閔鎭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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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던 이주진 묘표의 글씨를 쓴 문신이자 학자. 서명응(徐命膺)[1716~1787]은 정조가 즉위한 후 규장각의 설립과 그 편찬 사업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인물로 평가된다. 본관은 달성(達成). 자는 군수(君受), 호는 보만재(保晩齋). 5대조 할아버지가 판서 서성(徐渻)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서경주(徐景霌)로 선조의 첫째 옹주인 정신 옹주(貞愼翁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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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도봉 서원과 관련하여 활동한 인물.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달경(達卿), 호는 추담(秋潭), 환성당(喚醒堂). 창녕 성씨(昌寧成氏) 17세손이다. 아버지는 성호영(成虎英), 어머니는 덕수 이씨(德水李氏)로 5남 2녀 가운데 둘째 아들이다. 남양 홍씨(南陽洪氏)와 혼인하여 1남 1녀를 두었다. 성만징(成晩徵)은 1659년(효종 10) 11월 7일 상주(尙州) 흥암리(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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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있는 도봉서원에 송시열을 향사하는 문제로 노론·소론·남인 간에 벌어진 논쟁. 17세기 말 도봉서원에 송시열을 향사하느냐를 두고 벌어진 논쟁은 당시 도봉서원의 위상과 정치적 상황이 상당히 반영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도봉서원은 1574년 양주 목사로 부임한 남언경(南彦經)이 조광조를 배향하고 서원 공역을 시작한 이래, 허엽(許曄)·백인걸(白仁傑) 등 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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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의 서울 초안산 분묘군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내시. 승극철은 선조(宣祖) 대의 내시 김계한(金繼韓)[?~1625]의 손자로서, 김계한은 임진왜란 당시 선조를 시중한 공으로 호성공신(扈聖功臣) 3등에 책봉되었고 숭록대부(崇祿大夫)에까지 올랐으며, 내시가로 알려진 연양군파(延陽君派)의 시조이다. 승극철의 가계에 대하여 이 밖의 자세한 사항은 알려져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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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별장 터가 있는 조선 후기의 왕비. 본관은 풍양(豊壤). 아버지는 풍은 부원군(豊恩府院君) 조만영(趙萬永)으로, 예조 판서(禮曹判書)·이조 판서(吏曹判書) 등을 거쳐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에 올랐다. 시호는 충경(忠敬)이다. 어머니는 송준길(宋浚吉)의 후손으로 목사를 지낸 송시연(宋時淵)의 딸이다. 신정왕후(神貞王后)는 1819년(순조 19) 12세에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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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도봉 서원과 관련하여 활동한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字)는 계빈(季賓)으로 청송 심씨(靑松沈氏) 16세손이다. 이조판서로 추증된 심수견(沈壽堅)과 부평 이씨(富平李氏) 사이에서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첫째 부인 해주 최씨(海州崔氏)와 혼인하여 1남을 두었고 둘째 부인인 우봉 이씨(牛峰李氏)와의 사이에 1남 2녀를 두었다. 심정관(沈廷觀)의 오종손(五從孫)인 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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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0년 현 도봉구 지역을 다스렸던 양주목사 윤면동이 작성한 해유문서. 조선 시대에는 관원이 교체되었을 때 전임자와 후임자 사이에 그 소관 업무를 인수인계한 후 이를 상급 기관에 보고하도록 하였는데, 이 절차를 해유(解由)라 한다. 지방 수령의 경우, 관할 구역 내의 관아·서원 및 향교에 이르기까지 각종 건물 및 물품에 대하여 인수받았을 당시로부터 현재까지의 내역을 기록하여 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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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울특별시 도봉 지역에 거주하였던 문신이자 유학자. 본관은 함종(咸從). 자는 순서(舜瑞), 호는 기원(杞園). 증조할아버지는 어한명(魚漢明)이고, 할아버지는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어진익(魚震翼)이다. 아버지는 한성부 우윤 어사형(魚史衡)이며, 경종의 장인인 함원 부원군(咸原府院君) 어유구(魚有龜)가 형이다. 어유봉(魚有鳳)[1672~1744]은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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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 1동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의 내시. 자는 공망(公望). 내시 집안 족보인 『양세 계보(養世系譜)』에 따르면 여기양(呂起陽)은 1680년(숙종 6) 보사원종공신(保社原從功臣) 1등에 책록된 김영(金玲)의 세 아들 가운데 둘째 아들이다. 김의장(金義章)을 양자로 들였다. 여기양의 정확한 생몰 연대는 남아 있지 않다. 고향은 영변(寧邊)이다. 『승정원일기(承政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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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의 도봉 서원과 관련된 조선 후기의 왕. 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이금(李昑). 자는 광숙(光叔), 호는 양성헌(養性軒). 조선의 제19대 국왕 숙종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무수리 출신의 화경 숙빈(和敬淑嬪) 최씨(崔氏)이다. 제20대 왕 경종의 동생이며, 제22대 왕 정조의 할아버지이다. 1704년(숙종 30) 서종제(徐宗悌)의 딸 정성 왕후(貞聖王后)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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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무신.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영숙(永叔), 초명은 흥우(興佑). 아버지는 용양위 부호군(行龍驤衛副護軍)을 역임한 유석령(劉碩齡)으로, 유흥조(劉興祚)[1697~1750]는 큰아들이다. 첫 번째 부인인 한산 조씨(韓山趙氏)와의 사이에 2남 1녀를 두었고 두 번째 부인인 정선 이씨(旌善李氏) 사이에 1남 3녀를 두었다. 『한양 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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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도봉구 지역을 포함한 양주 일대를 관할하는 양주 목사를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경유(景孺), 호는 근암(近庵). 영의정을 지낸 윤두수(尹斗壽)의 5세손이다. 할아버지 윤계(尹堦)는 황해도 관찰사, 한성 판윤, 공조판서 등을 역임하다가 기사환국(己巳換局) 당시 송시열(宋時烈)의 당으로 몰려 강진에 유배되었다가 사망하였다. 시호는 익정(翼正)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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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관료.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중옥(仲玉), 호는 은재(隱齋).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의 5세손으로 아버지는 의금부 도사를 지낸 이징신(李徵臣)이다. 이규보(李珪輔)[1708~1783]는 4남 2녀 중 둘째 아들이다. 부인은 청주 한씨(淸州韓氏)로, 슬하에 2남 5녀를 두었다. 이규보의 생애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그와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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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도봉 서원 원장을 지낸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미숙(美叔), 호는 농계(聾溪)·취몽헌(醉夢軒). 이색(李穡)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관찰사를 역임한 이동직(李東稷)이다. 이수언(李秀彦)[1636~1697]은 1660년(현종 1) 사마시에 합격한 이후, 1669년(현종 10) 정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 예문관의 벼슬을 거쳐 정언·지평을 역임하고 1681년(숙종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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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도봉 서원과 관련한 글을 쓴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여고(汝固), 호는 택당(澤堂)·남궁외사(南宮外史)·택구거사(澤癯居士). 아버지는 좌찬성에 추증된 이안성(李安性)이다. 부인은 대사헌 청양군(靑陽君) 심의겸(沈義謙)의 손녀인 청송 심씨(靑松沈氏)로 슬하에 3남 3녀를 두었다. 이식(李植)[1584~1647]은 한성(漢城) 남수문(南水門) 조암동(槽巖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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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무덤이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대래(大來), 호는 죽수(竹叟). 이이태(李以泰)는 임영 대군(臨瀛大君)을 중시조로 하는 전주 이씨(全州李氏) 정간공파(貞簡公派) 8세손으로, 평양 감사를 지낸 이만영(李晩榮)의 3남 3녀 가운데 장남이다. 부인은 함안 조씨(咸安趙氏) 조형원(趙泂源)의 딸이며, 3남 4녀를 두었다. 『전주 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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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내의. 본관은 태안(泰安). 자는 성범(聖範). 아버지는 주학 계사(籌學計士)를 지낸 이봉령(李鳳齡)으로, 이이해(李以楷)[1707~1771]는 큰아들이다. 첫 번째 부인은 첨절제사 김성장(金聖章)의 딸인 청양 김씨(靑陽金氏)이며, 두 번째 부인은 사과(司果) 한두기(韓斗璣)의 딸인 청주 한씨(淸州韓氏)이다. 두 딸만 있어서 사촌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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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도봉구 지역을 포함한 양주 일대를 관할하는 양주 목사를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구이(久而), 호는 백묵당(白默堂). 효령 대군(孝寧大君)의 10세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이괄(李适)의 난·정묘호란·병자호란 당시 세 차례나 인조를 호종(扈從)한 이목(李楘)이고, 할아버지는 부제학을 지낸 이지항(李之恒)이다. 아버지는 목사 이원구(李元龜)로, 4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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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노천(老泉), 호는 취촌(醉村). 증조할아버지는 이안눌(李安訥)이고, 할아버지는 이합(李柙)이다. 아버지는 한성부 판윤 이광하(李光夏)이며, 어머니는 영의정을 지낸 심지원(沈之源)의 딸이다. 이집(李 土+集)[1664~1733]은 21세 되던 1684년(숙종 10) 생원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이후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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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도봉구 지역을 포함한 양주 일대를 관할하는 양주 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동보(同甫), 호는 지촌(芝村)·간암(艮庵)·지사재(志事齋). 증조할아버지는 좌의정을 지낸 이정구(李廷龜)이고, 할아버지는 대제학·예조판서 등을 역임한 이명한(李明漢)이다. 이명한은 병자호란 후 척화파로 지목되어 심양에 억류된 바 있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아버지는 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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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도봉구 지역을 포함한 양주 일대를 관할하는 양주 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공직(公直), 호는 추천(秋川). 영의정을 지낸 정광필(鄭光弼)의 4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좌의정을 지낸 정유길(鄭惟吉)이며, 아버지는 좌의정 정창연(鄭昌衍)이다. 어머니는 별좌 한세원(韓世遠)의 딸인 청주 한씨(淸州韓氏)이다. 부인은 돈령부 도정 민유경(閔有慶)의 딸인 여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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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도봉구 지역을 포함한 양주 일대를 관할하는 양주 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우서(禹瑞), 호는 장륙당(藏六堂). 할아버지는 지돈령부사를 지낸 조존성(趙存性)이고, 아버지는 형조판서를 지낸 조계원(趙啓遠)이다. 부인은 신흠(申欽)의 딸이다. 조구석(趙龜錫)[1615~1665]은 이항복(李恒福)의 문인으로 1648년(인조 26) 정시 병과에 4위로 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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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도봉구 지역을 포함한 양주 일대를 관할하는 양주 목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효백(孝伯), 호는 곤륜(昆侖). 증조할아버지는 인조 대에 반정 공신으로 영의정을 지낸 최명길(崔鳴吉)이며, 아버지는 영의정 최석정(崔錫鼎)이다. 어머니는 경주 이씨(慶州李氏)로 좌의정 이경억(李慶億)의 딸이며, 부인은 판서를 지낸 오두인(吳斗寅)의 딸이다. 최창대(崔昌大)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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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도봉구 지역을 포함한 양주 일대를 관할하는 양주 목사에 제수된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혜백(惠伯), 호는 수허재(守虛齋). 증조할아버지는 경기도 관찰사를 지낸 홍처후(洪處厚)이고, 할아버지는 사헌부 장령을 지낸 홍수하(洪受河)이며, 양부는 증이조참판 홍우석(洪禹錫), 생부는 홍우규(洪禹圭)이다. 어머니는 박세구(朴世耉)의 딸이다. 홍계적(洪啓迪)은 문과에 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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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도봉구 지역을 포함한 양주 일대를 관할하는 양주 목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군실(君實), 호는 청계(淸溪)·창람(蒼嵐). 할아버지는 홍숙(洪琡)이고 아버지는 진사 홍원호(洪遠湖)이다. 어머니는 조정호(趙廷虎)의 딸이고, 부인은 덕수 이씨(德水李氏)이다. 홍위(洪葳)는 이단상(李端相), 김수항(金壽恒)과 교류하였으며, 송시열(宋時烈)이 그의 묘지명을 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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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도봉구 지역을 포함한 양주 일대를 관할하는 양주 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도진(道陳)이다. 할아버지는 영안위(永安尉) 홍주원(洪柱元)이며, 할머니는 선조의 첫째 딸인 정명 공주(貞明公主)이다. 아버지는 두 번이나 장원으로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우참찬에 이른 홍만용(洪萬容)으로,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홍중주(洪重疇)[1672~?]는 169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