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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용천리와 수안보면 중산리를 연결하는 고개. 1891년에 편찬된 『연풍현읍지(延豊縣邑誌)』에, “갈마현대로(渴馬峴大路)는 충주목과 접하고 있는 연풍현에서 북쪽으로 40리 떨어져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옛날 경상도에서 올라오는 말이 이곳에 오면 심한 갈증을 느끼게 되어 붙어진 고개이름이라고 한다. 또한 용당마을(일명 용댕이) 근처에 갈마음수형(渴馬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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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고운리와 살미면 공이리를 연결하는 고개. 명칭의 유래가 분명하지 않지만 「갑돌이와 갑순이」 노랫말에서 나오는 갑돌이 총각이 연상되는 고개이다. 일명 갑둥이고개, 갑동재, 갑티재 또는 갑돌이재, 갑돌리재 등으로도 부르고 있다. 갑둥이재의 북쪽에는 대미산[688m], 남서쪽에는 적보산(689m, 일명 첩푸산), 남쪽에는 망대봉[519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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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신천(信川). 문하시중을 지낸 강지연(康之淵)의 6세손으로 상산백 강서(康庶)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동생은 국구(왕비의 아버지)인 상산부원군 강윤성(康允成)이다. 원래 천민이었으나 충숙왕을 섬겨 호군(護軍)이 되었다. 호군 재직 중 낭장(郞將) 백유(白儒)의 처를 강간한 죄로 곤장을 맞고 섬에 유배되었다. 그 후 조적(曺頔)의 난 때 왕을 시종한 공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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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원래 이름은 고니실로, 이것을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공이곡(公耳谷)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유촌과 송정 등 자연마을을 통합하면서 공이리라 하였다. 공이리는 국도 36호선을 따라가다 신당리가 끝나는 지점에서 공이교를 지나 오른쪽으로 길게 이어진 골짜기에 형성된 마을이다. 마을 북쪽에 암수바위가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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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금녕(金寧)이다. 김창기는 부친이 병환 중에 소·대변을 받는 등 효자로 소문이 자자하였다. 또 마을 위해서 부인 추현금 여사와 상의하여 문전옥답을 1969년 설운1리 마을회관 건립 부지 1,090㎡(330평)을 희사하였다. 박정희 정부 시절 웃어른을 공경하고 부모에게 효도하여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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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내화동과 보사동에서 이름을 따서 내사리라 하였다. 1757~1765년에 편찬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내화동은 내화석(乃火石)이라 하였고, 1907년 발간한 『한국 호구표』에 처음으로 내화동과 함께 보사동이 기록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내화동과 보사동을 병합하고 내사리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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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육영사업가. 노철우는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내사2리 이장을 지냈으며, 1960년에는 제3대 살미면의회 의원으로 활동하였다. 또한 아버지 노병덕이 꿈에 신선을 만나 얘기를 듣고 지었다는 내사리의 몽선암을 관리하였다. 1983년 살미국민학교가 충주댐 수몰로 인하여 내사리로 옮길 때 자신의 소유하고 있던 토지 9,900m²을 학교 부지로 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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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직동과 살미면 향산리에 걸쳐 있는 산. 대향산은 산에 향나무가 많아서 붙어진 이름이다. 향산리의 마을 이름도 대향산에서 유래하였다. 살미면 지역의 대향산층과 계명산층은 우리나라 지질계통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살미면 지역이 고생대 지층이라는 설은 계명산에 많이 포함된 도로마이트질 석회암과 대향산층에서 발견되는 도로마이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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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에 속하였던 법정리. 무릉리는 전통적으로 살미면의 중심 지역이었다. 충주댐의 완공과 함께 1985년 수몰되어 지금은 충주호 속에 잠겨 있다. 이문안에서 신구실을 거쳐 신당진(新塘津)까지 마을이 연결되어 있고, 신구실과 신당진을 중심으로 장이 서기도 했다. 무릉리라는 이름은 능골에서 유래했다. 능골은 임진왜란 때 진주대첩에 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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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이 지역을 대표하는 두 마을 문산동과 강진동의 첫 글자를 따서 문강리라 불렀다. 조선시대에는 연풍군 수회면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문산동과 강진동을 합쳐 문강리가 되었고 괴산군 상모면에 속하게 되었다. 1963년 1월1일 상모면이 중원군에 편입되었고, 1989년에는 문강리가 다시 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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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에 속하였던 법정리. 살미면의 동북쪽에 위치하였으며 1985년 충주댐의 완공과 함께 수몰되어 지금은 충주호 속에 완전히 잠겨 있다. 문화리는 육로와 수로가 만나는 지점이어서 주민들의 수가 많았다. 1985년 수몰 당시 문화리는 문화1리와 문화2리로 나누어져 있었다. 수몰되기까지 주민들 대다수는 농업에 종사했다. 논농사를 기본으로 고추와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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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법조인. 박상완은 1941년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문강리 문산에서 아버지 박희원과 어머니 성봉선 사이에서 독자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대쪽 같은 성품의 원칙주의자였다. 수회초등학교와 충주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경기고등학교에 진학하였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한 후 동 대학원을 다니는 동안 제1회 사법고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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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자선사업가. 박원채의 본관은 무안(務安)이다. 1912년 극심한 흉년이 들자 백미 40석을 면에 기탁하여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과 상모면 주민들의 생계를 도왔다. 이후 얼마 남지 않은 재산도 집안 식구들에 나누어 주어 말년에는 식량마저 곤궁했다고 한다. 박원채의 구휼활동의 수혜민들에 의해 1929년 자선진휼비(慈善賑恤碑)가 세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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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행정구역. 살미면(乷味面)의 옛 이름은 사을미면(沙乙未面)이다. 사을미란 모래가 많은 물가라는 뜻으로, 마을이 남한강변에 있기 때문에 자연히 모래가 많이 쌓이게 되어 붙은 이름으로 여겨진다. 한편 바뀐 명칭인 살미의 ‘살(乷)’은 물결이 빠르다는 뜻으로, 살미면 지역이 계곡이 좁고 물살이 빨라 붙여진 이름이다. 또 ‘미(味)’는 이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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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후기까지 마을 이름은 서운이었다. 그러나 1870년대 들어 설운으로 바뀌었다. 설운으로 바뀌게 된 연유는 분명치 않다. 조선시대 살미면의 리와 호구 변화를 살펴보면 그 기록이 1759년의 『여지도서(輿地圖書)』에까지 이른다. 이곳에 서운(鋤云)이 나오는데 서운리를 말한다. 서운이라는 이름은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 『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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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세성리의 옛 이름은 새술막이었다. 이곳에 새로 주막이 만들어지면서 그런 이름이 처음 만들어졌고, 이것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세성리가 되었다. 신주막(新酒幕)이라는 말은 1759년의 『여지도서(輿地圖書)』에서부터 발견된다. 1907년에 발표된 『한국 호구표』에 세성리가 이미 등장한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영역의 세성리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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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서식하는 족제비과에 속한 포유류. 수달은 우리나라 전역의 강이나 호수에서 서식한다. 기록에 의하면 19세기까지는 평안도에서 경상도에 이르기까지 서식하였다고 하는데, 남획으로 개체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어 1982년 11월 4일 천연기념물 제330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몸길이 63~75㎝, 꼬리길이 41~55㎝, 몸무게 5.8~10㎏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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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에 속하였던 법정리. 살미면의 가장 동쪽에 위치하였으며 1985년 충주댐의 완공과 함께 수몰되어 지금은 충주호 속에 잠겨 있다. 신당리는 월악산 송계계곡에서 내려오는 달천 줄기를 따라 좌우로 형성된 마을이다. 특히 토질이 좋아 벼농사가 잘 되었으며, 고추, 마늘, 배추, 감자 등 밭농사도 많이 지었다. 신당리에서는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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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1985년 충주댐의 완공과 함께 마을의 상당 부분이 수몰되었다. 살미면 중심 지역으로 국도 36호선 북쪽에 마을이 위치하고 있었다. 신매리는 전주이씨와 여양진씨, 청송심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어 씨족마을의 성격이 강했다. 특히 매남에 사는 전주이씨 화의군파를 중심으로 신매리 향악을 만들어 예를 중시하고 상부상조하는 미덕을 실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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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순보(淳甫), 호는 송오(松塢). 아버지는 형조판서겸지의금부사훈련원도사오위도총부도총관삼도통제사를 지낸 회헌(檜軒) 심박(沈樸)이며, 어머니는 정선이씨(旌善李氏)이다. 심휘량은 우담 정시한(丁時翰) 선생 문하에서 성리학을 연구하였으며 이후 홀로 은거하면서 학문을 연구하고 부(賦)와 시(詩)를 읊조렸다. 주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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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문강리 문산마을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양여공의 정려문. 양여공 효자각은 조선 세종 때 병조좌랑을 지낸 양여공[1378~1433]의 효행을 찬양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양여공은 1396년(태조 5) 생원시에 합격한 후 1405년(태종 5)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정랑(兵曹正郞)에 올랐으나 병사(兵事)를 상왕(上王)에게 보고하지 않은 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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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토계리와 괴산군 장연면 조곡리에 걸쳐 있는 산. 옥녀봉에는 풍수지리상의 옥녀산발형의 대지(大地, 명당)가 있어 붙어진 산의 이름이다. 병자호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은 조선의 명산 혈기(穴氣)를 끊기 위하여 혈안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옥녀봉 명당을 파혈하기 위하여 다섯 번이나 강을 건너 옥녀봉 명당을 찾아 헤매었으나, 결국은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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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는 온천. 온천이란 땅 속에서 지표로 자연스럽게 솟아오르는 평균 기온 이상의 물이다. 지하수의 수온이 그 지역의 연평균 기온이나 얕은 지층의 지하수 수온보다 높은 경우를 말한다. ‘온천법’에서는 온천을 지하로부터 용출되는 25℃ 이상의 온수로 그 성분이 인체에 유해하지 아니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충주 지역에는 수안보온천, 앙성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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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용당리(龍塘里)와 쌍천리(雙川里)를 합하여 용천리라 하였다. 조선시대 살미면의 리와 호구 변화를 살펴보면 그 기록이 1780년의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에까지 이른다. 이곳에 용당(龍堂)이 나오는데 현재의 용천리를 말한다. 용당이라는 이름은 『호서읍지(湖西邑誌)』, 『충주목지도(忠州牧地圖)』, 『충주군읍지(忠州郡邑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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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재오개라는 지명은 조선시대 초기 재오개 전설에서 유래한다. 재오개라는 한자말은 다섯 살짜리 왕자라는 뜻이다. 이 곳 재오개마을에 왕기를 타고난 아이가 있어, 다섯 살에 이미 문무에 걸쳐 신기를 보여 주었다. 이러한 소문은 당시 조정에 알려졌고, 그 아이가 새로운 왕조를 세울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퍼졌다. 이에 조정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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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중심(仲深). 내금장(內禁將) 이정(以貞)의 아들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인서(李麟瑞)와 더불어 의병을 모아 전력을 다하여 활동하였다. 1615년(광해군 7) 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으며 1617년 11월에는 생원의 대표로 진사 김이일(金以一) 등과 함께 인목대비 폐비 문제를 공론에 따라 처리하여 대의를 밝히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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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목벌동과 살미면 재오개리 경계에 있는 고개. 목벌동 진의실마을에서 재오개리 재오개마을로 올라가는 고개라서 붙어진 이름이다. 진의실재는 목벌동 진의실마을과 살미면 재오개리 상재오개 안골마을의 중간에 있는 약 350m의 고개이다. 안림동과 목벌동 경계에 남산(636m, 일명 금봉산)이 있고, 남산 서쪽 안림동과 목벌동 경계에 마즈막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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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토계리라는 명칭의 유래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한자를 그대로 번역하면 땅의 경계가 된다. 달천으로 인해 대소원면 지역과 살미면 지역이 나누어지고 그 경계에 위치하고 있어 그런 이름이 붙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시대에는 연풍군 수회면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도랫말, 자사골, 왕다래기, 솔안을 합해 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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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향산이라는 명칭의 유래는 분명치 않다. 한자를 풀이하면 향기로운 산이 된다. 향산리는 대림산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대림산의 다른 이름이 향산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조선시대 살미면의 리와 호구 변화를 살펴보면 그 기록이 1759년의 『여지도서(輿地圖書)』에까지 이른다. 이곳에 향산(香山)이 나오는데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