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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인 구봉 송익필의 시문집. 『구봉집(龜峯集)』은 송익필(宋翼弼)[1534~1599]의 문집이다. 송익필은 본관이 여산(礪山)이며, 자는 운장(雲長), 호는 구봉(龜峰) 또는 현승(玄繩),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송익필은 재능이 비범하고 문장이 뛰어나 동생 송한필(宋翰弼)과 함께 일찍부터 문명을 날렸고, 명문(名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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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이 시조이고 김득인이 입향조인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세거 성씨. 강릉김씨(江陵金氏)는 김알지(金閼智)의 후손이며, 김춘추(金春秋)에서 나뉜 무열계 진골의 직계이다. 신라의 중대에서 하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김주원(金周元)이 강릉으로 퇴거하여 관향으로 삼으면서 강릉김씨가 되었고, 경주 김씨 중에서 맨 처음 분파된 가문이다. 충청남도 당진시 원당동과 시곡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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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무신. 구문로(具文老)[?~?]는 조선 시대 세조 때 무과에 급제하고 평안도 조전 절제사(助戰節制使)가 되었다.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으며, 여진 토벌에 힘을 다해 ‘흑면 장군(黑面將軍)’이라 불렸다. 구문로의 본관은 능성(綾城)이고, 8세 구서(具緖)의 삼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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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가교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무신 구문로의 신도비. 구문로(具文老)[?~?]는 어려서부터 기개와 도량이 뛰어났고, 용맹과 지략을 갖추었다. 세조 때 무과에 급제하여 1461년(세조 7)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와 평안도 조전절제사(助戰節制使)에 겸직으로 임명되었다. 1467년(세조 13)에 일어난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진압하여 좌익원종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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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조선 전기 문신. 구인문(具人文)[1409~1462]은 조선 세종 때의 문신으로, 세조가 왕위에 오르자 당진 정미면 봉생리에 귀향하여 은둔하였다. 성삼문의 거사가 실패하자 사육신의 시신을 수습했다고 전하며,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두문불출하였다. 구인문의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장숙(章叔), 호는 수옹(睡翁)이다. 아버지는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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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삼재가 시조이고 유승탄과 유언광이 입향조인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세거 성씨. 기계유씨(杞溪俞氏)는 신라 때의 유삼재(兪三宰)를 시조로 하는 성씨다.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성상리에 주부동정공파(主簿同正公派), 우강면 창리에는 단성공파(丹城公派)가 세거지를 형성하고 있다. 면천면 성상리의 기계유씨 입향조는 유승탄(兪承坦)이고, 우강면 창리의 입향조는 유언광(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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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김광렬의 신도비. 김광렬(金光烈)[?~1545]은 영돈령 좌원 부원군 윤여필(尹汝弼)의 외손자다. 중종 대에 생원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현감에 오르고 사직서 영(社稷暑令)을 역임하였다. 인종이 경학으로써 익찬(翊贊)에 선발하여 장차 크게 쓰려 하였으나 굳이 사양하고 혼란한 정치를 피해 정미면으로 낙향하였다.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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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묘소와 신도비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무신. 김교(金嶠)[1428~1480]는 조선 초기 여진 정벌에 큰 공을 세웠고, 이시애의 난을 진압한 무신이며 어린 성종을 왕으로 옹립한 공신이다. 평양 감사로 재직 중 사망하였다. 김교의 본관은 선산(善山)이며, 자는 고경(高卿), 시호는 양양(良襄)이다. 아버지는 일선 부원군(一善府院君) 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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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에 있는 조선 전기 무신인 김교의 신도비. 김교(金嶠)[1428~1480]는 조선 전기 이시애의 난을 진압한 무신으로, 묘소와 신도비가 당진시 합덕읍 석우리에 있다. 김교는 조선 전기의 무신으로 본관은 선산(善山)이고, 아버지는 김시로(金時露)다. 어려서부터 무술에 뛰어나 1450년(세종 32)에 무과에 급제하고, 1457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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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무신. 남유(南瑜)[1552~1598]는 이순신(李舜臣)을 도와 왜군과 싸우다 노량 해전(露梁海戰)에서 전사한 무인이다. 남유의 본관은 의령(宜寧)이며, 자는 공근(公瑾)이다. 할아버지는 공조 참판을 지낸 남세건(南世建)이며, 아버지는 퇴계 이황과 함께 호당에서 왕세자를 교육한 남응룡(南應龍), 어머니는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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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도문리에 위치한 용재 이행과 이의무 부자의 능묘가 있는 곳의 안쪽에 있는 마을. 중종 때 좌의정 용재(容齋) 이행(李荇)과 전 홍주 목사 이의무(李宜茂) 부자의 능묘가 있는 곳의 안쪽에 있는 마을이기 때문에, 능안 마을이라 한다. 한자 표기로는 능내(陵內)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는 한양이나 개성을 중심으로 왕릉이 많아서 촌락 지명에 ‘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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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우두동에 있던 당진현의 공세미 보관 창고. 당진 북창(唐津北倉)은 조선 시대 당진현에서 관리하던 현물 세곡을 보관하던 조창이다. 『당진읍지』를 보면 당진현에는 읍창, 북창, 해창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 당진 북창은 조선 초기에 당진현의 북쪽에 설치되었던 조창으로 보관했던 공세미는 조운선을 통해 경창으로 옮겨 갔다. 당진 북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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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능안길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이의무의 묘와 신도비. 이의무 묘 및 신도비는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능안길 143-26[도문리 산78-1] 덕수 이씨 묘역 안에 있다. 이의무(李宜茂)[1449~1507]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형지(馨之), 호는 연헌(連軒)이다. 지돈령 부사(知敦寧府事) 이명신(李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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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옛 당진읍성에 있었던 조선 시대 관사(館舍). 당진객사는 옛 당진읍성 안에 있던 객사이다. 공적 업무를 위해 출장 온 관리들의 숙박을 위해 지어진 것으로 객관(客館)이라고도 한다. 『고려사』에는 고려 말 1279년(충렬왕 5) 8월부터 지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당진객사는 조선 초기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당진객사와 관련된 기록은 『세종실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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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에 있는 조선 전기의 읍성. 당진면천읍성은 조선 시대 면천군 관아와 행정 소재지를 외침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하여 소재지의 외곽을 둘러 돌로 쌓았던 조선 초기의 전형적인 평지 읍성이다. 면천읍성은 정확한 축성 시기가 문헌 기록에 남아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1439년(세종 21) 윤 2월에 축성을 시작하여 같은 해 11월에 3,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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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읍내동에 있는 조선 초기의 읍성. 조선 시대 당진현 관아와 행정 소재지를 외침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하여 행정 소재지의 외곽을 빙 둘러 돌로 쌓았던 조선 초기의 읍성으로 평산성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성곽 조에 의하면 1440년(세종 22)에 쌓았으며, 둘레가 1,954척, 높이 8척이고 안에 우물이 두 곳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세종 때에는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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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당진포리에 있던 조선 시대 해안 방어를 위한 성. 당진포(唐津浦)는 백제 말부터 당나라를 왕래하는 사신들이 수시로 드나들던 나루터가 있어서 ‘당진포’라고 불렸다. 당진포 나루는 외국과의 교류는 물론 세곡미를 거두어 저장하던 조창인 당진포 해창이 있어서 조정에서는 엄중한 보호와 방어가 필요했던 곳이다. 당진포진성(唐津浦鎭城)은 충청 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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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있는 조선 시대의 중등 교육 기관. 당진 향교는 조선 전기에 설립되어 당진 지역에서 중등 교육을 담당하던 대표적인 교육 기관이다. 향교는 서당에서 기초 교육을 수학한 양반의 자제들이 입학하여 수학하는 곳이었다. 일반적으로 향교에서는 선현의 제사를 받들고 후진을 양성하며 학문을 연마하였으며, 조선 후기 등장한 서원과 함께 지방 교육의 중추를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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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에 있었던 공세미를 보관하던 조창 터. 면천 북창은 해안에 면한 당진시 송산면 당산리에 있었던 조창이다. 면천에는 여러 조창과 사창이 설치되었는데, 그 조창 가운데 하나가 면천 북창이다. 김정호의 『대동지지(大東地志)』 면천 창고 조에 보면, 면천 북창은 창택산 서쪽 해변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고, 『면천읍지』에는 북창은 36간으로 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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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에 있었던 조선 시대의 관사. 면천객사(沔川客舍)는 목판에 쓴 중수 기록문에 의하면 건립 연대가 1433년(세종 15)이며, 그 후 다섯 차례나 중수하였고 1662년(현종 3)에 다시 지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면천객사는 현판을 ‘조종관(朝宗館)’이라 양각하여 새겼는데, ‘조종(朝宗)’이란 제후가 임금을 배알하여 조회를 한다는 뜻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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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승이 시조이고 박지가 입향조인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세거 성씨. 충청남도 당진시 우두동에 세거지를 형성하고 있는 무안박씨(務安朴氏)는 상서공파(尙書公派)이다. 입향조인 박지(朴智)[?~?]는 조선이 개국하자 고려에 충절을 지키기로 다짐하고 우두동에 입향하여 세이암에 앉아 낚시로 소일하면서 농업과 학문에 종사하였다. 후손들은 크게 번성하여 당진의 유력한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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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매곡리에서 활동한 조선 전기의 학자. 송익필(宋翼弼)[1534~1599]의 본관은 여산(廬山), 자는 운장(雲長), 호는 구봉(龜峯),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할아버지는 직장(直長)을 지낸 송인(宋璘), 아버지는 판관 송사련(宋祀連), 어머니는 연일 정씨(延日鄭氏)이다. 송익필은 재능이 비범하고 문장이 뛰어나 동생 송한필(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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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해주 오씨 문중 묘역에 돌로 만들어 세운 등. 장명등(長明燈)은 분묘 앞에 세운 네모진 모양의 석등이다. 무덤 앞이나 사찰의 경내에 세워진 장명등은 받침대와 몸체 부분·지붕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장명등의 기능은 본질적으로 묘역이나 건물의 외부 공간을 밝히는 데 있으나, 분묘의 장명등은 조선 시대 피장자의신분을 표시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분묘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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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에 있는 조선 시대의 돌미륵. 신평 돌미륵은 주민들이 믿음의 대상으로 삼았던 민간 신앙의 유적이다. 지역 사회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미륵을 조성하고 신앙하는 일은 매향 의식과 더불어 전통 사회의 민간에서 흔히 행해지던 일이다. 신평 돌미륵은 전통 시대에 마을 수호와 안녕을 기원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특기할 사항은 신평 돌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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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종국을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이 관향인 세거 성씨. 신평호씨(新平扈氏)의 시조는 고려 말의 문신 호종국(扈從國)[1352~1418]이다.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신평(新平)으로 낙향하였다. 그리고 신평을 중심으로 학문에 전념하며 유유자적한 삶을 살았다. 호종국은 많은 자손을 두었는데, 호장손(扈長孫)[1405~1466]과 호정일(扈精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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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고대리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학자. 안민학(安敏學)[1542~1601]은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고대리에 세거지를 형성하고 있는 광주 안씨(廣州安氏)의 대표적인 인물로, 율곡 이이(李珥), 우계 성혼(成渾)과 학문적 교류를 나눈 조선 전기의 학자이다. 안민학의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습지(習之)·이습(而習)이며, 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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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묘소가 있는 임진왜란 때 순절한 충신. 안치화(安致和)[1542~1592]는 조선 선조 때의 문신으로, 임진왜란 때 용인(龍仁) 전투에서 순절한 충신이다. 안치화의 후손들은 소절공파(昭節公派)이며, 강원도 원주시와 충청남도 논산시에 세거지를 이루고 있다. 안치화의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정숙(正淑), 호는 성재(誠齋)이다.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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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시곡리에 세워진 윤황의 신도비. 윤황(尹璜)은 고려 말의 충신으로 자호는 후송이며, 광성대부 문하평리 공조 전서[판서]를 역임하였다. 윤황은 도평의녹사 문하평리 윤수균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성계가 역성혁명(易姓革命)으로 고려를 멸하고 조선을 개국하자 당시의 최고 행정 관청인 문하부의 문하평리 벼슬에 있던 윤황은 조선의 신하가 되지 않기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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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조선 전기 문신. 이성언(李誠彦)[1380~?)]은 조선 세종 때 이조 판서 겸 홍문관 부제학을 지냈는데, 이가종(李可種)이라고도 한다. 신평 이씨 문정공파의 파조이며, 신평 이씨 종중은 문정사(文定祠)를 세워 이성언을 제향하고 있다. 이성언의 본관은 신평(新平), 시호는 문정(文定)이다. 예조 판서를 지낸 이상원(李上垣)의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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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이양원(李陽元)[1526~1592]은 조선 선조 때의 문신으로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유도대장(留都大將)[임금이 서울을 떠나 거둥할 때, 도성 안을 지키던 대장]으로 한강을 수호하고 왜적을 무찔렀으나, 선조가 의주를 넘었다는 와전된 소식을 접하고 단식 끝에 순절하였다. 이양원의 본관은 전주(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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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이의무(李宜茂)[1449~1507]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과 『성종실록(成宗實錄)』 편찬에 참여하였다. 무오사화(戊午士禍)에 연루되어 평안도 어천역(魚川驛)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나 홍주 목사로 부임하였다. 이의무의 묘소가 있는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도문리에 후손들이 집성촌을 형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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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 있는 이첨의 신도비 이첨(李詹)[1345~1405]은 신평현 신북면 오사리[현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면 오곡리]에서 이희상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신평(新平), 자는 중숙(中叔), 호는 쌍매당(雙梅堂), 시호는 문안(文案)이다. 이첨은 1365년(공민왕 14)에 진사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갔다. 우왕 때 이인임과 지윤을 처벌할 것을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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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이행(李荇)[1478~1534]은 연산군 때 관직 생활을 시작하여 중종 때 좌의정에 오른 문신이다. 16세기 전반기 요동치던 정국의 중심에 서서 많은 풍파를 겪었으며, 『성종실록』 편찬과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의 제작에도 깊이 참여하였다. 또한 당진시 송산면에 회화나무를 심고 정착하여 송산면 덕수 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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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원당동에 있는 조선 전기 학자 송익필의 재실. 입한재는 구봉(龜峯) 송익필(宋翼弼)[1534~1599]의 위패를 모신 재실로, 충청남도 당진시 원당동의 묘역 입구에 세워져 있다. 입한재는 충청남도 당진시 원당동 144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송익필은 예학 및 문장의 대가였으나 후손이 변변치 못하여 제향도 모시지 못하였는데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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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의 문신 안민학이 아내를 잃은 비통한 슬픔을 적은 글. 1978년 봄 안씨 문중(門中)에서 38선 접경(接境)인 파주군 주내면 봉암리 방축골에 있는 선대(先代) 조모(祖母)의 산소를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고대리 선영(先塋)으로 이장하는 과정에서 시신의 관을 열었다. 이때 미이라화 된 시신의 가슴 위에 「애도문」이 놓여 있었다. 이 글은 풍애 안민학이 죽은 부인에게 간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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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언겸이 시조이고 정암이 입향조인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세거 성씨. 함평정씨(咸平鄭氏)는 16세기 중엽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 수당리에 입향하였다. 현재 수당리 주민 100여 가구 중 60여 호가 함평정씨일 정도로 집성촌을 형성하고 있다. 입향 연륜이 깊어 일명 ‘숯골 정씨’라고 불린다. 당진 지역 함평정씨의 대표적인 인물은 한말에서 일제 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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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당진 출신 왕비이며 단종의 생모. 현덕왕후(顯德王后)[1418~1441]는 문종의 세자 시절 세자빈(世子嬪)으로, 단종(端宗)의 생모이다. 단종을 출산한 직후 사망하였다. 능은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현릉(顯陵)이다. 현덕왕후의 본관은 안동(安東)으로, 화산 부원군(花山府院君) 권전(權專)[1371~1441]과 해령 부부인(海寧府夫人) 최씨(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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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조선 전기의 부마. 홍려(洪礪)[?~1533]는 조선 전기 중종(中宗)의 부마이다. 작서의 변[灼鼠之變]에 관련되었다는 김안로(金安老)의 무고(誣告)로 억울한 죽음을 당하였다. 홍려의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아버지는 충청도 관찰사를 지낸 홍서주(洪敍疇)[1499~1546]이며, 할아버지는 좌찬성을 지낸 홍숙(洪淑)[14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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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 중방리에 있었던 옛 홍주의 조창 터. 당진시 순성면 중방리는 원래 면천군 가화면 지역으로 중방들에 마을이 생겼으므로 중방들 또는 중방평이라 하였다. 중방리에는 옛 신남면 창리 지역이 포함되었는데 현재의 북창 마을이다. 홍주 북창은 북창 마을에 있었던 옛 홍주의 조창으로, 북창 마을의 지명은 바로 이곳이 홍주 북창이 있었던 곳이라는 데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