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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에 정착하여 백성들에게 덕을 베풀어 광산 김씨가 보령의 주요 가문으로 성장하는 기반을 닦은 선비. 송도에서 태어난 김남호(金南浩)[1360~1424]는 아버지가 조선 건국기에 불사이군(不事二君)을 이유로 자결하자 귀향을 포기하고 보령에 정착하여 광산 김씨가 보령의 주요 가문으로 성장하는 기반을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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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죽정동에 있는 조선 전기 김남호, 김문서의 묘비. 김남호·김문서 묘비(金南浩·金文瑞 墓碑)는 보령 지역 광산 김씨 입향조인 김성우(金成雨)[1327~1392] 장군의 아들 김남호(金南浩)[1360~1424]와 김남호의 5대손이자 낙안(樂安)·해남(海南) 현령을 지낸 김문서(金文瑞)[1489~1546]를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김남호 묘비는 1501년 김남호의 증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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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7년에 건립된 충청남도 보령시 청라면 나원리에 있는 고려 말 장군 김성우의 묘비. 김성우 장군 묘비(金成雨 將軍 墓碑)는 고려 말 전라우도(全羅右道) 도만호(都萬戶)로 왜구를 토벌하고 보령에 정착한 광산 김씨 입향조인 김성우(金成雨)[1327~1392]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1607년(선조 40)에 건립되었다. 묘비는 김성우의 후손 김경지(金景祉)가 글을 짓고, 김섭(金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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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광해군 때 충청도 보령 지역으로 낙향하여 후진을 양성한 문신. 김태국(金泰國)[1566~1624]은 광해군 12년에 관직을 버리고 충청남도 보령시 청라면 고향으로 낙향하여 후진을 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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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출신의 조선 전기 문신. 김태정(金泰廷)[1541~1588]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인종의 비 사후 복상(服喪) 문제로 토론을 벌였다. 정여립(鄭汝立)[1546~1589]의 사람됨을 알아보고 가까이하지 않아 기축옥사(己丑獄事)의 화를 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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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출신의 조선 후기 문신. 김해수(金海壽)[1581~1640]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동지들을 이끌고 공주산성에 들어가 왕을 호종하였고, 정묘호란 때에는 여러 곳에서 공을 세운 뒤 말년에 보령으로 귀향하여 후학을 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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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단종이 폐위되자 충청도 보령의 남포현에 터를 잡고 불사이군의 지조를 지킨 문신. 김훈(金勛)[?~?]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남포현감을 지냈으며, 단종이 폐위되자 벼슬을 버린 채 남포현에 들어와서 다시는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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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 정려를 받은 조선 후기 문신. 박승건(朴承健)[1609~1667]의 자는 자이(子以)이고, 호는 성은(星隱)이다.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효자 정려를 받았다. 아들 박세주가 충청남도 보령에 정착하여 밀양 박씨 입향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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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이경전(李慶全)[1567~1644]은 조선 후기 전라도관찰사, 좌참찬,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문장가로, 아들 이무(李袤)가 남긴 글을 모아 엮은 문집 『석루유고(石樓遺稿)』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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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첨의 폐모론을 반대하였다 충청남도 보령에 낙향한 조선 후기의 문신. 이산광(李山光)[1550~1624]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기축옥사(己丑獄事)에 공을 세우고, 임진왜란 때 선조(宣祖)[재위: 1567~1608]를 호종(扈從)하였다. 광해군(光海君)[재위 1608~1623] 때 폐모론(廢母論) 주장에 반대하였다가 관직에서 물러나고, 보령에 낙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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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과 서천의 서원에 향사된 조선 전기의 문신. 이산보(李山甫)[1539~1594]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1517~1578]의 조카이다. 임진왜란 때는 선조를 호종(扈從)하고 전후에는 기근을 해결하고자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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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활동하였던 충청남도 보령 출신 교육자이자 독지가. 이석구(李錫九)[1880~1956]는 호는 학봉(學峯)이며, 충청남도 보령군 청라면 의평리 출신으로, 동덕여학단(同德女學團)과 학린사을 설립하여 육영 및 빈민구제 사업을 수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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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전후에 활약한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충청남도 보령 지역에 세거한 연안 이씨의 입향조. 이시방(李時昉)[1594~1660]은 인조반정(仁祖反正)의 공신이며 충청남도 보령과 홍주 지역에 세거한 연안 이씨 입향조이다. 강화도를 방비하고 청나라와의 관계 개선에 힘썼으며 남도에 대동법을 주장하는 등 병자호란 전후에 활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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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이후 충청남도 보령에 정착한 왕족. 이완(李琬)[1577~1648]은 완원군(完原君) 이수(李𢢝)[1480~1509]의 증손으로 임진왜란 이후 보령에 정착하여, 그 후손들이 충청남도 보령에 세거하며 완원군파를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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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쟁기에 소론으로부터 탄핵되어 충청남도 보령에 은거하다 이인좌의 난 평정에 공을 세운 조선 후기의 문신. 이유민(李裕民)[1658~1729]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관직이 한성부좌윤에 이어 형조참판이 되었지만, 소론으로부터 배척을 당하여 관직을 삭탈당하고 고향인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에서 은거 생활을 하였다. 후에 공조판서가 되어 이인좌의 난[1728년(영조 4) 3월 정권에서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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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이지번(李之蕃)[1508~1575]은 한산 이씨로 보령에서 후학을 양성한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1517~1578]의 형이며, 영의정에 오른 이산해(李山海)[1539~1609]가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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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충청남도 보령 지역인 남포현감을 지낸 조선 후기의 무신. 이지형(李枝馨)[1608~1669]은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충청남도 보령 남포현감(藍浦縣監)을 두 차례 연임하였다. 아들 이세선(李世選)이 남포 장수 황씨 황대명의 사위가 되었으며, 손자가 남포에 세거하는 등 보령 지역과 인연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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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이창수(李昌壽)[1710~1777]는 조선 후기 영조 때에 병조판서·이조판서 등을 지낸 문신이다. 이창수의 후손들이 충청남도 보령시 주산면 창암리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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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 이씨 보령 입향조이며, 토정 이지함의 아버지인 조선 전기의 문신. 이치(李穉)[1477~1530]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1517~1578], 이산해(李山海)[1539~1609] 등 후손들이 크게 번성하였고, 충청남도 보령에 세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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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출신의 조선 후기 문신. 조영진(趙榮進)[1703~1775]은 충청남도 보령 탑동에 은거하였던 조계원(趙啓遠)[1592~1670]의 후손으로 임오화변(壬午禍變) 때 사도세자의 처형을 반대하다가 파직되었다. 후에 대사헌, 형조판서 등 요직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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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장수 황씨의 충청남도 보령 지역 입향조. 황즙(黃葺)[1560~1613]은 임진왜란 때 군량미 600석, 전후 복구에 철 4천 근을 수집하여 상납한 장수 황씨의 보령 입향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