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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도 관찰사 김안국이 청도 향교의 학도들에게 내린 한시. 「권시청도학자(勸示淸道學者)」는 조선 시대 문신이자 학자인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1478∼1543]이 지은 한시이다. 김안국이 경상도 관찰사로 재직할 당시 각 지역 향교의 학도들을 권면하기 위해 지은 시 가운데, 청도의 학도들에게 내린 시이다. 칠언 절구로, 운자는 ‘심(心)’, ‘심(尋)’으로 구성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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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두암 이기옥이 운문산을 소재로 지은 한시. 이기옥(李璣玉)[1566∼1604]은 자신의 호를 운문의 두암(竇巖)[공암]에서 취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운문산에 대한 애호가 남다른 인물이었다. 운문산과 관련해서 「노중억운문산(路中憶雲門山)」과 장편의 부(賦)가 전한다. 「노중억운문산(路中憶雲門山)」은 7언 절구이며 운자는 ‘청(淸)’과 ‘정(程)’이다. 「노중억운문산(路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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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박하징이 운문산성을 오르며 지은 한시. 박하징(1483∼1566)이 운문산과 관련하여 남긴 시는 「등운문산성(登雲門山城)」을 포함해 모두 4수이다. 선경에 노니는 한가로움이 잘 표현되어 있다. 1871년 『병재 문집』에 수록되었다. 「등운문산성」은 5언 율시이며, 운자는 ‘편(鞭)’, ‘견(鵑)’, ‘천(川)’, ‘연(筵)’이다. 건마유산객(騫馬遊山客)[느린 말로 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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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조정, 황응규 등이 경상북도 청도의 운문산을 소재로 읊은 한시. 경상북도 청도의 운문산을 읊은 한시는 청도의 인물은 물론이고 군수, 시인, 유람객 등 외지인들도 많이 지었다.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1435∼1493]의 「여남방승기운문산(與南方僧期雲門山)」, 이만백(李萬白)[1657∼1717]의 「망운문산(望雲門山)」, 조정(趙靖)[1555∼1636]의 「유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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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박상이 청도 관아에 묵으면서 지은 한시. 「숙도주」는 조선 전기에 활동한 문신인 눌재(訥齋) 박상(朴祥)[1474∼1530]이 청도 관아에 묵으면서 지은 한시이다. 「숙도주」는 7언 율시로, 운자는 ‘지(池)’, ‘지(枝)’, ‘유(帷)’, ‘리(離)’이다. 「숙도주」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관사고저수지의(官舍高低隨地宜)[관사의 높낮이는 땅의 형세를 따랐고]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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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학자인 곽진이 청도의 운문사를 추억하며 지은 한시. 「억운문사 차우인운(憶雲門寺 次友人韻)」을 지은 단곡(丹谷) 곽진(郭山晉)[1568∼1633]은 풍기 지역의 학자로, 시문에 능하였으며 장현광(張顯光)·이준(李埈)·정경세(鄭經世) 등과 사우 관계를 맺었다. 「억운문사 차우인운」은 곽진이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에 자리한 운문사(雲門寺)를 유람하였을 때의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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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청도의 운문사를 소재로 지은 한시. 조선 시대 청도의 사족들과 외지인들은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에 소재하는 운문사와 관련된 시를 상당히 많이 지었다. 군지와 문집 총간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권응인(權應仁)[1517∼?], 황응규(黃應奎)[1518∼1598], 손처눌(孫處訥)[1553∼1634], 곽진(郭山晉)[1568∼1633], 구치용(具致用)[1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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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2년 이중경(李重慶)이 청도의 운문산을 유람하고 쓴 기행문. 조선 시대 선비에게 있어 산수 유람은 인지지락(仁智之樂)의 추구라는 학문의 한 방편이었다. 따라서 산수에 대한 미의식을 유산기(遊山記)를 통하여 드러내고는 하였다. 유산기는 조선 후기에 대량으로 저술되었는데, 영남 지역의 사림이 주된 담당층이었다. 운문산과 관련된 유산기는 현재 5편이 전한다. 밀양 출신 오한(聱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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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광정이 청도 자계 서원의 사액을 요청한 상소. 「자계 서원 청액소」는 조선 후기 유생인 이광정(李光鼎)[1636∼1694]이 지금의 청도군 이서면 서원리에 위치한 자계 서원의 사액을 요청한 상소문이다. 이 외에도 자계 서원과 관련한 시문으로는 정구(鄭逑)가 지은 「자천 서원 삼현사 봉안문(紫川 書院 三賢祠 奉安文)」, 「자천 서원 삼현향사 축문(紫川 書院 三賢享祀 祝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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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홍한주가 청도 동헌의 하소정을 소재로 지은 한시. 「청도군 하소정」의 부제인 ‘갑신춘 걸가래근 유월여편환 정성적재시시 임귀서게이률(甲申春, 乞暇來覲 留月餘便還 亭成適在是時 臨歸書揭二律)에서 알 수 있듯이 홍한주(洪翰周)[1798∼1868]는 부친인 홍직모(洪稷謨)[1770∼1834]가 청도 군수로 재직[1882∼1824]할 당시 청도를 방문하여 한 달 정도 머물다 돌아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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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에 제작된 군현 지도 중 청도 지역의 지도. 1872년에 제작된 지방 지도 중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일대 지도이다. 지도 우측 상단에 지도명인 ‘청도(淸道)’가 표기되어 있으며, 지도의 상단은 지리상 동쪽에 해당한다. 따라서 지리상 북쪽을 지도의 상단으로 배치하면 동서로 긴 청도군의 모습을 파악하는 데 용이하다. 임진왜란·병자호란 이후 18세기 조선은 정치적으로 각종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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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후반 제작된 『경주도회 좌통지도』에 포함된 청도 지역의 지도. 18세기 중반 경상북도 청도군 일대 모습을 회화적 요소를 가미하여 제작한 군현 지도이다. 지리 정보의 형상을 도형화하고, 산과 강, 사찰과 관아의 건물, 성곽, 봉화터 등 주요 건물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여 청도군의 모습을 파악하는 데 용이하다. 대부분의 고지도에는 제작 시기와 제작자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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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전반에 제작된 전국 군현 지도집인 『광여도』 중 청도 지역의 지도. 『광여도(廣輿圖)』 「청도군 지도」는 지금의 각북면, 풍각면, 각남면을 제외한 청도군 일대를 회화식으로 그린 채색필 사본 군현 지도이다. 18세기와 19세기 관찬에서 제작한 지도들을 살펴보면, 지리 정보를 표현하는 방법에서 형식적 차이가 있다. 이는 지도 제작의 통일성과 지도 판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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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에 제작된 『대동여지도』에 포함된 청도 지역의 지도. 현재 우리나라 박물관 및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는 총 17종이며, 그 가운데 4종이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4종 가운데 3종은 1861년에 제작한 신유본이고, 1종은 1864년에 지도의 내용 가운데 일부를 수정하여 1864년에 간행한 갑자본이다. 현존하는 17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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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전반에 제작된 『동국여도』에 포함된 청도 지역을 비롯한 경상도 지도. 지도상에 지도의 제작 목적과 제작 시기가 밝혀져 있지 않기 때문에 지도에 반영된 지리 정보를 통해 『동국여도(東國輿圖)』의 제작 시기를 추정해 볼 수 있다. 지도의 제작 시기 상한선이 되는 19세기 전반에 경상도 일대에서 명칭이 변경된 군현이 없으므로 『동국여도』에 수록된 다른 지역의 군현명을 통해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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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제작된 『동역도』에 포함된 청도 지역을 비롯한 경상도 지도. 제작 시기를 명시하지 않는 고지도에서 지도의 제작 시기는 지도에 반영된 지리 정보를 통해 추정할 수 있다. 이런 방법으로 살펴보았을 때 『동역도(東域圖)』는 전체적으로 1800년대 초반까지의 지명을 반영하여 제작한 지도이다. 그러나 8도 가운데 경상도는 예외로, 1767년(영조 43)에 산청(山淸)과 안의(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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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에 제작된 『비변사인방안지도』에 포함된 청도 지역의 지도. 18세기에 제작된 『비변사인방안지도(備邊司印方眼地圖)』 가운데 영남 지도(嶺南地圖)의 제작 시기는 수록되어 있는 71장의 지도에 반영된 지리 정보인 지명을 통해 추정해 볼 수 있다. 제1책 영일 지도에 1731년 설치된 ‘포항창’이 그려져 있으며, 하동의 읍치가 1745년에 이전된 곳으로 표시되어 있고, 고령 지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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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말에 제작된 『삼한일람도』에 포함된 청도 지역을 비롯한 경상도 일대 지도. 『삼한일람도(三韓一覽圖)』의 제작 시기는 지도에 표시된 지리 정보가 한정된 만큼 판단하는 데 유의해야 한다. 1651년(효종 2)에 강음과 우봉을 합해 만들어진 황해도의 금천(金川)이 수록되어 있지만, 강음과 우봉도 함께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경상도에 표시된 군현 가운데 영양과 순흥은 표기 방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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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제작된 『여지도』에 포함된 청도 지역의 지도. 『해동지도(海東地圖)』에 수록된 「청도군 지도」와 유사한 형태로 제작된 회화식 군현 지도이다. 1750년대에 제작된 『해동지도』와 비교해 볼 때, 지도집의 전체적은 구도는 비슷하지만, 지도에 반영된 지명에 차이가 보인다. 특히 「안음현 지도」가 수록되어 있지 않았던 『해동지도』와 달리 『여지도』에는 「안음현 지도」가 수록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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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후반에 제작된 『조선지도』에 포함된 청도 지역의 지도. 「경상도 청도군도」로 『조선지도(朝鮮地圖)』의 제작 시기를 파악하기는 어려우며, 『조선전도』에 수록된 다른 군현에 반영된 지명을 통해 지도의 제작 시기를 추정해 볼 수 있다. 제7책 경상도 지도에 수록된 군현 지도를 보면, 1767년에 개칭된 안의(安義)와 산청(山淸) 지도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충청도 지도책에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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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제작된 『동국지도』에 포함된 청도 지역을 비롯한 경상도 지도. 경상도 일대를 포함하여 조선 8도의 모습을 그린 『조선팔도지도(朝鮮八道地圖)』는 정상기(鄭尙驥)[1678∼1752]의 『동국지도(東國地圖)』 수정본 유형 가운데 ‘해주신본(海州新本)’에 해당한다. 『조선팔도지도』에는 1776년에 개칭된 지명들이 지도에 반영되어 있다. 평안도의 이산(尼山)이 초산(楚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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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후반에 제작된 『지승』에 포함된 경상북도 청도 지역의 지도. 『지승(地乘)』의 제작 시기는 지도에 반영된 지명을 통해 추정해 볼 수 있다. 1776년에 이성(尼城)에서 초산(楚山)으로 개칭된 충청도의 이산(尼山)과 평안도의 이산(理山)이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18세기 후반에 변화된 지명은 반영되지 않았다. 즉 1787년 신설된 장진, 1789년에 이동한 수원의 읍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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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2년 청도군에서 만든 읍지로서 『경상도 읍지』에 수록되어 있다. 『청도군 읍지(淸道郡邑誌)』는 정조 대인 18세기 동안, 1832년, 1871년, 1895년, 1899년 등 다섯 차례에 걸쳐 제작되었다. 2013년 현재 이들 판본은 서울 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으며, 이 중 1832년, 1871년, 1895년 판본은 영인본으로 출간되었다. 18세기에 간행된 판본은 정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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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제작된 『팔도분도』에 포함된 청도 지역을 비롯한 경상도 지도. 『팔도분도(八道分圖)』의 제작 시기는 1767년에 개명되는 경상도 안음(安陰), 산음(山陰)이 표기된 것으로 보아 1767년 이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경기도 지도에 건릉(建陵)과 화성(華城)이 표시되어 있으나, 이는 수원의 원래 읍치 소재지 흔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후대의 소장자가 써넣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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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0년대 초 제작한 『해동지도』에 있는 청도 지역의 지도. 『해동지도(海東地圖)』에는 군현 지도뿐만 아니라 당시에 제작된 다양한 종류의 지도가 수록되어 있다. 이는 당시까지 제작된 지도를 묶어 편찬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지만, 실상 지도를 제작하기 위한 지리적 정보가 모두 같은 시간,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도 지도의 경우 지도와 지도 여백의 설명문에는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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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년 4월 4일 청도 군수가 현풍 현감에게 보낸 관문. 1603년 4월 4일 작성된 「1603년 관(關)」은 박안생과 관련된 고문서로 1603년 2월에 작성된 소지(所志), 1603년 4월에 작성된 소지와 함께 점련(粘連)[증거 서류를 덧붙임]되어 있다. 2월에 작성된 소지는 박안생(朴安生)이 청도 군수에게 제출한 것이며, 관문(關文)은 청도 군수가 현풍 현감에게 재판을 이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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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8년 경상도 청도현 상동면 대천원의 어의궁 둔전에 대한 양안. 경상도 청도현에서 작성하였다. 어의궁(於義宮)은 당시 국왕이었던 숙종의 증조부인 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 머물렀던 잠저(潛邸)이다. 어의궁과 같은 궁실 및 궁가, 즉 궁방(宮房)에는 왕실·왕족·왕비족 등의 소요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면세지인 궁방전이 지급되고 있었다. 어의궁도 전국 각지에 궁방전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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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崔致遠)을 시조로 하고 최여준(崔汝俊)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경주 최씨(慶州崔氏)는 신라의 석학 최치원을 시조로 하며, 신라 말에 명성을 떨치고 이후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 한국 최씨의 대종가 경주 최씨는 26파로 나뉘는데, 관가정공파(觀稼亭公派)·광정공파(匡靖公派)·정랑공파(正郞公派)·사성공파(司成公派)·화숙공파(和淑公派)·충렬공파(忠烈公派)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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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예리리에 거주하는 이종기가 소장한 조선 후기 고문서. 고성 이씨 참판공파 이종기 소장 고문서(固城 李氏 參判公派 李鍾基 所藏 古文書)는 조선 시대 경상도 청도군의 대표적인 재지 사족 가문인 고성 이씨(固城李氏) 참판공파(參判公派) 후손 가운데 효행으로 이름을 떨친 이택준(李宅俊)[1793∼1815]과 그 처 현풍 곽씨(玄風 郭氏)의 효열을 추숭하는 과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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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음지리에 있는 고성종의 공덕을 기리는 새김글. 청도군 청도읍 음지리에 있는 고성종(高盛宗)의 공덕을 기리는 새김글이다. 새김글은 자연 바위 전면에 세로로 “동중 고성종 유공 불망 각 정유 십월 일(洞中高盛宗有功不忘刻 丁酉十月日)”이라 새기고, 오른쪽 위쪽에는 오른쪽으로부터 “한봉준(韓鳳俊), 서한석(徐漢碩), 장석□(張錫□), 한인곤(韓仁坤), 김한권(金韓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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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순지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비석. 을사사화 때 장살당한 경재 곽순의 자취를 알리고, 추모하는 비석으로 1828(순조 28)년에 건립되었다.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순지리 운곡 정사와 원모재 옆에 있으며, 최근에 신축한 기와를 이은 팔작지붕을 한 단칸 비각 안에 있다. 곽순(郭珣)[1502∼1545]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이 현풍이며, 자는 백유(白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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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관하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비석 떼. 관하리 비석 떼은 매전면 관하리 원정자 마을 관하리 보건소 북쪽 관하천 건너편에 있는 바위 위에 세워진 2기의 비석을 말한다. 하나는 청도 군수를 역임한 송요경(宋堯卿)의 선정을 칭찬하여 기리는 비석이고, 다른 하나는 청도 현감을 역임한 조원붕(趙遠朋)의 덕망을 칭찬하여 기리는 비석이다. 송요경[1668∼1748]은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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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제작된 국담 박수춘의 시문집을 새긴 판목. 『국담 선생 문집(菊潭 先生 文集)』 책판은 조선 후기의 학자인 박수춘(朴壽春)[1572∼1652]의 시문집을 판각한 것으로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남산리에 있는 남강 서원(南岡 書院)에 57장이 소장되어 있다. 남강 서원은 박수춘을 제향한 곳으로서 이곳에서 그의 문집을 판각·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책판의 제작 경위에 대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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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권일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청도 군수로 재직할 때 『오산지(鰲山誌)』를 편찬, 청도 지역의 제도와 문물을 잘 정리하였다. 재임 중 통치를 잘하여 숙종으로부터 표리를 받았는데, 청도에 세웠던 청덕비가 지금까지 전한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만(子萬). 거주지는 한양이다. 아버지는 통훈대부(通訓大夫) 정선 군수(旌善郡守) 권담(權紞)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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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흥선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금호 서원은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우고 경상 우수사 겸 삼도 수군통제사에 이른 동계(東溪) 이운룡(李雲龍)[1562∼1610] 장군과 향산(鄕山) 이백신(李白新)의 영정(影幀)을 봉안하고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금호 서원은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사무소 앞을 지나는 국가 지원 지방도 30호선에서 팔조령 방향으로 가다 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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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청도 군수를 지낸 음관.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형여(亨汝). 할아버지는 김성응(金聖應)이고 아버지는 승지 김치묵(金峙默)이며, 어머니는 현감 송익흠(宋益欽)의 딸이다. 부인은 한용정(韓用靜)의 딸이다. 김기상(金基常)[1770∼?]은 음보로 출사하여, 1819년(순조 19) 10월 청도 군수로 부임했다가 1820년(순조 20) 4월 벼슬에서 물러났다. 그 후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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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치규(稚圭), 호는 이호(梨湖) 또는 낭간 거사(琅玕居士)이다.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김상숙(金相肅)이다. 김기서(金箕書)[?∼?]는 1820년(순조 20) 5월 청도 군수로 부임하였다가, 포폄(褒貶) 성적이 좋지 않아 1821년(순조 21) 12월 벼슬에서 물러났다. 김기서의 생애와 행적은 잘 알려져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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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덕암리에 있는 김석해의 유공비.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덕암리 586에 있는 김석해(金碩海) 유공비는 공적을 기리기 위해 가경(嘉慶)2년인 1797년(정조 20)에 세운 비석이다. 비문의 마멸이 심하여 구체적인 공덕 사항은 알 수 없다. 이 지역의 중요한 농업용수 공급지인 대릉지 조성 또는 개보수 관련된 재지 사족(在地士族)인 김석해[본관: 김해]의 공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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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동천리에 있는 전 이방 김응삼의 근휼비. 전 이방 김응삼(金應三)의 근휼비(勤恤碑)는 원래 1709년(숙종 35) 기축 10월에 건립했다. 연대가 오래되어 실전(失傳)의 염려가 있어, 원비(源碑)는 땅에 묻고 후손들이 1848년(헌종 14) 중건한 것으로 군내 향리 관련 유일한 선정비이다. 이방은 호장과 더불어 군현 향리를 대표하거나 군현에서 발생하는 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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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김이교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1789년(정조 13)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관직에 나아갔으나, 정조가 죽자 벽파에 의하여 유배되었다. 1806년(순조 6) 직첩을 환수 받은 뒤 다시 관직에 나아가 이조 판서·평안도 관찰사·병조 판서·형조 판서·공조 판서·예조 판서 등을 두루 역임하고, 1831년 우의정이 되었다. 본관은 신안동(新安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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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삼신리에 있는 찰방 김재두의 선정비. 김재두(金載斗)는 본관은 영산, 자는 경칠(敬七), 호는 방촌(坊村)이다. 1794년(정조 18) 병인 2월에 영광에서 출생하였다. 1835년(헌종 1) 증광시(增廣試)에 급제(及制)하여 통훈대부(通訓大夫)로 낭천 현감(狼川縣監), 성현도 찰방, 사간원 정언(司諫憲 正言), 사헌부 지평(司憲府 持平) 등을 지냈다. 김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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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김치삼은 탁영 김일손의 증손으로, 광해군 즉위 후 역모 혐의를 받은 임해군(臨海君)이 죽자 벼슬을 버리고 운문산 아래 도연(道淵) 가에 정자를 짓고 두문불출하며 경사(經史)에 전념하였다.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일지(一之)이며, 호는 도연(道淵)·인촌거사(仁邨居士). 증조할아버지는 탁영 김일손이며, 할아버지는 현감을 지낸 김대장(金大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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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비(林庇)를 시조로 하고 임현묵(林鉉默)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나주 임씨 시조는 임비(林庇)로 고려 충렬왕을 원나라까지 호종했던 공으로 보좌이등공신(輔佐二等功臣)에 녹훈되었으며, 뒤에 상장군(上將軍)과 충청도 도지휘사(忠淸道都指揮使)·판사재시사(判司宰寺事)에 올랐다. 해남 감무(海南監務)를 역임한 9세손 임탁(林卓)[두문동(杜門洞) 72현의 한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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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남산리 남강 서원에 있는 현판과 주련. 박수춘과 박한주를 추향하기 위하여 건립된 남강 서원 추선각에 보관된 현판과 10종의 주련이다. 남강 서원의 역사를 품고 있는 것으로 대명천지(大明天地), 숭정일월(崇禎日月)이라는 2개의 주련은 숭정 처사로 불린 박한주의 마음가짐을 잘 드러낸 것이다. 이 외에 구 남강 서원 현판과 동재·서재, 사묘 및 재사인 부택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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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1년 청도군에서 발급한 노비 매득에 대한 증명 문서. 「남수성 입안(南壽星 立案)」은 1741년(영조 17) 1월 청도 군수가 남수성(南壽星)이 노비를 매득(買得)한 사실을 증명해 주기 위해 발급한 증명 문서인 입안(立案)이다. 해당 자료는 지금까지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미촌리에 세거하고 있는 의령 남씨(宜寧 南氏) 후손들에 의해 전해지고 있다. 1741년 당시 경상도 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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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열(洪殷悅)을 시조로 하고 홍시원(洪時源)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원 시조 홍천하(洪天河)는 중국의 강남 휘주 사람으로 태학사였다. 640년(고구려 영류왕 23) 당 태종이 사신 8명을 파견할 때 그중의 한 사람으로 평양에 들어온 뒤, 은수포의 당관으로 옮겨 고구려 문화 진흥에 많은 공을 세웠다. 왕이 홍천하가 사는 곳을 당성(唐城)이라 하고 관적으로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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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을나(梁乙那)를 시조로 하고 양근남(梁根南)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제주도에서 탐라국을 세웠다고 전하는 양을나(良乙那)의 후손 양탕(良宕)이 광순사로 신라에 입국한 후 내물왕으로부터 성주·왕자의 작호를 받으면서 성씨 양(良)을 양(梁)으로 고쳤고, 757년(경덕왕 16) 양우량(梁友諒)이 신라 왕실에 공을 세워 남원부 백(南原府伯)에 봉해지자 후손들이 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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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남천한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사헌부 장령·대사간 등을 거쳐 승지를 지냈다. 호조 참의로 있을 때 경신대출척이 일어나 벼슬을 박탈당하였다. 예론에 밝아 예송에 깊이 참여하였으며, 봉암 서원에 배향되었다.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장우(章宇), 호는 고암(孤巖). 안동 출신으로, 증조할아버지는 남응원(南應元)이고 할아버지는 남융달(南隆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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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거연리에 있는 재사. 이탕(李宕)은 자가 대곽(大廓), 호는 납청헌(納淸軒), 본관은 철성(鐵城)으로 모헌(慕軒) 이육(李育)의 자손이다. 벼슬은 훈련원(訓練院) 주부(主簿)를 역임하였다. 납청정은 이탕이 건축하여 만년을 보냈다. 청도∼밀양 간 국도 25호선을 타고 가면 청도읍 신도리 신기 마을 앞에서 좌측으로 갈라지는 길이 나온다. 이 길로 청도천변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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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徐晉)을 시조로 하고 서대건(徐大建)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달성 서씨(達城徐氏) 시조 서진은 고려 때 봉익대부(奉翊大夫)·판도 판서(判圖判書) 등을 역임하였고, 나라에 큰 공을 세워 달성군(達城君)에 봉해지고 달성[현 대구광역시 달성군]을 식읍(食邑)으로 하사받아 세거(世居)하게 되었다. 시조 서진의 아들 서기준(徐奇俊)과 손자 서영(徐穎)까지 삼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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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박곡리에 있는 부도 떼. 부도는 입적한 승려의 유골이나 사리를 봉안하는 시설로 묘탑적(墓塔的) 성격을 갖는 조형물이다. 불가에서 입적은 열반에 비유되는데 열반이란 수행이 점진적인 단계를 밟으면서 일체의 번뇌가 모두 소멸되었을 때의 경지를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부도는 최고의 경지에 이른 열반한 승려의 유골이나 사리를 모신 조형물이라 할 수 있다. 대비사 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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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송금리 대적사에 있는 부도. 부도는 입적한 승려의 유골이나 사리를 봉안하는 시설로 묘탑적(墓塔的) 성격을 갖는 조형물이다. 불가에서 입적은 열반에 비유되는데 열반이란 수행이 점진적인 단계를 밟으면서 일체의 번뇌가 모두 소멸되었을 때의 경지를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부도는 최고의 경지에 이른 열반한 승려의 유골이나 사리를 모신 조형물이라 할 수 있다. 대적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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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8년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에 있는 덕사 영산전 안의 석가모니불 좌상에 복장된 발원문. 덕사(德寺)가 창건된 때는 신라 말 고려 초라고 전해지나 문헌이나 고증이 없어 자세한 사실은 알 길이 없고, 현재의 덕사는 조선 시대 선조 년간에 세워졌다. 청도 군수로 부임한 황응규가 1576년(선조 9)에 주구산(走狗山)의 산세는 풍수지리상 개가 달아나는 형상이므로 떡을 주어 개를 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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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3년에 작성된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에 있는 덕사 영산전의 상량문. 덕사(德寺)가 창건된 때는 신라 말 고려 초라고 전해지나 문헌이나 고증이 없어 자세한 사실은 알 길이 없고, 현재의 덕사는 조선 시대 선조 연간에 세워졌다. 청도 군수로 부임한 황응규가 1576년(선조 9)에 주구산(走狗山)의 산세는 풍수지리상 개가 달아나는 형상이므로 떡을 주어 개를 머물게 하고자 절을 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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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덕촌리에 있는 조선 시대 비석 떼. 김명진(金明鎭)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 자는 치성(稚誠)이며, 1840년(헌종 6년)에 출생했다. 1870년(고종 7) 정시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고, 이후 충청좌도 암행어사, 동부승지, 대사성(大司成), 경기도 관찰사, 경상도 관찰사, 이조 참판, 공조 판서 등을 두루 거쳤다. 특히 관찰사로 재직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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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에 있는 조선 시대 청도군의 객사. 도주(道州)는 청도의 다른 이름이다. 객사에는 정청에 왕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두어 지방 수령이 초하루와 보름에 이곳에서 배례하였다. 또한 접객 시설을 갖추어 이곳을 찾는 관원이 머물 수 있도록 하였다.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서상리 15-10에 위치한다. 화양읍사무소 정면에 있는 길을 따라 서상리 새마을 회관 방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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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에 있는 만화정에 걸려 있는 현판. 만화정은 박하담의 12대손으로 통정대부, 좌승지에 오른 운강(雲岡) 박시묵(朴時黙)[1814∼1879]이 1856년 건립하여 강론하던 정자이다. 동창천 언덕에 서남향으로 지었으며, 정자 옆에는 세심정이 나란히 서 있다. 평면 구성은 마루를 중심으로 서쪽에 방 1칸, 동쪽에 2칸의 통방을 배치하고 누마루에는 3면에 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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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지촌리에 있는 재사.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지촌리 박곡 마을의 북편 산록에 자리잡은 광주 안씨(廣州安氏) 문중 재실로 안갑수, 안병윤을 배향하였다. 1770년에 건립된 후 수차례 중수되었다. 청도∼경주 간 국도 제20호선을 타고 가다 운문면 지촌리 신기 마을에서 서북쪽으로 난 지방 도로로 갈아 탄 뒤 550m가량 가면 지촌리 박곡 마을로 들어가는 마을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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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수야리에 있는 서사. 박하징(朴河澄)은 자가 성천(聖千)이고, 호는 병재(甁齋)·서암(西巖)으로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1515년(중종 10)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제수되어 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에 올랐으며, 1519년(중종 14)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하여 성리학을 강론하며 후학 양성에 매진하였다. 명동사는 박하징을 향사하기 위해 건립한 서사(書社)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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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안동의 도산 서원에서 청도에 있는 향교와 서원에 보낸 통문. 「명동 서사 소장 고문서(明洞 書社 所藏 古文書)」는 현재 1862년에 작성된 도산 서원(陶山書院) 통문만 확인된다. 도산 서원의 통문은 영남의 큰 선비인 병재(甁齋) 박하징(朴河澄)[1484∼1566]을 제향하는 묘우(廟宇)를 청도 사림이 공론으로 추진해 주길 바라는 뜻에서 작성하여 보낸 것이다. 통문의 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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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수야리 명동 서사에 소장된 현판 일괄. 명동 서사에 소장 현판은 「명동 서사(明洞 書社)」, 「명동 실기(明洞 實記)」, 「서명동실기후(書明洞實記後)」, 「명동사상량문(明洞祠上梁文)」, 「존경재(存敬齋)」, 「보의재(輔義齋)」, 「백록동규약(白鹿洞規約)」, 「귀일고거(帰一古㞐)」의 8점이다. 이들 현판은 명동 서사 건립 당시와 그 이전의 역사를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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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목내선은 조선 후기의 남인 계열 문신으로, 형조·예조·호조의 판서를 두루 거쳐 우의정이 되었다. 기사환국에서 서인을 제거하는 데 앞장서 좌의정에 올랐으나, 갑술옥사 때 절도에 위리안치되었다가 1699년에 풀려났다. 본관은 사천(泗川). 자는 내지(來之), 호는 수옹(睡翁))·수헌(睡軒)이다. 아버지는 지중추부사 목서흠(睦敍欽)이며, 어머니는 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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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남강 서원에 소장된 연대 미상의 『밀성 박씨 연계 대보』 판목. 남강 서원 소장 『밀성 박씨 연계 대보(密城 朴氏 聯系 大譜)』 판목은 모두 4장으로 밀성 박씨 세보 명전(密城 朴氏 世譜 銘篆)·밀성 박씨 세보 서발(密城 朴氏 世譜 序跋), 밀성 박씨 연계도(密城 朴氏 聯系圖), 밀성 박씨 연계도(密城 朴氏 聯系圖), 밀성 박씨 연보(密城 朴氏 聯譜)·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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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순(孫順)을 시조로 하고 손성운(孫聖運)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밀양 손씨(密陽孫氏)의 시조 손순(孫順)은 경주 모량리 출신으로, 신라 개국 당시 6부 촌장의 한 사람이자 손씨 성을 하사받은 대수촌장 구례마(俱禮馬)의 후손이다. 손순은 신라 흥덕왕 때 효자로 유명했는데, 그 효성이 흥덕왕에게까지 알려져 문효(文孝)라는 시호와 함께 월성군(月城君)에 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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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효중(孝仲), 호는 국헌(菊軒). 할아버지는 박하담(朴河淡), 아버지는 장사랑 박이(朴頤), 어머니는 만호 예신충(芮信忠)의 딸 의흥 예씨(義興芮氏)이다. 제우당 박경전(朴慶傳)의 아우이다. 부인은 장사랑 김응권(金應權)의 딸 경주 김씨이다. 아들이 선무원종공신 2등에 녹훈된 첨정 박린(朴璘)이다. 박경윤(朴慶胤)[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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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효백(孝伯), 호는 제우당(悌友堂)·이모당(二慕堂). 할아버지는 박하담(朴河淡), 아버지는 장사랑(將仕郞) 박이(朴頤), 어머니는 만호(萬戶) 예신충(芮信忠)의 딸 의흥 예씨(義興芮氏)이다. 배위는 군수 박옥형(朴玉衡)의 딸 순천 박씨로 아들 박정(朴珽)과 박기(朴璣)를 두었다. 박경전(朴慶傳)[1553∼1623]은 어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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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청도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민헌(敏獻), 호는 죽와(竹窩)이다. 제우당 박경전의 아들이며, 상우재 박경준의 계자(系子)이다. 어머니는 군수 박옥형(朴玉衡)의 딸 순천 박씨이고, 부인은 충의위 서사도(徐思道)의 딸 이천 서씨이다. 박기(朴璣)[1590∼1667]는 수직(壽職)으로 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냈으며 1667년(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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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출신의 학자.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은원(恩遠), 호는 지암(芝巖)이다. 고려 봉익대부 밀직 부사 박양언(朴良彦)의 후예로, 두촌 박양무(朴揚茂)의 10세손이고, 일청재 박호(朴虎)의 5세손이다. 학생 박지빈(朴之贇)의 차남이다. 박상고(朴尙古)[1654∼1718]는 46세 되던 1699년(숙종 25) 식년 사마시 진사과에 재종제 박태고(朴太古)와 함께 급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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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자복(子復), 호는 괴정(槐亭)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소요당 박하담(朴河淡)이며, 용연(龍淵) 박경인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참봉 송경(宋璟)의 딸 여산 송씨이다. 처는 군수 김극유(金克裕)의 딸 정부인 청도 김씨이며, 아들은 박동흠(朴東欽)과 박동온(朴東溫)이 있다. 박선(朴瑄)[1571∼1614]은 천성적으로 총명하고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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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출신의 학자이자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경로(景老), 호는 국담(菊潭)·숭정처사(崇禎處士). 동몽교관(童蒙敎官) 박신(朴愼)의 아들이다. 박수춘(朴壽春)[1572∼1652]은 가학(家學)을 이어받았으며 항상 『소학』을 애독하였다. 1957년 정유재란 때 의병을 모집하여 창녕의 화왕산성(火旺山城)에서 곽재우(郭再祐)와 함께 싸웠다. 1618년(광해군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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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이헌(而獻), 호는 용암(龍巖). 증조할아버지는 박하담(朴河淡)이며, 아버지는 공조 참의에 증직된 박경연(朴慶延)이고, 어머니는 부정(副正) 강경우(姜景愚)의 딸 진주 강씨이다. 기포(杞圃) 박우(朴瑀)의 아우이며, 처 이반(李礬)의 딸 고성 이씨와의 사이에 아들 셋을 두었다. 박숙(朴琡)[1578∼1639]은 다섯 형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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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출신의 학자.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휘도(輝道), 호는 운강(雲岡). 할아버지는 박장덕(朴章德)이다. 아버지는 박정주(朴廷周), 어머니는 김종악(金宗岳)의 딸 월성 김씨(月城金氏)이다. 처는 사헌부 지평 이병영(李秉瑩)의 딸 숙부인 경산 이씨(京山李氏)이다. 박시묵(朴時默)[1814∼1875]은 정재 유치명(柳致明)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영남의 대학자인 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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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년 밀양에 거주하는 박안생이 청도 군수와 순찰사에게 보낸 소지 2점. 박안생 관련 고문서는 1603년 2월의 소지(所志), 1603년 4월 4일 관문(關文), 1603년 4월 소지로서, 점련(粘連)되어 있다. 2월의 소지는 박안생이 청도 군수에게 제출한 것이며, 관문은 청도 군수가 현풍 현감에게 재판을 이송하며 보낸 것이다. 4월의 소지는 박안생이 순찰사(巡察使)에게 보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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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출신의 무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중헌(仲獻), 호는 기포(杞圃). 증조할아버지는 박하담(朴河淡)이고, 아버지는 공조 참의에 증직된 박경연(朴慶延)이며, 어머니는 부정(副正) 강경우(姜景愚)의 딸 진주 강씨이다. 임란공신 삼우정 박경신(朴慶新)의 조카이다. 박우(朴瑀)[1576∼1637]는 경상북도 청도군 수여현[지금의 이서면 수야리]에서 태어났다. 왜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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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출신의 무신.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남거(南擧), 초명(初名)은 정붕(廷鵬). 아버지는 박희태(朴熙泰), 할아버지는 박취광(朴就光), 증조할아버지는 박민좌(朴敏佐)이다. 어머니는 이익무(李益茂)의 딸이고, 부인은 박경보(朴敬甫)의 딸이다. 박유붕(朴有鵬)[1806∼?]은 1844년(헌종 10) 증광 무과에 급제하여 무관이 되었고, 경상도 중군(中軍)을 거쳐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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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온막리에 있는 박윤손 효자비. 박윤손(朴閏孫)은 수군 박동의 아들이다. 어머니가 빨래하러 갔다가 호랑이에게 물려가자 왼손으로 어머니를 붙들고 오른손으로 돌을 던지며 5리 남짓 쫓아갔다. 이웃 사람들이 이 소리를 듣고 달려와서 구했으나, 호랑이에게 많이 물린 어머니는 그날 밤에 사망하였다. 박윤손은 슬퍼하면서 정성을 다해 장례를 치렀고, 이 일이 임금에게 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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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청도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인경(仁卿)·계애(溪厓). 할아버지는 소요당 박하담(朴河淡)이고, 아버지는 삼우정 박경신(朴慶新)이다. 어머니는 김려문(金麗文)의 딸 분성 김씨이다. 부인은 군수 박명세(朴命世)의 딸 정부인 함양 박씨이다. 박지남(朴智男)[1565∼1626]은 어릴 적부터 담략이 있고, 글씨와 칼 쓰기에 능했으며, 불의를 참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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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청도 지역에서 활약한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숙헌(叔獻), 호는 운옹(雲翁). 증조할아버지는 소요당 박하담(朴河淡)이며, 할아버지는 순릉 참봉 박영(朴潁)이다. 아버지는 공조 참의에 증직된 박경연(朴慶延)이고, 어머니는 부정 강경우(姜景愚)의 딸 진주 강씨이다.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수야리[수여현]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숙부인 고성 이씨이다. 박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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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생만(生晩), 호는 경양재(景陽齋). 고려 봉익대부 밀직 부사 박양언(朴良彦)의 후손으로, 두촌 박양무(朴揚茂)의 10세손이며, 일청재 박호(朴虎)의 5세손이다. 할아버지는 박선장(朴宣章)이고, 아버지는 장릉 참봉(莊陵參奉) 박지현(朴之賢)이며, 어머니는 참봉 전유장(全有章)의 딸이다. 부인은 좌랑 배명윤(裵命胤)의 딸인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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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두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비석. 매전면 두곡리 두실 마을에 있는 장사랑 박후재(朴厚載)의 은덕을 기리고 기억하려는 비석이다. 장사랑 박후재가 흉년에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하였고, 화재로 한꺼번에 64집이 불타자 백포대의 곡식과 100냥의 돈을 내어 구제한 은덕이 있었다. 청도 주민들은 이 은덕을 기려 기억하고, 후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이 비석을 세웠다.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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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지역의 효자. 본관은 기성(岐城). 자는 헌옥(獻玉), 호는 종모재(終慕齋). 죽오(竹塢) 반국해(潘國海)의 6세손이다. 반환(潘瓛)[1767∼1829]은 효성이 지극하여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15.7㎞나 떨어진 두곡산(杜谷山)에 묘소를 모시고, 3년 동안 매일 성묘를 하였으며, 이어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역시 두곡산에 묘소를 모시고 여막(廬幕)을 치고 조석으로 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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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남양리에 있는 정효각.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남양리 1900-5에 위치한다. 당호리에서 신지리 방향의 지방도 919호선을 따라 가다 우측에 있는 골마 마을에서 안골 마을로 통하는 도로변에 있다. 배세중(裵世重)의 효행을 칭송하기 위해 분성 배씨 문중에서 1737년 건립하였다. 정효각은 단칸[單間] 규모의 맞배 기와집이다. 주위에는 붉은 벽돌로 방형의 담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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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청도 지역에서 판각된 『배자예부 운략』의 신·구 판목. 『예부 운략(禮部 韻略)』은 학문을 연구하는 기초 사전으로서 송(宋)·원(元)대부터 우리나라에 수입해온 음운 고사 전류(音韻 考辭 典類)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예부 운략』은 1300년(충열왕 26)에 발행한 해계 서원판(海溪 書院版)이다. 그러나 이는 중국에서 간행된 판목으로 추측되고, 1524년(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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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토평리에 있는 서당. 김해 김씨 선조 9위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해 건립한 서당이다.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토평리 76에 위치한다. 백곡리 경로 회관 정면에 있는 길을 따라 백곡 마을의 배산 방향으로 약 130m 정도 이동하면 길 우측에 있다. 김해 김씨 선조 9위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한 세덕사로 1842년 건립하였다. 1868년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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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6년 청나라가 조선을 침략함으로써 발생한 전쟁. 병자호란은 1636년(인조 14) 12월부터 이듬해 1월에 만주족 후금(後金)이 국호를 청(淸)으로 고치고 조선을 침략하여 발생한 전쟁이다. 병자호란 중에 청도에서도 의병이 모집되고 근왕병(勤王兵)들이 힘을 합하여 청과 맞서 싸웠다. 광해군(光海君)의 중립 외교 대응 후 인조반정(仁祖反正)[1623]이 일어나자, 조선에서는 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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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에 제작된 조선 전기 청도 출신의 문신 병재 박하징의 시문집 판목. 『병재 선생 문집(甁齋 先生 文集)』 판목은 총 22장 중 현재 11장만이 남아 있다. 남은 판목도 서문과 목록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유실되었다. 서문과 발문의 작성 연대로 보아 1871년에 판각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래 명동 서사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충해(蟲害) 등으로 보관이 어려워 현재 한국 국학 진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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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 지역에 있는 승려들의 유골이나 사리를 봉안하는 묘탑적 성격을 갖는 조형물. 부도는 입적한 승려의 유골이나 사리를 봉안하는 시설로 묘탑적(墓塔的) 성격을 갖는 조형물이다. 불가에서 입적은 열반에 비유되는데, 열반이란 수행이 점진적인 단계를 밟으면서 일체의 번뇌가 모두 소멸되었을 때의 경지를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부도는 최고의 경지에 이른 열반한 승려의 유골이나 사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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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서문중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기사환국 때 노론의 중신으로 인현 왕후의 폐위를 반대했다. 갑술환국으로 서인이 득세하자 병조 판서 겸 지의금부사에 등용되었으나, 희빈 장씨 및 남인에 대한 처리에 온건론을 주장하다 조정에서 배척을 받아 은퇴했다. 뒤에 다시 기용되어 벼슬이 영의정에 이르렀다. 본관은 대구(大丘). 자는 도윤(道潤), 호는 몽어정(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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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서원리는 조선 후기 문신으로, 봉림 대군의 사부로서 심양까지 따라가 봉림 대군을 모셔 신임을 얻었다. 현종이 세자 시절 춘궁 강관을 뽑을 때에도 진선으로 발탁되어 국왕과의 인연이 깊었다. 강원도·경상도·함경도의 관찰사를 두루 역임하였고 강화 유수로 재임할 때는 병기 수보(修補)와 군량미 확보에 노력하여 효종의 북벌 계획을 도왔다. 본관은 대구(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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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동산리에 있는 선정비. 서유민의 본관은 대구이고, 자는 원경(元畊)이며, 1779년(정조 3)에 태어났다. 1805년(순조 5)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음직(蔭職)으로 1818년(순조 18) 목릉(穆陵)[선조와 원비(元妃) 의인왕후(懿仁王后) 박씨, 그리고 계비(繼妃) 인목왕후(仁穆王后) 김씨의 능] 참봉에 제수되었다. 1826년(순조 26) 8월 삼등 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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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대구(大丘). 자는 국보(國寶). 서성(徐渻)의 현손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제조(提調) 서경주(徐景霌)이고, 할아버지는 서정리(徐貞履)이다. 아버지는 자헌대부 예조 판서 서문유(徐文裕)이고, 어머니는 이홍적(李弘迪)의 딸이다. 서종옥(徐宗玉)의 동생이고 황주 목사 서명민(徐命敏)의 아버지이다. 서종벽(徐宗璧)「1696∼?]은 1721년(경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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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金寶)를 시조로 하고 김덕유(金德裕)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서흥 김씨(瑞興金氏) 시조 김보는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아들 김은열(金殷說)의 6대손으로, 고려 명종(明宗) 때 사람이다. 손자인 김천록(金天祿)이 삼별초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1280년(충렬왕 7)에 왕으로부터 서흥군(瑞興君)으로 봉군(封君)된 뒤, 서흥을 본관으로 삼고 할아버지 김보를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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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 선암 서원 경내에 있는 현판 일체. 선암 서원(仙巖 書院)은 삼족당 김대유, 소요당 박하담을 제향하며, 강학하던 곳이다. 1568년(선조 1)에 고을 사람들이 위패를 봉안하고 향현사(鄕賢祠)라 하였던 것을 1577년(선조 10)에 군수 황응규(黃應奎)의 주선으로 운수정(雲樹亭)에서 선암(仙巖)으로 이건하고, 선암사(仙巖祠)라 이름을 고쳐 봉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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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남강 서원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후기에 제작된 유현들의 유필을 새긴 판목. 조선 후기 영남 지역에서는 문집 간행이 성행하였는데, 밀양 박씨 문중에서도 가문의 선양(宣揚)을 위한 작업을 일환으로 유묵의 판각을 실시한 것으로 보인다. 이 판목은 영남 지역 양반 사족들의 가문 선양의 구체적 사례로서 의미가 있다. 한편 이 『선현 유묵(先賢 遺墨)』은 1725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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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순(都順)을 시조로 하고 도경신(都慶新)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도씨(都氏)의 연원은 한(漢) 무제 때 중국 여양 출신 북파장군 도계(都稽)가 여가의 반란을 평정한 공으로 도씨 성을 하사받아 비롯되었다고 보는 설과, 『경술보(庚戌譜)』에 따르면 한(漢) 성제(成帝) 때 고구려 동명왕의 맏아들 유리(瑠璃)가 이복동생 비류(沸流)·온조(溫祚)와 왕위 쟁탈을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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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어매(呂御梅)를 시조로 하고, 여시화(呂時華)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성주 여씨(星州呂氏) 시조 여어매(呂御梅)[또는 여어(呂御)]는 중국 당나라 사람이다. 877년(헌강왕 3)에 황소의 난을 피해 신라로 귀화해 신라 멸망 후 고려에서 공조 전서(工曹典書)를 지냈고, 성산 벽진[현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에 정착하였다. 그러나 병란으로 관련 문서가 소실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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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성현도의 역참들을 관리하는 데 드는 인적·물적 자원의 현황을 기록한 책. 『성현도저리역가리정절목(省峴道邸吏役價釐正節目)』은 1802년에 성현역과 성현 찰방 관할 아래 있던 역참들의 각종 현황들을 기록한 자료이다. 『성현도저리역가리정절목』은 2013년 현재 천안 우정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역 운영과 관리에 들어가는 액수를 각 역별로 기록하고, 관내의 역을 운영하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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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음관. 본관 은진(恩津). 자는 열경(悅卿). 할아버지는 송문흠(宋文欽)이며, 양부는 송치연(宋致淵), 생부는 송시연(宋時淵)이다. 어머니는 목사(牧使) 신사적(申思迪)의 딸이며, 부인은 진사 김이대(金履大)의 딸이다. 송계백(宋啓柏)[1781∼?]은 음보로 출사하여 1814년(순조 14) 돈녕부 참봉, 1816년(순조 16) 세자익위사 부수(副率)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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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대보(大甫)·홍보(弘甫). 회덕 출신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송세충(宋世忠), 할아버지는 송기수(宋麒壽)이다. 아버지는 송응순(宋應洵)이고 어머니는 안언수(安彦銖)의 딸이다. 4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동생은 송준조(宋浚祚)·송효조(宋孝祚)·송현조(宋顯祚)이다. 부인은 김찬(金瓚)의 딸이다. 송석조(宋碩祚)[1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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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선정비. 청도 군수 송요경이 백성을 구제한 것을 기리는 선정비로,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 사거리 마을에 있다. 송요경(宋堯卿)[1668∼1748]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자는 백유(伯兪)이고, 본관은 은진(恩津)이다.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의 증손자로 33세 때인 1700년(숙종 26)에 처음 벼슬한 이래 돈녕제용판관(敦寧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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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음관.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계문(稽文) 호는 호은(湖隱). 통덕랑(通德郞) 송덕규(宋德圭)의 아들이고, 현감 송환세(宋煥世)의 손자이며, 우암 송시열의 7대손이다. 송흠서[?∼?]는 음보로 출사하여, 1801년(순조 1) 2월 청도 군수에 부임하였다가 1805년(순조 5년) 5월 거창 부사로 자리를 옮겼다. 성품이 너그럽고 넉넉하였으며 효성과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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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우경(白宇經)을 시조로 하고 백사충(白思忠)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수원 백씨(水原白氏) 시조 백우경(白宇經)은 중국 당(唐)나라 소주 사람으로, 황제 헌원(黃帝軒轅)의 후손이며 시성(詩性) 백낙천(白樂天)과 사촌간이다. 간신배들의 모함을 받고 780년 신라에 귀화하여 대상(大相)의 벼슬에 올랐으며, 경주 자옥산 아래에 정착하였다. 본관의 유래로는 중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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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자미(安子美)를 시조로 하고 안세선(安世善)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순흥 안씨(順興安氏) 시조 안자미(安子美)는 고려 신종(神宗) 때 위형보승별장(興威衡保勝別將)을 지내고 후에 신호위 상호군(神虎衛上護軍)에 추봉된 인물이다. 후손들이 순흥[현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에 세거하면서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었다. 순흥 안씨는 판서공파(判書公派)·부제학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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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출신의 무신 식성군 이운룡이 기록한 일기와 등록. 임진왜란 때 원균의 휘하에서 원균을 설득하여 충무공 이순신과 연합 작전으로 옥포 해전의 선봉에서 활약했던 식성군 이운룡(李雲龍)[1562∼1610] 장군이 삼도 수군 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 재직 시 임진왜란 후의 상황 등을 기록한 일기 1책과 『계본 등록(啓本謄錄)』 2책이다. 두 책은 청도에 살던 이운룡의 11대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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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신대우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순조가 세자일 때 세자익위사 익위에 제수되어 보필하였고, 경연 특진관을 거쳐 동지중추부사·동지돈녕부사·호조 참판을 지냈다. 시문과 서예에 능했으며, 저서로는 『완구유집』이 전한다.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의부(儀夫), 호는 완구(宛丘). 우승지 신택하(申宅夏)의 손자이며, 의영고 판관(義盈庫判官) 신성(申晟)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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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에 있는 조선 시대 백자 가마터. 운문면 신원리에 있는 조선 시대 백자 가마터이다. 주변 일대가 토기 가마터로 발굴되어 토기 가마터로 불리기도 하지만 가슬갑사지의 일부로 추정됨에 따라 백자 가마터가 더 타당한 것으로 생각되는 곳이다. 청도군 운문면 운문사 입구인 방지 초등학교 문명 분교에서 국도 69호선을 따라 운문령 쪽으로 4.5㎞ 정도 가면 삼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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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청도 출신의 학자이자 문신인 박한주, 박수춘의 유문을 모아 만든 판목. 『양현록(兩賢錄)』은 우졸재 박한주와 국담 박수춘의 유문(遺文)을 모아 만든 것이다. 판목은 채제공이 쓴 서문 판목 3장만 남아 있다. 『양현록』 판목의 전체 크기는 길이 48.7㎝, 너비 24.3㎝, 두께 2.3㎝이다. 마구리는 한 쪽에만 있으며, 크기는 길이 25.2㎝, 너비 3.0㎝이다. 판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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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효전(車孝全)을 시조로 하고 차경안(車慶安)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차씨(車氏)는 중국에서 유래한 성씨이다. 우리나라 차씨는 중국 황제의 후손 사신갑(似辛甲)이 고조선으로 망명해 이름을 왕조명(王祖明)으로 바꾸었고, 그 후손인 왕몽(王蒙)이 정치적 화를 피하기 위하여 성을 전(田)·신(申) 등으로 바꾸었다가 후에 차무일(車無一)로 바꾸면서 비롯되었다. 차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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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상리에 있는 김지대의 묘재. 영헌공(英憲公) 김지대(金之岱)[1190∼1266]는 청도 김씨 시조로 청도 대성리에 태어났다. 시서와 문예에 능통하였고, 1218년(고려 고종 5)에 거란족이 쳐들어 왔을 때 아버지를 대신하여 종군하였으며, 문과에 장원으로 뽑혀 전주사록에 임명되었다. 그 후 전라도 경상도 안찰사를 거쳐 오산군(鰲山君)에 봉해지고 금자광록대부(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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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남양리에 있는 재사. 박숙(朴琡)은 자가 이헌(而獻), 호는 용암(龍巖)이며, 기포(杞圃) 박우(朴瑀)의 아우이다. 임진왜란 때 어린 나이로 창의하여 많은 공을 세워 선무원종 삼등공신이 내리고, 군자감 봉사(軍資監 奉事)에 올랐다. 저서로는 『남정록(南征錄)』이 있고, 종의사(宗義祠)에 배향되었다. 영모재(永慕齋)는 후손들이 선조의 유덕을 추모하며, 향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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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암(千巖)을 시조로 하고 천선부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영양 천씨(潁陽千氏)는 명나라 관리 천암(千巖)을 시조로 받들고 있다. 영양(潁陽)은 현재 중국 하남성 등봉현 영양진으로, 고대 중국의 왕도였던 낙양과 정주 사이 숭산 근처에 위치한 유서 깊은 곳이다. 우리나라의 영양 천씨는 조선 시대 명나라를 건너온 천암의 9세손 천만리를 중시조로 한다. 천만리(千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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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대전리에 있는 재실.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대전리 839에 위치한다. 청도 전자 고등학교 정면의 국도 902호선을 따라 각남면사무소 방향으로 약 1,100m 정도 가다 이서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대전리로 들어가면 나오는 대전 1리 영농회 농산물 집하장에서 약 150m 더 들어간 상대전 마을 안에 있다. 의흥 예씨 문중에서 독지당(獨知堂) 예석훈(芮碩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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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의 인문지리적 상황을 담은 사찬 읍지. 『오산지(鰲山志)』는 청도의 재지 사족이던 이중경(李重慶)이 1673년경에 편찬한 사찬 읍지이다. 당시에 편찬된 다른 사찬 읍지보다 편목이 다소 많은데, 이는 당시 청도의 재지 사족에 관한 내용들을 많이 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찬 읍지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중경의 본관은 전의이며, 1599년 아버지 이기옥[1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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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남산리 남강 서원에 있는 오졸재 박한주의 문집을 새긴 판목.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남산리에 있는 남강 서원에 소장된 『오졸재 실기(迂拙齋 實記)』 판목은 모두 39장이다. 『오졸재 선생 실기(迃拙齋 先生 實記)』 판목 37장과 문집의 부록에 실린 『남강 서원 청액소(南岡 書院 請額疏)』 판목 2장을 포함한다. 『오졸재 선생 실기』는 조선 초기의 문신인 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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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차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비석과 비각. 김종직(金宗直)의 제자로 무오사화(戊午士禍)·갑자사화(甲子士禍)에 희생된 박한주(朴漢柱)[?∼1504]의 여표비(閭表碑)이다. 박한주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천지(天支), 호는 오졸재(迕拙齋)이다. 청도군 풍각면 차산리에서 출생하여 김종직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연산군의 정치를 간하다 무오사화 때 평안도 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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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령(全永齡)을 시조로 하고 전시현(全時鉉)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옥산 전씨(玉山全氏)의 도시조(都始祖)인 전섭(全聶)은 고구려 동명왕(東明王)의 셋째 아들 온조(溫祚)가 기원전 18년 백제를 개국할 때 오간(烏干)·마려(馬藜)·을음(乙音)·해루(解婁)·흘간(屹干)·곽충(郭忠)·한세기(韓世奇) 등과 함께 공을 세워 십제공신(十濟功臣)으로 환성군(歡城君)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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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학산리에 있는 서원.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학산리 450에 있다. 이서면사무소에 팔조령 방향으로 난 국도 30호선을 따라 약 950m 정도 이동하면 학산 1리 노인 회관이 길 우측에 있고, 노인 회관의 좌측으로 난 길을 따라 마을 야산으로 가면 용강 서원이 자리 잡고 있다. 충숙공(忠肅公) 박익(朴翊)[1332∼1398]과 임진왜란 당시의 14의사(義士)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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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하평리에 있는 재사. 이기는 자가 요장(堯章), 호는 용산재(龍山齋) 또는 취선(醉仙)이며, 학행과 덕행이 높아 용산 서당에서 후학 지도에 힘썼다. 이후 후손들이 이기를 기리기 위하여 용산재를 건립하였다. 후손들이 선조의 유덕을 추모하기 위해 1724년에 건립했고, 1926년 중건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매전면에서 국도 20호선을 타고 동산리를 거쳐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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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오산리 용천사에 있는 불전. 용천사는 창건 당시 화엄종 10대 사찰로 3,000여 명의 승려가 수도하였고, 소속 암자 백련암(白蓮庵), 극락암(極樂庵) 등 47개소에 이르렀다고 전해진다. 현재도 곳곳에서 그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용천사 대웅전은 못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은 매우 웅장한 건물로서 기둥 목재는 아름드리 칡덩굴을 사용하였다. 또 법당 안에는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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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오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표석. 표석(表石)이란 특정한 지역이나 영역을 표시하는 돌이나 비석 혹은 죽은 사람의 이름, 관직 등을 적어 무덤을 표시하는 돌을 말한다. 용천사 동하 도로 수치 송공 표석(湧泉寺 洞下 道路 修治 頌功 表石)은 길이 험난하여 용천사 승려들이 자비를 들여 길을 평탄하게 정리한 것을 칭송한 내용의 비석이다. 용천사는 670년(신라 문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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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명대리에 있는 사당.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명대리 32에 위치한다. 청도 전자 고등학교 전면의 지방도 902호선 맞은편의 청도 전자 고등학교 생활관 사이의 길을 따라 명대리 나북 마을까지 약 3,000m 정도 들어가면 야산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김해 김씨 문중에서 모암(慕庵) 김극일(金克一)[1382∼1456]을 기리기 위해 1670년에 건립하였다.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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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순지리에 있는 조선 시대 주거 건축. 운곡(雲谷) 김몽로(金夢魯)[1828∼1884]의 생가이다.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순지리 342-2에 있는데 운문면사무소에서 순지리 방향으로 난 69호선 국도를 따라 약 2,500m 정도 이동하면 길 좌측에 있다. 운곡 김몽로의 생가인데, 운문댐 건설로 인해 1993년에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 운곡 정사란 당호는 근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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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운문사에 있는 부도 떼. 운문사 부도 떼는 운문사 부도전[승탑원]에 모여 있다. 부도전은 운문사에 주석했던 고승 대덕의 탑과 탑비를 모셔 놓은 구역으로 총 16기의 석조물이 있다. 이 가운데 명암당 석제 대사의 탑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1658년에 조성되었으며, 금파당 대연 승려 탑비가 1915년으로 가장 늦게 봉안되었다. 따라서 부도전은 17세기 후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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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에 있는 운문사 내원암 무량수전에 봉안되어 있는 석조 아미타불 좌상. 운문사 산내 암자 중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내원암에 봉안되어 있는 불상이다. 경주 일원에서 나는 옥돌로 제작되었으며, 불상 개금 당시 확인된 복장 유물을 통해 1681년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운문사 내원암 석조 아미타불 좌상(蕓門寺 內院庵 石造 阿彌陀佛 坐像)은 불상 개금 시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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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경상북도 청도 운문산 일대에서 의병들이 왜군을 상대로 벌인 전투. 운문산 전투는 임진왜란(壬辰倭亂)[1592∼1598] 당시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서 조직된 의병들이 왜군을 상대로 벌인 전투 중의 하나이다. 1592년 4월 13일 부산을 침입한 왜군 중 제1군은 4월 14일에 동래 부사(東萊府使) 송상현(宋象賢)이 버틴 동래성을 함락시키고, 이어 김해·양산·울산·언양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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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동산리에 있는 밀성 박씨 정자. 운수정은 매전면 동산리 동창천변의 창벽 위에 있는 정자이다. 삼족당(三足堂) 김대유(金大有)와 소요당(逍遙堂) 박하담(朴河淡)이 정사를 마련하여 운수정이라 하고 유생들에게 학문을 전수한 곳이다. 김대유, 박하담 사후에는 이곳에 위패를 봉안하고 향현사(享賢祠)라 하였다가, 선암 서원이 창건된 뒤 위패를 이향했다. 매전면사무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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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원리에 있는 부도. 부도는 입적한 승려의 유골이나 사리를 봉안하는 시설로 묘탑적(墓塔的) 성격을 갖는 조형물이다. 불가에서 입적은 열반에 비유되는데 열반이란 수행이 점진적인 단계를 밟으면서 일체의 번뇌가 모두 소멸되었을 때의 경지를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부도는 최고의 경지에 이른 열반한 승려의 유골이나 사리를 모신 조형물이라 할 수 있다. 원리 부도는 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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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원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부도 떼. 부도는 입적한 승려의 유골이나 사리를 봉안하는 시설로 묘탑적(墓塔的) 성격을 갖는 조형물이다. 불가에서 입적은 열반에 비유되는데 열반이란 수행이 점진적인 단계를 밟으면서 일체의 번뇌가 모두 소멸되었을 때의 경지를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부도는 최고의 경지에 이른 열반한 승려의 유골이나 사리를 모신 조형물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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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금천리에 있는 묘재. 김업은 호는 여준(汝俊)으로 후손들이 선조의 유덕을 추모하는 묘재와 문중 회합을 위해 1853년에 건립했고, 2003년 대대적인 개·보수를 했다. 매전면에서 청도읍 쪽으로 국도 20호선을 타고 동산리, 하평리, 상평리를 지나 관하 2리 원정자 마을을 지나면 우측으로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으로 넘어가는 지방도가 나온다. 이 지방도를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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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안열(邊安烈)을 시조로 하고 변국귀(邊國貴)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원주 변씨(原州邊氏)는 황주 변씨(黃州邊氏)에서 분적한 성씨이다. 황주 변씨의 시조는 중국 농서 변요(邊幺)의 아들 변여(邊呂)인데, 송(宋)나라가 망하자 고려 황주로 귀화한 인물이다. 변여의 6세손 변안열(邊安烈)이 원주 원씨(原州元氏)와 혼인하여 원주에 정착한 뒤 후손들이 변안열을 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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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월곡리에 있는 재실.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월곡리 195에 위치한다. 대구에서 청도 방향으로 난 국도 25호선을 따라오다가 청도 월곡 휴게소에서 약 200m 직진하다 좌회전하여 박월교를 건너면 야산 아래에 있다. 칠성 이씨 문중에서 이수(李洙)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1780년에 건립하였다. 재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 기와집이다. 주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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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여병(汝柄). 거주지는 한양으로, 양아버지는 통훈대부(通訓大夫) 행안악 군수(行安岳郡守)를 역임한 유수증(兪守曾), 아버지는 통훈대부 행진위 현령(行振威縣令)인 유시증(兪是曾)이다. 유극(兪極)의 아우이다. 유비(兪秘)[1605∼1671]는 23세 되던 1627년(인조 5)에 사마시 진사과에 합격했다. 1666년(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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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계성(季省). 아버지는 절충 장군(折衝將軍)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역임한 유대기(兪大祺)이고, 유상증(兪尙曾)과 유약증(兪若曾)이 형이다. 부인은 첨추공(휘 기원)의 딸 신평 송씨이다. 거주지는 서울이다. 유선증(兪善曾)[1583∼1658]은 30세이던 1612년(광해군 4)에 사마시 진사과에 합격했다.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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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유진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서애 유성룡의 아들이다. 아버지에게 글을 배워 사마시에 장원 급제하였으나, 관직에 연연하지 않고 명문가의 후예답게 깨끗하고 성실한 생애를 보냈다.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계화(季華), 호는 수암(修巖). 거주지는 안동이다. 아버지는 영의정 유성룡(柳成龍)이고, 어머니는 이경(李坰)의 딸이다. 유여의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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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서응(瑞膺), 호는 병계(屛溪)·구암(久菴). 할아버지는 호조 참판 윤비경(尹飛卿), 아버지는 윤명운(尹明運)이며, 우참찬 윤봉오(尹鳳五)의 형이다. 윤봉구(尹鳳九)[1681∼1767]는 1714년(숙종 40)에 진사가 되고, 1725년(영조 1) 7월에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청도 군수로 부임하였다가 이듬해 11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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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의지(宜之). 거주지는 한양이다. 아버지는 가선대부(嘉善大夫)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낸 윤훤(尹暄)이고, 윤순지(尹順之)·윤원지(尹元之)·윤징지(尹澄之)가 형이다. 윤의지(尹誼之)[1605∼1666]는 1605년(선조 38)에 태어나, 20세 되던 1624년(인조 2)에 사마시 진사과에 합격하였다. 1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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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민(南敏)을 시조로 하고, 남도후(南圖厚)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남씨(南氏)의 시조는 남민(南敏)이다. 본명은 김충(金忠)이며 중국 당나라 사람인데, 일본에 다녀오는 길에 표류하다가 신라에 도착하여 귀화하였다. 신라 왕이 남쪽에서 온 사람이라 하여 남씨(南氏)를 성으로 하사했다고 한다. 남민의 7세손인 남진용(南鎭勇)의 세 아들 중 맏아들 남홍보(南洪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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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이경생은 조선 후기의 문인으로, 광해군이 인목 대비를 폐하려 하자 반대하였다. 인조반정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았으나, 임금 될 사람을 가까이 하면 은혜를 구하는 삶이 될까 조심하였다. 1623년(인조 1) 김화 현감을 시작으로 풍덕 군수·양양 부사·청도 군수 등을 역임하며 선정을 베풀었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숙향(叔向). 아버지는 승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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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4년 경상도 청도군 하남면 고수리에 거주하고 있던 이동채가 청도군으로부터 발급받은 준호구. 「이동채 준호구(李東采 準戶口)」의 발급자는 청도 군수이다. 이동채가 어떠한 필요로 준호구 발급을 청도군에 청하였고, 그 결과 1774년 3월 준호구를 발급받았다. 이동채는 본관이 경주, 직역(職役)은 유학(幼學), 1704년[갑신] 생으로 수급 당시 71세였다. 이동채가 거주하던 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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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이성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1635년 과거에 급제한 뒤 승문원 교례를 비롯하여 병조 정랑·사헌부 지평 등을 역임하였다. 1649년(인조 27) 청도 군수로 부임하여 청렴한 생활을 하며 선정을 쌓았으나, 화재 사건으로 파직되었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화봉(華封), 호는 매헌(梅軒). 영광 출신으로, 할아버지는 이응종(李應鐘)이고, 아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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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출신의 무신. 이운룡은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임진왜란 때 옥포 만호로 있으면서 패전한 원균(元均)을 대신해, 이순신(李舜臣)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이순신의 막하에서 여러 번 싸움에 나아가 큰 전공을 세워, 경상좌도 수군 절도사가 되었다. 오랑캐가 북쪽 변방에 침입했을 때 함경남도 병마 절도사가 되어 적을 진압했다.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경견(景見), 호는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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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운룡이 선조로부터 1604년에 받은 공신 교서와 1596년에 받은 교지. 이운룡(李雲龍)[1562∼1610]은 경상도 청도군 출신의 대표적인 무신으로 임진왜란 때 세운 공으로 선무공신(宣武功臣) 3등에 책봉되었다. 그 과정에서 발급된 공신 교서(功臣敎書)와 교지(敎旨)가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으며, 2013년 현재 이운룡의 후손인 재령 이씨(載寧李氏) 지암 종중(砥巖宗中)에서 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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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원정리에 있던 조선 후기 무신인 이운룡의 영정. 이운룡(李雲龍)[1562∼1610] 장군은 청도 출신의 무신으로 자는 경명이고, 호는 동계이다. 1585년(선조 18)에 24세로 무과에 급제하여 유성룡의 천거로 1587년(선조 20)에 선전관에 오르고 임진왜란 때 옥포만호로 많은 공을 세운 후 응천 현감에 승진되었다. 그 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부장으로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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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8년 청도군에서 발급한 노비 소송에 대한 결송 입안. 「이익규 입안(李益圭 立案)」은 경상도 청도군 소재의 노비 소유 분쟁을 판결한 뒤, 승소한 유학(幼學) 이익규(李益圭)[1625∼1706]에게 1698년(숙종 24) 1월 발급해 준 청도군의 최종 판결문인 결송 입안(決訟立案)으로, 2013년 현재 경주 독락당에 소장되어 있다. 「이익규 입안」은 소송에서 승소한 이익규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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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백야(白也). 거주지는 한양이다. 아버지는 이석령(李錫齡), 할아버지는 이유한(李維漢), 증조할아버지는 이상연(李尙淵)이다. 어머니는 황응로(黃應老)의 딸이며, 부인은 서종제(徐宗悌)의 딸이다. 이중인(李重寅)의 형이다. 이중경(李重庚)[1680∼?]은 23세이던 1702년(숙종 28) 사마시 진사과에 합격하였고,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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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출신의 문인. 이중경은 17세기 청도 지역에서 학덕과 문장으로 이름이 높았던 재지 사족 가운데 한 명이다. 이중경은 800편이 넘는 시(詩)와 산수 유기 「유운문산록(遊雲門山錄)」, 그리고 연작 시조 「오대어부가(梧臺漁父歌)」, 청도 지역 최초의 사찬 군지 『오산지(鰲山誌)』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경숙(慶叔), 호는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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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이찬한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청도 군수와 삼척 부사, 사헌부 장령 등을 역임하였다.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자소(子昭), 호는 계동(溪東). 증조할아버지는 이헌(李憲)이고, 할아버지는 이주도(李周道)이며, 아버지는 이명(李㟰)이다. 이찬한(李燦漢)[1610∼1680]은 1646년(인조 24) 사마시 진사과에 합격하였고, 2년 후인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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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예리리에 있는 비각. 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예리리 792-2에 위치한다. 각남면사무소 앞의 국도 20호선에서 서원리 방향으로 약 340m 정도에 있는 신서 농협 주유소 앞면으로 난 길로 좌회전하여 약 700m 들어가면 길 우측에 위치하고 있다. 효행으로 동몽교관(童蒙敎官) 조봉대부(朝奉大夫)에 증직된 이택준(李宅俊)과 처인 현풍 곽씨(玄風 郭氏)의 열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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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금용(張金用)을 시조로 하고 장용(張鎔)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인동 장씨(仁同張氏)의 시조는 고려 때 삼중대광(三重大匡) 신호위상장군(神虎衛上將軍)을 역임한 장금용(張金用)이다. 장금용의 13세손인 장백(張伯)은 고려 우왕 때 태상경(太常卿)으로 문하시중 도첨의밀직사(門下侍中都僉議密直使)를 역임하였는데, 후에 좌리공신(佐理功臣)에 녹훈되어 옥산군(玉山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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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임당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비석 떼. 금천면 임당리 명포 마을에 있는 청도 군수 정해상과 서유민의 공적을 기리는 2개의 비석이다. 군수 정해상은 자가 문노(文老)이고, 본관은 영일이다. 1849년(헌종 15)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1851년(철종 2) 2월에 청도 군수로 부임하여, 1854년(철종 5) 5월에 밀양 부사로 옮겼다. 군수 서유민은 자가 원경(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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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2차례에 걸쳐 일본이 조선에 침입하여 경상북도 청도군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에 걸쳐 일본이 조선에 침입한 전쟁이다. 화의 결렬로 1597년 다시 침입한 정유재란을 포함해서 일컫는다. 조선 건국 후 약 200년간 안정이 지속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모순이 드러나기도 했다. 조선 초기 경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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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에 있는 적천사 사천왕각에서 발견된 복장 유물. 적천사 사천왕상 복장 유물은 1981년에 적천사 사천왕각(四天王閣)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사천왕 목상 안에서 발견되었다. 사리, 경판, 다라니경, 곡식, 향료 등과 함께 철릭, 장삼, 창옷, 적삼, 중치막, 직령 등 의류 23점이 발견되었고, 현재 남아 있는 복식 유물은 7점으로 철릭 3점, 장삼 1점, 중치막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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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원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괘불탱 및 지주. 적천사(磧川寺)는 664년(신라 문무왕 4)에 원효 대사가 창건하고, 828년(흥덕왕 3)년에 흥덕왕의 셋째 아들인 심지 왕사가 중창하였다고 전한다. 1175년(고려 명종 5)에 보조 국사가 중창하고 자련암, 옥련암, 목탁암, 운주암 등의 여러 암자를 세웠다. 임진왜란 때 병화로 많은 건물이 소실되어 1664년(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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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원리 적천사에 있는 조선 시대의 목조 사천왕 의좌상. 사천왕은 동방 지국천, 서방 광목천, 남방 증장천, 북방 다문천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은 불교 세계의 중심에 솟아 있는 수미산 중턱의 동서남북을 지키는 수호신이다. 석존의 열반 후 석존으로부터 불법 수호의 임무를 부여받아 범천 및 제석천과 함께 호법신으로 확립되었다. 이러한 사천왕상이 널리 믿어지고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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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북지리에 있는 비각. 정내헌(鄭乃憲)의 효행을 칭송하기 위해 오천 정씨 문중에서 건립한 효자각이다. 내헌(乃憲)은 정환주(鄭煥冑)의 자이다. 호는 양심재(養心齋)이며, 포은 정몽주의 후예이다. 정동채(鄭東采)의 아들로 기품이 순수하고 재지가 총명하여 학문에 전력하고 가훈을 이어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였다. 어머니가 병환이 들자 주야로 간호하고 정성을 다하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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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출신의 학자.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덕소(德邵), 호는 눌연(訥淵). 할아버지 정세경(丁世卿) 때 청도에 처음 거주하였다. 아버지 정복(丁復)과 어머니 월성 이씨(月城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정민도(丁敏道)[1553∼1635]는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벼슬에 뜻을 버리고 운문의 눌연(訥淵)에 정자를 짓고 학문에 정진하였다. 삼족당 김대유와 소요당 박하담을 사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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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미중(美仲), 호는 지당(止堂)·옥호자(玉壺子). 정석기(鄭碩基)의 손자로 목사 정무(鄭堥)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윤우태(尹遇泰)의 딸이다. 정하언(鄭夏彦)[1702∼1769]은 1735년(영조 11) 진사로서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42년(영조 18) 경상도 도사 시절 진휼사의 종사관으로 선발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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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지숙(祗叔). 아버지는 통훈대부 경기좌도 수운 판관(京畿左道水運判官) 정재악(鄭載岳)이며, 형제로 정희선(鄭希先)·정술선(鄭述先)·정현선(鄭顯先)·정무선(鄭懋先)이 있다. 정흠선(鄭欽先)[1670∼1752]은 1730년(영조 6) 12월 청도 군수로 부임하여 1735년(영조 11) 10월 임기가 차서 벼슬을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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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을나(高乙那)를 시조로 하고 고응명(高應明)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제주 고씨(濟州高氏)는 탐라 개국 설화에 나오는 삼신인(三神人) 가운데 한 사람인 고을나(高乙那)를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제주 고씨는 성주공파(星主公派)·전서공파(典書公派)·영곡공파(靈谷公派)·문충공파(文忠公派)·장흥백파(長興伯派)·화전군파(花田君派)·문정공파(文禎公派)·상당군파(上黨君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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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오산리에 있는 열녀각.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오산리 410-1에 위치한다. 덕촌 초등학교 전면에 있는 지방도 902호선을 따라 오산 2리 방향으로 약 1.5㎞ 정도 이동하면 길 우측에 위치하고 있다. 조말남(曺末男)의 열행을 칭송하기 위해 1842년 현풍 곽씨 문중에서 건립하였다. 비각은 원래 단칸[單間] 규모의 맞배 기와집이었으나, 최근에 지붕을 강판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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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서상리에 있는 조선 후기 청도 군수 조시만의 선정비. 조시만은 본관은 풍양이고, 자는 경박(敬博)이다. 사마시에 급제 후 1774년(영조 50) 9월 청도 군수로 부임하여 1776년(영조 52) 7월 전라도 나주 목사로 이배되었다. 그 뒤 호조 정랑, 상주 목사(尙州牧使) 등을 역임하였다. 비문에 의거하면 조시만이 학교흥(學校興), 즉 청도 향교 중흥시킨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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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월곡리에 있는 조원붕의 선정을 기리는 새김글. 조원붕 새김글은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월곡리 월곡 마을에서 남쪽으로 200m 가량 떨어진 경부선 철로 옆에 있다. 이 새김글은 바위 면을 비석 형태로 다듬고 글씨를 새긴 마애비(磨崖碑)이다. 비석의 규모는 너비 0.57m, 잔존 높이 1m로 윗부분이 둥근 호패 모양이다. 비면의 중앙에 세로로 “현감 조 공 원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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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안중(安仲), 호는 검간(黔澗). 상주 출신으로, 할아버지는 조희(趙禧)이고, 아버지는 조광헌(趙光憲), 어머니는 홍윤최(洪胤崔)의 딸 남양 홍씨이다. 조정(趙靖)[1555∼1636]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활약하였고, 1596년 왜와의 강화를 배격하는 소를 올렸다. 1599년(선조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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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녹명리와 풍각면 덕양리에 있는 조선 시대 산성. 축조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임진왜란 때 박경선(朴慶宣)이 왜병을 물리치기 위해 쌓았다고 전해진다. 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녹명리와 풍각면 덕양리에 걸쳐 있는 해발 259.5m의 산 정상부에 위치한다. 녹명 1리 구만 마을에서 서쪽으로 산 사면을 따라 1㎞ 정도 올라가면 도달할 수 있다. 테뫼식으로 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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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신촌리에 있는 서원. 일청재(逸淸齋) 박호(朴虎), 모효재(慕孝齋) 박지현(朴之賢), 경양재(景陽齋) 박태고(朴太古), 죽옹(竹翁) 박중채(朴重采)를 향사하기 위해 건립한 서원이다.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신촌리 270에 있다. 대구 팔조령에서 청도로 지나가는 30호선 국도를 따라 오다가 이서면 덕신 경로 회관에서 우회전하여 약 1,500m 정도 신촌리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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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지전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비석 떼. 매전면 지전리 지소 마을에서 동쪽으로 80m 지점의 도로 옆과 마을 입구에 있다. 2기의 선정비가 철조망 안쪽에 있는데, 정해상과 서유민이 청도 군민을 위하여 선정을 베푼 것을 기리기 위하여 청도 군민들이 세운 것이다. 군수 정해상은 자가 문노(文老)이고, 본관은 영일이다. 1849년(헌종 15)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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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공진(河拱辰)을 시조로 하고 하천용(河天龍)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진양 하씨(晉陽河氏)는 삼한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 자세한 연원은 알 수 없다. 이후 세 명의 중시조에 따른 세 계통으로 세계(世系)를 잇고 있다. 고려 현종 때 평장사에 오른 하공진(河拱辰)을 시조로 하는 시랑공파(侍郞公派), 고려 정종과 문종 대에 걸쳐 사직을 지낸 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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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옹(邢顒)을 시조로 하고 형대걸(邢大傑)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진주 형씨(晋州邢氏)의 시조 형옹(邢顒)은 중국 당(唐)나라 태종(太宗) 때 사람으로, 고구려 영류왕(榮留王)의 요청에 따라 8학사(八學士)의 한 사람으로 평양에 들어와 정착하였다. 형웅의 13세손 형방(邢昉)이 고려 명종(明宗)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냈고, 15세손 형공미(邢公美)가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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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청도 군수를 지낸 무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덕여(德轝)·여빙(汝憑), 호는 일제당(日躋堂). 거주지는 중화(中和)이다. 아버지는 차득보(車得輔)이다. 차은로(車殷輅)[1563∼?]는 1591년(선조 24) 29세의 나이로 별시(別試) 무과에 병과로 합격하였다. 이듬해인 1592년(선조 25) 9월 별장으로 황주 목사(黃州牧使) 김진수(金進壽)와 함께 요로에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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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보(成仁輔)를 시조로 하고 성세린(成世璘)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창녕 성씨(昌寧成氏) 시조 성인보(成仁輔)는 대대로 창녕에서 살아온 선비이며, 고려 시대 호장 중윤(戶長中尹)을 역임했다. 정월 초 개성 하례 모임에 참석하던 중 병사하자 문하시중인 아들 성송국(成松國)이 시신을 업고 창녕으로 오다 현풍현(玄風縣) 모산리(牟山里) 맥산(麥山)에 안장하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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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룡(曺繼龍)을 시조로 하고 조광윤(曺光胤)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창녕 조씨(昌寧曺氏) 시조 조계룡(曺繼龍)은 신라 진평왕의 사위이다. 『조선 씨족 통보(朝鮮氏族統譜)』에 의하면 어머니는 한림 학사(翰林學士) 이광옥(李光玉)의 딸 예향(禮香)이며, 조계룡의 출생에 대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예향은 창녕현 고암촌(鼓巖村) 태생으로, 병이 생겨 화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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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충준(黃忠俊)을 시조로 하고 황도흥(黃道興)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창원 황씨(昌原黃氏)의 시조는 고려 성종 때 문하시중을 지낸 황충준(黃忠俊)이다. 창원 황씨는 황충준을 시조로 하는 시중공파(侍中公派) 외에 고려 충정왕 때 문하평장사를 지낸 황석기(黃石奇)를 시조로 하는 공희공파(恭僖公派), 고려 시대에 호장을 지낸 황양충(黃亮沖)을 시조로 하는 호장공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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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1년 남수성이 청도 군수에게 노비 매득에 대한 사실을 사급해 달라고 요청한 소지. 1741년 1월에 작성된 남수성(南壽星)의 소지는 노비 매매 문서에 점련된 5점의 일괄 문건 중 하나이다. 나머지 문기는 1740년에 작성된 남수성의 노비 매매 명문, 1741년에 작성된 노비 전 주인 강우주(姜佑周)의 초사(招辭), 1741년에 작성된 증인 백운채(白雲彩)와 필집자 손서대(孫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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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박곡리 대비사에 있는 조선 시대 불전. 대비사는 566년(신라 진흥왕 27)에 건립되었다고 전해지는 사찰이다. 박곡리 마을에 건립되었는데 고려 시대에 현재 위치로 이전하였다. 사찰의 배치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향로전과 요사채를 두었으며, 대웅전의 우측 뒤편에는 삼성각이 위치하고 있다. 대비사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상이 있으며, 16세기경에 세운 것으로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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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송금리 대적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불전. 대적사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9 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876년(신라 헌강왕 2) 보조 선사가 창건하였으며, 고려 초기 보양이 중창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불에 탄 뒤, 1635년 3칸의 암자를 짓고 대적사라 칭하면서 중건하고 1689년(숙종 15) 성해(性海)가 중수하였다. 그러나 이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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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소라리 덕사 명부전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석조 지장 삼존상 및 시왕상. 덕사의 창건은 신라 말 고려 초라고 전해지나 문헌이나 고증이 없어 상세한 사실은 알 길이 없고 현재의 덕사가 세워진 것은 조선 선조 때이다. 청도 군수로 부임한 황응규는 1576년(선조 9)에 주구산(走狗山)의 산세가 풍수지리상 개가 달아나는 형상이라 하여 달아나는 개를 떡을 주어 머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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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소라리 덕사 영산전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석조 여래 삼존상 및 십육 나한상. 덕사의 창건은 신라 말 고려 초라고 전해지나 문헌이나 고증이 없어 상세한 사실은 알 길이 없고, 현재의 덕사가 세워진 것은 조선 선조 연간이다. 청도 군수로 부임한 황응규는 1576년(선조 9)에 주구산(走狗山)의 산세가 풍수지리상 개가 달아나는 형상이라 하여 달아나는 개를 떡을 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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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동천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얼음 저장 창고. 우리나라의 얼음 관련 기록으로는 505년(신라 지증왕 6)부터 1898년(광무 2)까지 얼음을 저장하여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겨울에 동지가 지나 얼음이 가장 두껍게 얼었을 때, 장빙제(藏氷祭)를 지내고 얼음을 채취하여 저장하였고,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는 개빙제(開氷祭)를 지내고 얼음을 꺼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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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에 있는 조선 후기 주택. 조선 후기에 운강(雲岡) 박시묵(朴時默)의 둘째 아들 박재소(朴在韶)[1840∼1873]가 분가하면서 건립한 가옥이다.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에 위치한다. 금천면사무소에서 신지리 방향으로 난 지방도 919호선을 따라 오다, 신지 1리 새마을 회관을 약 70m 정도 못 가 길 좌측에 위치하고 있다. 19세기에 건립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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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에 있는 조선 후기 주택과 정자. 운강 고택은 소요당(逍遙堂) 박하담(朴河淡)[1479∼1560]이 은거하면서 후학을 양성하던 곳에 1809년에 후손인 박정주(朴廷周)[1789∼1850]가 분가하면서 건립한 조선 후기 주택이다. 만화정은 운강 고택의 부속 건물로 운강(雲岡) 박시묵(朴時默)[1814∼1875]이 1856년 건립한 정자로 수학을 강론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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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운문사에 있는 조선 후기 불전. 임진왜란 때 불탄 이후, 1994년 현재의 대웅보전을 신축하기까지 대웅보전의 역할을 하였던 건물로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두고 있는 불전이다. 정면 3칸·측면 3칸의 9칸 규모의 다포계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1985년 1월 8일 보물 제835호로 지정되었다. 운문사 내 만세루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다. 전각의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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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운문사에 있는 조선 후기 벽화. 「운문사 관음보살·달마대사 벽화」는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후불벽 뒷면에 수려한 자연 경관을 배경으로 화면 좌측에 백의 관음보살, 우측에는 깊은 산속에서 면벽 수행하는 달마대사를 배치하였다. 2014년 3월 11일 보물 제1817호로 지정되었다. 「운문사 관음보살·달마대사 벽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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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운문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비석.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1789 운문사 경내에 있는 비석이다. 설송 대사를 기리는 비석으로 설송 대사의 제자인 남붕(南鵬) 등이 1754년(영조 30)에 건립하였다. 모양은 비 몸체의 윗부분이 둥근 호패 모양 비석으로, 네모 모양의 비 받침 위에 고정되어 있다. 조선 후기 청도 운문사에 머물면서 휴정의 두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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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운문사에 있는 누각. 운문사 구 대웅보전 동편에 있는 누각 건물로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다. 운문사 중심 영역에 있는 구 대웅보전 동쪽에 있다. 구 대웅보전과 동일하게 남향을 취하고 있으나, 구 대웅보전의 주향과는 달리 남서쪽으로 약간 더 틀어져 배치되어 있다. 2006년 구 대웅보전 해체 수리 시 상량문과 함께 「순치 십이년 대웅전 중건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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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원리 적천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불전. 적천사는 664년(신라 문무왕 4)에 원효 대사가 창건하고, 828년(흥덕왕 3)에 심지 왕사가 중건하였다고 알려진 사찰이다. 적천사 대웅전은 천왕문과 조계문을 지나 사찰의 중앙에 남향으로 있다. 좌우에는 적묵당과 명부전이 있고, 뒤에는 좌우로 조사전과 영산전이 있다. 청도읍에서 경상남도 밀양시 방면 국도를 타고 내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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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유호리 대운암에 있는 관음보살 좌상 및 복장 유물. 대운암은 청도 용각산의 지맥인 오례산 꼭대기에 있는 사찰로, 1868년(고종 5) 부암 선사가 범굴에서 좌선 수도하던 중 현몽을 꾸고 창건했다고 한다. 호랑이가 살았다는 범굴 위에 있었던 관음전은 불에 타 사라진 것을 다시 지었는데, 현재 법당과 요사로 사용된다. 주 법당인 지금의 관음전은 2000년에 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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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동상리에 있는 조선 시대 관아 건축. 조선 시대 관아 건물의 하나로 청도 지방의 일반 행정 업무를 보던 중심 건물이다. 동헌은 아사(衙舍), 군아(郡衙), 현아(縣衙), 시사청(視事廳)으로 불리는데, 생활 처소인 내아(內衙), 즉 서헌(西軒)의 동편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동헌이라고 부른다.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동상리 158-2에 위치한다. 화양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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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운문사 비로전에 봉안된 후불탱화. 「비로자나 삼신 불회도(毘盧遮那 三身 佛會圖)」는 비로전에 봉안된 후불탱화로 보물 1613호로 지정되어 있다. 1755년 임한(任閑)을 수화사로 하여 19명의 화승이 모여 제작했다. 화폭의 크기는 가로 520㎝, 세로 460㎝로 대작에 속한다. 삼신 불회도는 크게 3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중앙에는 삼신불, 하단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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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지촌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마애 여래 좌상. 청도 장육산 마애 여래 좌상은 경상북도 경주시와 청도군의 경계에 있는 장육산 9부 능선에 위치하고 있다. 불상을 새긴 암벽 아래로 높이 1.8m의 석축을 쌓아 단을 만들었다. 평지에는 초석인 듯한 자연석이 곳곳에 놓여 있고 일부 기와 조각이 확인된다. 장육산 정상부 남쪽에 작은 절터가 있고 이 절터 북서쪽, 산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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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서상리에 있는 개항기의 척화비. 청도 척화비는 1866년(고종 3)의 병인양요, 1871년(고종 8)의 신미양요를 겪은 후 흥선 대원군 이하응이 서구 열강의 침입을 경고하고, 쇄국 정책을 더욱 굳건히 하기 위하여 1866년에 비문을 짓고, 1871년 전국 각지에 세웠던 여러 개 척화비 중의 하나이다.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 후 흥선 대원군이 몰려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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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교촌리에 있는 조선 시대 향교 건물. 향교는 조선 시대 청도 지역에 유학을 교육하기 위한 관학 교육 기관이다.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교촌리 48에 있다. 화양읍사무소 정면에 있는 길을 따라 화양 삼거리 방향으로 약 150m 정도 간 후, 석빙고 방향으로 우회전하여 약 400m 정도 들어가면 청도 향교가 있다. 청도 향교는 현재 남아 있는 문헌 자료에 따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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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란(韓蘭)을 시조로 하고 한계오(韓繼五)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한씨(韓氏)는 기자 조선에 연원을 두고 있다. 위만에게 밀려 마한으로 온 준왕(準王)[기자(箕子)의 40대손]의 8세손인 원왕(元王)은 3형제를 두었는데, 둘째 아들인 우량(友諒)이 신라의 상당(上黨)으로 옮겨 한씨라 칭하였다고 전한다. 우량의 32세손이자 청주 한씨(淸州韓氏) 시조인 한란(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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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오진리에 있는 선재. 금천면에서 운문댐 쪽으로 국도 20호선을 타고 운문교를 건너 운문댐 곁으로 난 지방도 985호선을 타고 순지리를 지나 방음리 바깥 말음 마을을 지나 900m가량 가면 북쪽으로 난 갈림길이 나온다. 이 갈림길로 운문댐 상류의 운문천에 오진교를 건너 조금 들어가면 오진리 용방 마을이 나온다. 용방 마을에서 동쪽으로 숲안 마을을 지나 금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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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신당리에 있는 재실. 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신당리 427에 위치한다. 각남면사무소 정면의 국도 20호선을 따라 이서 삼거리 방향으로 약 800m 가다 좌회전하여 이실 마을로 들어가면 마을 내에 신당 1리 경로 회관이 있다. 이 신당 1리 경로 회관에서 야산으로 약 300m 정도 가면 길 좌측에 있다. 의성 김씨 문중에서 입향조인 김경원(金慶元)의 묘를 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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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린(石隣)을 시조로 하고 석가응(石佳應)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충주 석씨(忠州石氏) 시조 석린(石隣)은 고려 의종·명종 때의 무인이다. 의종 때 이의방(李義方)에 의해 서경 낭장(西京朗將)으로 발탁되었고, 1176년(명종 6)에는 두경승(杜慶升)을 따라 조위총(趙位寵)의 반란을 평정한 공로가 인정되어 상장군(上將軍)·동서북면 병마사(東西北面兵馬使)에 올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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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칠성리에 있는 상여를 보관하는 집. 상여집은 마을의 주민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상여를 보관하는 장소이다. 일반적으로 상여와 상여집은 마을 주민들이 ‘계’ 형태의 사회 조직을 운영하여 시설의 관리 및 일체 경비를 충당한다. 각남면사무소에서 화양읍 방면으로 국도 20호선을 따라 2㎞ 정도 지나면 각남 교차로가 나온다. 각남 교차로 남동쪽 소로를 따라 1.6㎞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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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토평리에 있는 탁영 종택에 소장된 조선 시대의 고문서. 김해 김씨(金海金氏) 일문은 조선 시대부터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토평리에 세거해 오고 있다. 특히 무오사화 당시 화를 입은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1464∼1498]을 비롯하여, 16세기 전후 다수의 사림파 인사들을 배출시키며 청도 지역의 명문 사족 가문으로 자리 잡았다. 김일손의 후손들도 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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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토평리 탁영 종택 소장 현판. 탁영 종택 소장 현판에는 「모천(慕川)」과 「분정기(分定記)」가 있다. 「모천」은 김일손의 12대손 김창윤(金昌潤)[1809∼1886]의 호이다. 판각 연대는 알 수 없으며, 현재 영모각에 보관 중이다. 「분정기」는 종택에서 불천위 제사 등의 각종 제의를 치를 때 집사를 분정하고, 그들의 명단을 붙여 놓는 판이다. 탁영 종택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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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도의 검(劍)의 명장(名匠). 탄재(炭齋)는 경상북도 청도군에 살던 검을 만드는 장인이다. 성은 신(申)이고,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아 탄재라는 호로 불렸다. 조선 후기에는 청도군에서 생산된 보검(寶劍)과 보도(寶刀)를 으뜸으로 쳤는데, 이는 탄재와 그의 제자들에 의해 이룩된 성과임이 여러 문헌에 전한다. 미천한 신분이라 가계는 알 수 없다. 성은 신(申)이고,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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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팔급(林八及)을 시조로 하고 임계량(林啓良)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평택 임씨(平澤林氏) 시조 임팔급(林八及)은 당나라 한림 학사(翰林學士) 동래 8학사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정착한 학자 중 한 명으로, 신라에 귀화하여 팽성[현 경기도 평택시]에 정착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문헌상 정확한 계보가 파악이 안 되는 상황에서 후손들은 고려 말 세자 전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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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경(郭鏡)을 시조로 하고 곽탁(郭倬)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세거 성씨. 포산 곽씨(苞山郭氏) 시조는 곽경(郭鏡)이다. 1930년 곽경의 묘지에서 출토된 지석(誌石)에 의하면 곽경은 중국 관서(關西) 홍농(弘農) 출신으로, 송나라 때 고려에 귀화해 1138년(인종 16) 과거에 급제한 뒤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를 역임하고 포산군(苞山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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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서 의병들이 왜군을 상대로 벌인 전투. 풍각면 전투는 임진왜란(壬辰倭亂)[1592∼1598] 당시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서 조직된 의병들이 왜군을 상대로 벌인 전투 중의 하나이다. 1592년 4월 13일 부산을 침입한 왜군 중 제1군은 4월 14일에 동래 부사(東萊府使) 송상현(宋象賢)이 버틴 동래성을 함락시키고, 이어 김해·양산·울산·언양까지 파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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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금촌리에 있는 재사. 현룡재는 지암(砥岩) 이결(李潔)이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현 위치의 동쪽에 있는 풍양지(豊壤池) 앞에 서당으로 건립하였다. 그 후 1907년 후손들이 현 위치로 이건하여 조상의 유덕을 추모하는 제사와 문중의 대소사를 의논하는 장소로, 또한 자녀들의 충효 교실로 활용하고 있다. 이서면소재지에서 팔조령을 넘어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으로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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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현리리에 있는 조선 시대 선정비 떼. 서희순(徐憙淳)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달성, 자는 치회(穉晦), 호는 우란(友蘭), 시호는 숙헌(肅獻)이다. 1816년(순조 16) 정시 문과 병과로 급제한 이래 대사성, 홍문관 부제학, 이조·예조 참판, 직제학 등을 지내고, 1833년(순조 33) 경상도 관찰사로 나갔다. 1835년(헌종 1) 대사헌과 형조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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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칠성리에 있는 재실. 이요재(二樂齋) 장방익(蔣邦翼), 양헌(養軒) 장방호(蔣邦豪), 국헌(菊軒) 장방한(蔣邦翰)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재실이다. 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칠성리 1238에 위치한다. 칠성리 경로 회관의 세 갈래 길에서 좌측의 항주 마을 방향으로 약 1,100m 정도 이동하면 야산 아래에 있다. 아산 장씨 문중에서 이요재 장방익, 양헌 장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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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에 있는 재실. 박규는 본관이 밀성(密城), 자는 계헌(季獻), 호는 경암(敬庵)으로 소요당 박하담(朴河淡)의 증손이다. 학행으로 이름이 높았으며, 덕행 또한 높아 명리를 바라지 않고 향리에 은거하며, 후학의 계도에 힘썼다. 사림의 천거로 호조 좌랑(戶曹佐郞)에 증직되었다. 완산 류연즙(柳淵楫)의 기문이 남아 있다. 황연재는 후손들이 선학을 추모하는 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