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송악면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곽창영(郭昌榮)[1878~1950]은 1919년 3월 31일 아산군 송악면[현 아산시 송악면]에서 일어난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곽창영은 1878년(고종 15) 9월 21일 아산군에서 출생하였으며, 상민 출신으로 농업에 종사하였다. 송악면 거산리 55번지에 거주하였으며, 그 밖의 사항은...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신창면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김금복(金今福)[1899~1955]은 일명 김명준(金明俊)으로 1919년 3·1운동 당시 아산군 학성면[현재 아산시 신창면]에서 주민들을 규합하여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도하는 등 3·1운동에 참여한 독립 유공자이다. 김금복은 충청남도 아산군 학성면 읍내리[현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에서 태어...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신창면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김양순(金良順)[1881~1936]은 1919년 4월 2일 밤 충청남도 아산군 학성면[현재 아산시 신창면] 학성산(鶴城山) 위에서 이덕균(李悳均) 등과 함께 횃불을 올리고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김양순은 충청남도 아산군 학성면 읍내리[현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에서 태어났다. 그 밖...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선장면 4·4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김천봉(金千鳳)[1894~1970]은 1919년 4월 4일 충청남도 아산군 선장면[현 아산시 선장면] 장터에서 2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고, 군중을 이끌고 선장면 헌병주재소로 몰려가 투석을 하는 등 격렬한 시위를 주도하였다. 김천봉은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도흥...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공주 지역에서 3·1운동을 불러일으킨 독립운동가. 박장래(朴璋來)[1899~1940]는 1919년 3월 10일 공주 지역으로 가서 영명학교(永明學校), 농업학교, 보통학교 학생들을 규합하여 「독립가(獨立歌)」를 가르치는 등 비밀리에 시위 계획을 추진하던 중 사전에 일경에게 발각되어 피체되었다. 박장래는 아산군 송악면 거산리 4...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신창면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박진화(朴鎭和)[1885~1941]는 1919년 4월 1일 충청남도 아산군 학성면[현재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 학성산(鶴城山)에서 횃불 만세 시위를 벌였고, 신창면사무소에 투석하는 등 시위운동을 주도하였다. 박진화는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신성리 128에서 태어났으며 박태화(朴泰和)·박칠...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신창면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손천일(孫千日)[1882~?]은 1919년 4월 1일 충청남도 아산군 학성면[현재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 학성산(鶴城山)에서 횃불 만세 시위를 벌였고 신창공립보통학교에 투석하는 등 시위운동을 주도하였다. 손천일은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에서 태어났다. 그 밖의 사항은 파악되지 않는다. 191...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신창면 3·1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 승일상(承一相)[1889~1953]은 1919년 4월 2일 밤 충청남도 아산군 학성면[현재 아산시 신창면] 학성산(鶴城山) 위에서 주민들과 함께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승일상은 충청남도 아산군 학성면 읍내리[현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에서 태어났다. 그 밖의 사항은 파악되지 않는다. 1...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항일 독립운동가이자 감리교 목사. 이규갑(李奎甲)[1887~1970]은 1919년 인천 만국공원에서 개최된 국민대회에 13도 대표로 참석 후 상해로 망명하였으며,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충청도의원을 맡았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목회자로 선교 활동과 교육사업을 하였으며, 1929년 신간회 활동에 참여한 이후 목회 활동을 계속했다. 해방 후...