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상남도 창원 마산 출신의 정치인이자 기업가. 강선규(姜善圭)[1925~1989]는 창원 출생으로 마산 공립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早稻田] 대학을 졸업한 뒤 고려 대학교를 수료하였다. 마산 중리에 있는 내서 탁주 대표로 지역 사회의 기업인으로 활동하였다. 그 이후 제 2대 마산시 의원을 지내고 민주당 마산시당 위원장, 민정당 경남 제1지구당 위원장,...
-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음악가. 강영중[1945~1997]은 마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대학교 음악 대학 음악과 [성악 전공]를 거쳐, 단국 대학교 대학원과 이탈리아 아르츠 아카데미(Italia Arz Accademia)를 졸업했다. 창원 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창원 시립 합창단 지휘자, 경남 오페라단 단장을 역임하였다. 1991년 경남 오페라...
-
조선 시대 창원 지역에서 활동한 필법이 뛰어난 학자. 강우영은 본관은 진양. 호는 도정(桃亭). 이조 참의를 지낸 강기용(姜起龍)의 후손이다. 강우영(姜佑永)[?~?]은 스스로 수양하며 행실이 돈독하였고 경서를 익혀 옳은 것을 따르며 배움에 열중하였다. 필법이 뛰어났으며 유고(遺稿)가 있다고 하나 확인되지 않는다....
-
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양. 이조 참의를 지낸 강기룡의 5세손이다. 강윤제(姜允齊)[?~?]는 아버지가 91세로 돌아가실 때까지 효성을 다한 효자이다. 성품이 순박하고 검소하였으며 용모가 의롭고 행동이 고결하였다. 부모를 모심에 정성을 다하였고 항시 부모의 뜻에 어긋남이 없이 지극히 하였다. 아버지가 사시는 동안 그 역시 늙고 쇠하였으나 정성으로...
-
조선 시대 창원 지역 출신의 학자이자 문인. 본관은 진양. 호는 백촌(白村). 판서를 지낸 혜평공(惠平公) 강현(姜顯)의 후손이다. 강인모(姜仁模)[?~?]는 현재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출신의 학자이자 문인으로 재능이 뛰어나고 영명하였다고 한다....
-
경상남도 창원시 반계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전주이씨 재실. 경운재는 옛 창원시 반계동, 현 팔룡동 지역에 있던 부곡마을에서 집성을 이루고 살았던 전주이씨 효령대군파(孝寧大君派)의 재실로서, 효령대군 13세손 모헌공(慕軒公) 이명린(李命麟)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이명린은 충청북도 진천에서 창원부곡으로 이거한 전주이씨 창원 입향조이다. 창원시 반...
-
이알평을 시조로 하고 이잠천을 입향조로 하는 창원시 세거 성씨. 경주이씨의 시조는 신라 6촌 중 알천 양산촌(閼川楊山村)[급량부(及梁部)]의 촌장으로 전하는 표암공(瓢巖公) 이알평(李謁平)이다. ‘표암공’이라는 호칭은 알평이 애초에 경주 박바위에서 강림했다는 전설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이씨 중에는 표암공에 연원을 두고 있는 본관이 많아 합천이씨·원주이씨·아산이...
-
최치원은 신라 말기의 학자로 중국과 신라에 모두 이름을 날린 인물이다. 그는 신라 말기에 귀국하여 어지러운 당시의 정치를 바로잡으려고 노력하다가 실패하자 벼슬을 그만두고 남해안 일대를 유랑한 뒤 해인사에서 종적을 감추었다. 그의 유랑 경로 중 마산의 월영대는 매우 의미 있는 곳으로 이후 많은 문사들이 찾아 그를 기리는 시를 남겼다. 고운 최치원은 중국의 황금시...
-
1922년에 간행된 경상남도 창원 출신 학자 김상정의 문집. 김상정(金尙鼎)[1668~1729]은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창의통문(倡義通文)을 짓고 의병을 일으켜 진압에 공헌하였다. 김상정의 시문은 조카이자 제자인 김윤(金潤)·김함(金涵) 형제에 의하여 수집·보관되었다. 이 후 이재(李栽)[1657~1730]의 교정을 거쳤으며, 1922년...
-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내곡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구복한의 묘. 구복한의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상백(象伯)이다. 의창군에 봉해진 구성길(具成吉)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구종길(具宗吉)이다. 충청도사·강계부사·전라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하였다. 창원시 북면 내곡리 도태마을 뒤에 창원구씨 재실인 영모재(永慕齋)가 있고, 뒤쪽 산자락에 전라병마절도사를 역...
-
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효자. 권규열의 본관은 안동이며, 효자로 이름난 진전면 오서리 입향조인 권용현(權龍見)의 후손이다. 권규열(權奎烈)[?~?]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남달랐다. 부모님께서 진노하심이 있으면 웃음으로 다가서서 다시 기쁜 얼굴이 되도록 하였다. 장성하여서는 몸소 고기를 잡고 사냥을 하여 부모님을 봉양하니 입맛에 맞지 않음이 없었다. 아버...
-
조선 후기 창원 출신의 선비, 학자 본관은 안동. 자는 경중(景中). 호는 농와(聾窩). 월암공 권용현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권방렬이다. 권뢰[1800~1873]는 경전과 역사를 널리 섭렵하여 1828년인 순조 28년 유학으로서 식년시에서 진사 3등 제78인으로 입격하였다. 학서(鶴棲) 류이좌(柳台佐)와 정헌(定軒) 이종상(李鍾祥) 등과 도의(道義)로 사귀었다. 저술로는...
-
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효자. 권방희는 본관은 안동. 호는 기정(淇亭). 효자로 이름난 권용현(權龍見)의 후손이다. 권방희(權邦熙)[?~?]는 아버지께서 병이 들어 십년이 넘도록 일어나지 못하자 항상 곁에서 시중을 들면서 숟가락과 젓가락을 들고 있으면서 밥을 번갈아 먹으면서도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았다. 항상 변을 맛보아 그 병의 차도를 살폈다. 상을...
-
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열녀. 밀양 박씨 박경환(朴慶煥)의 딸로, 안동 권씨 권석(權석)의 처(妻)가 되었다. 권석 처 밀양 박씨는 성품이 정숙한 덕이 있어 모든 행동이 내칙(內則)에 합당하였다. 안동 권씨 권석에게 시집간 지 3년만에 남편이 병이 들어 학질에 걸리자 하늘에 기도하여 대신 죽을 것을 빌었으나 끝내 남편이 죽자 슬퍼함이 극...
-
경상남도 창원 마산진전면 출신의 법조인이자 정치인. 권오병(權五柄)[1918~1975]은 1942년 일본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1943년 와세다 대학원을 수료한 뒤 법학박사가 되었다. 1943년 일본 고등 문관 시험 사법과에 합격하고 1945년 부산 지방 검찰청 검사가 되었다. 이후 1954년 광주 지방 검찰청에 근무하다가 1960년 경희 대학교 교수가 되었...
-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오서리 출신의 교육자. 본관은 안동. 권용현의 후손이다. 권오익(權五翼)[1905~1998]은 1927년 일본 동경 대학을 졸업하고, 배재 고등학교, 중동 고등학교, 보성 고등학교 등에서 교사로 재직하였다. 해방이 된 후 1948년 서울 대학교 교수, 1957년 서울 대학교 상과대학장, 1961년 미국 미시간 대학 객원교수, 1962년...
-
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효자. 권정래의 본관은 안동. 호는 모헌(慕軒)이다. 효자로 이름 난 권용현(權龍見)의 증손이다. 권정래(權正來)[?~?]는 영특함이 뛰어나 특별한 재능이 있었다. 부모를 봉양함에 지극한 정성으로 효를 다하였다. 부모의 상을 당하자 죽으로 연명하였다. 「이십명(二十銘)」을 지어 자손들을 경계하였다고 하나 전해지지 않는다. 나라에...
-
조선 후기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효자. 권중엄의 본관은 안동, 자는 덕보(德甫), 호는 농계(農溪). 월암 권용현의 후예로 할아버지는 권기(權璣)이고 아버지는 권정래(權正來)이며 부인은 함안 이씨 이익종(李益宗)의 딸이다. 권중엄(權重儼)[1748~1830]은 학문에 힘썼고 효를 행함에 돈독하였다. 어려서 어머니의 상을 당하였을 때 예를 다하여 장례를 치렀다....
-
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열녀. 진양 강씨(晉陽姜氏)는 강정환(姜鼎煥)의 딸로 안동 권씨 찬렬(燦烈)과 혼인하였다. 권찬렬 처 진양 강씨(晉陽姜氏)[?~?]는 성품이 효성스럽고 순박하며 지어미로서의 부덕(婦德)을 갖추었다. 시집가서 시부모를 모심과 종중에 돈목함이 그 마땅함을 다하였고 남편을 모신지 40여 년 동안 반드시 공경하며 어긋남이...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 출신의 정치인. 권태욱(權泰郁)[1907~1981] 일본 도쿄[東京]의 마포 중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중앙[주오]대학 예과 및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일본 도쿄에서 치과 재료상을 경영하다가 광복 후 귀국하였다. 1948년에서 1950년에 무소속으로 제헌 의원을 지냈고, 1950년에서 1954년 무소속으로 제2대 국회 의원을 역임하였다....
-
조선 시대 경상남도 마산 출신의 학자 본관은 안동. 호는 죽남(竹南). 권호(權호)[?~?]는 성품이 순후하고 올곧았다. 학문에 뜻을 두어 『경의수록(經義修錄)』을 저술하였다. 유고(遺稿)가 있다....
-
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효자. 김경련(金慶鍊)[?~?]의 본관은 광산. 호는 홍재(虹齋)이다. 타고난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럽로 우애로왔다. 삼년 동안 부친의 병을 수발하면서 대변을 맛보아 그 차도를 살폈고 허벅지의 살을 베어 먹이는 등의 효도를 다하였다....
-
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효자. 김경호(金璟浩)의 본관은 안동, 호는 학고(鶴皐)이며, 지극한 효성으로 고을에 이름이 높아 향리의 칭송과 포상이 있었다....
-
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열녀. 파평 윤씨(坡坪尹氏)는 김해 김씨 김경호(金慶昊)의 처(妻)이다. 김경호 처 파평 윤씨(坡坪尹氏)는 나이 18세에 성혼을 하였는데 시어머니가 병들었다는 말을 듣고 바로 시댁으로 가서 시중들었다. 똥을 맛보아 병을 살피고 그에 맞게 약을 드리는 정성을 다하여 끝내 병을 낫게 하였다. 남편이 희귀한 병으로 드러...
-
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열녀. 황씨(黃氏)는 김광식(金光寔)의 처(妻)이다. 김광식 처 황씨(黃氏)는 남편이 병들자 하늘에 기도하여 대신 아플 것을 청하였다. 그 기도가 통하여 병이 차도가 있어 5개월을 더 지탱하였다. 그 후 다시 재발하여 다시 일어나지 못하였다. 남편이 죽자 가슴을 치고 곧 따라 죽으려 하였으나 곁의 6촌 시누이가 말...
-
조선 시대 창원 출신의 선비이자 학자. 호는 옥포(玉圃). 안동 김씨 김주(金澍)의 후손이다. 김교석(金敎錫)[?~?]은 성품이 강직하고 행실이 돈독하며 효성스럽고 우애가 돈실하였다. 위기지학(爲己之學)을 중심으로 스스로를 수양하고 학덕을 쌓는데 전념하였다. 김기종(金驥鍾)이 덕을 흠모하여 묘갈명을 찬하였다 한다. 그러나 현재 묘갈명은 확인되지 않는다....
-
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열녀. 전주 이씨(全州李氏)는 광산 김씨 김국현(金國鉉)의 부인이다. 김국현 처 전주 이씨(全州李氏)[?~?]는 어려서부터 의젓하고 훌륭한 행실이 있었는데 시집간 뒤 시부모님을 모시는데 정성을 다하였다. 남편이 병에 걸려 눕자 온갖 약을 구해 백방으로 구완하니 차도가 있었다. 그러나 남편이 죽음에 이르자 과단하게...
-
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열녀. 해주 오씨(海州吳氏)는 오재묵(吳載黙)의 딸이다. 김해 김씨 김두철(金斗哲)과 혼인하였다. 김두철 처 해주 오씨(海州吳氏)[?~?]는 남편이 병이 들어 매우 낫기 어려운 지경이 되어 병져 누운 지 3년이 되었어나 회생할 기미도 보이지 않고 도리가 없었다. 산천에 백일 기도를 드리며 매일 밤 칠성에도 빌었다....
-
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효부. 남양 홍씨(南陽洪氏)는 홍종한(洪宗漢)의 딸이며 김해 김씨 김병호(金秉浩)와 혼인하였다. 김병호 처 남양 홍씨(南陽洪氏)는 어려서부터 부모를 모심에 효성이 지극하였다. 시어머니가 병들어 누웠을 때 지붕에서 새가 우니 상스럽지 못한 일이라고 사람들이 말하자 새를 바라보고 울자 새가 울기를 그쳤다. 시아버지가...
-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기업가이자 정치인. 김봉재(金奉才)[1910~1990]의 호는 해암(海菴)으로, 해동학원 이사장을 역임한 뒤 마산 해산 주식회사 회장, 해남 소자 공업 주식회사 사장을 지내고 창원 금융 조합장, 대한 주정 협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자유당 중앙 정책위원을 지낸 뒤 제 2대, 제 5대 국회위원이 되었다....
-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금산리에 있는 김해김씨 판서공파 김석근의 묘. 김석근 묘는 김해김씨 판서공파의 선산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묘이다. 김석근은 환성헌(喚惺軒) 김수광(金秀光)의 아들이며 현감 김석공(金錫貢)의 아우이다. 김석근 무덤 서쪽 편에는 김해김씨 판서공파의 재실인 금호재가 있다. 김병린(金柄璘)의 『금호재기(琴湖齋記)』에는 금동의 판서공파 내력과 금호재...
-
조선 시대 창원 출신의 학자·선비. 본관은 경주. 문간공(文簡公) 김세필(金世弼)의 후손이다. 김신학(金信學)[?~?]은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향촌에 은거하면서 경술을 익히고 그것을 삶에 실천함에 힘을 다하였다. 만년에 현재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양촌리의 파릉(巴陵)에서 살았다고 한다....
-
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효자. 김유식(金有軾)은 김해 김씨로 효성스런 행실이 탁월하였다.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를 모심에 지극 정성을 다하였다. 계모가 들어오자 더욱 효성을 다하였는데 아버지는 98세의 천수를 누렸다. 매번 부친이 병이 들면 하늘에 기도하였다. 부친이 돌아가시니 삼년을 묘 곁에 여막을 짓고 시봉하였다. 조선 영조 때 좌랑(佐郞)에 증직되고...
-
조선 후기 창원 출신의 효자. 김응구(金應九)[?~?]는 부모를 모심에 지극한 정성을 다하였다. 효행은 예를 갖춘 것이었고 봉양함에도 마찬가지였다. 부모가 돌아가심에 상례와 장례를 치름에도, 소상(小祥)과 대상(大祥)에도 법도에 맞게 행함이 한결같았다. 장례 기간 동안 피눈물을 흘리며 삼년상을 치렀고 여막(廬幕)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
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열녀. 주씨(朱氏)는 김응범(金應凡)의 처(妻)이다. 본관은 불분명하다. 그러나 웅천 일대에 신안 주씨들의 세거지와 집성촌이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신안 주씨로 추정된다. 김응범 처 주씨(朱氏)는 나이 23세에 머리를 올리고 시집으로 가지 않았는데 홀연히 불의의 강제 폭압을 당하는 변고를 만났으나 몸이 더럽혀지지는...
-
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진해 출신의 자선가. 호는 농와(農窩)이다. 김정태(金正泰)[?~?]는 성품은 인자하고 어질어서 흉년이 들었을 때 춥고 배고파하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 구휼하였다. 흉년에 궁핍한 사람들을 규휼하니 고을에서 포상이 있었다. 관가에서도 또한 김정태의 선행을 기려 칭송하여 상을 내렸고 송덕비를 세웠다....
-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효부(孝婦). 진양 강씨(晉陽姜氏)는 강위겸(姜渭謙)의 딸로 김해 김씨 김제주(金濟周)와 혼인하였다. 성품이 효성스러워 지아비를 잘 섬기고 시부모를 잘 모셨다. 시아버지가 병이 들자 하늘에 기도하니 새가 날아와 잡히고 물고기가 뛰어오르는 기적 같은 일이 있었다. 고을에서 그의 효행을 기려 포상이 있었다....
-
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효자. 김택윤(金澤潤)[?~?]은 본관은 광산으로 부모를 모심에 정성을 다하였고 계모를 받듦에도 지극 정성으로 봉양하였다. 여러 아우들도 그의 효행을 본받아 혼정신성(昏定晨省)의 범절을 행하였고 항상 입에 맛는 음식을 봉양하는데 정성을 그치지 않으며 좋아하는 것은 어떻게든 구해서 드렸다. 계모도 그러한 정성에 감복하였다....
-
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효자. 김하정(金夏鼎)은 김해 김씨로 지극한 효심으로 부모를 봉양하니 탁월한 이적이 있었다. 그의 처 강씨와 더불어 부모를 봉양함에 예를 다하였다. 그 아비가 나이가 연로하여 날로 눈이 어두워져 사물을 잘 볼 수 없게 되었다. 어떤 사람이 와서 말하기를 ‘새의 간을 눈에 넣으면 눈이 밝아진다.’고 하였다. 상을 차려놓고 하늘에 기도하며 정...
-
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효자. 김학엽(金學曄)[?~?]의 본관은 안동, 호는 묵재(黙齋)로 효성스러운 성품과 우애로운 행실로 고을에 이름이 높아 칭송이 자자하였다....
-
창원시 마산 출신의 기업인. 김두영, 김한영[마산 해산(주) 사장], 김기영, 김준영[마산 상공회의소 초대 회장]은 형제이다. 김한영(金漢榮)[?~?]은 일제 강점기에 구 마산 원정에서 김한영 상점을 운영하였다. 1934년 10월 20일 마산 황물(荒物) 주식회사를 설립하였고, 1940년 17명의 마산 해산물 도매업자들이 자본금 13만 엔을 투자하여...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 출신의 법조인이자 정치인. 나길조(羅吉祖)[1923~2008]는 일본 메이지[明治] 대학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1947년 제 1회 조선 변호사시험에 합격하였다. 부산·전주·서울·대구 등의 지방검찰청에서 검사를 역임하고 청주·전주·부산의 지방검찰청 지방검사장을 역임하였다. 법무부 기획관리실장을 거쳐 대검 검사, 1973~1975년 광주고검장...
-
홍은열을 시조로 하는 경상남도 창원시 세거 성씨. 시조 홍천하(洪天河)는 중국 강남 휘주 사람으로 당나라의 태학사였다. 640년(고구려 영류왕 23) 유학을 가르치는 학사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평양에서 잠시 머물다가 다시 은수포 당관으로 옮겨 문화를 진흥시켰다. 왕은 홍천하가 사는 곳을 당성(唐城)이라 하고 관적으로 삼게 하였다. 그 후 세계가 실전되어, 고려 개국 공신인...
-
문다성을 시조로 하고 문재룡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창원시 세거 성씨. 우리나라 문씨의 대종인 남평 문씨의 시조는 무성공(武成公) 문다성(文多省)이다. 그는 472년(신라 자비왕 15) 전라남도 나주군 남평현 동쪽에 장자지(長者池)라는 큰 바위 위의 석함(石函)에서 나왔다고 한다. 나이 5세에 문사(文思)에 저절로 통달하고 사물의 이치를 스스로 깨달아 ‘문(文)’을 성...
-
1960년에 간행된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학자 김병린의 문집. 『눌재집(訥齋集)』은 김병린(金柄璘)[1861~1940]의 아들 김종하와 제자들이 김병린의 시문을 모아 1960년에 간행하였다. 총 17권 9책으로, 책의 크기는 가로 19㎝, 세로 27.5㎝이다. 전통적 고서의 실묶음을 하였다. 『눌재집』은 권1~2에 시(詩) 280여 수, 권3~7에 서(書),...
-
우현을 시조로 하고 우치문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창원시 세거 성씨. 우씨의 시조는 대개 중국 하나라의 시조로 황하의 치수에 성공하고 그 공으로 순임금에게서 제위를 이어받은 우(禹)임금에게서 비롯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우씨의 본관은 단양(丹陽)·예안(禮安)·영천(榮川)·강주(剛州)·목천(木川) 등 다섯 본이 전하나, 모두가 단양 우씨의 분파로 보고 있다...
-
서진을 시조로 하고 서사일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창원시 세거 성씨. 달성 서씨는 시조 서진(徐晋)이 고려 시대에 봉익대부(奉翊大夫)로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내면서 서씨를 성으로 받게 되었다. 그의 아들 서기준(徐奇俊)과 손자 서영(徐穎)에 이르기까지 3대가 달성군(達城君)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달성에 세거(世居)하며 관향(貫鄕)을 달성으로 하게...
-
1966년에 간행된 경상남도 창원 출신 학자 감기현의 문집. 『동미문집(東湄文集)』은 감기현(甘麒鉉)[1880~1965]의 생질(甥姪) 김종철(金鍾澈)과 족손(族孫) 감경원(甘炅源)이 감기현의 시문을 모아 1966년에 간행하였다. 총 5권 2책으로 책의 크기는 가로 19.5㎝, 세로 27.5㎝이다. 전통적 고서의 실묶음을 하였다. 『동미문집』에는 감기현이 김만...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 출신의 의료인. 류광현(柳光鉉)[1919~1999]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갖은 고생 끝에 세브란스 의전[연세대 의학과]에 입학, 당시 스승이었던 김명선 박사를 아버지처럼 모시며 의사 교육을 받았다. 1941년 졸업한 뒤 경상남도 마산에서 유광현내과 원장, 가족 계획 협회 경남 지부장, 연세대 외래교수를 역임하였다. 류광현은 자신의 스승...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에서 권투 선수들을 양성한 체육인. 류명국(柳明局)[1918~1967]의 본명은 류무영(柳茂永)이며 함안 군북 소학교를 졸업한 뒤 1931년 일본 오사카 공립 중학교에 입학하였다. 재학 중 민족 차별 구타 사건으로 퇴학을 당한 뒤 권투에 입문하였다. 1934년 야나기 시로[柳四郞]라는 일본 이름으로 처음 프로 권투 선수로 데뷔하였다. 194...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에 있는 정려각.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금암리 745에 위치한다. 마산 금암리 삼선려는 김해 김씨인 김재선의 처 월성 이씨와 아들 화습, 며느리 회산 구씨 등 삼인을 기린 정려로, 1885년에 건립되었다. 정려각의 규모는 정면 1칸, 측면 1칸이고, 지붕은 팔작 지붕이다. ‘삼려각기(三呂閣記)’의 내용은...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에 있는 열부각.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금암리 758-4답에 위치한다. 이곳은 금암리 중촌 마을 금암리~고사리 간 도로변이다. 황익권의 처 안동 권씨의 행적을 기려 유림과 향교의 통문으로 1932년에 건립하였다. 지붕의 우측 처마 부분은 하중을 견디게 하기 위해 활주를 설치하였고 외곽에는 돌담을 쌓았다....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다구리 370-2에 있는 정려각. 마산 다구리 효자각은 다구리 마을 입구 도로변에 위치하는데 이 마을에 살던 나주 임씨 윤홍 부부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현판에 ‘효자 조봉대부 나주 임윤홍 창선각(孝子朝奉大夫羅州林潤弘彰善閣)’이라고 적혀 있다. 현판 끝에 ‘공부자 탄강 삼천사백칠월일(孔夫子誕降三千四百七月日)’이라고 부...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에 있는 정려각. 경주 김씨 김광희, 김철희, 김현희 3형제의 효행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 대티리 239-2답에 위치하며, 진북면 대티리 중촌 마을과 정현리 대현 마을 간 도로변에 있다. 건물의 규모는 정면 1칸, 측면 1칸이고 지붕은 팔작 지붕이다. 벽은 판벽으로 되어 있으며 서쪽...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에 있는 정려각. 쌍효각은 월성 최씨 신광과 그의 처 청송 심씨의 효행을 기리는 정려각으로, 구산면 반동리 반동 마을 중앙에 위치한다. 부부가 부친상을 당하여 3년을 시묘하는데 호랑이가 와서 여막을 지키고, 시묘하는 곳에서 우연히 샘이 솟아 갈증을 면하게 하였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당시 사람들은 이 샘을 효자샘으로 불렀다고 한다....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에 있는 정려각. 포열각은 이동신의 처 삭녕 최씨의 열행을 기리는 정려이다. 포열각 내에는 ‘학생 이동신지처 열녀 삭녕 최씨 려(學生李東新之妻烈女朔寧崔氏閭)’를 표한 정려문과 ‘삭녕 최씨 정려 사수기(朔寧崔氏旌閭四修記)’, ‘열녀 최씨 정려 실기(烈女崔氏旌閭實記)’가 있다. ‘처사 공동신처 삭령 최씨 정려기(處士公東新妻朔寧崔氏旌閭記)’의...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있는 정려각. 조선 시대 진북면 이목리에 살던 효자 이국로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이다. 이국로의 자는 순직이며, 호는 이촌, 본관은 전주이다. 경상도 유림이 그의 효행을 기리니 1893년(고종 30) 나라에서 동몽교관을 내리고 정려를 세워 ‘영언각’이라 했다. 정려에는 ‘증 동몽교관 조봉대부 이국로지려(贈童蒙敎官朝奉大夫李國魯之閭)’라...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사동리에 있는 정려각. 마산 사동리 행원각은 진북면 부산리의 효자 참봉 정필형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선조 때 세운 정려각이다. 정필형은 1510년 진북면 부산리에서 출생하였고, 6세 때 부친을 여의고 모친을 봉양한 것이 40년 동안 한결같았다. 정려에는‘효자 예빈시 참봉 정필형지려(孝子禮賓寺參奉鄭弼衡之閭)’라고 새겨져 있다....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에 있는 정려각. 옛날 이 마을에 살던 교하 노씨 문중의 정중, 성중 형제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906년 나라에서 세웠다고 한다. 이들 형제는 일찍이 어려서 모친을 여의자 예를 다해 장례를 치렀고 이후 홀로 남은 부친에게 정성을 다해 봉양하였다. 이후 부친도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자, 형제는 여막을 짓고 3년 내내 부친의 묘소를 지키며...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상곡리에 있는 정려각. 조선 시대 상곡 마을에 살던 성주 이씨 시록(時錄)의 처 김해 김씨의 열행을 기린 비와 이 비를 보호하는 비각이다. 현재 비는 없어지고 비각만 남아 있다. 김씨 부인은 내서면 호계리에서 태어나 상곡 마을의 이시록에게 시집왔다. 어느 해 남편이 병을 얻어 자리에 눕게 되니, 김씨 부인은 백방으로 약을 구해 정성껏 치...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 합포구 진전면에 있는 비각. 김해 김씨 김시우·김시종·김시균 삼형제의 효행을 기린 비각이다. 비문에 따르면 조선 1891년(고종 28)에 조정의 특명으로 시락리의 김해 김씨 증 조봉대부 동몽교관(贈朝奉大夫童蒙敎官) 김시우, 증 통훈대부 건원릉 참봉(贈通訓大夫建元陵參奉) 김시종, 증 통훈대부 의금부 도사(贈通訓大夫義禁府都事) 김시균에게 정려...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 합포구 구산면에 있는 정려각. 열부 영산 신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한 정려각이다. 현판에는 ‘고 열부 영산 신씨지려(故烈婦靈山辛氏之閭)’라고 써져 있다. 상량문에는 단기 4322년 을사 11월 4일 상량했다고 하였는데, 이는 1989년이다.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심리 일대에 위치한다. 이는 구산면 남포리에서 심리로 넘어가는 고개...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에 있는 정려각.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의 휘하에서 싸우다가 당항포에서 전사한 변연수와 그의 아들 변립, 변립의 전사 소식을 듣고 순절한 그의 처인 안동 김씨의 충·효·열을 기리기 위하여 변씨 문중에서 정려를 세웠다. 1893년(고종 30)에 건립되었는데 심석 송병순이 현판 글씨를 쓰고 비문은 가선대부 사헌부 대사헌을 지낸...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에 있는 안동 권씨 집안의 정려각. 마산 오서리 사정려각은 조선 인조 시기의 월암 권용현, 영조 시기의 모헌 권정래, 숙종 시기의 농계 권중엄 및 권석의 처 밀양 박씨 등 4효열을 기리는 정려이다. 3인은 그들의 특이한 행적으로 정려되었고, 권석의 처 밀양 박씨는 시집온 지 3년 만에 남편이 병을 얻어 세상을 뜨자 같은 날에 자...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우산동에 있는 비각. 마산 우산동 창렬각은 순흥 안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비각 안에는 ‘열녀 순흥 안연지비(烈女順興安燕之碑)’가 모셔져 있다. 순흥 안씨는 조선 말 옥동리 신정 마을에 살던 가난한 소금 장수의 부인이었다. 어느 날 남편이 뒷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사라지고 돌아오지 않았다. 옆집에 사는 홀아비가 평소 본인에...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에 있는 비각. 정현리 표효각은 진북면 정현리 대현 마을 입구의 도로변에 있다. 진동에서 함안으로 넘어가는 대티 고개를 향하는 길가이다. 표효각 안에는 조선 영조 시기의 인물인 김해 김씨 김득명, 김득추, 김득해 3형제의 효행을 기리는 비석이 모셔져 있다.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 정현리 542-2에 위치하고...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태봉리에 있는 정려각. 마산 태봉리 행원각은 조선 말기 전주 이씨 이인철의 효행을 기리는 정려이다. 이인철은 아버지가 죽은 뒤 유복자로 출생하여 편모의 슬하에서 자랐다. 그 어머니를 모시는 효행이 특출하여 1905년에 정려가 내려졌고, 나라에서 가선대부 호조참판겸 의금부 도총관(嘉善大夫戶曹參判義禁府都摠管)을 증직하였다....
-
경상남도 창원시 사화동 운암서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말기 학자 박기호의 문집. 박기호(朴基灝)[1859~1941]의 손자 박영도(朴永道)가 시문을 모아 2003년 『만호유고(晩湖遺稿)』라는 이름으로 간행하였다. 건(乾)·곤(坤) 2책이며 현대 활자본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의 크기는 가로 19㎝, 세로 26㎝이며, 전통적 고서의 실묶음을 하였다. 표지는 황색...
-
1935년에 간행된 경상남도 창원 출신 학자 김만현의 문집. 『만휴집(晩休集)』은 김만현(金萬鉉)[1820~1902]의 재종손 김병린(金柄璘) 등이 김만현의 시문을 모아 1935년 간행하였다. 총 5권 2책 138면으로, 책의 크기는 가로 19.5㎝, 세로 27.5㎝이다. 전통적 고서의 실묶음을 하였다. 『만휴집』은 권1에 시(詩) 84수, 권2에 서(書) 2...
-
창원시 마산 출신의 상공인·문화인. 문삼찬(文三贊)[1914~1978]은 8·15 해방 후 일본인 경영의 양조장을 불하받아 대흥 주조장(大興酒造場)을 경영하였고, 1948년 민족 청년단 경남 지부 마산시 단장을 지냈다. 1949년부터 1952년까지 마산 상공 회의소 부회장, 1957년부터 1960년까지 마산 상공 회의소 상임 위원을 역임하였다. 1955년 제...
-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법학자. 문홍주(文鴻柱)[1918~2008]의 호는 해암(海巖)으로 1934년 경성 제1 고등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7년 서울 대학교 예과를 졸업한 뒤 1940년 서울 대학교에서 법학 학사를 받았다. 1955년에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헌법학을 수학하고 부산 대학교 법대 조교수가 되었다. 1960년 부산 대학교 총장을 거쳐 법제처 처장,...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 출신의 공무원이자 정치가. 민충식(閔忠植)[1920~1993]은 1944년 도쿄 대학을 중퇴하였다. 해방이 된 뒤 1946년 부산관재처 처장을 역임하였다. 1950년에는 미대사관 공보 원장을 역임하고 1955년 공리 양행 지배인이 되었다. 1962년에 다시 농림부 운영 차관보를 지내고 1963년에 대통령 정무 비서관, 1966년 주일 공사...
-
박언침을 시조로 하고 박맹번을 입향조로 하는 창원시 세거 성씨. 밀양 박씨의 시조는 신라 경명왕의 제1왕자인 밀성대군 박언침(朴彦忱)이다. 박씨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에서 비롯되었다. 박씨는 밀양·성주·완주·강릉·고성 등 12개 본관을 가진다. 그 중 밀양 박씨가 대종으로 박씨 인구의 70~80%를 차지하고 있으며 많은 계보를 가진다. 밀양 박씨의 세계(世系)는...
-
손순을 시조로 하고 손광록을 입향조로 하는 창원시 세거 성씨. 밀양 손씨는 신라 흥덕왕 때의 효자로 유명한 손순(孫順)을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손순은 신라 개국 당시 6부 촌장의 한 사람인 대수촌장 구례마의 후손이다. ‘손’이라는 성씨는 구례마가 받았다. 손순은 경주 모량리 출신으로, 지극한 효성으로 왕에게까지 알려져 월성군(月城君)에 봉해졌고 문효라는 시호...
-
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효부. 김녕 김씨(金寧金氏)는 밀양 박씨인 박기우(朴基宇)와 혼인하였다. 박기우 처 김녕 김씨(金寧金氏)[?~?]는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를 모심에 몸과 마음을 다하였다. 시아버지께서 병으로 자리에 누워 위독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병을 낫게 하려 하였다. 고을의 선비들이 그의 효행에 감동하여 포상을 하였다. 고...
-
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효자. 박상구(朴祥龜)[?~?]는 밀양 박씨로 천성이 효성스러웠다. 부친의 병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소생시켰다.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피눈물을 흘리며 삼년상을 치렀다. 어머니의 병에 하늘에 기도하니 새가 날아와 환약을 뱉어 그 약으로 소생시켰다. 문장과 학행이 뛰어났다. 당시 진해에 유배와 있던 김려(金鑢)가 그의 문행(文行)을 인정...
-
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효자. 박서구(朴瑞龜)의 호는 구암(龜菴)으로 천성이 효성스러웠다. 아버지가 병으로 위독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흘려 넣어 소생시켰다. 또한 변을 맛보아 병의 차도를 살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3년이 지난 뒤 다시 어머니가 병져 누우니 하늘에 제를 드리고 칠성에 빌어 낫기를 청하였다. 어느날 문득 한 마리의 새가 날아와 입에 환약을 물고...
-
조선 후기 창원 지역에서 선행을 베푼 인물. 본관은 밀양이다. 박세황(朴世璜)[?~?]은 타고난 천품이 어질고 후덕하였으며 지혜와 사려 깊음이 여느 사람들보다 뛰어났다. 예전 병신(丙申)년 지독한 가뭄이 들어 큰 들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졌다. 온 면의 백성들이 기아에 못 이겨 장차 이산하여 흩어질 뻔할 때 자신의 재산을 내어 다섯 군데의 보를 뚫었다. 이로 인하여 한...
-
경상남도 창원시 사화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박신윤의 위패를 봉안한 묘. 묘는 우곡 박신윤을 배향하는 운암서원 옆에 있다. 운암서원은 원래 운암사(雲巖祠)로 국가에서 향을 내려 제사를 지내게 하는 향현소(香顯所)였다가 1844년(헌종 10) 서원으로 승격되었으며, 지금의 건물은 2004년에 다시 세웠다. 이 과정에서 박신윤의 위패가 오래되어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신축년...
-
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열녀. 황석순(黃錫順)의 딸로 밀양 박씨 박영현(朴榮鉉)과 혼인하였다. 박영현 처 창원 황씨(昌原黃氏)[?~?]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이 병으로 죽자 한모금의 물도 입에 넣지 않고 죽기를 각오하였다. 그러나 시부모님이 노쇠하여 의탁할 곳이 없음을 생각하여 죽기를 그만두고 시부모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효성을...
-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정치인. 박종규(朴鍾圭)는 건국 대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원을 수료하였다. 1972년 연세 대학교 행정 대학원을 졸업하고 타이완 문화 대학원 명예 철학 박사를 받았다. 1961년 국가 재건 최고 회의 의장 경호 대장으로서 5.16 군사 정변에 깊이 관여하였다. 1964년 육군 대령으로 예편하고 대통령 경호 실장으로 부임한 뒤 박정희 대통령...
-
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효자. 박종징(朴宗徵)[?~?]의 본관은 밀양이고 효행은 하늘에서 타고난 것이었다. 아버지가 병이 들어 혼미하자 대신하기를 하늘에 청하였다. 그 고을에 한 노인이 와서 이 병에 살아있는 해삼이 좋은 약제가 된다고 하자 바닷가에 가서 울면서 호소하니 문득 백 여 마리의 해삼이 스스로 모래밭으로 올라와 잡혔다. 날이 이미 어두워졌는데 큰 호랑...
-
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열녀. 정씨(丁氏)[?~?]는 박춘경(朴春慶)과 혼인하였다. 시집간 지 오래지 않아 남편이 중한 병이 들어 여러 해 동안 매우 앓았다. 이에 정성을 다하여 온갖 치료 방법을 구하였으나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어느날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사람의 살이 효험이 있다고 하였다. 놀라서 일어나 허벅지 살을 베어 먹이니 집안사람들도 알지 못하였다...
-
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열녀. 정씨(鄭氏)는 박형직(朴衡直)와 혼인하였다. 남편이 병으로 앓아 누우니 온갖 정성을 다하여 남편의 병수발을 하였고 하늘에 병이 낫기를 기도함이 간절하였다. 남편이 병들어 죽어 상을 치르게 되자 약을 먹고 남편을 따라 순절하였다. 1829년(순조 29) 나라에서 정려를 명하였다....
-
경상남도 의령 출신으로 창원 지역의 축구 발전에 기여한 체육인. 박효제(朴孝濟)[1913~1987]는 보성 전문학교[현 고려 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연희대[현 연세 대학교]에서 축구선수로 활동하였다. 이후 경성 축구단, 마산 상업 고등학교, 마산 고등학교, 헌병 사령부, 육군 사관학교 등의 축구 감독을 역임하였다. 또한 영남 4도시 축구 대회 마산팀 선수 겸...
-
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열녀. 이씨(李氏)는 의생(醫生) 배낙용(裵洛鎔)과 혼인하였다. 정숙하고 부덕(婦德)이 있었다. 남편이 요절하자 후사가 없음을 생각하여 순절하지 않고 몸소 삯바느질을 하며 방아를 찧어 제사를 정성으로 모셨다. 삼년의 대상(大祥)이 끝나자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 순절하였다. 고을의 선비들이 여러번 장계를 올려 포상을 청하였다....
-
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열녀 주씨(周氏)는 상주 주씨로 배문선(裵文善)과 혼인하였다. 남편의 상을 당하자 예를 다하여 장례를 치렀다. 시아버지가 천수를 누리고 돌아가시는 날까지 지극 정성으로 봉양하였고 종질을 양자로 삼아 후사를 잇고 남편의 기일이 되어 제사를 모신 후 차마 혼자 삶을 부끄럽게 여겨 자결하였다....
-
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열녀 남평문씨(南平文氏)는 분성 배씨 배병준(裵炳俊)과 혼인하였다. 남편이 역병을 만나 병들어 눕자 온갖 정성을 다하여 약을 구하여 병 구완을 하였다. 남편이 죽어 상을 당함에 시신을 끌어안고 통곡하다 자진하여 순절하였다. 온 고을의 사람들이 놀라고 감탄하여 칭송하였다....
-
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자선가. 백영기(白永基)의 본관은 수원. 호는 매천(梅泉). 효행으로 이름을 날린 백우진(白瑀鎭)의 후손이다. 백영기는 평소에 가난한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풀었고 고을에 흉년이 들어 고통을 겪을 때 재산을 풀어 구휼하였다. 자애로워서 가난하여 춥고 배고파하는 사람을 보면 옷과 음식을 내어 주었고 흉년이 들면 돈과 곡식을 내어 진휼...
-
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효자. 백우진(白瑀鎭)은 호는 야은, 본관이 수원으로 부친이 병들어 잉어와 꿩을 먹고 싶어 하니 강가에 나아가 울면서 기도하니 잉어가 얼음 위로 뛰어 올랐고 꿩이 날아와 잡히는 이적이 일어났다. 밤을 새워가며 약을 구할 때면 항상 호랑이가 따라 다니며 호위하였고 개를 물어다 주는 이적도 일어났다. 나라에서 그 효성에 감동하여 정려를 내렸다...
-
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열녀 전주 이씨(全州李氏)는 이치재(李致宰)의 딸로, 수원 백씨 백재수(白載洙)와 혼인하였다. 백재수 처 전주 이씨는 남편과 어린 딸이 기이한 병으로 기맥이 막혀 혼절하니 다리 살을 베어 피를 내어 그것을 술에 섞어 먹여서 소생시켰다. 나라에서 정려를 내렸다....
-
조선 후기 창원 출신의 무신. 변구연(卞龜淵)[?~?]에 대한 내용은 『진양지(晉陽誌)』에만 등장하고 『교남지』나 『진해 현지』에는 나오지 않는다. 초계 변씨(草溪卞氏)이며 무과에 급제한 인물로 간단히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양전(良田)에 살았다고 한다. 양전은 1912년 「구한국 지방 행정 구역 명칭 일람」에 등장하는 지명으로 그 이전과 이후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초계...
-
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열녀. 안동 김씨(安東金氏)는 변립(卞岦)과 혼인하였다. 변립 처 안동 김씨(安東金氏)[?~?]는 남편 변립이 시아버지 변연수(卞延壽)가 의병을 일으켜 충무공 이순신의 휘하에 들어가자 같이 참석하였다. 전장에서 여러 번 공을 세웠다. 정유년에 당항포 싸움에서 부자가 모두 죽으니 그 말을 듣고 안동 김씨가 그날로 목...
-
배지타를 시조로 하고 배필문을 입향조로 하는 창원시 세거 성씨. 배씨의 도시조(都始祖)는 신라의 개국공신인 6부촌장(部村長) 중 금산가리촌장(金山加利村長) 배지타이다. 32년(유리왕 9)에 배씨로 사성(賜姓)하였다. 이후 세계(世系)가 불분명하여 고려 창업의 일등원훈(一等元勳) 배현경(裵玄慶)을 중시조로 하고, 분성 배씨는 6세손인 배원룡(裵元龍)을 일세조(一...
-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조상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신성 공간. 사당(祠堂)이란 조상의 신주(神主)를 모셔놓은 장소이며 그곳에서 조상의 제사를 지낸다. 대개 일반 가정에 있는 사당은 가묘(家廟)라고 하며 왕실의 것은 종묘(宗廟) 혹은 예묘(禮廟)라고 한다. 조상을 신으로 모시고 제사 지내는 것은 조상신을 숭배하는 많은 국가들이나 고대 부족들의 예를 보아 고대부터...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사화동에 있는, 박신윤을 제향하기 위해 조정에서 내린 사우. 『우곡 선생 문집』의 「우곡 선생 연보」에 “고을의 사림들이 선생의 효성과 덕행, 학행을 들어 조정에 청하였다. 조정에서는 이에 호조 좌랑을 내리고 운암 서원에서 향사를 받도록 하였다[二十八年壬午鄕邦士林以先生孝行德學請于朝贈戶曹佐郞享于雲巖書院]”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박치복이...
-
1911년에 간행된 경상남도 창원 출신 학자 감경인의 문집. 감경인(甘景仁)[1569~1648]의 후손 감재원(甘在元)과 감재규가 흩어져 있던 감경인의 시문을 모아 이종기(李鍾杞)에게 감수와 서문을 부탁하였다. 1911년에 간행되었으나 정확히 감경인의 후손들이 간행했다는 기록은 없다. 총 70장 1책이며 목판본이다. 크기는 가로 20.7㎝, 세로 30.8㎝이며, 전통적...
-
경상남도 창원시 내리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감경인과 감경륜의 사우. 삼열사는 임진왜란 당시 활약한 공으로 선무원종공신에 오른 감경인(甘景仁)과 그의 동생 감경륜(甘景倫)을 향사하기 위해 창원시 내리동에 세운 사우(祠宇)이다. 감경인은 죽은 뒤 충훈부로부터 삼열(三烈)이라는 사호(祠號)를 받았다. 1871년(고종 8) 서원철폐령으로 창원향교(昌原鄕校) 서편에 있던...
-
김수를 시조로 하고 김한을 입향조로 하는 창원시 세거성씨. 상산은 경상북도 상주(尙州)의 옛 지명이다. 상락군(上洛郡), 사벌주(沙伐州)라고도 한다. 상산 김씨는 신라 김알지의 후손이라고 하나 정확히 고증할 수는 없다. 상산 김씨의 시조 상산군 김수(金需)는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후손으로 고려 시대 보윤(甫尹)을 지내고 상산군(商山君)에 봉군되...
-
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효자. 서신재는 달성 서씨이며, 부모를 봉양함에 뜻에 어긋남이 없었고 예를 다하였다. 부친의 병들자 하늘에 기도하여 낫기를 빌었고 변을 맛보아 병의 차도를 살폈다. 여러번 돌아가실 뻔할 때마다 정성을 다하여 소생시켰다. 상을 당함에 날마다 묘소에 나아가 성묘를 하였다. 묘 아래에는 큰 냇물이 있었는데 하루는 큰 비가 내려 물이 불어나 갈...
-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동일한 인물을 조상으로 하여 이어져 내려오는 단일 혈족 집단. 성씨란 일정한 인물을 시조로 하여 대대로 이어 내려오는 단일 혈연 집단을 지칭하는 것이다. 현재는 동일 성(姓)을 중심으로 구성된 집단의 출생 혈통을 나타내거나 한 혈통을 잇는 겨레붙이의 칭호이다. 후대의 성씨는 한자식 표기로서 이름 앞에 붙어 족계를 나타내는 동계 혈족 집단의 명칭을...
-
이순유를 시조로 하고 이만득을 입향조로 하는 창원시 세거 성씨. 시조는 신라 말의 명재상 이순유(李純由)이다. 이순유는 신라 문성왕 때 이부 상서를 지낸 명신으로 경주 이씨(慶州李氏) 시조 이알평(李謁平)의 32세손이다. 이순유는 뒤에 이극신(李克臣)으로 개명했는데, 신라에서 재상까지 올랐으나 신라가 망하자 고려에 벼슬하지 않고 절개를 지켰다. 이순유의 12세손이며 중흥...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 진동면 출신의 기업인이자 정치가. 손성수(孫成守)[1903~1978]는 진동 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 청산 학원에 입학한 뒤 중퇴하였다. 1940년에 대동[동양] 제모 회사를 설립하여 기업인으로 활동하였다. 1951년 민주 국민당 시당 부위원장을 지낸 뒤 1956년 마산 시장으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1957년 민주당 위원장을 지내다...
-
1911년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감기현이 간행한 시문집. 『수첩시(壽帖詩)』는 회갑연이나 칠순기로회 등에서 만수무강을 비는 수시(壽詩)들을 모은 것이다. 수시는 원래 회갑이나 칠순을 맞이한 사람이 지은 시의 운에 따라 짓는 것이 원칙이다. 감기현(甘麒鉉)[1880~1965]이 1909년(순종 3) 4월 부친 감재원의 회갑연에서 많은 문사들이 주고받은 수시들을...
-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생산되는 물산과 그것을 이용한 모든 음식 활동. 경상남도 창원 지역은 최근 마산과 진해를 통합하면서 옛 창원 도호부 권역을 재구성하였다. 이로 인하여 창원의 지형은 바다를 중심으로 한 마산과 진해, 해안과 접한 창원 분지, 낙동강을 배후 습지에 형성된 동읍, 대산, 북면의 지형적, 지리적 특성을 갖게 되었다. 바다를 낀 리아스식 연안과 낙...
-
창원시 진해 출신의 문학가·교육자. 신상철(申尙澈)[1936~2010]은 서울 대학교 국어 교육과를 졸업하고 동아 대학교에서 문학 박사를 받았다. 1965년 『경남 신문』에 소설 「어떤 밤길」을 연재하며 등단했다. 이어 수필집 『옛 생각 이제생각』, 『벽을 허물고』, 『삶을 뒤돌아 보며』 등의 수필집을 펴냈다. 이론서로는 『문학 개론』, 『현대시와 님의 연구』...
-
창원시 마산 지역에서 활동한 기업가. 신태을(申泰乙)[1915~1995]은 1972년 경남 연탄 주식회사 설립 때 창립 대표이사 및 부회장에 선임되었다가 1974년에 대표이사 겸 회장으로 취임하였다. 1969년 한국 연료 공업 협동조합 연합회 고문을 역임하였다. 이후 1976년 마산 상공 회의소 부회장, 1977년 대한 석탄 공사 부회장, 1980년 마을금고...
-
경상남도 진양 출신으로 창원시 마산에서 기업가와 정치인으로 활동한 인물. 안차갑(安次甲)[1907~1997]은 일본 동경에서 공업을 공부하고 해방 후 귀국하였다. 안차갑은 진양 출신으로 일본에서 공부하고 해방 후 귀국하여 1947년 흥안 공업사를 운영하면서 디젤 엔진을 생산하였다. 1956년 제2대 마산 시의회 의원, 1960년 제3대 경상남도 의회 의원 등...
-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전해지는 시집간 딸과 친정어머니의 삶의 애환을 담은 ‘만날재’ 고개에 관한 전설. 각 지역마다 거의 대부분 존재하는 ‘만날재’에는 동일한 설화가 있다.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는 만날재라는 이름을 가진 고개와 그 고개에서 벌어진 옛 축제가 존재한다. 마산의 진동과 내서, 월영동 일대를 연결하는 만날재, 창원의 안민과 진해 이동 지역을 연결하는 현재의 안...
-
경상남도 창원시 팔룡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성주이씨 재실. 연산재는 옛 창원시 반계동[현 팔룡동] 지역에 있는 평산마을에 집성을 이루고 살던 성주이씨(星州李氏)의 재실로서, 소산처사(小山處士) 이만득(李萬得)을 기리기 위하여 1938년에 세운 것이다. 성주이씨의 재실은 북면 남백 지역의 월산재 등 여러 곳에 있으나 거의 낡았으며, 연산재는 최근에 지어 그 모습이...
-
김섬한을 시조로 하고 김경사를 입향조로 하는 창원시 세거 성씨. 연안 김씨의 시조는 고려 명종 때 사문박사를 지낸 김섬한(金暹漢)이다. 신라 김알지의 후예인 두 왕자가 왕에게 직간하다가 형은 북빈경[강릉]에, 아우는 시염성[연안]으로 유배되었는데, 아우의 후손이 바로 김섬한이라고 한다. 조선에 들어 김섬한의 6세손 김자지(金自知)가 있었고, 4대 뒤 영의정 김...
-
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효자. 본관은 파주. 효자로 호조 좌랑에 증직된 염범(廉范)의 아들이다. 염상유(廉尙儒)는 부모를 모심에 뜻에 어긋남이 없었고 예법에 맞게 하였다. 상을 당할 때에도 그러하였고 제사를 모실 때에도 역시 예법에 맞게 하였다. 대대로 효성을 이어갔다. 나이 팔십에 별세하니 고을의 많은 선비들이 향교에 글을 올렸다. 그 글에 “우리 고을에 자손...
-
경상남도 창원시 사화동 운암서원에서 1891년 간행된 박신윤의 문집. 박신윤(朴身潤)[1661~1698]은 뛰어난 효행과 깊은 학문으로 1712년(숙종 38) 호조좌랑에 추증되었으며, 운암서원(雲巖書院)에 배향되었다. 박신윤의 후손 박기환(朴琪煥)이 시문을 모아 1891년 운암서원에서 간행하였다. 현재 초판본은 구하기 어려우며, 1999년 운암서원에...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조선 시대 웅천현의 역사와 인물, 물산 지역적 특성 등을 기록한 읍지. 『웅천현 읍지』는 1866년(고종 3)에 국가의 명으로 편찬된 지방지이다. 우리 나라 최초의 지방지는 한강 정구가 함안의 역사와 인물, 특산물, 산천 등을 기록하여 간행한 함주지가 처음이다. 이러한 함주지의 체계를 그대로 계승하여 『동국여...
-
조선 시대 창원 지역의 학자. 본관은 문화(文化). 호는 만포(晩圃)이다. 유상모(柳相模)[?~?]는 학문이 높고 덕행이 뛰어나 이름이 높았다고 한다....
-
송대원을 시조로 하고 송성원을 입향조로 하는 창원시 세거 성씨. 은진 송씨의 시조는 고려 때 판원사(判院事) 송대원(宋大源)이다. 6세손 송유(宋愉)의 후대에 송계사(宋繼祀)·송계중(宋繼中) 형제가 있는데, 송계중이 사직공파(司直公派), 송계사의 아들 송요년(宋遙年)·송순년(宋順年)이 각각 목사공파(牧使公派)·정랑공파(正郞公派)로 갈렸다. 이 3파는 후대에서...
-
경상남도 창원시에 있는 전통 음식점과 특화된 음식점. 창원 지역에는 음식점이 그다지 많은 편은 아니다. 그 이유는 대개가 농촌이었기 때문이다. 농촌에서는 특별히 음식점을 찾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장터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음식점이 있었을 뿐이었다. 창원에서 많은 사람이 모이는 장소는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창원 읍내의 주 도로 주변과 창원장, 상남장과 북...
-
남민을 시조로 하고 남종을 입향조로 하는 창원시 세거 성씨. 의령 남씨 시조는 남민(南敏)이다. 남씨의 본관은 영양(英陽)·의령(宜寧)·고성(固城)·남원(南原) 등 4본이 있지만, 모두 남민을 시조로 한다. 남민의 본명은 김충(金忠)으로, 당나라 사람이다. 일본에 갔다가 표류하여 신라에 도착하여 귀화하니 신라왕이 남쪽에서 온 사람이므로 남씨(南氏)를 성으로 하...
-
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열녀. 창녕 조씨(昌寧曺氏)는 조병관(曺秉寬)의 딸로 전주 이씨 이강두(李康斗)와 혼인하였다. 이강두 처 창녕 조씨는 시집간 지 얼마되지 않아 남편이 병들어 위독하게 되었다. 온갖 정성을 다하여 구완하며 백약으로 치료하면서 하늘에 기도하여 대신할 것을 청하였다. 남편이 죽어 상을 당함에 늙으신 시조모를 위로하며 내...
-
조선 시대 창원 지역의 문인·학자. 이국엽(李國曄)의 증손이다. 이강인(李康仁)[?~?]은 재능과 행실이 뛰어났다. 정자를 지어 후학들을 장려하고 고을의 학풍을 일으켰다. 유집(遺集)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확인되지 않았다....
-
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효자. 이경화(李璟華)[?~?]는 본관은 성주. 호는 은우(隱隅)이며 고성 현감을 지낸 이일장(李日章)의 후손이다. 이경화는 학문이 높고 효행이 돈독하였다고 한다....
-
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효자. 이국로는 본관은 성주. 호는 이촌(梨村). 이일장(李日章)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이세갑(李世甲)이다. 이국로(李國魯)[?~?]는 타고난 품성이 효성스러웠다. 그의 아버지가 찹쌀떡을 좋아하여 매년 2두락 밭에 찹쌀을 심었는데 갑술년 여름 가뭄에 벼 이삭이 말라가게 되었다. 하늘을 우러러 울며 기도하니 하늘에서 홀연히 소나기가...
-
조선 시대 창원 지역의 학자. 본관은 경주. 호는 묵암(黙庵). 아버지는 이화준(李華駿)이다. 이규신(李圭莘)[?~?]은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문하에서 유학하였다. 노사에게 여러 번 장려함을 받았다. 아침저녁으로 문묘(文廟)에 알현하였고 초하루와 보름에 전묘(展墓)를 찾았다. 유집(遺集)이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확인되지 않았다....
-
창원시 마산 창신 학교 출신의 학자. 이극로는 어문학자로서 일제 치하에서 민족 어문운동을 주도하여 한글 보급과 민족 정신 고취를 위해 일생을 바쳤다. 이극로(李克魯)[1893~1978]는 경상남도 의령군 지정면 두곡리 출신으로 글을 배울 가정 형편이 못되어 어릴 적에 주경야독으로 공부하다가 한말 국가 위기 상황에서 국권 회복과 실력 양성을 위해 신문...
-
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효부. 선산 김씨(善山金氏)는 김채규(金采珪)의 딸이며 전주 이씨 이극(李克)과 혼인하였다. 집안이 매우 가난하여 몸소 나물을 캐고 나무를 하여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시부모를 모심에 그 입에 맞게 봉양하였다. 계묘(癸卯)년에 흉년이 들어 그 자신이 병이 들었음에도 머리카락을 잘라서 쌀을 바꾸어 공양하였다. 이 때 도둑의 무리가 습격을 하자...
-
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효자. 이기린(李起麟)[?~?]은 부모를 모심에 지극히 효성스러웠고 예를 갖추어 봉양하였다. 부친의 병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소생시켰다. 상을 당함에 관을 부여안고 통곡함이 마치 어린아이가 어미를 잃은 듯하였다. 이 때 나이가 66세였다. 초상에 예를 다하여 치름이 모두 예법에 합당하였고 삼년상을 치르는 동안 죽을 먹으며 지내 얼굴이...
-
조선 시대 창원 지역의 학자·효자. 본관은 성주. 호는 기서(機西)이다 이기순(李起淳)[?~?]은 타고난 성품이 효성스럽고 우애로웠다. 아버지가 잘못된 고변으로 횡액을 당하여 진양[현 진주]의 관아에 투옥되자 울음으로 호소하며 진정하여 부친을 석방하였고 죽을 때까지 예를 다하여 모셨다. 경사(經史)에 두루 통하여 유집(遺集)이 있다고 하나 확인되지 않는다....
-
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열녀. 전주 이씨(全州李氏)는 경주 이씨 이기준(李機駿)과 혼인하였다. 이기준 처 전주 이씨는 남편이 병이 들어 위독해지자 세 번에 걸쳐 다리살을 베어 약에 섞어 공양하니 살이 다 하여 뼈가 드러날 지경이었다. 그 남편은 그것을 먹고 끝내 병이 쾌유되어 일어났다. 암행어사에게 전주 이씨의 열행이 알려져 포상이 있었...
-
조선 시대 창원 지역의 학자. 호는 묵암(黙菴). 이형락(李亨洛)의 손자이다. 이기현(李祺炫)[?~?]은 부모를 모심에 지극히 효성스러웠다. 경서와 역사를 열심히 익혔고 글방을 열어 후학들을 가르치며 향학(鄕學)을 장려하였다. 경서와 역사에 밝았고 유고(遺稿)가 있다고 하나 확인되지 않는다....
-
경상남도 마산 지역에서 활동한 법조인이자 정치인. 이도환(李道煥)[1925~1983]은 마산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고시 사법과에 합격하고 서울고검 검사, 대구·서울 지검 부장검사 등을 지냈다. 이후 대전·부산 지검에서 차장검사를 거쳐 대검찰청 검사, 중정차장보, 고시동지회 회장, 마산 고등학교 총동창회 회장, 민주공화당 경남 제1지구당 위원장 등을 지냈다....
-
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 지역의 열녀. 삭령 최씨(朔寧崔氏)는 최인급(崔人岌)의 딸이며 성주 이씨 이동신(李東新)과 혼인하였다. 이동신(李東新)의 처 삭령 최씨(朔寧崔氏)는 남편이 중병에 들어 눕자 온갖 정성을 다하여 구호함이 지극하였다. 매일 목욕 재계하고 밤낮으로 하늘에 기도하며 대신하기를 청하였다. 그러나 필경에 남편이 죽자 손수 염...
-
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 지역 출신의 효자 이백도(李伯道)[?~?]는 어려서 아버지의 마마병을 입으로 빨아 낫게하고 장성하여 처 강씨와 함께 부모를 정성으로 모셨다. 아버지 나이 팔십에 종기가 생기자 부부가 번갈아 빨아내어 치유하였다. 또 어머니께서 병으로 위독하자 손가락을 잘라 소생시켰다. 상을 당함에 매일 세 차례 성묘하고 곡을 하며 삼년상을 치루었다. 고을의...
-
창원시 마산 경남 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한 교직자이자 소설가. 이병주(李炳注)[1921~1992]는 진주 농림학교를 졸업한 뒤 1941년 일본 메이지 대학[明治大學] 문예과를 졸업하고, 이어 와세다 대학[早稻田大學] 불문과에 진학하였으나 학병으로 동원되어 중퇴하고 중국 소주(蘇州)에서 잠깐 동안 생활하였다. 1945년 8·15 해방과 함께 귀국하여, 1948년...
-
조선 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효자. 이부화는 본관은 성주. 고성 현감을 지낸 이일장(李日章)의 후손이다. 이부화는 아버지가 병으로 7년을 누워 지냈는데 그 동안 온갖 정성을 다하여 끝내 소생시켰다. 상을 당하여 삼년동안 여묘살이를 하였다....
-
조선 시대 창원 지역의 학자. 호는 광남(匡南)이다. 이시창(李時昌)[?~?]은 학문이 높고 행실이 뛰어났다. 임진왜란 후에 향교의 문묘가 퇴폐하자 고을의 선비들을 이끌고 문묘를 이건하고 상량문을 지었다....
-
조선 시대 창원 지역의 열녀. 이두식(李斗植)의 딸이며 이여근(李汝根)과 혼인하였다. 이여근 처 전의 이씨(李汝根 妻 全義李氏)[?~?]는 시집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이 요절하자 슬프게 통곡하며 순절할 것을 생각하였다. 그러나 시부모가 노쇠하고 남편이 후사가 없는 것을 생각하여 몸소 상례를 집례하며 염습을 행하였고 예를 다하여 소상과 대상을 치루었다. 그...
-
일제 강점기 마산 지역에서 활동한 한글학자·교육자. 호는 한뫼·한메·환산(桓山)이다. 이윤재(李允宰)[1888~1943]는 어렸을 때 마을 서당에서 한문을 익혔으며 김해 공립 보통학교, 대구 계성 학교, 대구 춘잠 학교에서 수학하였다. 보통학교 졸업 후에는 김해 협성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했고 이후 마산 창신 학교, 마산 의신학교와 평안북도의 영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
조선 후기 창원 지역의 효자. 이응록(李應祿)[?~?]은 타고난 성품이 효성스럽고 우애로왔다. 부모를 모심에 있어 예법과 도리가 있었다. 향촌에서는 그의 효성과 행실에 대해 칭송이 높았다. 고을의 사람들이 이응록의 효성과 행실을 높이 기려 칭송하였다....
-
조선 시대 창원 지역의 학자. 본관은 전주. 호는 퇴재(退齋)이다. 이정현(李庭賢)[?~?]은 문장에 뛰어났는데 매우 간명하고 고풍스러웠다. 타고난 성품이 돈독하고 효성스러웠으며 형제간의 우애도 돈독하였는데 7형제가 모두 우애로웠다. 저술로는 『칠가수제록(七家修齊錄)』과 『사례요언(士禮要言)』 등이 있다....
-
창원시 마산 출신의 언론인·향토 사학자. 이학렬(李學烈)[1929~2008]은 마산 공립 중학교를 거쳐 마산 상업학교를 졸업한 뒤 성균관대 경제학부를 수료하였다. 경상남도, 부산 지역의 언론계에 종사하다가 마산 지역의 다양한 문화지 발간에 참여하였다. 1983년 『마산 시사』 편찬 위원회 상임 위원, 『통합 마산 시사』 편찬 위원, 1987년 『마산 상공회의소...
-
조선 시대 창원 지역의 자선가. 본관은 전주. 호는 하주(荷洲). 이덕상(李德祥)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이시창이다. 이한즙(李漢檝)[?~?]은 주변에 두루 선행을 베풀었다. 특히 가난한 백성들을 돕기 위한 농장인 의장(義庄)을 따로 두어 궁핍한 사람들을 구휼하였다....
-
조선 시대 창원 지역의 학자. 이화준(李華駿)[?~?]은 타고난 성품이 효성스럽고 형제간의 우애도 깊었다. 부모의 상을 당함에 예를 다하여 장례를 치렀다. 제자백가를 두루 섭렵하여 박학다식하였으며 글을 짓는데도 뛰어났다. 진동의 수리봉 즉 취산(鷲山) 아래에 집을 짓고 자제들을 가르쳤다. 유고가 있다고 하나 현재 확인되지 않는다....
-
조선 시대 진해 지역의 선비. 호는 율정(栗汀)이다. 이훤(李暄)[?~?]은 뜻이 청백하고 깨끗하며 가난한 것을 꺼리지 않고 안빈낙도하였다. 경서를 익힘에 힘을 쏟았고 그것을 몸소 실천한 사람이다....
-
장금용을 시조로 하는 창원시 세거 성씨. 인동(仁同)을 관향으로 쓰는 인동 장씨(仁同 張氏)는 상장군 장금용계(張金用界), 직제학 장계계(張桂界), 문숙공(文肅公) 장순손계(張順孫界), 안 동장씨(安東張氏) 장수명계(張壽命界), 흥성 장씨(興城張氏) 장연좌계(張延佐界), 안동 장씨(安東張氏) 장용서계(張龍瑞界) 등 6계통으로 시조를 각각 다르게 모시고 있다....
-
이도를 시조로 하고 이옥성을 입향조로 하는 창원시 세거 성씨. 전의 이씨의 시조는 고려 개국공신인 태사(太師) 이도(李棹)이며, 그 후손들의 계대는 몇 대 동안 불분명하다. 그러나 고려 후기 최해(崔瀣)가 찬(撰)한 문의공(文義公) 이언충(李彦沖)의 묘지명이 『동문선(東文選)』에 기록되어 있고, 그 비석이 묘지 옆에 묻혀 있다가 발굴되어 국립 중앙 박물관에 소...
-
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명린을 입향조로 하는 창원시 세거 성씨. 전주 이씨의 시조는 신라 때 사공(司功)을 지낸 이한(李翰)이다.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시조로부터 22세손이다. 전주이씨의 분파는 122파로서 거의 왕자대군(王子大君, 嫡)과 왕자군(王子君, 庶)을 파조로 하고 있으며, 시대구분에 따라 크게 세 갈래로 나누어진다. 이성계의 고조부인 이안사의 상계(...
-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금산리에 있는 조선 전기 김석공 처 전주이씨의 분묘. 동읍 금산리에 있는 김해김씨 판서공파 선산에 있는 조선 전기 8기의 묘 중 하나이다. 전주이씨는 김석공의 처로 김태종(金太宗)의 증손자인 제천군(堤川君) 이온(李蒕)의 딸이다. 선산에 있는 묘역의 가장 윗부분에 있다. 무덤의 앞부분과 기초 둘레석에 보수를 한 흔적이 있다. 조선시대의 무...
-
최아를 시조로 하고 최운명을 입향조로 하는 창원시 세거 성씨. 전주 최씨는 계보를 달리하는 4파로 갈려져 있다. 최언위의 후손으로 고려 문종 때 상장군으로 완주백에 봉해진 최순작(崔純爵)을 시조로 하는 문열공파, 최치원의 후예로 고려 명종 때 완산군에 추봉된 최균(崔均)을 시조로 하는 사도공파, 동주최씨의 시조인 최준옹의 후예로 고려조에 문하시랑평장사를 지내고...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 인곡리는 전통적 요소를 간직한 채 새로운 삶의 모습을 담아가며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전통적 농촌 사회의 붕괴와 새로운 농촌의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 인곡 마을이다.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 인곡리는 약 300년 전 진사를 지낸 요산(樂山) 장탁(張鐸)이 마을에 입향한 이후 자손들이 번성한 마을로 추정된다. 인곡 마을에...
-
창원시 마산 지역의 정치인. 정남규(鄭南圭)[1917~1993]는 일본 나니와 중학교를 졸업하였다. 청년 시절에는 일제에 맞서 항일투쟁을 하였고 『대동 일보』 기자로도 활동하였다. 1952년 초대 마산시의회 의원에 당선되었고 1956년 제 2대 경상남도의회 의원, 1960년 제 5대 민의원에 당선되었다. 도의원 재임 기간에 3·15 부정 선거 부정 신고 현장을...
-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대산리에 있는 조선 전기 최운해의 처 정숙부인 이씨의 분묘. 정숙부인 이씨 묘는 대산리의 사리실 동북쪽 저지대에 있는 정렬공 최윤덕 묘 뒤편에 위치한다. 조선시대 4각 분묘형으로 앞쪽과 양쪽 옆에는 산돌을 둘러쌓았다. 지면에 묻혀 노출된 부분은 매우 낮다. 묘의 높이 1.7m, 앞면의 길이 3.8m, 지름 4.5m의 장방형이다. 묘 앞에는...
-
조선 시대 창원 지역의 열녀. 진양 정씨 정시갑(鄭時甲)과 혼인하였다. 정시갑 처 안동 권씨(鄭時甲 妻 安東權氏)[?~?]는 가난한 정시갑의 집에 시집갔다. 시아버지가 병들어 눕자 몸소 나무를 하고 물고기를 잡으며 생업을 지탱하면서도 온갖 봉양을 다하였다. 그러다 남편이 병들어 죽자 따라서 순절하려다가 홀로 계시는 시아버지와 어린 자식을 생각하여 마음을 접고...
-
조선 시대 진해 지역의 효부. 영응대군(永膺大君) 이염(李琰)의 후손인 이방영(李邦영)의 딸이다. 정창진(鄭昌鎭)과 혼인하였다. 정창진 처 전주 이씨(鄭昌鎭 妻 全州李氏)[?~?]는 성품이 효성스러웠다. 시어머니가 병으로 눕자 변을 맛보아 차도를 살폈고 하늘에 기도하여 병이 났기를 빌었다. 상을 당함에 예를 다하여 치루어 내니 고을에서 글을 올려 포상하기를 청...
-
조선 시대 창원 지역의 효자. 본관은 진양이다. 정필형(鄭弼衡)[?~?]은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를 모심에 정성을 다하였다. 어머니의 상을 당함에 3년을 여묘 살이를 하였고 아버지의 상을 당한 것에 정성을 다하지 못한 것을 더하여 6년간 복을 입었다고 한다. 나라에서 정려를 내렸다....
-
임진왜란 때 진해를 중심으로 활동한 의병장. 제광해(諸光海)[?~?]는 임진왜란 때 나라의 안위가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처했을 때 스스로 거의(擧義)하여 의병을 이끌고 왜적과 싸워 전공을 세워 선무공신(宣武功臣) 1등에 책록되었다. 벼슬이 가덕 첨사(加德僉使)에 이르렀다. 당시 칠원 제씨로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운 인물은 제말, 제홍록, 제광해 등 진해 지역의...
-
창원시 마산에서 활동한 의료인. 제길윤(諸吉允)[1906~1965]은 1918년 진영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1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1926년 일본에서 일본 의사 고시에 합격하여 의사 면허를 취득하고, 1931년 의령 등에서 보건의(保健醫)로 근무하였다. 1935년에서 1940년까지 국립 마산 병원에 재직하였고, 1941년에 수상 의원[제내과]를 개업하여...
-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풍광이나 정자·재실·사찰 등을 대상으로 읊은 시가. 제영(題詠)의 사전적 의미는 정해진 제목에 따라 시를 읊거나 또는 읊은 시가(詩歌)를 말한다. 그러나 지리지나 읍지 등에 실려 있는 제영(題詠)은 주로 경승지(景勝地)를 대상으로 읊은 자연에 대한 찬미의 내용이 대부분이며, 이외에도 재실이나 사찰·누각·정자 등을 대상으로 읊은 한시이다. 창원 지역은...
-
조선 후기 창원 지역의 학자. 조대규(曺大奎)[?~?]는 항상 책을 들고 다니며 학문에 힘썼고 고을 사람들이 천거함이 있었으나 드러나기를 원하지 않았다. 스스로 수양에 매진하는 위기지학(爲己之學)에 매진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조대규는 가난한 시골 사람으로써 산림에 묻혀 살면서도 항상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이로 인하여 읍의 선비들이 여러 번 천거함이 있었다. 선비들이...
-
조선 시대 창원 지역의 열녀. 이흥신(李興臣)의 딸로 조성학(趙性學)과 혼인하였다. 조성학 처 성주 이씨(趙性學 妻 星州李氏)[?~?]는 가난한 집안으로 시집가서 남편이 병들자 온 고을을 돌면서 구걸하면서도 생업을 지탱하였다. 고을에서 성주 이씨의 열행을 높이 기려 여러 번의 포상이 있었다....
-
조선 시대 창원 지역의 열녀. 의생(醫生) 조원서(趙元瑞)와 혼인하였다. 조원서 처 황소사(趙元瑞 妻 黃召史)[?~?]는 혼인한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이 병들자 지극 정성으로 수발하며 하늘에 병이 낫기를 기도하였다. 병 문진을 가는 길에 호랑이가 길을 막자 울며 호소하니 길을 열어 주었다. 남편의 상을 당하여 예를 다하여 초상을 치르고 초상이 상이 끝나자 약을 먹고 순절...
-
조선 시대 창원 지역의 효자. 조윤사(曺允師)[?~?]는 용모와 행실이 높고 단정하며 문장과 덕행이 다른 사람들보다 걸출하였다. 부모를 모심에 지극하여 아침저녁으로 문후하는 일을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오랜 병으로 누워계실 때 약탕을 손수 달여 봉양하였고 아침저녁으로 변을 맛보아 병의 차도를 시험하였다. 임종을 맞이하여 손가락을 잘라 피를 흘려 넣어 회생하게 하여...
-
조선 시대 창원 지역의 학자. 본관은 창녕. 호는 곤지당(困知堂). 조송학(曺松鶴)의 후손이다. 조윤익(曺允翼)[?~?]은 학문이 뛰어나고 덕행이 높았다. 스스로를 경계하며 행실에 돈독해야 한다는 내용의 자경잠(自警箴)을 지어 자제들을 경계하였다. 글을 지은 것이 남아 유고(遺稿)가 있다고 하나 현재 확인되지 않는다....
-
조선 시대 창원 지역의 효자. 조창복(曺昌復)[?~?]은 어려서부터 천성이 효성스럽고 우애로웠다. 집의 살림이 지극히 가난하였으나 부모를 봉양함에는 부자와 같이 넉넉히 하였다. 아버지가 병들자 육 년을 하루같이 탕약을 달여 받들고 입에 맞는 음식을 구해 봉양하며 한결같은 마음으로 조금도 게을러지지 않았다. 양친의 상을 당하였을 때에도 조금도 예법에 어긋남이 없었다....
-
정예를 시조로 하고 정두환과 정도환을 입향조로 하는 창원시 세거 성씨. 진양 정씨는 동성동본(同姓同本)이면서 각기 시조를 달리하는 8파[진양 8정]가 있다. 원조는 『삼국유사』에 전하는 신라 6촌장(村長) 중 자산(觜山) 진지촌(珍支村)의 촌장인 낙랑후(樂浪侯) 지백호(智伯虎)라는 설이 있다. 그리고 후대에 진양정씨의 본관·분파가 이루어졌다고 하나 믿을 만한...
-
하공진을 시조로 하고 하명철을 입향조로 하는 창원시 세거 성씨. 진양 하씨는 진주 하씨(晉州河氏)라고도 한다. 진양 하씨는 삼한 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연원은 알 수 없다. 이후 3명의 중시조에 따른 3계통으로 세계(世系)를 잇고 있다. 첫째, 고려 현종 때 평장사에 오른 하공진(河拱辰)을 시조로 하는 시랑공파(侍郞公派), 둘째, 고려...
-
강이식을 시조로 하고 강희창을 입향조로 하는 창원시 세거 성씨. 진주 강씨는 진양 강씨(晉陽姜氏)로도 불린다. 진주 강씨의 시조는 고구려 때 을지문덕과 수나라 대군을 물리친 장수인 강이식(姜以式)이다. 후손 강진(姜縉)이 신라 헌강왕 때 태중대부 판내의령(太中大夫判內議令)으로 재임 중에 진양후(晉陽侯)로 봉해지면서 본관을 진주(晉州)로 하게 되었다....
-
『진해 시사』는 1991년에 발간한 진해시의 향토지 『진해 시사』의 편찬은 1974년에 논의되어 1979년에 4,000매 정도의 원고가 모였으나 간행되지는 못하였다. 이후 1989년에 다시 진해 시사 편찬 위원회가 구성되어 1991년에 발간되었다. 『진해 시사』는 1권 양장본으로 전체분량은 1318쪽이다. 1991년에 진해 시사 편찬 위원회, 경남...
-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촌락. 창원에는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촌락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그 중 대부분의 구성원이 하나의 성씨를 이룬 촌락을 집성촌이라 한다. 가령 창원시 동읍 석산의 상산 김씨, 곡목의 김해 김씨, 다호의 연안 김씨, 창원 사화의 밀양 박씨, 사파동의 김녕 김씨, 퇴촌의 순흥...
-
공자를 시조로 하고 공소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창원시 세거 성씨. 창원 공씨는 곡부 공씨(曲阜 孔氏)라고도 한다. 창원 공씨의 시조는 중국 노나라의 공자(孔子)에게서 비롯한다. 창원 공씨의 입향조는 고려 때 귀화한 공자의 54세손인 공소(孔紹)이다. 공소는 원나라 순제 때 노국 대장 공주가 공민왕에게 시집올 때 배행하여 와서 당시의 회...
-
경상남도 창원시 내리동 반룡산에 있는 조선 후기 회산감씨 재실. 창원의 반룡산은 현재 팔룡산으로 불리는데 창원과 마산의 경계이다. 이 반룡산의 남동쪽 끝에 위치한 군사 시설 안에 회산감씨 삼열공파의 재실인 관술정(觀術亭)이 있다.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의 선봉장으로 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오른 감경인(甘景仁)[1569~1648]의 호가 바로...
-
구성길을 시조로 하는 경상남도 창원시 세거 성씨. 구씨(具氏)는 원래 구씨(仇氏)로서 중국 송나라의 대부인 구목(仇牧)을 상조(上祖)로 한다. 구씨가 우리나라에 귀화한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창원 구씨의 시조는 구성길(仇成吉)이다. 구성길은 고려 혜종(惠宗) 때 찬성사(贊成事)를 지냈으며 945년(혜종 2) 서경에서 권신 왕규의 전횡을 토벌한 공으로 의창...
-
김을진을 시조로 하는 경상남도 창원시 세거 성씨. 창원 김씨(昌原金氏)의 시조는 김을진(金乙軫)이다. 그의 처음 이름은 김광준(金光俊)으로, 김알지의 45세손이며,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셋째 아들 영분공(永芬公) 김명종(金鳴鐘)의 17세손이다. 김을진은 고려 후기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에 올라 태자첨사(太子詹事)로 동궁(東宮)의 사무를 관장하였고, 공민왕...
-
박언침을 시조로 하고 박영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창원시 세거성씨. 창원 박씨는 의창 박씨(義昌朴氏)라고도 하는데, 밀양 박씨(密陽朴氏)로부터 분적된 일파이다. 창원 박씨는 창원을 본관으로 하지만 창원에 정착하여 사는 인물은 거의 없다. 창원 박씨의 시조는 밀양 박씨의 시조인 밀성 대군(密成大君) 박언침(朴彦忱)이라 할 수 있다. 박언침은 박혁거세...
-
유섭을 시조로 하고 유여눌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창원시 세거 성씨. 창원 유씨(昌原兪氏)의 시조는 고려 때 정순대부(正順大夫)로 보문각 직제학을 역임한 유섭(兪涉)이다. 고려 중기 유여해(兪汝諧)는 이부상서로 기계 유씨(杞溪兪氏)의 시조가 되었고 그의 아우 유여눌(兪汝訥)은 호부 상서를 지냈는데 회원군(檜原君)에 봉해져 회원을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 회원현...
-
정덕성을 시조로 하고 정필진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창원시 세거성씨. 창원 정씨는 창원을 본관으로 한다. 그러나 현재 창원에 세거지나 집성촌은 없다. 창원 정씨의 시조는 정덕성(丁德盛)으로, 당나라의 문종과 선종 때 대승상을 지냈고 대양군(大陽君)에 봉록되었다. 그러나 곧 참소를 당하여 조선에 유배되었는데, 이때가 신라 문성왕 때이다. 정덕성의 둘...
-
경상남도 창원시 소답동에 있는 조선 전기 지방 교육기관. 창원 향교는 지방의 교육기관이지만 중앙의 성균관과 마찬가지로 제사를 드리는 문묘(文廟), 강학 공간인 명륜당(明倫堂) 및 중국과 조선의 선철(先哲)·선현(先賢)을 제사하는 동무(東廡), 서무(西廡)와 동재(東齋), 서재(西齋)가 있다. 향교는 각 지방 관청의 관할 하에 두어 부(府), 대도호부(大都護府)...
-
현덕유를 시조로 하는 창원시 세거 성씨. 창원 현씨(昌原玄氏)는 연주 현씨에서 분적된 성씨이다. 현씨(玄氏)는 연주(延州), 창원(昌原), 성주(星州), 천령(川寧) 등의 여러 본관이 있으나 연주 현씨를 대종(大宗)으로 삼고 있으며, 나머지는 여기에서 분파된 성씨이다. 연주 현씨의 시조는 고려 명종 때의 장군 현담윤(玄覃胤)이다. 현담윤의 아들이 현덕수(玄德秀...
-
창원에는 많은 역사적인 인물들이 있고 또한 그들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그 중 유학자로서 최초의 인물은 신라의 최치원(崔致遠)이다. 최치원은 월영대와 관련된 설화로 회자되고 있으나 징험할 자료가 없다. 그 이후 고려시대에도 창원 지역을 거쳐 간 많은 인물들이 있으나 이들이 창원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는 알 수 없다. 창원 지역에 유학이 제대로 진작된 것은 조...
-
창원시 마산 지역에서 활동한 기업인. 최우열(崔祐烈)[1918~1975]은 1947년 불로 장유[구 복정 장유]를 창업하여 대표로 활동하였다. 불로 장유는 육군 군수품 납품 지정 공장이 되었다. 또한 미국 식품 의약 관리청[FDA] 공인을 취득하였다. 최우열은 1954년에는 구산 중학교를 설립하여 국가에 기증하였다. 마산 상공 회의소 부회장을 역임하였다. 제...
-
경상남도 창원시 삼동동에 있는 최윤덕 장군의 정려각. 창원시 삼동동 충혼탑 옆에 있는 조선 태종, 세종 대에 공적이 뛰어났던 정렬공 최윤덕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정려각이다. 창원시 소답동에 세웠던 것을 창원시 삼동동 충혼탑 옆으로 이건하였다. 6판의 중건기가 있으므로 6번 중건한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목조기와로 된 건축물의 형태이다. 정면 1...
-
창원시 마산 지역의 기업인·정치가. 최찬열(崔贊烈)[1902~1990]은 경남 연탄 대표로 기업인으로 활동하면서 대한 곡물 협회 이사, 경남 에너지 창립 회장, 한국 연료 협회 이사장 등을 지냈다. 정치에 관심을 두고 마산시 의원으로 출마하여 초대 마산시 의회 의원이 되었고 이후 1952년 마산 시의회 의장을 지냈다....
-
창원시 마산 지역에서 활동한 경제인. 최희열(崔熙烈)[1912~1976]은 마산 상업학교를 졸업하고 1967년 고려 대학교 경영 대학원 연수 과정을 수료하였다. 제일 은행 부장, 제일 화재 해상 보험 상무, 서울 은행 상무이사, 1970년 초대 경남 은행 은행장을 지냈다. 이때 경남 은행은 마산시 창동에서 직원 54명으로 출발하였다....
-
경상남도 창원시 적현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창원황씨 재실. 김종하의 『창원군지』「추경각기(追敬閣記)」에 의하면 추경각이 지어지게 된 경위는 다음과 같다. 창원황씨의 시조 시중공(侍中公)의 분묘는 창원의 적현(赤峴)에 있다. 옛날에 재실이 있었는데 영모재(永慕齋)이다. 창원황씨인 상서(尙書) 황기연(黃耆淵)이 매번 제사의 일을 주관하였으나 재실이 좁아서 다 수용하...
-
경상남도 창원 출신이거나 창원 지역에서 국가나 민족을 위해 충성을 다하였거나 절의를 지킨 사람들의 행적. 충절이란 충성(忠誠)과 절의(節義)를 합한 말이다. 충(忠)이란 말이 성(誠)과 결합하는 이유는 충과 성이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충(忠)은 진심진기(盡心盡己)라고 풀이한다. 즉 몸과 마음을 다한다는 의미이다. 성(誠)은 진실무망(眞實無妄)이라고 풀이된다...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화양리 곡목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창원시 의창구 동읍 화양리 곡목마을은 김귀(金龜)의 후손들이 세거한 김해 김씨 집성촌으로, 죽와(竹窩) 김시찬(金時瓚), 만휴당(晩休堂) 김만현(金萬鉉)[1820~1902], 눌재 김병린(金柄璘)[1861~1940] 등 뛰어난 학자와 문장가를 배출하였다. 침벽정은 그 중심이 되는 집이다...
-
신숭겸을 시조로 하고 신여종을 입향조로 하는 창원시 세거 성씨. 평산 신씨의 시조는 고려의 개국 공신 신숭겸(申崇謙)이다. 전라도 곡성(谷城) 출생으로 본래 궁예(弓裔)의 막료였는데, 배현경(裵玄景)·복지겸(卜智謙)·홍유(洪儒) 등의 장군과 함께 왕건을 왕으로 추대하여 개국 공신이 되었다. 927년(태조 10) 공산(公山) 싸움에서 태조의 위급을 구출하고 대신...
-
1918년 간행된 경상남도 창원 출신 황덕길의 문집. 황덕길(黃德吉)[1750~1827]은 조선 후기의 학자로 본관은 창원(昌原)이고, 자는 이길(耳吉), 호는 하려(下廬)이다. 안정복의 문인으로 이황·정구·허목·이익의 학통을 계승하였다. 15세~16세에 제자백가의 문을 익혔고 스승으로부터 위기(爲己)를 배워 일상생활의 윤리로부터 성명(性命)·이기(理氣)의 근원까지 깊이...
-
조선 시대 창원 지역의 효자. 본관은 청주. 호는 농은(農隱)이다. 한경유(韓敬維)[?~?]의 아버지가 기이한 병이 들어 눕자 10년을 하루같이 탕약을 달여 올렸으며 모든 음식을 입에 맞게 정성을 들여 마련하였다. 어느 더운 여름날에 물고기를 잡아가는데 왜가리 한 마리가 물고기를 물고 날아갔다. 그가 울면서 호소하니 다시 돌아와 물고기를 떨어뜨리고 갔다. 겨울에 또한 얼...
-
조선 시대 창원 지역에서 널리 선행을 베푼 인물. 한기윤(韓基允)[?~?]은 천성이 순박하고 후덕하여 남에게 베푸는 것을 좋아하였다. 가난하여 굶주리고 춥고 배고파하는 사람을 보면 옷과 음식을 내어 마을 사람들이 살아갈 방도를 마련해 주었다. 한기윤의 행적이 알려져 포상이 있었다....
-
조선 후기 창원 지역의 효자. 한도원(韓道源)[?~?]은 아우 한필원(韓必源)과 더불어 형제가 모두 효도를 다하였다. 아버지가 병이 들어 위독하자 형제가 함께 허벅지 살을 베어 먹였다. 상을 당하자 장례를 치르는 동안 같이 여묘(廬墓) 살이를 하였다. 고을에서 한씨 형제 효행을 높이 기려 여러 번 포상을 청하는 장계를 올렸다....
-
조선 후기 창원 지역에서 흉년이 들었을 때 백성을 구휼한 자선가. 한지방(韓枝芳)[?~?]은 성품이 어질고 넉넉하여 흉년이 들 때마다 가난한 사람들을 구휼하여 은혜를 베풀었다. 고을에서 한지방의 선행에 감동하여 나라에 천거하여 벼슬이 첨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
창원시 마산 출신의 기업가·정치인. 한태일(韓泰日)[1909~1995]은 마산 공업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희 전문학교 상과를 졸업하였다. 고려 모직 주식회사 사장으로 기업 활동을 하였고 대명 모방직 주식회사의 사장을 맡기도 하였다. 기업인으로의 위상으로 인하여 1957년부터 1967년까지 마산 상공 회의소 활동을 하면서 회장을 지냈다. 또한 마산 공업 중고등학...
-
오인유를 시조로 하고 오수복을 입향조로 하는 창원시 세거 성씨. 오씨 성은 중국 오나라의 왕부차에서 비롯하여 그의 손자 루양이 오씨 성을 하사 받고 오나라의 왕이 되면서부터이다. 우리나라의 오씨 시조는 신라 때 오응(吳應)이다. 초나라 제상 오기의 45세손인 오첨이, 500년(신라 지증왕 1)에 중국에서 신라로 건너와 김종지의 딸과 결혼하여 함양에서 21년을...
-
조선 시대 창원 지역의 학자.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해은(海隱). 진사(進仕) 허찬현(許瓚玄)의 손자이다. 허수(許洙)[?~?]는 몽재(蒙齋) 이안도(李安道)의 문하에서 수학한 학자로 학문에 힘쓰고 행실이 돈독하였다. 문집(文集)이 있다고 하나 확인되지 않는다....
-
창원시 진해 출신의 정치인. 1928년 창원시 진해에서 태어나 2002년 세상을 떠났다. 마산 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대학교 상과 대학을 졸업하였다. 황낙주(黃珞周)[1928~2002]는 진해 서여자 중학교 교장 및 이사장을 지냈다. 1972년 제 8대 신민당 국회의원이 되었고, 1973년 제 9대 신민당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뒤 원내 총무를 맡았다. 1985...
-
조선 후기 창원 지역의 효자. 호는 임헌(林軒). 할아버지는 황상옥(黃尙鈺)이며 아버지는 황재하(黃再河)이다. 황심(黃審)[?~?]은 부모를 섬김에 지극한 효성을 다하였다. 음식을 봉양함에 입맛에 어긋남이 없었다. 상을 당함에도 예를 다하여 장례를 치렀고 삼년상을 치르는 동안 날마다 곡을 하여 피눈물을 흘렸다. 또한 경서를 공부하고 예학을 익히는 것을 좋아하였다....
-
창원시 마산 지역에서 활동한 정치인. 황은환(黃銀煥)[1924~2002]은 동아 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한 뒤 고등고시 사법과, 행정과에 합격하여 부산 지방 검찰청 마산 지청의 검사, 서울 지방 검찰청 검사 등을 지낸 뒤 변호사가 되었다. 이후 정치에 입문하여 신민당 경남 제 1지구당 위원장을 맡았고 신민당 정책 심의회 법제·내무 분과 위원장을 맡았다. 1971년...
-
감규를 시조로 하고 감익한 이후의 세손을 입향조로 하는 창원시 세거 성씨. 회산 감씨의 시조 감규(甘揆)는 원나라 한림학사로서 1351년(충정왕 3)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를 수행하고 고려에 들어와 문하시랑평장사에 올랐다. 15세손 감수화(甘受和)가 연릉군(延陵君)에 봉해져서 그 이전까지는 연릉을 본관으로 삼았다. 16세손 감철(甘喆)이 북벌을 간하여 중지시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